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래소 - 현대 주식시장의 핵심 메커니즘을 밝히다 막스 베버 선집
막스 베버 지음, 이상률 옮김 / 문예출판사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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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화들의 막대한 거래에 이용되는 것이 거래소이다. p15

 

비트코인, 이더리움 등의 가상 화폐가 상장되는 거래소 또는 증권 거래소와 같은 용어는 많이 들어봤지만 정작 용어의 정의에 대해서는 무지하다. 이번에 몇 년 전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으로 만난 독일 사회과학자 '막스 베버' 선집 중 한 권인 <거래소>를 읽었다. 저자가 발표한 두 편의 논문이 책의 중심이다. 베버는 1장 '거래소의 목적과 외적 조직'에서 거래소의 기본 정의와 근대 경제 사회와 그 이전의 상거래 방식에 대한 기초적 개념을 서술한다. 가부장제 가족 공동체 사회에서 대부분의 재화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자급자족의 형태로 생산되고 소비되었다. 직접 농사를 짓고 가축을 키우며 간단한 농기구와 도구들을 만들어서 사용했던 시대다. 그러나 인구가 증가하고 사회가 발전하면서 이제는 각자가 자신만을 위해서 물건을 생산하는 시대가 아닌 다른 사람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 생산하는 시대가 되었다. 이렇듯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노동 산물을 필요로 하게 된다. 바야흐로 근대적 경제 시스템으로의 전환이다.

베버가 말하는 거래소의 정의는 근대적 대규모 상거래의 한 제도다. 재화 교환이라는 상거래를 활성화시키는 것이 바로 거래소다. 일정한 장소(거래소)를 통해 생산자와 소비자가 접선하고 그곳에서 서로의 필요가 거래된다. 베버는 거래소를 가리켜 근대적 시장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시장과 거래소의 차이가 있다. 그것은 바로 재화의 현재성 유무다. 즉 재화가 현재 눈앞에 있느냐의 여부다. 한마디로 직거래가 가능한 것은 시장이다. 반면 거래소는 현재 눈앞에 재화가 없지만 생산 중인 상품이나 생산할 예정인 상품, 운송 과정 중에 있는 상품 등에 대해서 매도자와 매수자의 거래가 체결되는 곳이다. 거래소는 복잡다단해져가는 경제 상황 속에서 생산자와 소비자를 효과적으로 연결시킴으로서 경제 활성화에 기여한다. 그러나 베버가 살던 당시에는 이러한 거래소에 대한 부정적 여론도 거셌다. 거래소가 외국 재화의 유입을 주도하여 가격을 쥐락펴락함으로써 국내 경제에 불이익을 끼친다는 주장이 일면서 거래소는 없어져야 한다는 생각이 팽배했다. 베버는 바로 이러한 배경 속에서 이 두 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베버는 자유 시장 경제 체제에서 탄생된 거래소의 목적과 기능을 설명하며 거래소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결코 없어서는 안 되는 제도임을 밝힌다.

 

 

경제정책에 대한 학문은 일종의 정치적인 학문으로, 정치의 시녀이다.

 

베버는 거래소 무용론, 거래소 폐지를 외치는 국내 여론의 무지함에 대해 국가의 정치 및 경제 권력의 이해라는 관점으로 거래소 유용론을 주장했다. 활발한 경제 활동과 국외 교역을 주도하는 거래소가 없다면 경제 활동은 위축될 것이며 이것은 국가가 강대국으로의 발돋움을 하기 위한 국가 간 투쟁에 뛰어들 수 없음을 일갈한다. 흥미로운 점은 베버가 투기에 대해 긍정적으로 기술한다는 점이다. 나중에 더 비싸게 팔기 위해서 투기 목적으로 재화를 사들인다. 반대로 나중에 더 싸게 사들이기 위해서 가격 하락을 기대하며 투기 목적으로 판다. 이러한 거래들이 활발하게 진행되는 곳이 바로 거래소이며 이러한 투기 거래 형식이 선물거래이다. 베버는 이러한 투기성 선물거래 제한에 대해 반대한다. 제한을 한다고 해도 어차피 완전하게 제한하지도 못할뿐더러 오히려 이러한 거래를 외국으로 쫓아냄으로써 경쟁국의 금융 능력을 강화시켜주는 꼴이 된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자국의 경제 능력은 쇠퇴할 수밖에 없고 이는 곧 국가 간 정치 경제 권력의 약화라는 부정적 결과를 가져옴을 역설했다.

