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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판본 페스트 (양장) - 1947년 오리지널 초판본 표지디자인 ㅣ 더스토리 초판본 시리즈
알베르 카뮈 지음, 변광배 옮김 / 더스토리 / 2020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새로운 밀레니엄 시대의 희망찬 막을 연 인류가 맞닥뜨리게 된 불행 중 하나는 전염병 사스, 신종플루, 메르스 그리고 지금의 혼란스러운 세계상을 대변하는 코로나19이다. 세계보건기구가 팬데믹을 선언하게 만든 이 전염성 질환으로 인해 대한민국을 포함한 온 세계가 몸살을 앓고 있는 요즘 적실성 있는 책 한권을 만난다. 어쩌면 이러한 상황에 부합하는 오래 전 출간 된 이 책의 소환은 시대의 당연한 요구로 인한 것이 아닐까?
<이방인>으로 알려진 20세기 최고의 작가 중 한명인 '알베르 카뮈'의 작품인 <페스트>는 1947년 세상에 빛을 보게 된 너무나 유명한 저작이다. 이 책의 배경은 프랑스 소재 작은 시골 마을 '오랑' 시이며 대략적인 줄거리는 그곳에서 발병한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흑사병, 즉 페스트에 관한 이야기이다. 중세 유럽 전체 인구의 1/3의 목숨을 앗아간 전무후무할 정도의 살상력을 지녔던 페스트가 20세기 중반 '오랑' 이라는 작은 시골 마을을 덮친다. 무미건조할 법한 일상의 반복이 쳇바퀴 굴러가듯 이어지던 이 마을을 송두리채 흔들어 놓은 페스트로 인해 하루아침에 오랑은 더 이상 평범함을 꿈꿀 수 없는 삶의 나락으로 떨어진다. 저자는 책을 통해 몇몇 주된 인물들의 심리와 심경의 변화를 토대로 페스트를 통해 그들이 가지고 있었던 삶과 죽음의 진정한 의미를 들추어내는 작업을 성실하게 수행한다. 이야기의 중심에 선 인물인 의사 리외와 그의 이웃이자 친구인 타루, 성직자인 파늘루 신부, 취재차 오랑을 방문했다가 오랑시의 모든 관문이 폐쇄되는 조치로 인해 발목이 붙잡혀 버린 기자 랑베르, 시청의 말단 서기 그랑.
각양 각색의 인물이 가지는 그 독특한 분위기를 살려 이야기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카뮈가 가지는 그 문학적 천재성은 가히 놀라울 따름이다. 전작 <이방인>을 통해서도 주인공의 심리 묘사에 탁월함을 드러낸 바 있기에 본서를 통해서도 카뮈는 그가 창조해 낸 다양한 인물들의 심경을 세밀한 터치로 묘사함으로서 정적이지만 독자로 하여금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원초적 긴장감을 선사한다. 마치 책장의 다음 페이지를 넘겼을 때 보고 싶지 않은 무엇인가가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은 그 저릿한 감정의 곡선을 자유자재로 가지고 노는 카뮈의 탁월함을 엿보게 된다.
책의 말미에 제공된 역자해제는 독자들로 하여금 제시된 해답지와 같이 작가인 카뮈가 본서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주된 메시지를 발견하는 손쉬움을 선사한다. 그러나 코로나19와 같은 지금의 시국에서 이 책을 집어든 독자의 의도가 재미와 궁금증이라는 다소 가벼운 마음에 기인했든 아니면 무엇인가 책을 통해 위로와 희망을 기대하는 연약한 마음에 기인했든 이 책을 펼쳐든 이상 독자의 의무는 카뮈가 전하는 정답을 잠시 덮어둔 채 독자로서의 주체성을 지키며 자신만의 비판적 의견과 생각을 능동적으로 피력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오랑 시는 페스트로 인해 모든 외부 세계와의 접촉이 금지된 채 도시의 관문이 모두 폐쇄되는 극단의 조치가 취해짐으로서 들어갈 수도 없고 나갈수도 없는 말그대로 고립무원의 상태가 되어버린다. 수 많은 사람들이 전염병의 희생양이 되어가는 이 절체절명의 상황 속에서도 페스트에 대항해 싸우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대다수의 사람들은 삶에 대한 희망을 잃어간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주요 인물 중 한 사람인 타루가 이야기하는바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웃을 신뢰할 수 없다는 것, 이 이웃이 당신 모르게 페스트를 건넬 수 있고, 당신이 포기하고 있으면 그 기회에 당신을 감염시킬 수 있다는 것...", "절망에 익숙해지는 것이 절망 자체보다 더 나쁜 것이다." 평화롭고 한적한 시골 마을에 어울리지 않는 사회적 의심과 불신의 포비아! 어제까지 밝게 웃으며 인사를 건네고 대화를 나누었던 나의 이웃이 나에게 페스트를 전염시킬 수 있는 잠재적 위험요소로 둔갑하게된 이 믿기지 않는 현실을 카뮈는 너무나도 담담하게 표현한다. 그리고 키에르케고르가 말한 "죽음에 이르는 병은 절망이다"라는 명제에 화답이라도 하듯 사회적 절망에 대한 경고의 문구까지 참으로 친절(?)하기만 하다.
