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크리트의 섬 JGB 걸작선
제임스 그레이엄 밸러드 지음, 조호근 옮김 / 현대문학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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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4월 22일 오후 3시를 살짝 넘긴 시각, 로버트 메이틀랜드라는 이름의 35세 건축가가 런던 중심부 웨스트웨이 입체교차로의 고속 출구 차선으로 차를 몰고 있었다. 제한 속도를 훌쩍 넘긴 재규어의 왼쪽 앞바퀴가 파열하며 임시 가드레일로 세워 놓은 소나무 가대 울타리를 뚫고 그섬, 작은 교통섬에 불시착했다. (7쪽~11쪽)

메이틀랜드는 [콘크리트의 섬]을 방문하는 가장 과격한 방법으로 침입합니다. 중앙분리대의 콘크리트 가장자리에 타이어가 긇히고, 터널을 빠져나와 4월의 햇살이 주는 눈부심을 뚫고 기어이 녹슨 폐차들이 널부러진 섬에 도착했습니다. 세 갈래 고속도로가 모이는 교차점에 생겨난 삼각형 형태의 황무지에 들어선 메이틀랜드는 자신이 벗어난 일상들을 되돌아봅니다. 하교를 해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여덟 살의 아들, 사흘의 회의 일정이 끝나는 피곤하고 지친 오늘, 일주일을 함께 보낸 의사 헬렌 페어팩스를 뒤로 하고 아내 캐서린을 만나야 한다는 사실에 이르러서야 혹시 러시아워를 피해 출발했음에도 과속으로 사고를 낸 이유가 피곤한 상황을 멀리하기 위한 의도 된 행동이었는지 의심을 하며 주변을 둘러봅니다.

결코 넘을 수 없는 방벽 넘어 유리창 속 세상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높은 도로 경사면 위로 메이틀랜드의 일상을 닮은 고속도로를 빠르게 달리는 차들의 지붕이 난간너머로 보이고 고가도로의 동쪽으로 400미터 정도 떨어진 철조망 사이로 근교 쇼핑센터가 보이지만 눈앞에 10미터 높이의 경사면이 다른 한쪽은 족히 20미터는 솟은 고가도로가 둘러싸고 있어 사고에 다친 다리와 폐차직전에 놓인 재규어만이 현실을 직시하라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습니다.

SF소설이라는 문장에 기대한 공상과학적인 판타지를 찾아 로버트 메이틀랜드의 ‘콘크리트의 섬‘을 투어하는 동안 무던히도 어느대목에서 현실을 벗어난 판타지 세계로 들어서게 되는 것인지, 아니면 이 교통섬이라 부르는 곳 자체가 이미 사람들과는 다른 이세계인지 의심을 갖고 탐험을 하며 간간히 기존 세계와의 완벽한 단절은 아님에 안도를 하다가 이섬의 원주민으로 정착해 살고 있는 이들이 메이틀랜드를 발견하는 장면을 읽으며 혼란은 더욱 가중 되었습니다. [로빈슨 크루소]의 전복적 오마주를 마주한 [콘크리트의 섬]은 주인공의 생존을 위해 탈출이 아닌 ‘섬‘ 자체로의 변신을 이야기 한다는 것을 아주 나중에서야 깨달았습니다.

‘구출‘이라는 희망을 품은 소제목에서 만난 제인 셰퍼드나 상처 입은 곡예사 프록터-경계선 넘어에서 섬으로의 관심을 극도로 싫어하는 인물-의 등장으로 긴장감이 높아지고, 서류가방에 있던 돈뭉치가 그져 종이뭉치의 가치라는 사실에, 어떤 지름길도 없이 비탈길을 올라 섬을 탈출 할 수 있다는 증명이 눈앞에 보일 때, 스스로 섬이 된 메이틀랜드가 선택한 마지막은 무엇일지 상상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책을 덮고 나서 받는 충격은 [콘크리트의 섬]이 밸러드의 ‘도심 재난 3부작‘ 중 하나로 1974년에 집필 되었다는 점에서 일차로, 50년가까이 된 그 시절의 조금은 다른 의미의 SF소설이 여전히, 지금도 이질적이지 않게 받아들여 진다는 점에서 이차로 다가옵니다. 우주를 탐험하고 은하계 밖의 또다른 은하계를 꿈꾸지만 우린 아직 일상에서 조금 떨어진 삼각형의 고가다리 사이의 땅에 무엇이 살아가고 있는지 모르고 관심도 없습니다. 함께 살아가고 있으나 존재를 모르는 무엇이 존재한다는 것이 주는 이중의 세계관, 그것이 밸러드식 SF소설의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출판사 제공 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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