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읽는 철학 - 꼭 알아야 할 현대철학자 50인
이순성 지음 / 마리서사(마리書舍)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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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책]

철학하면 무엇인가 심오하고 복잡하며 머리가 깨질 것만 같이 난해한 이미지를 떠올리게 된다. 사실 틀린 생각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평범한 사람들에게 있어서 철학이라는 학문 자체가 가진 고유의 느낌은 쉽지 않다는 것이고, 철학이 가진 학문적 아우라가 여타 다른 학문들이 가진 느낌과는 차원이 다르기에 접근하는 것이 수월한 학문의 분야는 아니다. 그리고 사실 오늘 하루 벌어 내일 하루를 살아가야 하는 일반적인 사람들에게 있어서 형이상학적이고 무형의 의미를 다루는 철학은 매력이 없을 뿐더러 실제적이지 않기에 관심 밖의 주제이다.

이 책의 저자 이순성 박사는 책의 서문에서 왜 우리가 서양철학에 특별히 현대철학에 관심을 두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현대의 정치가 왜 이런가? 현대인들은 왜 이렇게 생각하고 살아가는가? 현대의 문화는 왜 이렇지? 와 같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우리를 둘러싼 삶의 환경이 가지는 의미를 파악하는 데 있어서 현대철학을 아는 것만큼 더 볼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책은 우리가 학창시절 익히 들어 알고 있는 소크라테스나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같은 고대 희랍의 철학자나 그 외 중세, 근대를 대표하는 철학자들의 이름은 등장하지 않는다. 본서의 포커스는 19세기부터 20세기에 걸쳐 소위 현대의 철학사조를 이끌었고, 또한 이끌고 있는 현대철학과 철학자들을 소개하는 것에 중점을 둔다. 개인적으로 풍문으로 이름을 많이 들어봤던 철학자들이 적지 않게 등장해서 생소한 언어들이 제법 가득한 책을 읽는 내내 반가움으로 다가왔다. 마치 나 혼자 전혀 낯선 어느 모임에 갔는데 그곳에서 동네 친구를 만난 것과 같은 낯설음 속에서의 반가움이랄까!

 

 

현상학과 실존주의의 대표격인 19세기 말 독일의 철학자 후설부터 야스퍼스, 하이데거와 같은 실존주의 철학자들을 다루는 1장부터 2장 비판이론의 푸랑크푸르트 학파를 통해서 <자유로부터의 도피>의 저자 에릭 프롬을 만난다. 구조주의와 포스트구조주의를 설명하는 3장을 통해 <슬픈 열대>의 저자 레비스트로스, 현대신화론의 롤랑 바르트, 모든 규정과 틀에 대한 저항과 해체를 선보인 포스트모더니즘, 정치철학의 5장에서는 공동체에서의 정의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 베스트셀러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 마이클 샌델, 분석철학을 설명하는 6장을 통해 그림이론의 비트겐슈타인 그리고 마지막 7장에서는 현대의 가장 큰 화두 가운데 하나인 페미니즘, 환경철학, 생명윤리가 다루어지고 있다.

근대 서구 문명사회는 인간 이성에 대한 무한신뢰의 사고, 사회구조, 유토피아적 세계관에 대한 동경이 한 시대를 주름잡았던 시대 사조이며 일종의 정신적 흐름이었지만 1, 2차 세계대전을 통해 인간이 인두겁을 쓰고 저지를 수 있는 끔찍한 전쟁 범죄들의 민낯을 통해 인간이 어디까지 같은 인간에게 잔인해 질 수 있으며 짐승과 같은 야만의 수준으로 치달을 수 있는지를 여과없이 목격함으로서 인간 이성에 대한 무한한 희망은 산산조각 나버렸고, 이러한 정신적 공항 상태 가운데서 등장한 것이 바로 인간 실존의 문제를 이야기한 실존주의 철학이었다.

