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범한 밥상 - 박완서 대표중단편선 문학동네 한국문학 전집 3
박완서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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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불혹의 나이에 [나목]으로 등단한 박완서 작가의 10편의 단편소설로 이뤄진 소설 [대범한 밥상]을 지난 해 정초에 구매해 이제야 읽습니다. 학교 수업 중에 짧은 발췌본으로 접해 본 적은 있지만 정식으로 출판 된 소설들을 만나는 것은 처음 입니다.

선풍기 앞에 흑백사진으로 기억되는 푸근한 인상의 작가님 모습이 작품에서도 그대로 반영 되리라는 막연한 기대감으로 첫번째 단편 ‘부처님 근처‘를 만났습니다. 아버지와 오빠의 22주기 기일 제사를 위해 절에 간 어머니와 딸의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전쟁으로 인해 다정하고 오붓한 한 식구들에서 어느 날 갑자기 두 남자 식구가 차례자례로 죽어갔다(23쪽)는 덤덤한 목소리 너머로 두려움까지도 감추고 죽음마저 삼킨채 실종이라는 베일로 가려야 했던 시절을 살아 온 모녀의 모습이 수업이 절을 하는 행위를 통해 절절하게 다가옵니다. 초는 한 갑에 백이십원, 만수향은 백원이라는 말에 값을 깎으려는 딸을 나무라는 어머니, 불전에 오백원을 넣는 딸을 보고 악착같이 사백원을 거슬러 꺼내는 어머니, 부처를 향해 정성스레 절을 올리는 어머니와 아버지와 오빠의 죽음을 삼켜버리고 은밀히, 음험하게 교외의 집에서 살던 어머니와 나의 모습이 서로 다른 이야기 같지만 어쩔 수 없는 하나의 삶이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 단편 중 가장 위트 있는 작품으로 ‘지 알고 내 알고 하늘이 알건만‘을 뽑고 싶습니다. 나이들고 병든 시아버지의 수발을 위해 성남 모란시장 근방에서 광주리장수를 했다는 성남댁을 새머니로 모시고 사는 맏며느리 진태 엄마가 등장하는 이 작품은 남들에게 효자 효부라는 소리를 듣기 위한 진태 엄마가 중풍으로 쓰러져 고생하다 돌아가신 시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며 혼절을 하는 혼신의 연기를 펼칠 때 그야말로 속 사정을 다 알고 있는 성남댁이 본인의 처지를 알고 그래도 할 수 있는 정성은 다 한 후에 받기로 했던 열세 평 아파트가 이미 팔려 남에게 넘어갔다는 말에도 홀가분하게 떠나며 이야기는 끝이 납니다. 사람이 분수를 모르면 화를 받는다는 말을 하면서도 지 알고, 내 알고, 하늘까지 아는 일이건만 어쩌면 그렇게 감쪽같이 사람을 속여넘길 수 있담.(290쪽) 속시원하게 욕을 하며 요란한 엉덩잇짓을 하며 떠나는 모습이 읽는 이에게 웃기면서도 서글픈 감정을 불러 일으킵니다.

작품 곳곳에 박완서 작가님이 겪은 세월이 배어 있고, 상처와 아픔이 전해져 옵니다. 그러나 그것이 슬픔이라는 감정만으로 일괄 되지 않고 살아남은 여인들의 의지와 1960년대, 70년대의 혼란의 시기와 80년대 민주화를 위한 투쟁의 시기가 작품에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 대담한 표현과 체면을 위한 인간의 가식적인 가면 뒤의 실상을 고발하는 단편들을 읽으며 생각하지 못했던 시절을 직접 대면하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소설 [대범한 밥상]을 통해 박완서 작가님을 만나고 또 다른 세상을 만났습니다. 결코 읽어보지 못했다면 몰랐을 세상을.
이 가을이 깊어지기 전에 꼭 읽어보시길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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