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판본 페스트 (양장) - 1947년 오리지널 초판본 표지디자인 더스토리 초판본 시리즈
알베르 카뮈 지음, 변광배 옮김 / 더스토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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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밀레니엄 시대의 희망찬 막을 연 인류가 맞닥뜨리게 된 불행 중 하나는 전염병 사스, 신종플루, 메르스 그리고 지금의 혼란스러운 세계상을 대변하는 코로나19이다. 세계보건기구가 팬데믹을 선언하게 만든 이 전염성 질환으로 인해 대한민국을 포함한 온 세계가 몸살을 앓고 있는 요즘 적실성 있는 책 한권을 만난다. 어쩌면 이러한 상황에 부합하는 오래 전 출간 된 이 책의 소환은 시대의 당연한 요구로 인한 것이 아닐까?

 

<이방인>으로 알려진 20세기 최고의 작가 중 한명인 '알베르 카뮈'의 작품인 <페스트>는 1947년 세상에 빛을 보게 된 너무나 유명한 저작이다. 이 책의 배경은 프랑스 소재 작은 시골 마을 '오랑' 시이며 대략적인 줄거리는 그곳에서 발병한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흑사병, 즉 페스트에 관한 이야기이다. 중세 유럽 전체 인구의 1/3의 목숨을 앗아간 전무후무할 정도의 살상력을 지녔던 페스트가 20세기 중반 '오랑' 이라는 작은 시골 마을을 덮친다. 무미건조할 법한 일상의 반복이 쳇바퀴 굴러가듯 이어지던 이 마을을 송두리채 흔들어 놓은 페스트로 인해 하루아침에 오랑은 더 이상 평범함을 꿈꿀 수 없는 삶의 나락으로 떨어진다. 저자는 책을 통해 몇몇 주된 인물들의 심리와 심경의 변화를 토대로 페스트를 통해 그들이 가지고 있었던 삶과 죽음의 진정한 의미를 들추어내는 작업을 성실하게 수행한다. 이야기의 중심에 선 인물인 의사 리외와 그의 이웃이자 친구인 타루, 성직자인 파늘루 신부, 취재차 오랑을 방문했다가 오랑시의 모든 관문이 폐쇄되는 조치로 인해 발목이 붙잡혀 버린 기자 랑베르, 시청의 말단 서기 그랑.

 

각양 각색의 인물이 가지는 그 독특한 분위기를 살려 이야기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카뮈가 가지는 그 문학적 천재성은 가히 놀라울 따름이다. 전작 <이방인>을 통해서도 주인공의 심리 묘사에 탁월함을 드러낸 바 있기에 본서를 통해서도 카뮈는 그가 창조해 낸 다양한 인물들의 심경을 세밀한 터치로 묘사함으로서 정적이지만 독자로 하여금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원초적 긴장감을 선사한다. 마치 책장의 다음 페이지를 넘겼을 때 보고 싶지 않은 무엇인가가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은 그 저릿한 감정의 곡선을 자유자재로 가지고 노는 카뮈의 탁월함을 엿보게 된다.

 

책의 말미에 제공된 역자해제는 독자들로 하여금 제시된 해답지와 같이 작가인 카뮈가 본서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주된 메시지를 발견하는 손쉬움을 선사한다. 그러나 코로나19와 같은 지금의 시국에서 이 책을 집어든 독자의 의도가 재미와 궁금증이라는 다소 가벼운 마음에 기인했든 아니면 무엇인가 책을 통해 위로와 희망을 기대하는 연약한 마음에 기인했든 이 책을 펼쳐든 이상 독자의 의무는 카뮈가 전하는 정답을 잠시 덮어둔 채 독자로서의 주체성을 지키며 자신만의 비판적 의견과 생각을 능동적으로 피력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오랑 시는 페스트로 인해 모든 외부 세계와의 접촉이 금지된 채 도시의 관문이 모두 폐쇄되는 극단의 조치가 취해짐으로서 들어갈 수도 없고 나갈수도 없는 말그대로 고립무원의 상태가 되어버린다. 수 많은 사람들이 전염병의 희생양이 되어가는 이 절체절명의 상황 속에서도 페스트에 대항해 싸우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대다수의 사람들은 삶에 대한 희망을 잃어간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주요 인물 중 한 사람인 타루가 이야기하는바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웃을 신뢰할 수 없다는 것, 이 이웃이 당신 모르게 페스트를 건넬 수 있고, 당신이 포기하고 있으면 그 기회에 당신을 감염시킬 수 있다는 것...", "절망에 익숙해지는 것이 절망 자체보다 더 나쁜 것이다." 평화롭고 한적한 시골 마을에 어울리지 않는 사회적 의심과 불신의 포비아! 어제까지 밝게 웃으며 인사를 건네고 대화를 나누었던 나의 이웃이 나에게 페스트를 전염시킬 수 있는 잠재적 위험요소로 둔갑하게된 이 믿기지 않는 현실을 카뮈는 너무나도 담담하게 표현한다. 그리고 키에르케고르가 말한 "죽음에 이르는 병은 절망이다"라는 명제에 화답이라도 하듯 사회적 절망에 대한 경고의 문구까지 참으로 친절(?)하기만 하다.