우리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에 의한 600만 유대인 대학살을 잘 알고 있다. 당시 나치는 강제수용소로 끌려온 유대인들을 학살해야하는 상황에서 독일군 병사들이 무기를 들지 않은 유대인들을 일방적으로 죽여야하는 이 끔찍한 딜레마 속에 주저하며 망설임을 보이자 한가지 묘책(?)을 강구한다. 그것은 유대인들을 인간으로 보이지 않게끔 만들면 된다는 생각!

수만명의 유대인 수용시설에 화장실을 단 1개 만들어놓고,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는 시간은 고작 10분. 이러한 상황이 되자 다수의 유대인들은 변을 보지 못하는 배변장애에 어려움을 겪었고, 얼마 후 수용소 내부는 화장실을 가지 못하는 사람들의 변과 오물로 넘쳐나는 사태가 벌어진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유대인들은 똥 속에서 마치 돼지와 같은 천한 짐승과 같은 모습으로 변하기 시작했고, 이러한 유대인들에 대해 나치 독일군 장교들은 사병들에게 이제 이들은 보는 바와 같이 인간이 아닌 더럽고 냄새나는 짐승들일 뿐이라고 세뇌시키며 학살의 분위기를 자연스럽게 조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하루에 한컵씩 배급되는 물을 가지고 반은 식수로 반은 세수와 면도를 하기 위한 물로 사용하며 그 오물 가운데서도 자신을 깨끗함과 청결함으로 지켰던 사람들은 이상하게도 생명이 계속 연장되는 일이 생긴다. 그리고 수용소 벽면에는 이러한 글귀가 새겨진다. "살고 싶으면 세수를 하라!"

무엇을 말하는가? 인간 실존의 적나라함을 보여주는 예화이다. 인간이 실재 존재하는 자신의 존재 자체를 망각해버릴 때 인간은 동물로 전락해버린다. 그러나 자신이 인간임을 잊지 않고 끊임없이 존재의 몸부림을 행할 때 인간은 비로소 참된 인간이 될 수 있다. 오늘도 우리는 수 많은 생각과 선택의 순간 속에서 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 선택하고, 선택하며 또 선택하는 삶을 살아간다. 그 선택의 결과를 먹는 것은 우리 자신이다.

철학은 이렇게 우리가 단지 먹고 살기 위해서 발버둥치는 삶의 현실 속에서 우리에게 인간다움이 무엇인지를 깨닫도록 독려하는 매우 귀중한 도구이며 우리의 인간다움의 갈길을 가르쳐주는 이정표이다. 비단 19세기 말부터 20세기까지의 실존주의 철학 뿐 아니라 본서를 통해 독자는 다양한 현대철학의 사조들을 그나마 쉽게 접하고 이해할 수 있다. 책 자체가 20세기 현대철학의 가장 중요한 철학 사조의 핵심과 철학자들을 컴팩트하게 다루고 있기에 철학에 대해 지레 겁먹은 독자라면 본서를 먼저 읽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오죽하면 본서를 소개하는 문구가 '가장 중요한 것만 남긴 가벼운 철학책!' 이겠는가? 물론 내용은 절대 가볍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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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건으로 읽는 세계사 - 세계사에서 포착한 물건들의 파란만장한 연대기 테마로 읽는 역사 1
미야자키 마사카츠 지음, 박현아 옮김 / 현대지성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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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주말마다 아이들을 데리고 가족과 함께 장을 보기위해 <트0이0스>라는 대형 창고형 매장에 가곤 한다. 다들 많이 이용하고 있는 <코0트0>와 같은 개념의 대형 쇼핑매장인데 갈때마다 매장 안에 다양한 종류와 수 많은 물량의 물건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것을 보며 "와! 이 많은 물건들이 사람들에게 모두 다 팔려나가는 거겠지?"라고 내심 놀라움을 표현한다. 그러나 정작 셀 수 없이 많은 먹거리와 매대를 가득 채운 각종 생활 용품들의 진열된 모습을 보며 저 물건이 어떻게 탄생했고, 어떻게 지금의 우리가 먹게 되었으며 사용하게 되었는가에 대한 깊이 있는 생각은 한번도 해본적이 없기에 본서 <물건으로 읽는 세계사>라는 책 제목은 나의 독서욕을 제대로 자극했다.

