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래소 - 현대 주식시장의 핵심 메커니즘을 밝히다 막스 베버 선집
막스 베버 지음, 이상률 옮김 / 문예출판사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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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화들의 막대한 거래에 이용되는 것이 거래소이다. p15

 

비트코인, 이더리움 등의 가상 화폐가 상장되는 거래소 또는 증권 거래소와 같은 용어는 많이 들어봤지만 정작 용어의 정의에 대해서는 무지하다. 이번에 몇 년 전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으로 만난 독일 사회과학자 '막스 베버' 선집 중 한 권인 <거래소>를 읽었다. 저자가 발표한 두 편의 논문이 책의 중심이다. 베버는 1장 '거래소의 목적과 외적 조직'에서 거래소의 기본 정의와 근대 경제 사회와 그 이전의 상거래 방식에 대한 기초적 개념을 서술한다. 가부장제 가족 공동체 사회에서 대부분의 재화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자급자족의 형태로 생산되고 소비되었다. 직접 농사를 짓고 가축을 키우며 간단한 농기구와 도구들을 만들어서 사용했던 시대다. 그러나 인구가 증가하고 사회가 발전하면서 이제는 각자가 자신만을 위해서 물건을 생산하는 시대가 아닌 다른 사람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 생산하는 시대가 되었다. 이렇듯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노동 산물을 필요로 하게 된다. 바야흐로 근대적 경제 시스템으로의 전환이다.

베버가 말하는 거래소의 정의는 근대적 대규모 상거래의 한 제도다. 재화 교환이라는 상거래를 활성화시키는 것이 바로 거래소다. 일정한 장소(거래소)를 통해 생산자와 소비자가 접선하고 그곳에서 서로의 필요가 거래된다. 베버는 거래소를 가리켜 근대적 시장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시장과 거래소의 차이가 있다. 그것은 바로 재화의 현재성 유무다. 즉 재화가 현재 눈앞에 있느냐의 여부다. 한마디로 직거래가 가능한 것은 시장이다. 반면 거래소는 현재 눈앞에 재화가 없지만 생산 중인 상품이나 생산할 예정인 상품, 운송 과정 중에 있는 상품 등에 대해서 매도자와 매수자의 거래가 체결되는 곳이다. 거래소는 복잡다단해져가는 경제 상황 속에서 생산자와 소비자를 효과적으로 연결시킴으로서 경제 활성화에 기여한다. 그러나 베버가 살던 당시에는 이러한 거래소에 대한 부정적 여론도 거셌다. 거래소가 외국 재화의 유입을 주도하여 가격을 쥐락펴락함으로써 국내 경제에 불이익을 끼친다는 주장이 일면서 거래소는 없어져야 한다는 생각이 팽배했다. 베버는 바로 이러한 배경 속에서 이 두 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베버는 자유 시장 경제 체제에서 탄생된 거래소의 목적과 기능을 설명하며 거래소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결코 없어서는 안 되는 제도임을 밝힌다.

 

 

경제정책에 대한 학문은 일종의 정치적인 학문으로, 정치의 시녀이다.

 

베버는 거래소 무용론, 거래소 폐지를 외치는 국내 여론의 무지함에 대해 국가의 정치 및 경제 권력의 이해라는 관점으로 거래소 유용론을 주장했다. 활발한 경제 활동과 국외 교역을 주도하는 거래소가 없다면 경제 활동은 위축될 것이며 이것은 국가가 강대국으로의 발돋움을 하기 위한 국가 간 투쟁에 뛰어들 수 없음을 일갈한다. 흥미로운 점은 베버가 투기에 대해 긍정적으로 기술한다는 점이다. 나중에 더 비싸게 팔기 위해서 투기 목적으로 재화를 사들인다. 반대로 나중에 더 싸게 사들이기 위해서 가격 하락을 기대하며 투기 목적으로 판다. 이러한 거래들이 활발하게 진행되는 곳이 바로 거래소이며 이러한 투기 거래 형식이 선물거래이다. 베버는 이러한 투기성 선물거래 제한에 대해 반대한다. 제한을 한다고 해도 어차피 완전하게 제한하지도 못할뿐더러 오히려 이러한 거래를 외국으로 쫓아냄으로써 경쟁국의 금융 능력을 강화시켜주는 꼴이 된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자국의 경제 능력은 쇠퇴할 수밖에 없고 이는 곧 국가 간 정치 경제 권력의 약화라는 부정적 결과를 가져옴을 역설했다.

 

강력한 거래소는 '윤리적인 문화'를 위한 클럽일 수 없다. p104

 

"현세적인 목적만을 추구하는 경제정책에서는 그 목적이 하나일 수밖에 없다. 저 경제 투쟁에서의 권력 수단이 되는 것이다." p104 베버가 말하는 경제정책은 경제 권력의 획득이며 이는 곧 정치권력의 공고함으로 귀결된다. 베버의 주장을 듣다 보면 19세기 독일 경제의 부흥을 이해할 수 있다. 베버는 느슨한 경제정책은 자국민을 무장해제 시키는 지름길임을 시사했다. 쉽게 말해서 돈이 곧 힘이다. 돈이 있어야 부강한 나라를 만들 수 있고 권력을 가진 국가만이 외국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매우 현실적인 경제관을 이야기한다. 국가가 투기를 조장해서는 안 되지만 그렇다고 투기를 억제해서도 안된다.

윤리성을 살짝 밀어놓고 냉혹한 경제 현실 속에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돈이 있어야 사회 간접자본의 투자가 이루어질 것이고 이렇게 마련된 사회 간접자본을 통해서 다시금 경제 발전을 위한 대량 생산과 유통의 초석이 다져진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돌고도는 경제 순환의 고리를 이어주는 것이 어찌 되었든 돈이지 않을까? 근대 자본주의 탄생의 사상적 근원을 전통적 맥락이 아닌 프로테스탄트, 특별히 청교도 윤리로서의 소명 의식에서 발견한 베버의 관점에 '엄지 척!' 했던 기억이 있다. 거래소라는 금융과 실물 경제를 아우르는 중요한 개념을 통해 베버가 전하는 또 하나의 사회 경제학의 기본을 흥미롭게 읽어볼 수 있는 저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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