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겨진 삶
실비 제르맹 지음, 이창실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실비 제르맹의 소설들을 처음 만났을 땐 충격이었습니다. 마치 공기 중을 날아다니는 물고기를 만난 것 처럼. [호박색 밤]을 먼저 읽고 [밤의 책]을 다음으로 읽고 이제야 [숨겨진 삶]을 다 읽었습니다. 비로소...숲에서 걸어나와 언덕을 지나쳐 장례식이 치뤄지고 있는 묘지로 다가왔던 주목이, 붉은 열매를 달고 있던 그 나무가 조금은 이해 되기 시작했습니다. 마리의 이야기를 통해.

[숨겨진 삶]은 당첨 된 복권을 잃어버리고 화를 참지 못한 사빈의 남편이 자신의 차로 낸 사고로 죽고, 그 차안에 몰래 타고 있던 딸 마리가 한쪽 발을 잃고, 갑자기 아빠를 잃은 큰 아들 앙리와 쌍둥이 형제까지 네 아이를 키워야 하는 엄마의 이야기인 동시에 크리스마스이브에 산타클로스 복장을 하고 백화점에서 일하던 피에르가 위태로운 행동을 하는 사빈을 발견하고 말을 걸어줬던 인연으로 남편이 남긴 상점에서 일해 줄 것을 부탁하며 십 년이나 가족처럼 지낸 어느날 홀연히 사라져 팔 년이라는 세월이 지나 다시 그가 나타나게 되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피에르가 가진 이름들의 서사와 피에르의 가족, 아버지 파콤과 그가 사랑하는 사람이 있더라도 그와 결혼을 해야했던 어머니 셀레스트, 태어난 아들에게 연인의 이름-에프렘-을 준 파콤이 전쟁에 참여하고 셀레스트는 독일 점령군이지만 유쾌한 요한을 통해 진정한 사랑을 느끼고 그의 아이를 낳습니다. 피에르의 동생이며 어머니가 자신의 외할머니 이름을 물려준 젤리, 셀레스트는 그 아이가 적군의 아이라는 이유로 점령군으로부터 해방되자마자 사람들에 증오심에 의해 모든 것-심지어 머리카락 까지도-을 강탈당하고, 때로는 몸이 완전히 벌거벗겨져 군중 속에서 야유를 받으며 걸어야만 했습니다. 십삼 개월 된 여자아이 젤리도 함께.

피에르를 며느리인 사빈의 정부라고 생각하는 샤를람 베랭스, 사빈의 남편이자 조카인 조르주를 남자로 사랑했던 샤를람의 여동생 에디트, 멀리서 보면 이들에겐 평범한 일상들과 사고들과 더 보편적인 삶이 있을 뿐이지만 자세히 보면 이들은 모두 세상에 의해 영향을 받고 있는 존재입니다. 전쟁과 혁명, 강제징용과 상처입은 여성들과 아이들, 피에르의 어머니가 그러했고, 허공을 향해 나아간 젤리가 그러했고 상처받은 피에르와 이제야 자유로워진 사빈 역시 남들의 시선으로부터 벗어나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작은 연결고리로만 이어진 이야기처럼 화자도 바뀌고 주인공도 바뀌는 [숨겨진 삶]에서 결국 우리 각자가, 우리 모두가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피에르가 사빈을 만나는지 우리는 모르지만 그러길 바라는 마음처럼 ‘숨겨진 삶‘에는 각자의 서사가 같은 방향으로, 때론 다른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만난다면 우연이고 필연인 것을.

읽고, 느끼고, 함께 [숨겨진 삶]을 발견할 기회가 있기를 바래봅니다.
우리 모두. 처음이 오래걸릴 뿐 속도가 붙으면 그야말로 세상의 경계선을 너머 우주로, 다른 세상으로, 마법이 존재하는 차원으로 빠려가듯 순식간 입니다. 추천 합니다.

#숨겨진삶 #실비제르맹 #장편소설 #이창실_옮김 #문학동네
#프랑스소설 #책추천 #책스타그램 #완독챌린지 #독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