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터 - 근대의 문을 연 최후의 중세인 클래식 클라우드 26
이길용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마르틴 루터‘ 하면 떠오르는 단어들은 종교개혁과 면죄부 판매에 대한 반박문이 전부 였습니다. 교양과목으로 들었던 철학의 이해 시간에 들었던 수많은 위인들, 철학자들의 이야기 속에서 그는 그정도의 기억으로 남아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제 그가 왜 종교개혁의 선두에 서게 되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단지 교회의 이중적인 태도와 자신이 알고 있는 성서 지식에 반하는 성직자 사회를 바로잡고자 했을 수도 있고, 시대의 요구에 의해 행운과 같은 운명으로 그가 근대의 문을 연 최후의 중세인의 길을 걸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는 아버지의 성인 ‘루더‘ 대신 ‘자유인‘을 뜻하는 ‘엘레우테리오스 Eleutherios‘ 에서 가운데 글자를 따서 ‘루터 Luther‘를 가져오고, 성 마르탱의 축일인 11월 11일에 세례를 받고 ‘마르틴‘이라는 이름을 얻게 됩니다. 엄격하고 잘못한 것이 있으면 체벌을 하는 부모와 당시 유럽 인구의 1/3이 목숨을 잃은 페스트로 인해 불안과 죽음에 대한 공포속에 신앙은 곧 ‘구원‘이었으며 특별한 경험 등을 겪으며 수도사가 되기로 결심합니다.

루터에게 신의 의란 자비와 사랑, 은총이며 결코 준엄한 심판자가 아니라는 확신이 생겼고 대학에 들어가 처음 접한 그리스 원어로 된 성서를 연구하며 그 뜻을 해석하여 교단에서 강의를 하기 시작합니다. 이때까지도 대학에서 모든 강의는 라틴어만을 사용했으며 성서 역시 5세기 초 라틴어 번역 된 불가타를 사용했습니다. 1516년 에라스뮈스에 의해 새롭게 번역 된 성서가 출판 됩니다. 그리스어 원문과 라틴어 번역문을 나란히 배치 하였으며 루터는 뛰어난 고전 그리스어 능력으로 불가타 역본의 문제와 오역에 대해 인지를 하고 성서 원어를 충실히 해설하였으며, 이에 더해 루터는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사제라는 사상을 확고히 했고 당시 신과 인간 사이를 오직 성직자만이 중개를 하여야만 한다는 종교계의 기본 틀을 깨게 됩니다. 또한 신약성서를 생활 독일어로 번역하여 당시 발전 중인 인쇄술의 도움으로 민간에 모든이들이 사제가 되는데 필요한 성서를 보급하였고 이를 시작으로 혁명의 대장정에 오르게 됩니다.

루터는 학문적, 성서적 혁명 이외에도 수녀였던 카타리나와 결혼하여 6명의 자녀를 두고 중세의 성 윤리의 벽 역시 깨는 또 다른 개혁을 실천합니다. 모든 도시에 학교를 세우라는 기치를 펼치며 남녀 차별없이 교육의 필요성을 설파했으며 이미 상업화로 성장하던 시민세력들의 호응도 얻었습니다.

루터는 그야말로 시대의 흐름을 읽고 자신의 의지를 전 유럽에 널리 알리며 근대의 문을 연 선지자 였습니다. 그러함에도 여전히 한계는 있었으며 노예제도를 옹호하거나 신앙의 선택에 있어서는 영주에게 모든 권한이 있다는 입장을 고수 하기도 했습니다.

한사람을 글로 이해하는 것은 매우 어러운 일이지만 극히 일부의 조각들을 큰 물결속에서 발견하는 즐거움이 있는 [루터]의 여정을 함께하여 즐거웠습니다.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루터 #이길용 #종교개혁 #arte #클래식클라우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