저자는 책을 통해 인류 문명의 탄생 시점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인류 역사와 그 궤를 같이하며 탄생한 기념비적인 37개 유무형의 물건에 대한 소위 사물 바이오그래피를 작성한다. 인류 문명의 발원지인 4대강 유역을 배경으로 탄생한 수로와 제방, 문자, 도장, 달력, 도로 등은 도시의 출현과 복잡한 사회의 커뮤니케이션 발달, 사회의 질서유지 등의 필요를 충족시켰다. 이후 유목민들의 주무대였던 대초원의 시대를 통해 동서 양대 문명의 교류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는데 대초원 유목민들에게 가장 중요했던 아이템은 단연 사막에서 그들의 주요 교통수단으로 사용되었던 단봉낙타의 출현이었다. 또한 화약을 통해 전쟁술의 비약적 발전이 이루어졌고, 말을 타는 유목민들에게 기능적인 장신구였던 벨트와 의복인 바지의 탄생 스토리 또한 흥미롭다. 더불어 이슬람 지역으로부터의 커피와 위스키의 유입은 유럽의 기호, 음료 문화에 역사적 변화를 가져온 이야기도 처음 듣게 되는 흥미로운 사실이다.

그밖에 대항해 시대와 산업혁명의 시대, 그리고 대량소비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인류 문명과 뗄래야 뗄 수 없는 매우 깊은 관계 속에서 탄생한 수 많은 물건들의 탄생배경과 비화는 독자로 하여금 책을 읽는 재미 속으로 빠져들게 만드는 힘이 있다. 특별히 나는 대항해 시대의 설탕과 산업시대의 금에 관한 내용을 매우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자본주의 경제를 일으킨 조미료로 설탕을 지목하는 저자의 설명을 통해 단맛의 뒤에 숨겨진 뼈아픈 역사를 발견하게 된다. 설탕의 원료가 되는 사탕수수를 재배하기 위해서 수 많은 노동력이 필요했고, 서구 열강은 흑인 노예들을 자신들의 탐욕을 채우기 위한 수단으로 선택한다. 지배와 피지배의 착취 구조 탄생의 중심에 우리가 즐겨 먹는 기호식품에 빠지지 않고 들어가는 설탕이 있다는 사실은 참으로 놀랄만한 이야기이다.

또한 산업시대 금에 대한 이야기 또한 눈길을 멈추게 한다. 어린 시절 경제에 대한 이해가 없을 때 돈은 무슨 기준으로 만들어지고, 유통되는가에 대한 의문이 항상 있었다. 나이를 먹고 금의 가치를 배우며 어린 시절 가졌던 그 질문의 답을 찾았으나 항상 먹을 수도 없는 일종의 광석인 금이 전 세계의 통화와 경제의 기준이 된다는 금본위제를 생각해내고 그것을 사회의 경제적 약속으로 삼게 된 발상은 정말 기발하다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흙이나 돌과같이 아무렇게나 굴러다니고 얻을 수 있는 것은 돈의 가치가 없는 것이며 오직 찾기 어렵고 희소가치를 지닌 무엇인가가 필요했는데 그게 바로 금이었다는 사실.