 

강력한 거래소는 '윤리적인 문화'를 위한 클럽일 수 없다. p104

 

"현세적인 목적만을 추구하는 경제정책에서는 그 목적이 하나일 수밖에 없다. 저 경제 투쟁에서의 권력 수단이 되는 것이다." p104 베버가 말하는 경제정책은 경제 권력의 획득이며 이는 곧 정치권력의 공고함으로 귀결된다. 베버의 주장을 듣다 보면 19세기 독일 경제의 부흥을 이해할 수 있다. 베버는 느슨한 경제정책은 자국민을 무장해제 시키는 지름길임을 시사했다. 쉽게 말해서 돈이 곧 힘이다. 돈이 있어야 부강한 나라를 만들 수 있고 권력을 가진 국가만이 외국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매우 현실적인 경제관을 이야기한다. 국가가 투기를 조장해서는 안 되지만 그렇다고 투기를 억제해서도 안된다.

윤리성을 살짝 밀어놓고 냉혹한 경제 현실 속에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돈이 있어야 사회 간접자본의 투자가 이루어질 것이고 이렇게 마련된 사회 간접자본을 통해서 다시금 경제 발전을 위한 대량 생산과 유통의 초석이 다져진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돌고도는 경제 순환의 고리를 이어주는 것이 어찌 되었든 돈이지 않을까? 근대 자본주의 탄생의 사상적 근원을 전통적 맥락이 아닌 프로테스탄트, 특별히 청교도 윤리로서의 소명 의식에서 발견한 베버의 관점에 '엄지 척!' 했던 기억이 있다. 거래소라는 금융과 실물 경제를 아우르는 중요한 개념을 통해 베버가 전하는 또 하나의 사회 경제학의 기본을 흥미롭게 읽어볼 수 있는 저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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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rt up 블로그 글쓰기 나만의 콘텐츠로 성공하기 - 블로그 마케팅의 모든 것 Start up 시리즈
남시언 지음 / 아티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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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인상으로 사로잡는 블로그 포스팅 방법'

 

지난주 한때 나의 블로그 방문자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일일 평균 방문자 수 50명 정도의 무명 블로그에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네이버 책방 메인 뷰에 올라 간 한편의 서평 때문이었다. 이틀 반나절의 합계 방문자 수와 조회 수가 각각 11,404명, 13,213회라는 믿기지 않는 데이터를 보며 이틀간 신데렐라가 된 듯한 기분을 만끽했다. 이틀 반나절 동안 나는 네이버 파워블로거였다! 블로그를 운영하는 블로거들에게 파워블로거는 동경의 대상이다. 나 또한 그렇다. 그러나 블로그를 개설한 지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파워블로거의 길은 요원하기만 하다. 이러한 답답함을 해결해 줄 사이다 같은 책 한 권을 손에 쥔다. 파워블로거 남시언 작가가 집필한 <블로그 글쓰기 나만의 콘텐츠로 성공하기>는 성공적인 블로그 글쓰기 마케팅을 위한 안내서다. 이미 파워블로거로 다수의 책을 집필했고, 다양한 강연으로 인지도를 높이고 있는 저자가 자신의 블로그 성공 비결을 나와 같은 무명 블로거들의 성공을 돕기 위해 아낌없이 공유한다.

책은 블로그를 해야 하는 이유와 같은 원론적 이야기부터 블로그 글쓰기 방법론과 전략에 이르는 세부적이고 실제적인 블로그 운영 방법, 글쓰기 훈련에 대한 내용까지 알찬 정보로 가득하다. 몇 가지 내용이 인상 깊다. 우선 저자는 블로그 글쓰기는 신문기사가 아니기에 주관적 감정의 글쓰기를 강조한다. 또한 한 가지 주제를 뚝심 있게 고집할 수 있다면야 금상첨화겠지만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고 말한다. 현재 성공한 파워블로거들의 블로그를 보아도 한 가지 주제만을 고집하기보다는 메인 컨셉과 서브 컨셉을 함께 운영하는 사람들이 많음을 이야기한다.