 

또한 타루는 자신의 젊은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며 인간이 가진 병적 이기심을 꼬집는다. "내가 살고 있는 사회는 사형선고를 근거로 하고 있다. 이것을 물리침으로서 살인을 물리치게 된다...(중략) 사람들의 숙면이 페스트 환자들의 목숨보다 더 신성하죠. 선량한 사람들이 잠자는 것을 방해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랑 시는 관문 폐쇄와 격리라는 사회적이고, 집단적인 사형을 선고받았다. 오랑 시를 제외한 페스트에 감염되지 않은 선량한(?)사람들의 숙면, 그들의 행복은 페스트로 인해 고통받고 죽어가는 사람들의 불행과는 상관없이 지켜져야 한다는 집단적 이기심의 발로는 이유야 어찌되었든 폐쇄와 격리라는 사형선고를 합리화시킨다. 다른 이들의 죽음과 불행을 방관하고 방임하는 것에 대한 책임에서 누구하나 자유로울 수 없다. 오히려 오랑 시를 폐쇄하기로 결정한 자들이 정신적 페스트에 걸린 자들일 수 있다. 그리고 우리 모두 유무형의 페스트에 감염된 자들일 수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 속에서 물리적인 페스트에 걸리지 않았기에 존재 자체가 건강하다고 자부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마지막으로 타루의 이야기는 우리의 텅빈 사고를 단단한 목공용 망치로 후려치는 것 같은 충격으로 다가온다. "각자가 그것을, 페스트를 자기 속에 지니고 있다...(중략) 감염균을 다른 사람들의 얼굴에 붙이지 않기 위해 계속해서 스스로를 경계해야 한다. 다른 이들을 감염시키지 않기 위해 가능한 방심하지 않아야하고, 의지가 있어야 하고 긴장해야 한다. 페스트 환자로 있는 것도 피곤한 일이지만 그렇지 않기 위해서는 더 피곤한 일이다." 카뮈가 선택한 소설의 소재는 물리적 질병의 하나인 페스트였지만 그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진의는 비단 전염병으로서의 페스트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바로 인간성 말살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이 지옥같은 현실 속에서 우리 모두의 혈관 속에 흐르는 그 추악하고 더러운 반인륜적이며 부도덕한 인자에 대한 꼬집음이다. 타락한 인간성에 기인하는 이러한 패륜적 이기심이 인간군상 누구에게나 항존한다는 이 거부하고만 싶은 현실의 민낯을 카뮈는 페스트라는 전염병을 메타포로 사용하여 훌륭하게 고발한다. 인간 내면의 도덕 기준의 부재로 발현한 질병을 다른 이들에게 감염시키지 않기 위한 끊임없는 자발적 격리의 몸부림은 타루가 말한대로 페스트 환자로 있는 것보다 몇배는 더 피곤한 일상의 작업이다. 그렇기에 이러한 고통으로 인해 포기하고 싶은 사람들은 죽음 외에는 해방의 길이 없다고 말했지만 소설의 결말이 인간에게 남겨진 한가닥의 소망을 지향하기에 독자 또한 인간성 회복의 싸움을 위한 손을 쉽게 떨굴수는 없는 것이리라.

 

출근을 하고 학교에 가며 사람들을 만나고, 밥을 먹고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었던 너무나 당연시 여겼던 요즘 우리네 잃어버린 일상에 대한 그리움과 평범함을 향한 감사의 마음은 일상성의 회복이라는 염원으로 귀결된다. 또한 소설 속 폐쇄된 공간 오랑 시의 모습 속에서 2020년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 희미한 모습으로 오버랩되어 다가온다. 아울러 책을 덮으며 작년에 완독한 카뮈의 전작 <이방인>의 어렴풋한 향기를 느낀다. 책의 곳곳에 숨어있는 전작의 체취를 통해 카뮈가 추구하는 기성 체계의 완고함에 대한 반항과 현실의 물줄기를 역행하고자 하는 투쟁의 사고를 엿보게 된다. 이해할 수 없는 현실에 대해 결코 순응할 수 없고, 순응하고 싶지 않은 카뮈의 작가 정신이 투영된 <이방인> 그리고 <페스트>를 통해 코로나19라는 결코 굴복하고 싶지 않은 전염병이 가진 그 이면의 의미를 찾아가보는 것이야말로 격리된 듯한 단조로운 일상 속에 흥미로움을 선사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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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덩이 탐정 애니메이션 코믹북 1 엉덩이 탐정 애니메이션 코믹북 1
고은문화사 편집부 지음 / 고은문화사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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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아이가 집안에서 노래 하나를 신나게 흥얼거리는 모습을 보게 되네요. 만화 주제가이겠거니 생각하며 처음에는 무심하게 흘려보냈는데 명절 외갓댁에서 만난 사촌동생과 듀엣으로 불러대는통에 관심을 갖고 듣게 되었어요. "엉덩이 탐정 뿌뿡뿡~추리 줄~주리 해결해간다~" 계속 듣다보니 요즘 애들말로 중독성 완전 쩔어 어느새 무심코 내 입에서 엉덩이 탐정의 주제가가 흘러나오는 모습을 보며 실소를 금치 못합니다.

요즘 대략 5세~초등 저학년 아이들에게 소위 핫한 애니메이션은 바로 리뷰의 서두에서 이야기한 중독성 쩌는 주제가의 주인공 엉덩이 탐정이랍니다. 얼굴 자체가 엉덩이인 '엉덩이 탐정'은 그의 조수 '브라운' 군과 함께 사건 발생의 현장을 누비며 예리한 관찰력과 추리력을 동원하여 복잡하고 다양한 사건을 해결해가는 명탐정이에요. 이 책은 바로 TV애니메이션으로 지금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엉덩이 탐정에 관한 이야기가 코믹북으로 만들어져서 출간되었답니다. 기본적으로 두편의 이야기가 실렸네요. 1편 뿡뿡! 코알라양의 대활약과 2편 뿡뿡! 위험한 발명품.

