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꽃 (출간 20주년 기념 초판본 헤리티지 커버) 복복서가 x 김영하 소설
김영하 지음 / 복복서가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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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출간 20주년을 맞이한 [검은 꽃]에 대해 아는 것이라곤 조선이 대한제국이라는 이름을 쓰고 있던 시절, 우여곡절 끝에 멕시코의 척박한 농장에 노예처럼 팔려간 ‘애니깽‘에 관한 역사소설이라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왜 ‘먼 곳으로 떠나 흔적 없이 사라진 이들의 이야기‘라는 타이틀을 가졌는지, 사진신부로 유명한 하와이 농장과는 어떻게 다른지 사실 관심이 없었습니다. 백여년 전 나라를 잃었던 기억들은 지금 세대에겐 없기에, 더 잘 살기 위해선 인권보다 민주주의 보다 돈을 우선시한 ‘황금만능주의‘ 세대와 ‘불가능은 없다‘를 외치는 시대를 거쳐 영화 제목처럼 ‘국가부도의 날‘로 인한 극한 상황을 겪었던 세기말의 불안정 된 시간까지 지나서야 세계가 동방의 작은 나라를 문화적 우위의 나라라 칭송하는 시절에 다다르다보니 20년 전 쓰여진 이 책이 말하는 100년 전의 나라가 이제야 궁금해졌습니다. [검은 꽃]이 어둠 속에서 피었다 흔적도 없이 져버렸다는 걸 비로소 돌아볼 여유가 생겼다고 핑계를 대봅니다.

시대가, 운명이, 우연이 만든 나비효과는 개개인의 삶에는 거대한 폭풍으로 다가옵니다. 1905년 4월의 제물포의 풍경이 그러하듯. 임오년의 군란과 동학의 난 그중 하나에 아비는 휩쓸려 죽었다고 하고 그런 아비의 죽음 뒤에 어미는 어린 자식을 두고 어디론가 떠나 버렸습니다. 이름도 없던 아이는 보부상에게 덜미가 채여 혹사를 당하다 도망쳐 누구나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멕시코로 향하는 배에 탑승을 기다리며 제물포에 와 있습니다. 러시아 고문단에서 훈련을 받은 대한제국 신식군대의 공병 하사였으나 러일전쟁으로 군복을 벗고 굶주림을 벗어나고자 똑같이 제물포에 와 있는 군인들 이백여 명 속에 조장윤은 영특해 보이는 소년에게 ‘김이정‘이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연회가 사라진 대한제국 궁중악사 출신의 내시와 믿음을 부정하며 도망친 신부, 인천에서 유명했다는 박수무당과 황제의 육촌이었으나 지금은 아내와 딸, 아들을 모두 데리고 새로운 땅에 희망을 걸고 나라를 등지는 사대부양반 이종도 등이 모두 이곳에서 크고 평평하다는 바다 ‘태평해‘ 건너의 황금땅을 향해 어서 배가 출항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여객선도 아니고 화물선에 가까운 배는 적정인원의 세배에 가까운 1033명의 승객들을 짐짝처럼 꾸역꾸역 머금고 이름과는 전혀 다른 태평해를 가로질러 멕시코로, 유카탄반도 전역에 스물두 개의 농장으로 이들을 데려다 주고는 유유히 떠났습니다. 배에서 2명이 병으로 죽어 바다에 던져졌고, ‘태평‘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 아이가 태어나 1032명이 된 이들이 도착한 뭍은 황성신문공고란에 실린 희망과 꿈의 세상이 아닌 농노화 된 마야 원주민의 인력 부족을 대체할 채무노예와 별반 다른게 없는 조선인 노동자들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수요의 증가로 수급이 딸리고 있는 선박용 로프의 원료인 에네켄(용설란)을 조달할 노동력이 필요한 농장주들은 자신들의 능력에 따라 배에서 내린 이들을 선택하여 불볕 더위의 지옥으로 이끌고 갔습니다.

익숙하지 않는 노동으로 하루를 꼬박 일해도 먹을 것을 사면 적자인 세월이었습니다. 더 나은 삶을 살고자 찾아간 곳에서 노예와 같은 삶을 살다 죽어간 이들, 대한제국의 황친으로 나라를 대신해 대표격으로 자신이 백성을 이끄는 사람이라는 자부심으로 배에 올랐으나 더 이상 양반도 하인도 없는 세상에 던져져 나날이 무력한 자신을 탓하게 된 사람, 통역의 중요성을 알아 하나라도 더 배워 고달픈 생활에서 벗어나려 하는 사람, 연정으로 신분도 뛰어넘었으나 살아남기 위해 남고 떠나야만 했던 사람, 나중엔 이름뿐인 나라도 사라지고 원치않는 일본인이 되는 것을 거부하고 자신이 직접 나라를 세웠던 사람까지 멕시코와 미국, 마야인들과 스페인, 친일파 미국인과 러시아까지 역사의 거대한 소용돌이 한복판에 휩쓸려 고통받고 차별받고 사고팔리는 신세까지 떨어졌던 이들을 누구도 기억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더 서럽게 다가오는 소설 [검은 꽃]이 제 마음속에 터를 잡고 싹을 틔웠습니다.

다음이 궁금해지고, 역사의 진실이 궁금해지고, 실제적 사실 관계가 궁금해지는 소설 덕분에 황무지처럼 삭막한 1905년의 사람들을 떠올리며 세상으로 흩어진 이들이 뿌린 씨앗이 지금의 우리를 존재하도록 만들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리고 한편으론 이름 없이 사라진 수많은 이들이 그토록 꿈에 그리던 나라가 지금의 대한민국은 아닐 것 같아 고개를 떨구게 됩니다.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제국주의 사고를 여전히 찬양하는 일본처럼, 우리가 무지해 식민통치를 받았다고 떠드는 사람까지 큰소리를 치는 세상이라니. 앞으로 세월이 지나 2023년의 오늘이 어떻게 평가 될지 걱정을 하며 책을 덮습니다. 아마도 오래오래 [검은 꽃]이 가슴에 피어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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