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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읽는 철학 - 꼭 알아야 할 현대철학자 50인
이순성 지음 / 마리서사(마리書舍) / 2018년 11월
평점 :
품절

[철학책]
철학하면 무엇인가 심오하고 복잡하며 머리가 깨질 것만 같이 난해한 이미지를 떠올리게 된다. 사실 틀린 생각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평범한 사람들에게 있어서 철학이라는 학문 자체가 가진 고유의 느낌은 쉽지 않다는 것이고, 철학이 가진 학문적 아우라가 여타 다른 학문들이 가진 느낌과는 차원이 다르기에 접근하는 것이 수월한 학문의 분야는 아니다. 그리고 사실 오늘 하루 벌어 내일 하루를 살아가야 하는 일반적인 사람들에게 있어서 형이상학적이고 무형의 의미를 다루는 철학은 매력이 없을 뿐더러 실제적이지 않기에 관심 밖의 주제이다.
이 책의 저자 이순성 박사는 책의 서문에서 왜 우리가 서양철학에 특별히 현대철학에 관심을 두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현대의 정치가 왜 이런가? 현대인들은 왜 이렇게 생각하고 살아가는가? 현대의 문화는 왜 이렇지? 와 같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우리를 둘러싼 삶의 환경이 가지는 의미를 파악하는 데 있어서 현대철학을 아는 것만큼 더 볼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책은 우리가 학창시절 익히 들어 알고 있는 소크라테스나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같은 고대 희랍의 철학자나 그 외 중세, 근대를 대표하는 철학자들의 이름은 등장하지 않는다. 본서의 포커스는 19세기부터 20세기에 걸쳐 소위 현대의 철학사조를 이끌었고, 또한 이끌고 있는 현대철학과 철학자들을 소개하는 것에 중점을 둔다. 개인적으로 풍문으로 이름을 많이 들어봤던 철학자들이 적지 않게 등장해서 생소한 언어들이 제법 가득한 책을 읽는 내내 반가움으로 다가왔다. 마치 나 혼자 전혀 낯선 어느 모임에 갔는데 그곳에서 동네 친구를 만난 것과 같은 낯설음 속에서의 반가움이랄까!

현상학과 실존주의의 대표격인 19세기 말 독일의 철학자 후설부터 야스퍼스, 하이데거와 같은 실존주의 철학자들을 다루는 1장부터 2장 비판이론의 푸랑크푸르트 학파를 통해서 <자유로부터의 도피>의 저자 에릭 프롬을 만난다. 구조주의와 포스트구조주의를 설명하는 3장을 통해 <슬픈 열대>의 저자 레비스트로스, 현대신화론의 롤랑 바르트, 모든 규정과 틀에 대한 저항과 해체를 선보인 포스트모더니즘, 정치철학의 5장에서는 공동체에서의 정의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 베스트셀러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 마이클 샌델, 분석철학을 설명하는 6장을 통해 그림이론의 비트겐슈타인 그리고 마지막 7장에서는 현대의 가장 큰 화두 가운데 하나인 페미니즘, 환경철학, 생명윤리가 다루어지고 있다.
근대 서구 문명사회는 인간 이성에 대한 무한신뢰의 사고, 사회구조, 유토피아적 세계관에 대한 동경이 한 시대를 주름잡았던 시대 사조이며 일종의 정신적 흐름이었지만 1, 2차 세계대전을 통해 인간이 인두겁을 쓰고 저지를 수 있는 끔찍한 전쟁 범죄들의 민낯을 통해 인간이 어디까지 같은 인간에게 잔인해 질 수 있으며 짐승과 같은 야만의 수준으로 치달을 수 있는지를 여과없이 목격함으로서 인간 이성에 대한 무한한 희망은 산산조각 나버렸고, 이러한 정신적 공항 상태 가운데서 등장한 것이 바로 인간 실존의 문제를 이야기한 실존주의 철학이었다.
우리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에 의한 600만 유대인 대학살을 잘 알고 있다. 당시 나치는 강제수용소로 끌려온 유대인들을 학살해야하는 상황에서 독일군 병사들이 무기를 들지 않은 유대인들을 일방적으로 죽여야하는 이 끔찍한 딜레마 속에 주저하며 망설임을 보이자 한가지 묘책(?)을 강구한다. 그것은 유대인들을 인간으로 보이지 않게끔 만들면 된다는 생각!
수만명의 유대인 수용시설에 화장실을 단 1개 만들어놓고,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는 시간은 고작 10분. 이러한 상황이 되자 다수의 유대인들은 변을 보지 못하는 배변장애에 어려움을 겪었고, 얼마 후 수용소 내부는 화장실을 가지 못하는 사람들의 변과 오물로 넘쳐나는 사태가 벌어진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유대인들은 똥 속에서 마치 돼지와 같은 천한 짐승과 같은 모습으로 변하기 시작했고, 이러한 유대인들에 대해 나치 독일군 장교들은 사병들에게 이제 이들은 보는 바와 같이 인간이 아닌 더럽고 냄새나는 짐승들일 뿐이라고 세뇌시키며 학살의 분위기를 자연스럽게 조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하루에 한컵씩 배급되는 물을 가지고 반은 식수로 반은 세수와 면도를 하기 위한 물로 사용하며 그 오물 가운데서도 자신을 깨끗함과 청결함으로 지켰던 사람들은 이상하게도 생명이 계속 연장되는 일이 생긴다. 그리고 수용소 벽면에는 이러한 글귀가 새겨진다. "살고 싶으면 세수를 하라!"
무엇을 말하는가? 인간 실존의 적나라함을 보여주는 예화이다. 인간이 실재 존재하는 자신의 존재 자체를 망각해버릴 때 인간은 동물로 전락해버린다. 그러나 자신이 인간임을 잊지 않고 끊임없이 존재의 몸부림을 행할 때 인간은 비로소 참된 인간이 될 수 있다. 오늘도 우리는 수 많은 생각과 선택의 순간 속에서 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 선택하고, 선택하며 또 선택하는 삶을 살아간다. 그 선택의 결과를 먹는 것은 우리 자신이다.
철학은 이렇게 우리가 단지 먹고 살기 위해서 발버둥치는 삶의 현실 속에서 우리에게 인간다움이 무엇인지를 깨닫도록 독려하는 매우 귀중한 도구이며 우리의 인간다움의 갈길을 가르쳐주는 이정표이다. 비단 19세기 말부터 20세기까지의 실존주의 철학 뿐 아니라 본서를 통해 독자는 다양한 현대철학의 사조들을 그나마 쉽게 접하고 이해할 수 있다. 책 자체가 20세기 현대철학의 가장 중요한 철학 사조의 핵심과 철학자들을 컴팩트하게 다루고 있기에 철학에 대해 지레 겁먹은 독자라면 본서를 먼저 읽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오죽하면 본서를 소개하는 문구가 '가장 중요한 것만 남긴 가벼운 철학책!' 이겠는가? 물론 내용은 절대 가볍지 않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