책의 특징은 단순히 만화영화를 코믹북 형태로 편집해서 만든 것을 벗어나 책을 읽는 어린이 독자들로 하여금 책의 사건 속으로 함께 들어가서 엉덩이 탐정과 함께 사건을 해결해가는 과정을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는 점이에요. 미로 찾기 문제, 숨은 그림 찾기, 책의 내용을 토대로 한 퀴즈 등을 제시함으로서 어린이들이 책의 내용을 집중해서 읽고 문제를 풀 수 있도록 이끌어 줍니다. 그렇기에 책은 흥미와 함께 어린이 독자들에게 있어서 관찰력과 주의력, 집중력 향상을 위해서 더할나위 없이 유익한 기능을 선사하죠. 책이 도착하고 아이가 집중해서 연거푸 2회 연속 완독하는 모습을 보며 작은 만화책 한권이 가지는 파워를 느낍니다. 공부나 숙제를 저렇게 집중해서 하면 얼마나 좋으련만...

 

 

더불어 책이 가진 또 하나의 보너스는 바로 컬러링북이 마치 부록과 같이 동봉되어 왔다는 점이에요. 책만 읽고 끝내기에는 너무나 아쉽죠. 그렇기에 어린이 독자들에게 또 하나의 즐거움은 바로 엉덩이 탐정 주인공들의 모습을 색연필로 직접 색칠하고 꾸며볼 수 있다는 점입니다. 원판을 보면서 똑같은 색깔로 칠하려고 초집중하는 아이의 모습이 실로 놀라울 뿐이에요. 말을 걸어도 대답도 않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책의 뒷면에 있는 QR코드를 통해 엉덩이 탐정 유튜브 동영상으로 직접 들어갈 수 있도록 구성된 점은 책이 가진 작지만 소소한 배려라고 여겨집니다.

엉덩이 탐정은 얼굴 자체가 엉덩이에요. 처음에 복숭아인 줄 알았습니다. 초집중하며 화면 속으로 빠져들어갈 것 같은 아이에게 "저거! 복숭아 아니냐" 고 질문했다가 "복숭아 아니라고! 엉덩이!" 라고 한소리 듣습니다. 단 5분도 집중하지 못하는 요새 아이들의 관심과 집중, 흥미를 이렇게 단단히 붙잡아 끌고가는 한편의 애니메이션이 가진 힘을 느낍니다. 그러면서 도대체 얼마나 재미있길래 저러나 싶은 궁금한 마음이 생겼죠. 그리고 어느새 TV앞에서 아이와 함께 만화를 시청하고 있는 나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20여분의 상영시간을 가진 실제 만화 영화도 생각없이 보게 되니 은근히 재미있네요. 특별히 엉덩이 탐정이 사건을 최종적으로 해결해가는 클라이막스에 해당하는 위기의 순간 "미안하지만 실례 좀 하겠습니다"라는 멘트와 함께 자신의 엉덩이 얼굴에서 강력한 방구를 뿜어대는 장면은 그야말로 압도적입니다! 엉덩이 사잇골에서 뿜어져나오는 방구야말로 엉덩이 탐정이 위기의 순간을 극복하는 비밀병기가 아닐 수 없네요.

요즘 코로나19로 인해 거의 외출도 못하고, 집안에서만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중 만나게 된 본서의 가치는 평소보다 더 크게 느껴집니다. 주의력과 집중력, 관찰력 향상에 더불어 재미까지 선사하는 본서 엉덩이 탐정 코믹북만큼 좋은 책이 또 있을까요? '코믹북1' 이라고 넘버링되어 있는 것을 보니 향후 후속작들이 시리즈로 나오리라는 예상을 하게 됩니다. 어른들도 함께 공감하고 가볍게 웃을 수 있는 '엉덩이 탐정 애니메이션 코믹북 1'을 요즘 같은 때에 즐거운 마음으로 추천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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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 죽이기 세계기독교고전 64
존 오웬 지음, 박문재 옮김 / CH북스(크리스천다이제스트)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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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영국의 청교도 신학자이며 설교자인 존 오웬은 기독교 역사상 아우구스티누스, 존 칼빈, 조나단 에드워즈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위대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청교도의 황태자'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기도 한 존 오웬의 명성은 개혁파 정통주의 신학과 신앙에 관심있는 신자라면 한번 쯤 들어보았을법한 이름이다. 본서는 그가 집필한 성화론의 4부작 중 가장 먼저 탄생한 저작이다. 우선 본서가 탄생하게 된 2가지의 배경을 살펴보면 이 책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첫번째로 이 책은 존 오웬이 옥스퍼드 대학교 부총장을 역임하고 있을 때 학생들의 나태함과 무기력함, 부도덕한 삶의 모습들을 보며 집필을 결심함으로서 탄생되었다. 두번째로는 당시 카톨릭과 국교회 지도자들이 교회의 규칙들만 잘 지키면 구원받는 것에는 문제가 없다는 것을 이야기함으로서 신자들에게 죄를 깨닫게 해놓고서는 별다른 처방을 제시하지 않음으로서 신자들의 삶을 무거운 죄책과 중압감 속에 살아가도록 이끈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에서 탄생하였다.