 

1. 블로그 글쓰기는 신문기사가 아니다. 주관적인 감정을 표현하라.

2. 한가지 주제로 밀고 나갈 수 없다면 메인 컨셉과 함께 서브 컨셉을 만들라.

 

저자는 블로그 글쓰기에 있어 자신만의 스타일을 강조한다. 네이밍의 중요성, 제목 짓는 요령, 스토리로 이야기하기, 간단 명료한 콘텐츠 지향, 경어체와 평어체 비교, 글쓰기 재료 모으기 방법, 사진 활용 전략 등이다. 덧붙여 흔히 블로거들 세계에 퍼져 있는 괴소문(?)에 대한 진실도 밝힌다. 예를 들어 글을 수정하면 검색 노출이 안된다는 이야기부터 마케팅 글을 쓰면 저품질 블로그가 된다는 이야기까지...

 

 

"블로그는 마라톤이다. 블로그는 농사다. 열매는 한참 뒤에 얻을 수 있다." p68

 

블로그 세계에 뛰어드는 많은 이들이 파워블로거가 될 때 주어지는 유무형의 이익을 꿈꾼다. 저자는 위와 같이 말한다. 블로그는 장거리 마라톤 경주와 같다. 농사와 같이 꾸준한 노력을 투자하고, 열매를 기다리는 인내가 필요한 일임을 말이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노력이 좀 더 효율적인 방법론을 기초로 하여 이루어질 때 블로거들의 꿈은 조금 더 빨리 이루어질 수 있다. 본서는 바로 그러한 지름길을 안내해 주는 길라잡이와 같다. 나 또한 이 책을 펼치기 전에는 상당히 막막했다. 어쩌다 한번 네이버의 메인 뷰에 뽑히는 영예(?)를 누렸지만 그것은 한순간에 사라지는 거품과 같다. 대충 쓰는 것이 아닌 한편의 논문을 작성하는 심정으로 양질의 서평 전문 블로그를 지향하며 시작했다. 책을 사랑하는 독자들과의 교감을 바랐다. 그러나 몇 년이 지났지만 블로그는 항상 제자리다.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이러한 와중에 지푸라기라도 잡고 심정으로 이 책을 펼쳤다.

유능한 선생님께서 그동안 블로그를 운영하며 답답하고 궁금했던 질문에 직접 답변해 주는 것만 같다. 더불어 네이밍과 제목 짓기 같은 매우 소소하지만 중요한 기초부터 블로그 운영에 대한 전반적인 철학을 직강한 것만 같다. 저자가 말하는 나의 블로그가 가진 문제점에 대한 원픽 솔루션은 아래와 같다.

1. 콘텐츠의 간결 명확성 → 나의 서평은 내용이 너무나 장황하다. 쓸데없는 말 쓰지 말라! 사족이 많다!

2. 특정 주제만 고집 → 서평만 너무 고집. 딱딱, 건조, 재미없다. 유연한 내용의 서브 컨셉 운영 시도가 필요!

3. 너무 몰개성적이고 소극적 → 정형화된 콘텐츠, 자기 PR을 터부시하는 가식적 겸손함, 꼰대 틀에서 벗어나 도발적 글쓰기 스타일 필요! 능동적이고 공격적인 블로그 운영이 필요!

 

"처음에는 글의 주제와 내용으로 독자를 유혹하다가 나중에는 그 글을 쓴 사람의 팬이 되게끔 만들어야 한다." p32

 

책을 통해 저자가 왜 파워블로거인지 느끼게끔 만드는 가장 기억에 남는 문장이다. 콘텐츠 제공자와 독자의 관계를 저자와 팬의 관계로 전환시킬 수 있는 사람만이 파워블로거가 될 수 있다! 명쾌하다! 블로그라는 매체를 통해서 나의 생각을 표현하고 불특정 다수의 타인들과 교감할 수 있다는 사실은 블로그가 가진 매력이다. 그러나 역시나 힘들다! 많은 이들이 야심 차게 시작했지만 대다수가 중도 포기한다. 블로그 운영은 그만큼 시간과 인내가 필요한 싸움이다. 부지런함이 필요하고 다른 이들에게 영향력을 끼치겠다는 오피니언 리더십에 대한 갈망이 요구된다. 그렇기에 효과적 블로그 운영에 대한 고민을 한방에 해결해 줄 만한 본서의 가치가 더 빛난다.

