스쿼트를 해서 내 삶이 달라졌어요! 갱생! 인간승리! 이러면 얼마나 좋겠냐마는, 오늘처럼 겨우겨우 딱 한 개 하고 아 몰라, 쓰러져 눕는 때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딱 한 개만 일단 하고 나면 이상하게 열 개를 하게 된다. - P73
한강 작가님의 <디 에센셜 한강>이 나왔을 때 호기심과 자랑하고 싶은 호승심에 작가님의 장편소설 <바람이 분다, 가라>를 구매해 놓고 지금까지 잘 모셔놓고만 있다가 이제야 주섬주섬 꺼내 읽고 있습니다. 장편소설에서 단편소설의 조각들을 찾아내고, 시 안에서 단편소설의 조각들을 발견하고, 에세이에서 모든 실마리의 첫 단추를 찾아내는 기분 입니다. 읽고 고민합니다. 작가의 경험과 아픔과 현실은 작품의 어디까지 스며들었는가.그러다 이 문장을 만났습니다. <바람이 분다, 가라>에 등장하는 서른여덟에 삶을 마감한 친구의 외삼촌이 한 말. ˝네가 그리는 모든 게 실은 네 자화상이야.˝내가 먹은 모든 것들이 내 자신이 되고, 내가 그린 모든 것, 내가 말하는 모든 것, 내가 생각하는 모든 것이 ‘나‘ 자신이라는 것은 당연하면서도 무섭게 느껴집니다. 도주할 수 없는 막다른 골목에 들어선 기분입니다.
요정들은 노래한다듣는 이도 없구만인간들 죽지 마멋대로 죽이지 마먹을 거 아니라면절대로 그러지 마 - P53
나는 탐정 영화나 추리소설의 명석한 주인공이 아니다. 머릿속은 타다 만 기억들로 이글거리고, 주먹은 유리처럼 나약하다. 달려야 할 발목은 삐어서 절름거린다. - P115
언젠가 삼촌은 나에게 말했다. 네가 그리는 모든 게 실은 네 자화상이야. 내가 마당의 목련나무를 조촐하게 그려 보여주었을 때였다. 눈가에 잔뜩 잔주름을 새기며 삼촌은 웃었다. 이 나무는 무척 예민하구나. 어깨가 천근만근이고...... 그런데 제법 골기가 느껴지는 걸. 이상했다. 삼촌이 나에게 체본으로 그려준 그림들은 저마다 그윽하고 따스한 데가 있었는데, 내가 베껴 그린 그림에서는 한결같이 고집센 무엇인가가 베어나왔다. - P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