37가지 인류 역사 속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 물건들의 탄생 비화가 소개되고 있지만 여기에서 언급되지 않은 또 다른 유무형의 물건들이 얼마나 많겠는가! 오늘도 우리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자명종 시계의 알람을 끄고, 스마트폰으로 밤새 나에게 온 메시지와 SNS의 알림을 확인한다. 각종 요리도구를 이용하여 음식을 만들어 아침식사를 하고, 수도꼭지를 틀고 세수를 하며 치약과 칫솔을 이용하여 양치질을 하고, 전기 면도기를 사용해 말끔하게 면도를 한 후 향긋한 스킨 로션을 피부에 아낌없이 도포한 후 준비된 셔츠와 바지 또는 치마를 입고 외투를 걸친 후 구두 또는 운동화를 신고 현관문을 열고 나서 자동차와 지하철 등을 이용하여 각자의 일터와 학교, 삶의 현장 속으로 흩어진다.

이렇듯 우리의 일상 속에서 알게 모르게 너무나 밀접히 연관된 수 많은 물건들에 둘러싸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있어서 유무형의 물건들이 가지는 가장 큰 특징은 바로 인간의 필요에 의해서 탄생되었다는 단 한가지의 공통적인 탄생 배경을 가진다는 점이다. 더불어 각 시대마다 새로운 물건들의 발명과 탄생을 통해 인류의 문화는 급격한 변화를 겪기도 했고, 기존 사회 체계의 획기적인 변혁과 발전을 이루기도 하며 새로운 역사의 한페이지를 끊임없이 기록하게 된다. 생기 없는 유무형의 물건들은 인류의 필요에 의해서 역사의 무대 정면에 등장했고, 간혹 그 필요가 사그라들거나 대체 물건의 발명등에 의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기를 반복했지만 결국 인류 역사라는 나무에 문명의 발전과 성장이라는 생명력있는 열매를 맺는 중요한 토양이 되었다는 사실 하나 만큼은 우리가 주목해보아야 할 대목이다.

210여페이지 짧막한 책의 마지막 덮개를 덮으며 내 주변에 흩어져 있는 물건 하나하나가 허투로 보이지 않는 작은 경험을 하게 된다. 당장 지금 내 앞에 놓여져 있는 <모00 153 검정 볼펜>이 나를 째려보고 있다. "내가 얼마나 깊은 역사와 스토리를 가지고 있는지 아느냐고?" 인류의 편의와 좀 더 안락하고 인간다운 삶을 위해서 탄생된 수 많은 유무형의 생명없는 물건들에게 깊은 경의를 표하는 오버액션을 취해본다. "고맙다! 너희들이 있어서 오늘도 내가 인간으로서 누릴 수 있는 당연하지만 당연하지 않았을 수도 있을 사치스러운 편의를 누리고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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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한 번쯤 다른그림찾기
큰그림 편집부 지음 / 도서출판 큰그림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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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어린이 만화 잡지의 대명사 보물섬이나 그외 학생 잡지 뒷편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놀이들 가운데 하나가 바로 숨은 그림찾기, 미로찾기 그리고 다른그림찾기 등이였다. 그중에서도 다른그림찾기는 후에 70~80세대들의 영원한 영혼의 고향, 꿈과 추억이 깃든 동네 오락실에서 다른 그림찾기 아이템으로 등장하게 되는데 보통 일본 계열의 소프트웨어가 대표적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재미있는 배경음악이 흘러나오고 옆에서는 초조하게 시간이 흘러가는데 눈을 아무리 크게 뜨고 쳐다보아도 양분된 두개의 동일하지만 어딘가 동일하지 않은 화면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다른 부분을 찾기 위해 진땀을 흘렸던 아련한 기억이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이런 재미있는 다른그림찾기 책 한권을 만났다. <누구나 한 번쯤 다른그림찾기>라는 제목에서 풍겨지듯이 다른그림찾기 또는 틀린그림찾기는 누구나 한 번쯤은 해보았을 게임이라는 뉘앙스가 물씬 풍기지 않는가?

매우 기대되는 마음을 가지고 책이 도착하기만을 기다렸고, 퇴근하여 책을 받아 둔 순간 벌써 우리집 7살 1호는 혼자서 한 두개의 미션을 클리어한 상태였다. 녀석! 제법인대! 역시 어릴적 동네 형들과 함께 88오락실에서 단련된 아빠의 유전자를 그대로 물려받았군!이라고 생각하며 오랜만에 아이와 즐거운 시간을 갖을 수 있었다.