 

"자신의 시간을 투자하는 사람들이 블로거다. 편안함과 귀찮음을 포기할 수 없다면 콘텐츠 생산자로서의 전환은 불가하다." p6

"콘텐츠 생산자는 매우 소수이며 빙산의 일각(중략) 그보다 훨씬 많은 사람은 그저 남들이 만든 콘텐츠를 소비만 한다." p59

 

1. 시간 투자와 귀찮음을 극복한 부지런함!

2. 언제까지 남들이 만든 콘텐츠를 소비만 하는 소비자로 살아갈 것인가?

책을 덮으며 내 머리를 후려치는 key이다. 나와 같은 고민을 가진 블로거들에게 이 책은 바이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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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살로 읽는 세계사 - 중세 유럽의 의문사부터 김정남 암살 사건까지, 은밀하고 잔혹한 역사의 뒷골목 테마로 읽는 역사 5
엘리너 허먼 지음, 솝희 옮김 / 현대지성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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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을 지키려는 자와 빼앗으려는 자의 줄다리기가 독살이라는 주제와 만나서 매우 흥미롭게 펼쳐지는 역사 인문학 도서에요! 매혹적인 중세 왕실의 숨겨진 추악함을 엿보는 재미는 덤이죠! 역사에 관심있는 독자들에게 추천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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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살로 읽는 세계사 - 중세 유럽의 의문사부터 김정남 암살 사건까지, 은밀하고 잔혹한 역사의 뒷골목 테마로 읽는 역사 5
엘리너 허먼 지음, 솝희 옮김 / 현대지성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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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함 속에 감춰진 추악한 이야기"

 

몇 년 전 동네 노인들이 노인정에서 농약 섞인 사이다를 마시고 사망하는 일이 벌어졌다. 일명 '농약 사이다 살인사건'. 동네 노인들의 사소한 다툼 끝에 벌어진 어처구니없는 참극이다. 이렇게 먹고 마시는 음식에 독약을 넣어 대적자를 살해하는 일은 인류 역사 속에서 그 기원이 오래다. 독살이라는 끔찍하지만 흥미로운 주제를 세계사와의 연관성 속에서 인문학적으로 고찰한 책이 바로 오늘 서평 하는 <독살로 읽는 세계사>이다. 미국 태생의 저자 '엘리너 허먼'은 언론학을 전공하고 출판사 편집자로 일한 경력이 있다. 그녀는 어둡고 무거운 주제를 흥미로운 스토리로 탈바꿈시키는 이야기 연금술사로 평가받는다. 본서는 인류 역사 가운데 존재했던 독살이라는 독특한 주제를 역사적이고 인문학적인 교훈과 절묘하게 매칭 시킨다. 저자는 우선 중세 유럽의 왕궁에서 벌어졌던 독살의 역사와 기원을 파헤친다. 더불어 중세 유럽 왕실에서 벌어졌던 미스터리한 독살 사건을 다루며 베일에 싸여왔던 진실의 문빗장을 열어젖힌다. 3장에서는 독극물로 정적을 살해하는 일들이 중세 시대만이 아닌 21세기를 살아가는 지금도 여전히 벌어지고 있는 일임을 최근 몇몇의 사건을 통해 소개한다.

중세 유럽의 왕궁에서는 독극물이 암살을 위한 도구로 쓰이기 이전에 의약품의 하나로서 오용되어 수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망자의 강을 건너게 만들었다. '사람 잡는 의사'라는 제목의 챕터에서 당시 의사들이 납, 수은, 비소, 안티몬 등의 중금속을 약으로서 버젓이 처방 내렸음을 보게 된다. 수은으로 관장을 하고 피부 궤양 환자의 피부에 수은과 납 연고를 바르도록 처방했다. 의학적 지식이 전무하던 시대에 의사들은 돌팔이의 수준을 넘어 마치 주술사와 같았다. 죽은 아기의 피와 살, 인간의 시체와 각종 동물들의 사체와 배설물과 장기 등을 혼합하여 약을 만들었다. 마치 마녀들이 비약을 제조하는 것과 같은 오컬트적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이러한 약을 처방받은 환자들은 거의 생체실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고 많은 이들이 감염과 독성에 의해 생명을 잃었다.