당시 옥스퍼드 대학교는 알미니안주의의 영향 아래 좌경화 된 사상이 물밀듯 밀려들어왔고, 학생들은 진리에서 떠나 타락과 방종에 함몰되는 상황이었다.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 존 오웬은 부총장이 되어 대대적인 개혁을 단행함으로서 옥스퍼드 대학의 학풍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킨다. 교수들의 처우를 개선했고, 학생들에게는 경건과 학문의 진작을 위해 열심히 기도하고 공부하도록 했으며 끝까지 말을 듣지 않는 학생들은 지하실에 감옥을 만들어 가두어버릴 정도로 무섭게 개혁을 단행한 결과 몇년이 지나서 옥스퍼드 대학교는 예전의 그 위엄을 갖춘 학교로 회복될 수 있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탄생한 오웬이 집필한 방대한 오페라 가운데 하나인 '죄 죽이기'는 그야말로 인간에게 있어서 죄에 대한 실제적인 면모들을 일깨워주는 데 있어서 탁월하다. 죄의 본질과 그 죄가 인간에게 끼치는 영향은 물론이거니와 그 죄를 죽여야하는 이유에 대해서 신자들은 본서만큼 실제적이고 유익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책을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인간 내면에 대한 세밀한 분석과 죄에 대한 깊이 있는 성경적, 신학적 통찰을 통해 그의 책을 접하는 독자들은 왜 오웬이 기독교 역사에 있어서 위대한 영적거인으로 손꼽히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된다.

오웬은 로마서 8:13을 죄 죽이기의 기초 본문으로 삼아서 신자들의 죄 죽이기의 의무와 죄 죽이기의 본질, 그리고 죄 죽이기의 지침, 수단까지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죄 죽이기는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한 진정한 신자들에 한해서 가능한 것이며 그것은 믿는 자들로서 죽을 때까지 지속되어야 하는 신앙의 의무이다. 죄 죽이기는 우리 안의 죄의 경향성, 성향에 대한 약화이다. 그것은 우리의 마음과 영혼 속에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 주신 은혜의 열매들을 맺도록 하는 신앙의 행태로서 이루어진다. 또한 죄악된 본성을 지닌 인간 스스로가 어떠한 죄에 대해서 끊겠다고 결심하며 애쓰는 하나님 앞에서의 모든 인간적 행위들은 의미 없는 것이며 그것은 오직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 그리고 신자 안에 역사하시는 거룩한 성령의 능력으로 가능한 일임을 오웬은 역설한다.

신앙 생활을 하다보면 나 또한 그랬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인해 신자의 죄가 한번에 씻겨졌기에 평생에 걸쳐 죄 죽이기를 해야 한다는 존 오웬의 이와 같은 강론이 이해되지 않고 받아들이기 어려운 내용으로 다가오는 사람들이 아마 대부분일 것이다. 그러나 본서를 통해 신자의 죄 죽이기가 왜 평생에 걸쳐서 신자가 행해야 하는 의무인지에 대해서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오웬은 본서를 통해 죄 죽이기의 일반적 원리를 3가지로 나누어서 강론한다. 그중에서 첫번째 원리를 통해 이에 대한 해답을 제시한다. 즉 그리스도 십자가의 공로로 모든 죄는 남김없이 죽었으나 이 땅을 살아가는 동안 아무리 훌륭한 신자라 할지라도 그 내면안에는 여전히 죄의 잔재가 남아 있어서 활동하고 역사한다. 그렇기에 신자는 이 땅에서의 여정을 마치고 그 코에서 생기가 끊어지는 마지막 순간까지 끊임없이 죄들과 싸워서 죽이는 죄 죽이기의 의무를 수행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것은 바로 개혁주의 성화론의 핵심이 아닐 수 없다. 이에 반해 한번 구원받았으면 다 끝난 것이기에 이후의 삶은 아무렇게나 막 살아도 구원은 보장 받은 것이라고 말하는 이단들의 가르침은 얼마나 무섭고 무책임한 행태인가?

그리고 오웬은 두번째 일반적 원리를 통해 오직 성령의 능력만이 신자의 죄 죽이기를 효과적으로 이끌 수 있음을 강조한다. 이것은 당시 인간의 헛된 노력으로 죄를 죽일 수 있다고 말하는 교황주의자들의 잘못된 가르침에 대항하여 오웬이 펜을 들 수 밖에 없었음을 이해하게 될 때 독자로 하여금 쉽게 파악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들이 말하는 인간적 의무로서 거친 옷과 서약, 보속을 위한 고행, 금욕 등은 하나님께서 그런 목적을 위해서 정해놓으신 것이 아니다. 기도, 철야, 금식, 묵상 등 또한 마찬가지이다. 죄를 죽이기 위한 용도로서 수단이 되어야 할 이와 같은 일들이 목적이 되어버릴 때 그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오웬은 이러한 신앙의 의무들은 힘없는 영혼에게 양식이 되어 줄 수는 있지만 병든 영혼을 치료하는 치료약이 될 수 없음을 강조한다. 그러면서 덧붙이는 것은 오직 신자의 죄를 죽일 수 있는 것은 성령의 능력임을 다시 한 번 강조한다. 이렇게 죄 죽이기에 대한 일반적 원리들에 이어 그럼 죄를 어떻게 죽일 것인가에 대한 여러가지 구체적인 지침들이 14장까지 성경에 기반한 존 오웬의 날카롭고 탁월한 지성적 능력을 통해 세밀하게 기술되고 있다.