책을 펼치는 순간 독자는 각 장마다 상하로 양분되어 있는 정말 똑같지만 어딘가 똑같지 않을 다양한 컨셉의 그림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각 미션마다 페이지 아래에는 해당되는 미션의 난이도, 완수해야 할 시간, 다른그림의 갯수가 적혀있고, 책의 맨 뒷쪽에는 역시 동아전과, 표준전과와 같이 모범답안이 친절하게 수록되어 있기에 독자는 재미있게 미션을 수행하고 해답을 맞춰볼 수 있다.

 

 

상기 사진은 우리집 1호와 내가 직접 미션을 클리어한 장면이다. 주방 곳곳에 숨어있는 다른그림을 누가 더 빨리 찾는지 시합을 했는데 정말 눈을 크게 뜨고 찾아야지만 찾을 수 있는 것도 있고, 그냥 스쳐 지나가며 찾을 수 있는 부분도 있기에 크게 긴장하지 않아도 된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서로 더 많이 찾겠다는 열심이 급기야는 과열 양상으로 치달아서 책을 혼자 독점하다시피하여 뒷편의 해답을 대놓고 열어보는 1호의 반칙성 플레이를 보며 김이 빠지기도 했지만 어느새 어린 시절 산수 문제를 풀다가 막히면 제 풀에 못이겨 뒷편의 모범답안을 흘낏 들쳐보았던 나의 어린 시절이 떠올라 실소를 감추지 못한다. 어떻게 내 새끼 아니랄까봐 그런 것까지 닮았냐!

아무튼 TV와 영상매체에 길들여진 요즘 세대의 아이들에게 본서는 이미 오락실의 게임으로도 등장했지만 책으로서의 아날로그적 감성을 깨어주는데 안성맞춤이다. 또 한가지 책이 가진 장점은 고도의 집중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는 것. 물론 우리집 1호처럼 진득하게 끝까지 남은 한개의 다른그림을 찾기 위해서 인내력과 집중력을 발휘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어디 이 세상 모든 아이들이 우리집 1호와 같겠는가? 써놓고 보니 내 새끼 디스구나!

부쩍 일찍 찾아온 것만 같은 추운 겨울밤, 다른그림찾기 워크북 한권으로 아이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면야 그것이 집중력 향상에 도움이 되든 그렇지 않든 상관없다. 단지 워크북 한권을 통한 가족의 행복이라는 더 큰 보상으로 족하기에 그렇다. 시간 안에 다 못찾아도 되고 상대방보다 좀 못찾으면 어떻고, 중간에 해답을 보면 어떠랴! 살아가는 데에 아무 지장 없다. 동아전과, 표준전과 해답을 수시로 들춰보며 88오락실에서 저녁 늦게까지 갤러그와 너구리 오락에 빠져있다가 엄마에게 뒷덜미 잡혀 끌려갔던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지금 잘 살고 있는 내 자신이 산 증인이다. 오늘 저녁에는 아이와 함께 나머지 몇장의 미션이나 완료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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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백질의 일생 - 탄생에서 죽음까지, 생명 활동의 무대에서 펼쳐지는 은밀하고 역동적인 드라마
나가타 가즈히로 지음, 위정훈 옮김, 강석기 감수 / 파피에(딱정벌레)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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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들어 아침마다 일어나서 나도 모르게 습관적인 행동 하나를 하곤한다. 욕실에 들어가 거울을 빤히 쳐다보며 얼굴의 모공과 주름을 자세히 들여다보기도 하고, 머리를 쓸어 넘기며 부쩍 늘어난 흰머리를 제모 집게를 이용하여 몇가닥씩 뽑아내는 소소한 나만의 작업(?)시간을 보내고는 하는데 이럴 때마다 머리속에 떠오르는 생각은 "아! 나이를 먹으니 나의 세포들이 점차 죽어가는구나!" 라는 부인할 수 없는 현실에 대한 자각이다. 영원히 늙지 않고 생기발랄한 어린이의 모습으로 살았다는 동화 속 피터팬이나 죽지 않고 영생을 꿈꾸며 불로장생의 길을 찾았던 그 옛날 중국 진나라의 시황제가 있었지만 결국 그들은 모두 한낱 동화 속의 주인공이었으며 오래 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죽음을 피할 수 없었던 연약한 인간에 불과했다.