2부에서는 다양한 유럽 왕실 인물들의 독살 사건을 다룬다. 우리가 아는 인물 가운데 천재 음악가 모차르트나 나폴레옹과 같은 이들의 죽음도 독살과의 연관성 속에서 그 진위를 밝힌다. 흥미로운 점은 왕실 인물들의 사인을 당대 부검의들의 소견과 현대 법의학자들의 소견의 대비를 통해 밝힌다는 것이다. 지금껏 독살이라고 여겼던 사람의 사인이 독살이 아니고 여타의 질병으로 인한 것으로 밝혀지기도 하고 그 반대의 경우도 여럿이다. 마지막 3부에서는 현대에 벌어지는 정치적 독살의 현장을 스케치한다. 주로 러시아에서 벌어진 암살과 독약의 관계를 밝히며 최근 북한 김정남 독살 사건에 관한 이야기도 독자의 관심을 끌기 충분하다.

 

 

"권력의 정점에서 남는 것은 무엇인가?"

 

인류 역사 가운데 권력을 향한 갈망은 끝이 없었다. 먹고 먹히는 먹이사슬과 흡사한 인간사 각축장에서 상대방을 죽여야지만 내가 그의 권력을 차지할 수 있다는 생각이 서로를 죽고 죽이는 광기의 현장 속으로 안내했다. 책은 잘 짜인 한편의 인문학적 지식을 전달한다. 단순한 재미와 흥미로서 책을 덮는다면 분명 독자로서 많은 것을 놓치는 것이다. 첫째, 책은 권력의 허망함을 보여준다. 끝까지 올라간 정상에서 행복은커녕 자신의 음식에 독이 들었을 것을 염려하여 매 끼니마다 일종의 기미 상궁들이 들쑤셔놓은 개밥 같은 식사를 할 수밖에 없었다고 하니 이보다 아이러니컬한 일이 어디있겠는가? 또한 밥 한끼도 마음 편하게 못 먹는 권력의 정상에서 오히려 돌팔이 의사들의 사이비 독극물 처방에 의해 죽어나가는 권력자들도 부지기수였다고 하니 권력의 허상을 보게 된다. 둘째, 인간의 무지함과 어리석음을 본다. 치명적인 중금속들을 약으로 여기고 처방을 남발했던 당시 의사들이나 그것을 비책으로 여기고 복용하며 도포했던 왕족들과 귀족들의 모습 속에서 인간 무지의 극치를 발견한다.

그런데 맺는말에서 저자의 반문이 핵폭탄 급 반전이다. 의학이 발달했기에 독과는 상관없는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들은 과연 안전한가? 답은 No! 암이나 자폐증, 치매를 유발하는 수많은 화학제품을 먹고 마시고 바르는 삶이 지금 우리의 삶이다. 그야말로 우리네 삶은 독약과의 동침이다! 먼 미래의 후손들이 우리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중세 유럽 왕실에서 비소와 납 크림을 바르고 수은 관장 등을 행했던 그들을 비웃었듯이 우리를 비웃을 것이다. 역사는 수레바퀴와 같고 해 아래 새것이 없다.

권좌를 지키려고 독살을 시도하고,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 독을 약으로 여기고 사용했다. 독이 약이 되고 약이 독이 되는 요지경 시대를 살았던 이들의 삶을 보며 우리의 삶을 성찰한다. 돈과 권력과 명예와 인기와 지위에 대한 말 할 수 없는 탐욕, 그것을 지키려는 자와 빼앗으려는 자의 보이지 않는 싸움이 독살을 불러왔다. 비극의 근원은 언제나 인간 내면의 탐욕이다. 매혹적으로 아름다워만 보이는 중세 유럽 왕실의 숨겨진 추잡함을 가감 없는 전라의 모습으로 볼 수 있는 책으로서 본서는 충분한 인문학적 가치가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매우 재미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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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판본 영랑시집 - 1935년 시문학사 오리지널 초판본 표지디자인 더스토리 초판본 시리즈
김영랑 지음 / 더스토리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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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쪽에는 소월이 있다면 남쪽에는 영랑이 있다!" 남과 북의 대표적 서정 시인으로서 김소월과 김영랑을 가리키는 말이다. 김소월에게 있어서 <진달래꽃>이 있다면 김영랑에게는 <모란이 피기까지는>이 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대표적 서정 시인들의 이름과 함께 따라다니는 시그네이처와 같은 작품들이다. 특별히 본 시집에는 남쪽의 순수 서정시를 대표하는 김영랑 시인의 작품 81편이 알차게 수록되어 있다. 일제 치하에서 태어나 나라 잃은 백성의 설움을 간직하며 살았지만 그의 시에서는 암울함과 슬픔의 그림자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당시 정치적 이념과 성향을 드러낸 시집들이 많았지만 영랑의 시는 서정적이며 순수하고 아름다운 감정의 미학을 여실히 드러낸다.