책을 읽으며 어떻게 이렇게 인간 내면을 속속들이 들여다볼 정도로 인간 내면과 영혼에 대해서 잘 알 수 있을까 그의 깊고 넓은 인간에 대한 이해와 통찰력에 놀라운 탄식이 흘러나올 뿐이다. 오웬 그는 하루에 4시간만을 자며 나머지 시간을 모두 공부하는 일에 쏟아 부었을 정도로 우리와 같은 범인들의 머리로는 상상할 수 없는 비범한 인물이었다. 오웬이라는 인물 자체가 고대 교부들과 토마스 아퀴나스를 비롯한 중세 스콜라 신학, 히브리어, 헬라어, 라틴어의 통달, 고대문학과 역사, 철학에 대한 해박한 인문학적 지식의 토대가 된 르네상스 인문주의, 종교개혁 신학을 집대성한 워낙 비범한 거인이다보니까 그의 저서를 번역할 번역자를 찾기가 어려울 정도라고 한다. 개인적으로 이번 CH북스에서 본서가 번역 출간되기 전 타 출판사의 책을 통해 이 책을 완독한 적이 있다. 번역자가 다른 같은 책을 읽어보면서 번역상의 장단점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CH북스의 번역이 독자로 하여금 좀 더 이해하기 쉽고, 매끄럽게 다듬어진 듯한 느낌이다. 한번 읽고 서가에 꽂아놓기에는 나의 부족한 지성으로 인해 후에 복기해 볼 필요성이 충분한 책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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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교회사다 : 묻어둔 진리 - 중세교회사 편 이것이 교회사다 시리즈
라은성 지음 / 페텔(PTL)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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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베르트 에코의 <장미의 이름>이라는 소설이 있다. 명배우 '숀 코넬리' 가 주연으로 분하여 영화로도 만들어졌던 작품이기도 하다. 작품의 배경은 14세기 초 이탈리아의 한 수도원으로서 그곳에서 벌어지는 의문의 살인사건을 토대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어린 시절 TV에서 방영하는 영화를 얼핏 보고나서 적지 않은 충격과 두려움을 느꼈던 감정은 영화의 시대적 배경이 가지는 그 암울함의 색채에 기인한다. 지금 기억으로는 영화의 전체적인 배경이 되는 중세 수도원의 그 어둡고 음침하며 음산한 기운이 영화를 보는 내내 나의 마음 속에 불쾌함으로 엄습했었다는 것이다. 이렇듯 중세 시대의 종교적 색감과 분위기는 암울함의 네거티브적인 느낌으로 나의 내면 안에 각인되어 있다.

유럽 중세시대에 대한 이러한 느낌을 가지고서 펼쳐든 책은 지난번 내게 깊은 인사이트를 선사했던 <이것이 교회사다 : 진리의 보고> 초대교회사편에 이은 <이것이 교회사다 : 묻어둔 진리> 중세교회사편이다. 총신대학교에서 역사신학 교수로 교편을 잡고 있는 탁월한 개혁주의 신학자 라은성 교수가 집필한 저작으로서 중세 교회 역사를 개혁주의적 관점에서 이렇게 쉽고 흥미롭게 기술한 저작은 아마 드물 것이다.

본서는 로마제국에 의한 지난한 기독교 박해의 시대가 끝난 시점 이후로 대략 AD 5세기말부터 15세기말, 16세기 초까지 대략 1000년의 시간을 가리켜 중세시대로 명명한다. 초대 교회의 역사는 교회에 대한 로마제국의 길고도 잔인한 박해와 각종 이단들의 출현 그리고 그 와중에서도 진리를 변증하고 수호하기 위해 자신들의 삶을 송두리채 던진 위대한 교부들의 삶으로 대변된다. 그리고 그들에 의해서 찬란한 보석과 같은 성경의 진리들은 마치 그 시대가 '진리의 보고' 로서 묘사될 정도로 고난 가운데 있는 교회와 교부들의 삶을 통해 빛났다. 이러한 진리의 보고와 같았던 초대 교회 시대가 끝나고 교회는 서평의 서두에서 언급했던 것과 같이 어둡고 암울하며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과 같은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으니 그것이 바로 중세 교회 시대이다. 초대 교회는 이제 하나님의 진리의 찬란한 영광을 잃어버린 채 중세 교회 역사 속에서 교황과 로마 카톨릭에 의해 대변되어지는 그야말로 진리의 빛이 사라진 기나긴 암흑의 시대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시대를 가리켜 저자는 빛된 진리들이 땅 속에 철저하게 묻혀져 버렸음을 통탄하며 '묻어둔 진리' 의 시대라고 표현한다.

중세 교회 시대를 이해하기 위해서 독자는 먼저 핵심적인 주제를 기억하고 있어야 하는데 그것은 바로 '교황제도'이다. 그리고 이 교황제도를 지지하는 3가지의 기둥으로서 수도원 운동, 십자군 운동, 스콜라주의를 꼽는다. 이들은 책의 전면을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주제들로서 독자들이 완독을 위해서 필히 기억하고 있어야 할 요소들이다.

언젠가 이러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개신교는 로마 카톨릭에서 떨어져 나온 것이니 카톨릭은 큰집 또는 형, 개신교는 작은집 또는 아우 같은 개념이 아니겠는가? 하는 이야기였다. 교회사를 모르기에 무식함의 극치를 드러내는 어처구니없는 이야기를 듣고 실소를 금치 못했다. 본서의 초반부에 이에 대한 저자의 명확한 설명이 등장하는 것을 보고 반색하며 읽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은 로마 카톨릭에서 한 분파를 형성한 개혁이 아니다. 로마 카톨릭 교회의 추악한 부패상들을 지우거나 없애고자 한 것도 아니며 단지 그들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1000년을 거슬러 올라가 초대 교회의 정통신앙을 회복하자는 움직임이 바로 종교개혁이었음을 일갈하고 있다.

그러면서 저자는 그렇다면 왜 우리가 개신교와는 상관 없어보이는 로마 카톨릭의 부패와 타락의 민낯을 보게 되는 중세교회사를 배워야 하는 지에 대한 이유에 대해 이렇게 답한다. 1000년의 암흑 시대 속에서도 초대 교회 정통 신앙의 명맥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 무명의 개혁자들과 신앙의 선배들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더불어 저자는 이렇게 작은 믿음의 그루터기 같은 사람들을 사용하셔서 정통신앙의 빛을 이어오도록 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와 은혜의 역사들을 배우기 위해서라도 우리가 중세교회사를 간과할 수 없음을 이야기한다.

