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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 죽이기 ㅣ 세계기독교고전 64
존 오웬 지음, 박문재 옮김 / CH북스(크리스천다이제스트) / 2020년 2월
평점 :

17세기 영국의 청교도 신학자이며 설교자인 존 오웬은 기독교 역사상 아우구스티누스, 존 칼빈, 조나단 에드워즈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위대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청교도의 황태자'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기도 한 존 오웬의 명성은 개혁파 정통주의 신학과 신앙에 관심있는 신자라면 한번 쯤 들어보았을법한 이름이다. 본서는 그가 집필한 성화론의 4부작 중 가장 먼저 탄생한 저작이다. 우선 본서가 탄생하게 된 2가지의 배경을 살펴보면 이 책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첫번째로 이 책은 존 오웬이 옥스퍼드 대학교 부총장을 역임하고 있을 때 학생들의 나태함과 무기력함, 부도덕한 삶의 모습들을 보며 집필을 결심함으로서 탄생되었다. 두번째로는 당시 카톨릭과 국교회 지도자들이 교회의 규칙들만 잘 지키면 구원받는 것에는 문제가 없다는 것을 이야기함으로서 신자들에게 죄를 깨닫게 해놓고서는 별다른 처방을 제시하지 않음으로서 신자들의 삶을 무거운 죄책과 중압감 속에 살아가도록 이끈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에서 탄생하였다.
당시 옥스퍼드 대학교는 알미니안주의의 영향 아래 좌경화 된 사상이 물밀듯 밀려들어왔고, 학생들은 진리에서 떠나 타락과 방종에 함몰되는 상황이었다.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 존 오웬은 부총장이 되어 대대적인 개혁을 단행함으로서 옥스퍼드 대학의 학풍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킨다. 교수들의 처우를 개선했고, 학생들에게는 경건과 학문의 진작을 위해 열심히 기도하고 공부하도록 했으며 끝까지 말을 듣지 않는 학생들은 지하실에 감옥을 만들어 가두어버릴 정도로 무섭게 개혁을 단행한 결과 몇년이 지나서 옥스퍼드 대학교는 예전의 그 위엄을 갖춘 학교로 회복될 수 있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탄생한 오웬이 집필한 방대한 오페라 가운데 하나인 '죄 죽이기'는 그야말로 인간에게 있어서 죄에 대한 실제적인 면모들을 일깨워주는 데 있어서 탁월하다. 죄의 본질과 그 죄가 인간에게 끼치는 영향은 물론이거니와 그 죄를 죽여야하는 이유에 대해서 신자들은 본서만큼 실제적이고 유익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책을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인간 내면에 대한 세밀한 분석과 죄에 대한 깊이 있는 성경적, 신학적 통찰을 통해 그의 책을 접하는 독자들은 왜 오웬이 기독교 역사에 있어서 위대한 영적거인으로 손꼽히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된다.
오웬은 로마서 8:13을 죄 죽이기의 기초 본문으로 삼아서 신자들의 죄 죽이기의 의무와 죄 죽이기의 본질, 그리고 죄 죽이기의 지침, 수단까지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죄 죽이기는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한 진정한 신자들에 한해서 가능한 것이며 그것은 믿는 자들로서 죽을 때까지 지속되어야 하는 신앙의 의무이다. 죄 죽이기는 우리 안의 죄의 경향성, 성향에 대한 약화이다. 그것은 우리의 마음과 영혼 속에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 주신 은혜의 열매들을 맺도록 하는 신앙의 행태로서 이루어진다. 또한 죄악된 본성을 지닌 인간 스스로가 어떠한 죄에 대해서 끊겠다고 결심하며 애쓰는 하나님 앞에서의 모든 인간적 행위들은 의미 없는 것이며 그것은 오직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 그리고 신자 안에 역사하시는 거룩한 성령의 능력으로 가능한 일임을 오웬은 역설한다.