예전에 백석 시인의 <사슴>을 통해 북녘땅의 토속적 방언으로 그려진 시에서 깊은 흙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이번 영랑시집에서는 전라도 방언의 정겨움과 구수함이 전해진다. 시인이 주로 활동했던 고장과 지방의 색깔이 묻어 나오는 시는 사람 냄새가 나서 좋다. 영랑시집 또한 이와 같다. 시대의 상황은 분명 어둡고 참담했지만 이러한 암울함 속에서 밝은 희망과 바람을 단어 하나하나에 압축시킨 시인의 노력이 전해진다. 그렇기에 독자는 영랑 시인의 시를 통해 작은 소망의 씨앗이 어둠과 절망의 진토를 뚫고 싹을 띄우는 문학적 발아의 현장을 목격한다. 순수 문학이 가진 본연의 임무를 제대로 감당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일본 제국주의 군홧발에 짓밟히며 신음하는 민초들의 비참한 현실 속에서 영랑의 시는 아직 오지 않은 봄을 노래한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는 계절의 순환은 정해진 법칙이다. 이렇듯 시인의 시는 터널과 같은 암흑 속에 내던져진 민족의 가슴에 아름다운 심미적 감각을 불러일으킨다. 삶은 살만한 것이고 아직 우리에게는 소망이 있음을...

 

 

영랑 시인의 대표적 작품으로서의 시 한 편을 보자!

<모란이 피기까지는>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 테요 (중략)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둘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상징적 의미의 어휘가 수놓아져있다. 시인이 말하는 모란은 무엇이고 봄은 무엇일까? 전문적인 해제를 보게 되면 이 시가 의미하는 바를 수학 문제의 정답처럼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독자로서 고유의 심상으로 시를 읽고 싶다. 나름대로 해석한 영랑의 모란은 잃어버린 조국의 주권, 봄은 일제로부터의 해방, 자유를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은 조선이 일본에 주권을 빼앗긴 날이다. 봄(자유)을 여읜(빼앗긴) 것이 시인에게 설움과 슬픔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마지막에 시인은 찬란한 슬픔의 봄을 기다리겠다고 말한다. '찬란한 슬픔의 봄'이라는 말이 되지 않는 모순 어법을 사용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시인에게 있어서 봄은 두 가지의 중첩된 의미를 가진다. 봄(해방, 자유)은 그 자체로서 찬란할 정도로 눈부시지만 지금은 빼앗겼기에 슬픔만이 투사된 봄(해방, 자유)인 것이다.

정치적 성향과 이념을 배제한 유미적이고 상징적인 서정시를 썼던 시인이지만 그 또한 나라 잃은 백성이었다. 또한 그가 광복 전까지 일제의 창씨개명과 신사참배 등을 거부했다는 사실은 그의 시에 묻어나는 저항적 느낌을 감출 수가 없다. 노골적인 항일 정신을 분출하지 않았지만 시인은 자신만이 가진 문학적 실력을 십분 발휘하여 자신의 시 속에 숨겨진 투쟁의 정신을 코드화한 것이 아닐까? 물론 독자인 나만의 생각이다.

 

 

또 다른 느낌의 시를 감상해보자!