이러한 가운데 일본 세포 생리학의 권위자인 '나가타 가즈히로' 교수의 책 <단백질의 일생>을 접하게 된다. 인간의 몸은 약 60조개라는 믿기지 않는 숫자의 세포로 이루어져있다. 그리고 이 세포는 단백질이라는 매우 중요한 구성요소를 갖는다. 이 책은 이렇게 우리 몸의 세포를 이루는 단백질의 탄생, 성장, 수송, 죽음이라는 마치 인간의 일생과 비교되는 단백질의 활동 사이클을 기록한다. 중고교 시절 생물시간에 잠시 공부했던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있어서 세포, 핵, 소포체, 리소좀, 리보솜, 미토콘드리아 등의 용어는 크게 낯설지 않다. 그러나 조금만 깊이 들어가면(사실 깊이 들어가는 차원도 아니겠지만)세포, 단백질의 활동과 작용에 대해서 자세하게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은 아마 드물것이다.

단백질은 개체의 생명 유지를 위해서 에너지를 전달하고 질병을 예방하는 등의 우리 몸에 없어서는 안될 매우 중요한 역할을 감당한다. 반면 단백질의 이상 축적은 알츠하이머나 한때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광우병과 같은 몹쓸 질환 발생의 원인이 된다고도 하니 단백질의 이중적인 모습 또한 보게된다. 그러나 책을 읽다보면 단백질의 부정적인 영향보다는 단백질이 우리 몸에 기여하는 순기능적 요소가 더 많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특별히 나는 본서를 통해 단백질에 대한 2가지의 인상 깊은 내용을 읽을 수 있었다. 첫번째는 '분자 샤프롱'에 관한 내용이다. 샤프롱이라는 말은 프랑스어로 모자를 뜻하는 '샤포'에서 유래했는데 사교계에 데뷔하는 어린 아가씨를 무도회장에 데려다주고 대기실에서 기다리는 여성이 샤포를 쓰고 있었다는 데서 그 명칭을 가져왔다. 다른 단백질이 변성되지 않고 올바로 성장하여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분자 샤프롱이라는 단백질이 그 옆에서 보호자의 역할을 한다. 자신이 보호한 단백질이 건강하게 성장하게 되면 분자 샤프롱은 조용히 떨어져 나감으로써 자신의 소임을 완수하고 무대 뒷편으로 조용히 사라진다. 
마치 희랍신화에 나오는 멘토르가 자신의 친구 오디세우스의 아들을 후견인과 같이 보호하고 가르침으로써 멘토가 되어준 것이나 헬라시대 주인의 아들이 성장할 때까지 곁에서 가르치고, 보호하며 학교에 데려다주는 등의 일을 감당했던 노예로서의 몽학 선생을 떠올리게 된다.

우리 몸을 이루는 세포 안에서 벌어지는 작은 생명 활동 속에서 깊은 감동을 받게 된다. 다른 세포와 단백질들이 건강하게 자라서 자신의 제 기능을 올바로 감당할 수 있도록 도움으로써 개체 전체의 생명과 건강 유지를 위해 기꺼이 조연의 역할을 마다하지 않고 수행하는 분자 샤프롱이라는 작은 단백질의 헌신이 귀함을 느낀다. 자신만이 사람들의 모든 관심과 스포트 라이트를 받으려고 미친듯이 열망하기에 남을 옆에서 조용히 서포트하고, 다른 이들의 성공을 위해 아낌없이 자신을 내어주는 일의 가치가 퇴색되어져 가는 요즘 세대의 시대상이 떠올라 씁쓸함을 감출 수 없다.