베드로가 로마의 감독이었다는 주장을 통해서 로마 감독이 지상 교회의 지상권을 갖는다는 얼토당토한 주장으로부터 출발한 교황제도는 정교 유착, 성직 매매, 성직 수임권 논쟁, 송장회의, 창부정치, 족벌제도, 각종 음모와 폭력과 살인, 암살, 성적타락과 재물에 대한 말할 수 없는 탐욕, 3명의 교황으로 인한 분열과 혼란 등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부패와 타락의 극치를 보였다. 그리고 이러한 교황제도를 지지했던 기둥 가운데 하나는 아이러니컬하게도 바로 교회의 타락을 견제하고 정화하기 위해서 탄생한 '수도원 운동' 이었다. 교회의 부패상을 보며 바른 신앙과 경건을 진작하기 위해 탄생한 초기의 수도원 운동은 처음에는 나름 건전하고 건강한 모습으로 이어져갔지만 시간이 흘러 몸의 훈련이라는 외식적인 주제에 대한 관심 속에 영적으로 급격히 타락해간다. 그리고 마침내 수도원의 수사들이 제도권 교회 안으로 들어가 사제가 되면서 수도원 운동이 가진 건강하지 못한 영적 영향력들은 교회를 더욱 더 혼란스럽게 만든다. 아울러 외적인 운동과 인위적인 프로그램으로는 결코 타락한 인간의 죄성을 이겨내고 바른 교회의 개혁을 실천할 수 없음이 수도원 운동을 통해서 여실히 드러났다.

또 한가지 교황제도의 이론적 근거가 되었던 두번째 기둥은 바로 '스콜라주의' 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에 지대한 영향을 받은 스콜라주의는 한마디로 인간 이성으로 하나님을 이해하려는 시도였다. 인간 이성을 중시한 스콜라주의의 철학을 채택한 로마 카톨릭주의는 인간 이해를 위한 인본주의적 신학에 바탕을 둔다. 그러면서 나타나게 된 것이 바로 7성례, 교황무류성, 마리아 성모 몽천설 등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세번째 기둥인 십자군 운동은 성지 탈환이라는 그럴싸한 명분으로 출발했지만 결국 교황과 로마 카톨릭의 정치적 야욕을 만족시키기 위한 꼭두각시로 전락해버린 의미없고, 맹목적인 역사로서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중세시대 로마 카톨릭은 일반 평신도들이 성경을 읽는 것을 금했다. 성경을 소유하는 것과 성경을 읽는 것이 죽음에 이를 정도로 매우 무거운 중죄였기에 일반적인 신자들은 성경을 읽을 수 없을 뿐더라 소유할 수 조차 없었다. 또한 모든 성경은 일반인들이 쉽게 범접할 수 없는 라틴어 불가타역본이었으며 모든 미사는 자국어로 드려진 것이 아니라 평신도들이 알아들을 수 없는 라틴어로 행해졌기에 신자들은 결코 성경과 진리의 말씀을 이해할 수 없는 시대를 살았다. 진리는 로마 카톨릭 성직자 계급에 의해 철저하게 은폐되고 가려졌다. 마치 진리가 땅 속에 묻혀진 것 마냥 중세 1000년의 시대는 하나님의 성경과 그분의 말씀을 찾아 볼 수 없었던 암흑의 시대였다. 그렇기에 저자가 이 시대를 가리켜 '묻어둔 진리'의 시대라 명명한 것은 참으로 적절한 표현이 아닐 수 없다.

역사라는 반면 교사를 통해 지금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고 반성하게 된다. 한국 교회 또한 중세 로마 카톨릭이 자행했던 그 최악의 부패와 타락의 극치를 그대로 답습하며 그 전처를 밟는 안타까운 현실 속에 있다. 주변 상권을 진공청소기처럼 빨아들이는 대형마트의 횡포와 같이 지역의 작은 교회들을 배려하지 않는 초대형 교회들의 횡포는 말할 것도 없고, 대형 교회들의 담임 목회직 세습과 연이어 터지는 목회자들의 재정 비리와 성적 비행은 이제 일상이 되어 버린지 오래다. 탐욕으로 물들고 욕망으로 점철된 현대 한국 교회의 모습과 중세 로마 카톨릭 교회의 암울한 모습이 묘하게 오버랩되어 마음이 아리다. 이러한 혼탁함 속에 무지한 양떼들은 무엇이 진리이며 비진리인지도 모른채 그냥 물흐르듯 그렇게 적당히 자조하며 살아간다.

정말 진리가 땅에 묻혀진 것만 같은 시대가 지금 시대인 것 같다. 신자로서 살아 숨쉬는 것 자체가 고문인 이러한 시대 속에서 진리에 대한 간절함은 날이 갈수록 더해만 간다. 혹자는 한국 교회가 제 2의 중세 암흑시대로 들어가고 있는 중이라고 말한다. 아니 어쩌면 벌써 암흑 시대 한가운데를 통과하고 있는 중인지도 모른다. 책 한권을 대략 6개월 동안 챕터별로 되새김질 하듯 곱씹으며 읽어내려갔다. 책을 읽다 믿겨지지 않는 역사적 사실 앞에 도저히 책장을 넘기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허공을 응시하며 한숨 지은 적이 몇번인지 모른다. 조국 교회의 암울하고 어두운 현실 앞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의 모습이 초라하기만 하다. 그러나 본서의 끝 부분에서 나는 새로운 한가닥 희망의 빛을 보며 마지막 책장을 덮는다. 지롤라모 사보나롤라, 존 위클리프, 얀 후스와 같은 전종교개혁자들의 진리를 향한 작은 몸부림과 결연한 외침 속에서 작은 희망의 메시지를 발견한다. 터널을 통과해 본 사람은 안다. 어둡고 긴 터널의 끝에는 반드시 찬란한 빛이 기다리고 있음을 말이다.