<향내 없다고>

향내 없다고 버리실라면

내 목숨 꺽지나 마시오

외로운 들꽃은 들가에 시들어

철없는 그이의 발끝에 좋을걸

나는 이 시를 읽으며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로 시작하는 소월의 <진달래꽃>이 연상되었다. 향내가 없기에 버리고 가는 님과 나 보기가 역겨워 떠나는 님이 가지는 시적 심상이 묘하게 어울린다. 영랑과 소월 시의 화자는 모두 떠나보내는 사람의 입장이다. 슬픔과 원망이 극도로 절제되어 있다. 내가 이제 향내(쓸모)가 없기에 버리고 떠나는 그 사람은 상대방을 의미 있게 여기지 않는 형편없고 철없는 사람이다. 그러나 화자는 원망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다. 망나니와 같이 비루한 사람이지만 그 철없는 그이의 발끝에라도 있을 수 있다면 좋겠다고 한다. 어휘의 나열이 감각적이고 깊다. 천박함은 찾아볼 수 없고 차분하게 가라앉은 느낌이 깊이 우러나온 차 잎의 짙은 향기와 같다. 아울러 정직한 감정을 토로하는 시인의 마음이 맑다.

81편의 시가 53편과 28편의 시로 나뉘어서 수록되어 있다. 여기에는 약간의 시기적 구분이 있으며 그에 따라서 시인이 표현하는 시상이 조금씩 상이함을 느낄 수 있다. 전반부의 시들은 대체로 순수 서정시의 느낌이 물씬 풍긴다. 나라 잃은 백성이 말하는 것이라고 느껴지지 않는 정제된 언어의 향연이 지면을 채운다. 대다수 시는 4행으로 한연을 구성하는 정형시의 형식을 취한다. 그래서 호흡이 짧고 입안에 운율이 맴돈다. 짧기에 더 함축적이고 상징적이며 간혹 역설적이기도 하다. 그러나 후반부에 실린 시들은 느낌이 생소하다. 서정적인 아름다움의 기본 골격을 무너뜨리지는 않지만 표현하고 발산하는 느낌의 결이 전반부 시들과는 사뭇 다르다. 처형장, 죽음과 같은 어두운 이미지를 그리는 시들이 등장한다. 일본의 식민 통치가 막바지에 이르며 악에 받힌 일제의 민족말살정책이 한창인 시기에 쓰인 시들은 시상 자체에 암울함이 서려있다. 시인은 문인으로서 자신의 문학적 사명을 일제의 잔혹한 핍박의 시기 속에서도 결코 놓치지 않았다.

총칼을 들고 일본제국주의의 심장을 강타한 무장 항일운동가들이 있었다. 반면 붓과 펜으로서 일제에 저항하며 항일했던 저항 시인들이 존재했다. 또한 붓과 펜이 직접적으로 일제의 심장을 겨누지는 않았지만 일제에 의해 민족의 정서와 감정이 메말라가고, 아름다움에 대한 미적 감각이 소멸되어가는 것을 막아선 사람들도 있다. 영랑 시인은 바로 이와 같은 부류의 문인이라고 여겨진다. 그가 쥔 붓과 펜은 적의 심부를 겨눈 것이 아니라 민초들의 마음을 겨눴다. 민초가 살아야 해방 이후를 도모할 수 있음을 알았기에 백성들의 마음과 감정마저 일제에 의해 유린되고 늑탈 당하지 않도록 그의 시는 무형의 방패가 되었다.

이렇듯 아름답고 서정적인 시로서 고통의 시기를 통과하는 민족의 가슴에 희망과 소망의 씨앗을 뿌렸다. 언제 싹이 나고 꽃을 피우며 열매 맺을지 그 누구도 모르는 시대를 살았지만 시인은 자신에게 주어진 소명을 다했다. 본인 스스로가 3.1 운동으로 인해 6개월의 옥고를 치르고 창씨개명과 신사참배를 거부했을 정도로 시인에게는 이미 항일의 마음이 충만했다. 저항의 펜끝이 가리키는 방향은 달랐지만 시인이 써 내려간 한 편의 시 속에 녹아져 있는 정신은 극일이며 민족혼의 부활이 아니었을까? 이 시대 순수 서정시가 가진 깊은 여운을 느껴보고 싶다면 소월과 대비되는 영랑의 시집은 단연코 최고의 선택이 아닐까 싶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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