또한 타루는 자신의 젊은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며 인간이 가진 병적 이기심을 꼬집는다. "내가 살고 있는 사회는 사형선고를 근거로 하고 있다. 이것을 물리침으로서 살인을 물리치게 된다...(중략) 사람들의 숙면이 페스트 환자들의 목숨보다 더 신성하죠. 선량한 사람들이 잠자는 것을 방해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랑 시는 관문 폐쇄와 격리라는 사회적이고, 집단적인 사형을 선고받았다. 오랑 시를 제외한 페스트에 감염되지 않은 선량한(?)사람들의 숙면, 그들의 행복은 페스트로 인해 고통받고 죽어가는 사람들의 불행과는 상관없이 지켜져야 한다는 집단적 이기심의 발로는 이유야 어찌되었든 폐쇄와 격리라는 사형선고를 합리화시킨다. 다른 이들의 죽음과 불행을 방관하고 방임하는 것에 대한 책임에서 누구하나 자유로울 수 없다. 오히려 오랑 시를 폐쇄하기로 결정한 자들이 정신적 페스트에 걸린 자들일 수 있다. 그리고 우리 모두 유무형의 페스트에 감염된 자들일 수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 속에서 물리적인 페스트에 걸리지 않았기에 존재 자체가 건강하다고 자부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마지막으로 타루의 이야기는 우리의 텅빈 사고를 단단한 목공용 망치로 후려치는 것 같은 충격으로 다가온다. "각자가 그것을, 페스트를 자기 속에 지니고 있다...(중략) 감염균을 다른 사람들의 얼굴에 붙이지 않기 위해 계속해서 스스로를 경계해야 한다. 다른 이들을 감염시키지 않기 위해 가능한 방심하지 않아야하고, 의지가 있어야 하고 긴장해야 한다. 페스트 환자로 있는 것도 피곤한 일이지만 그렇지 않기 위해서는 더 피곤한 일이다." 카뮈가 선택한 소설의 소재는 물리적 질병의 하나인 페스트였지만 그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진의는 비단 전염병으로서의 페스트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바로 인간성 말살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이 지옥같은 현실 속에서 우리 모두의 혈관 속에 흐르는 그 추악하고 더러운 반인륜적이며 부도덕한 인자에 대한 꼬집음이다. 타락한 인간성에 기인하는 이러한 패륜적 이기심이 인간군상 누구에게나 항존한다는 이 거부하고만 싶은 현실의 민낯을 카뮈는 페스트라는 전염병을 메타포로 사용하여 훌륭하게 고발한다. 인간 내면의 도덕 기준의 부재로 발현한 질병을 다른 이들에게 감염시키지 않기 위한 끊임없는 자발적 격리의 몸부림은 타루가 말한대로 페스트 환자로 있는 것보다 몇배는 더 피곤한 일상의 작업이다. 그렇기에 이러한 고통으로 인해 포기하고 싶은 사람들은 죽음 외에는 해방의 길이 없다고 말했지만 소설의 결말이 인간에게 남겨진 한가닥의 소망을 지향하기에 독자 또한 인간성 회복의 싸움을 위한 손을 쉽게 떨굴수는 없는 것이리라.
출근을 하고 학교에 가며 사람들을 만나고, 밥을 먹고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었던 너무나 당연시 여겼던 요즘 우리네 잃어버린 일상에 대한 그리움과 평범함을 향한 감사의 마음은 일상성의 회복이라는 염원으로 귀결된다. 또한 소설 속 폐쇄된 공간 오랑 시의 모습 속에서 2020년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 희미한 모습으로 오버랩되어 다가온다. 아울러 책을 덮으며 작년에 완독한 카뮈의 전작 <이방인>의 어렴풋한 향기를 느낀다. 책의 곳곳에 숨어있는 전작의 체취를 통해 카뮈가 추구하는 기성 체계의 완고함에 대한 반항과 현실의 물줄기를 역행하고자 하는 투쟁의 사고를 엿보게 된다. 이해할 수 없는 현실에 대해 결코 순응할 수 없고, 순응하고 싶지 않은 카뮈의 작가 정신이 투영된 <이방인> 그리고 <페스트>를 통해 코로나19라는 결코 굴복하고 싶지 않은 전염병이 가진 그 이면의 의미를 찾아가보는 것이야말로 격리된 듯한 단조로운 일상 속에 흥미로움을 선사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