신앙 생활을 하다보면 나 또한 그랬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인해 신자의 죄가 한번에 씻겨졌기에 평생에 걸쳐 죄 죽이기를 해야 한다는 존 오웬의 이와 같은 강론이 이해되지 않고 받아들이기 어려운 내용으로 다가오는 사람들이 아마 대부분일 것이다. 그러나 본서를 통해 신자의 죄 죽이기가 왜 평생에 걸쳐서 신자가 행해야 하는 의무인지에 대해서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오웬은 본서를 통해 죄 죽이기의 일반적 원리를 3가지로 나누어서 강론한다. 그중에서 첫번째 원리를 통해 이에 대한 해답을 제시한다. 즉 그리스도 십자가의 공로로 모든 죄는 남김없이 죽었으나 이 땅을 살아가는 동안 아무리 훌륭한 신자라 할지라도 그 내면안에는 여전히 죄의 잔재가 남아 있어서 활동하고 역사한다. 그렇기에 신자는 이 땅에서의 여정을 마치고 그 코에서 생기가 끊어지는 마지막 순간까지 끊임없이 죄들과 싸워서 죽이는 죄 죽이기의 의무를 수행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것은 바로 개혁주의 성화론의 핵심이 아닐 수 없다. 이에 반해 한번 구원받았으면 다 끝난 것이기에 이후의 삶은 아무렇게나 막 살아도 구원은 보장 받은 것이라고 말하는 이단들의 가르침은 얼마나 무섭고 무책임한 행태인가?
그리고 오웬은 두번째 일반적 원리를 통해 오직 성령의 능력만이 신자의 죄 죽이기를 효과적으로 이끌 수 있음을 강조한다. 이것은 당시 인간의 헛된 노력으로 죄를 죽일 수 있다고 말하는 교황주의자들의 잘못된 가르침에 대항하여 오웬이 펜을 들 수 밖에 없었음을 이해하게 될 때 독자로 하여금 쉽게 파악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들이 말하는 인간적 의무로서 거친 옷과 서약, 보속을 위한 고행, 금욕 등은 하나님께서 그런 목적을 위해서 정해놓으신 것이 아니다. 기도, 철야, 금식, 묵상 등 또한 마찬가지이다. 죄를 죽이기 위한 용도로서 수단이 되어야 할 이와 같은 일들이 목적이 되어버릴 때 그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오웬은 이러한 신앙의 의무들은 힘없는 영혼에게 양식이 되어 줄 수는 있지만 병든 영혼을 치료하는 치료약이 될 수 없음을 강조한다. 그러면서 덧붙이는 것은 오직 신자의 죄를 죽일 수 있는 것은 성령의 능력임을 다시 한 번 강조한다. 이렇게 죄 죽이기에 대한 일반적 원리들에 이어 그럼 죄를 어떻게 죽일 것인가에 대한 여러가지 구체적인 지침들이 14장까지 성경에 기반한 존 오웬의 날카롭고 탁월한 지성적 능력을 통해 세밀하게 기술되고 있다.
책을 읽으며 어떻게 이렇게 인간 내면을 속속들이 들여다볼 정도로 인간 내면과 영혼에 대해서 잘 알 수 있을까 그의 깊고 넓은 인간에 대한 이해와 통찰력에 놀라운 탄식이 흘러나올 뿐이다. 오웬 그는 하루에 4시간만을 자며 나머지 시간을 모두 공부하는 일에 쏟아 부었을 정도로 우리와 같은 범인들의 머리로는 상상할 수 없는 비범한 인물이었다. 오웬이라는 인물 자체가 고대 교부들과 토마스 아퀴나스를 비롯한 중세 스콜라 신학, 히브리어, 헬라어, 라틴어의 통달, 고대문학과 역사, 철학에 대한 해박한 인문학적 지식의 토대가 된 르네상스 인문주의, 종교개혁 신학을 집대성한 워낙 비범한 거인이다보니까 그의 저서를 번역할 번역자를 찾기가 어려울 정도라고 한다. 개인적으로 이번 CH북스에서 본서가 번역 출간되기 전 타 출판사의 책을 통해 이 책을 완독한 적이 있다. 번역자가 다른 같은 책을 읽어보면서 번역상의 장단점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CH북스의 번역이 독자로 하여금 좀 더 이해하기 쉽고, 매끄럽게 다듬어진 듯한 느낌이다. 한번 읽고 서가에 꽂아놓기에는 나의 부족한 지성으로 인해 후에 복기해 볼 필요성이 충분한 책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