전종교개혁자들은 자신들의 초라한 날개짓이 무슨 결과를 가져올 지 몰랐다. 그리고 후대에 어떠한 영향을 끼칠지도 예상하지 못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새로운 역사의 장을 준비하고 계셨음을 본서의 마지막을 통해 어렴풋이 느끼게 된다. 새벽 어둠이 깊으면 곧 여명이 밝아올 것이라고들 말한다. 그렇기에 우리에게는 한 치 앞도 분간할 수 없는 칠흑과 같이 깊은 어두움의 시간을 통과하고 있으나 한가닥 희망이 있다. 그리고 그 한가닥 희망은 묻어둔 진리를 꺼내어 흙먼지를 털어내고, 정통 초대교회가 전해주는 진리를 재발견할 수 있는 '종교개혁' 이라는 그 소망과 고대함의 시간으로 우리를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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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st7key 2024-07-23 2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티칸은 이교 그 자체입니다. 두 개의 바빌론도 추천합니다. 십계명 변개, 성경 월삭이 있는 주간제도 태음력을 미트라교 태양력으로 변개. 고대 이교 삼신사상이 들어와 니케아 공의회에서 공식화 하고.. 현대는 500년간 제수이트가 맹위를 떯치고 있죠.. 서평 보고 책 구매하려는 마음을 먹습니다. 샬롬!
 
사기어록 - 인간과 권력의 본질을 꿰뚫는 문장들 사기 (민음사)
김원중 지음 / 민음사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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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중국의 5가지 형벌 중 궁형이라는 것이 존재했다. 궁형은 죄인의 생식기에 가하는 형벌로서 남자는 고환을 제거함으로서 남자로서의 구실과 기능을 잃어버림과 동시에 불명예스럽고 수치스러운 형벌 가운데 하나였다. 이렇듯 죽기보다 고통스러운 치욕의 형벌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사기' 라는 중국 불멸의 역사서를 써내려간 사람이 바로 오늘 리뷰하게 되는 책의 원저자 '사마천' 이다. 그리고 이 책은 사마천이 기록한 사기에서 약 200여개의 주옥같은 명문들을 중국 역사와 고전의 대가로 인정받고 있는 김원중 교수가 직접 발췌하여 엮은 보석과 같은 저작이다.

사기 자체가 52만자가 넘는 어마무시한 분량의 방대한 저작이기에 어쩌면 우리와 같은 평범한 독자들에게 있어 사기는 결코 범접하기 쉬운 책이 아니다. 그렇기에 중국사와 고전 문헌에 능통한 저자가 자신의 학자적 역량을 동원하여 심혈을 기울여 추려낸 본서의 가치는 이루말할 수 없이 크다 여겨진다. 사마천이 사기를 통해 다룬 시대는 중국 고대 왕조인 하, 은, 주나라부터 춘추 전국시대에 이른다. 약 2천여년의 기나긴 세월 동안 역사 속 무대 위에 등장했다 사라졌던 수 많은 인물들이 내뿜는 그 진득하면서도 끈적한 희노애락, 애욕의 이야기는 오늘 지금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삶의 폐부를 향해 그 촌철살인의 교훈적 비수를 겨눈다.

페이지마다 독자로 하여금 깊은 탄식을 자아내게 만드는 본서 '사기어록'은 총 4부로 구성되었다. "1부 나를 다스리다" 부터 "타인을 이해하다, 세상과 더불어 살다, 통치의 기술" 까지 인간사에 있어서 결코 거칠 수 밖에 없는 처세와 인생의 도리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그 안에는 한 시대를 풍미하며 호령했던 왕후장상의 다채로운 삶의 단면을 엿볼 수 있는 명구들과 교훈들이 알알이 꿰어진 진주와 같이 독자들로 하여금 고전이 가지는 깊이있는 아름다움을 맛보도록 돕는다.

200여개의 명문 중 어느 하나 버릴 것 없이 진중한 무게감을 갖는 가르침들 중 책을 읽는 나의 마음을 울리는 유독 결이 다른 몇몇의 문장들을 노트에 필사했다. "너무 고결하면 받아주는 사람이 드문 법, 고독한 자의 비애다. 처세는 그래서 어렵다." 이는 초나라 때의 정치가 굴원을 빗대어 말한 문장의 한 대목이다. 굴원은 탁월한 정치가였지만 너무나 고결하고 청렴결백하여 정적들과의 갈등이 끊이지 않았고, 이로인해 나중에는 중상모략을 당해 권력의 주변부로 밀려나는 비참한 삶을 맞이했다. 적당히 흙도 묻고, 때도 묻히는 삶이야말로 당시를 살아가는 데 있어서 무엇보다도 필요한 처세의 한 방법이었다고 하니 굴원은 이에 편승하지 못한 책임을 본인의 삶으로 갚은 것이다. 정말 고독한 자의 비애며 현실 정치가 가져다주는 억누를 수 없는 슬픔이다. 시대를 불문하고 굴원에게 요구되어졌던 그 추잡한 처세의 태도가 21세기를 살아가는 지금의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요구되어진다는 짜증나는 현실에 대한 자각으로 마음 한켠이 아리다.

"손님이 오면 귀천을 가리지 말고 문밖에 세워 두는 일이 없도록 하라.","서서 기다려 본 사람은 안다. 인간이 그 순간 얼마나 복잡한 생각에 빠져드는지를 말이다." 이는 전한 시대 '정당시' 라는 사람이 태사(太史)벼슬에 있을 때 문하생들에게 인재를 구하는 원칙을 설파한 것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항상 갑의 자리에만 있을 수 없다. 갑의 자리에 있다가도 어느 순간 을, 그 이하의 자리까지 곤두박질 쳐 내려가는 일이 다반사인 세상 속에서 개인이 느끼는 그 마음의 복잡함과 씁쓸함은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이해할 수 없는 영겁의 시간처럼 다가온다. 간혹 누군가에게 아쉬운 소리를 해야할 때, 받아들여질 지 의문인 상태에서 자존심을 내려놓고 부탁을 해야하는 경우와 같이 우리의 일상을 흔드는 명문이 아닐 수 없다. 이렇듯 정당시는 본인을 찾아 온 사람들의 심리를 정확히 꿰뚫었다. 상대방의 마음까지도 자상하고 세밀하게 헤아릴 줄 아는 위인이 드문 요즘이기에 본 명문은 나의 마음에 더 깊이 와닿았다. 상대적 약자들에게 하루에도 한 트럭이 넘는 엄청난 욕설과 비난, 비방을 마치 폭포수와 같이 쏟아내는 상급자들과 절대 갑의 위치에 있는 고용주들의 눈총을 받고 살아가야 하는 이 시대의 범인들에게 정당시의 말은 가슴 따뜻한 위로로 다가온다.

"사람은 명예로운 상태에서 물러나야 한다는 처세의 원칙은 만고불변의 원칙이다." 이는 채택이라는 자가 범저라는 사람에게 이룰 만큼 이루었으니 이제 그만 물러나라고 말한 문장의 해제이다. "박수칠 때 떠나라!" 는 세간을 떠도는 잡문이 존재하지만 이는 비단 지금의 세대 속에서 만들어진 말이 아니라 세대를 뛰어넘어 인류 역사 가운데 항존했던 명문의 현대판 버전일 뿐이다. 부귀와 명예, 권력을 손에 쥔 인간들은 결코 자신의 권좌를 손쉽게 내어놓고 물러나지 않는 것이 인간사의 이치다. 끝까지 붙잡고 싶고, 붙들고 싶은 그 영원할 것만 같은 부귀영화의 모란꽃을 쉽사리 놓을 수 없었던 수 많은 인간군상들의 말로는 흉하고 추했다. 끊임없는 부와 명예, 권력을 갈망하며 자신의 삶을 미친듯이 드라이브해 가는 작금의 현대인들에게 본 명문은 시사하는 바가 참으로 크다. 인생에 있어서 올라가는 일보다 내려올 줄 아는 때를 파악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지금도 이 내려오는 때를 놓친 사람들이 부지기수로 신문지상에 그들의 이름을 욕스럽게 수놓는다. 부와 명예, 권력에의 그 탐욕스러움을 끊지 못할 때 인간의 격은 짐승만도 못하다. 그렇기에 사마천은 [범저, 채택열전] 을 통해 인간사를 관통하는 보편적이고 사실적인 진리를 주저함 없이 던짐으로서 독자들의 주의를 환기시킨다.

해 아래 새 것이 없다. 인류 역사가 강처럼 끊임없이 흘러온 이래 인류에게 있어 새로운 것은 하나도 없었다. 자신의 시대가 만들어가는 역사만큼은 새 것이라고 주장하는 오만한 사람들이 있어왔지만 그것은 한낱 그들의 얕은 바램이었음이 역사를 통해 증명되어졌다. 역사는 이전 것의 재탕일 뿐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신선함은 없다. 그렇기에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요구되어지는 것은 우리보다 앞서 살다 간 이들이 남긴 역사의 목소리에 겸허한 자세로 조용히 귀기울이는 겸손의 태도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사마천이 남긴 위대한 저작 '사기', 그리고 그 보물같은 심연 속에서 길어올린 본서 <사기어록>이 이 첨단 문명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말로 형용할 수 없이 크다. 본서의 저자 김원중 교수는 책의 서문에서 사기를 가리켜 "사마천이 궁형의 치욕을 견디며 자신의 혼을 담아 써 낸 명언 명구로 장식된 정교한 갑옷같은 책이다" 라고 평했다. 참으로 적절한 표현이 아닐 수 없다. 모욕스러운 궁형의 아픔 속에서 사마천은 매일 식은 땀을 흘리며 사기를 써내려갔다고 한다. 아마도 제대로 된 몸이 아니었기에 집필을 하는 내내 사마천은 그의 신체가 내뿜는 처절한 고통 속에 몸부림 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형극의 시간을 통과하며 그는 마침내 동양 사상과 사유체계의 근간이라 불리는 '사기' 집필의 엄청난 위업을 이룬다.

지금을 살아가는 독자들에게 있어 모든 인류가 결코 빠져나갈 수 없이 촘촘한 얼개를 이룬 그물과 같은 사마천의 <사기>, 그리고 그의 명언이 가득한 본서 <사기어록>을 집어들고 읽어야 할 충분한 당위성은 그가 살던 시대나 지금의 시대가 결코 다름이 없다는 명약관화한 사실에 기인한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조차 분간하기 어려운 이 혼탁한 세대 속에서 본서를 펼쳐든 독자는 2100여년의 시간의 간극을 뛰어넘어 희미한 등잔불 아래에서 이마에 흐르는 식은 땀을 훔치며 자신에게 주어진 시대적 사명을 다하기 위해 인고의 붓끝을 놀렸을 사마천의 아련한 체취를 맡게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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