두번째로는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읽게 된 세포의 죽음에 관한 내용이다. 세포의 죽음에는 고온, 독물, 영양부족, 외부로부터의 충격 등으로 세포막이 손상되어 세포가 죽는 이른바 괴사라고 불리는 네크로시스와 세포의 생리적인 조건하에서 세포가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기에 세포의 자살이라고 불리는 아포토시스가 있다. 네크로시스는 강제적인 타의의 의한 죽음이지만 나의 눈길을 끌었던 점은 바로 세포가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세포의 자살, 즉 아포토시스에 관한 내용이다.

책에는 자세히 설명되어지지 않았지만 얼마 전 존경하는 목사님의 설교를 통해 동일한 내용을 접하고 깊은 감동에 빠진 적이 있다. 세포의 죽음은 그냥 단순한 죽음이 아니라 개체를 유지하기 위한 피할 수 없는 과정 중의 하나이다. 기능을 다한 세포가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고 이 세포가 죽을 때 ATP라는 에너지를 발생하게 되는데 이 에너지는 주변의 다른 세포들이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일에 사용되어진다. 즉, 내가 죽어서 다른 주변의 세포들이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마지막 숭고한 사명을 다하고 세포는 자신의 최후를 맞이한다는 사실에 깊이 전율했다.

그러나 한가지 더 재미있는 사실은 세포 중에서도 자신의 죽음을 끝까지 거부하고 살아남기 위해서 다른 세포들을 공격하여 영양분을 빼앗고 추할 정도로 발악을 하며 몸부림치는 세포들이 존재하는 데 이러한 세포들이 바로 암세포들이다. 내가 죽기 싫어서 다른 주변의 세포들을 공격하여 마침내 비대한 몸짓으로 개체 전체를 죽음으로 내모는 지독한 이기주의와 끔찍한 탐욕으로 점철된 세포들의 모습을 보며 또 다시 내 주변의 이웃들의 삶은 아랑곳하지 않고, 오직 나와 내 가족만 잘 먹고 잘 살면 된다 생각하며 이웃들의 눈에서 피눈물 나게 만드는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며 떳떳하게 살아가는 연일 매스컴을 뜨겁게 달구는 낯짝 두꺼운 쓰레기같은 잉여 인간들의 모습이 오묘하게 오버랩된다.

몇주 전 천문학 관련 도서를 두 권 읽은 적이 있다. 인간의 제한된 언어로는 표현할 수 없는 광대하고 광막한 우주의 스케일에 숨이 막힐 것만 같은 책이 주는 카타르시스를 경함한 적이 있는데 본서의 저자는 책의 서두에서 인간의 몸을 작은 우주 즉, 마이크로 코스모스라고 표현한다. 정확한 표현인 것 같다. 작은 우주라 불리는 인간의 몸을 구성하는 60조개의 상상할 수 없는 세포와 그 세포를 구성하는 단백질의 신묘막측한 일생을 보고 있노라면 다시 한 번 조물주의 위대함을 겸손하게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저자는 세포 생물학과 생리학에서 보여지는 세포, 단백질의 기능과 역할, 활동의 모습을 우리 인간의 실제적인 삶에 적용하고 접목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고 밝힌다. 인정한다. 하지만 책을 통해 개체의 생명 활동 어느 하나에도 관여하지 않는 부분이 없는 단백질의 일생은 분명 우리 일상을 돌아볼 수 있게 만드는 가르침을 내포한다는 점에 대해서 만큼은 독자 스스로가 판단할 몫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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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와 고갱 - 고독한 영혼의 화가들 아티스트 커플
김광우 지음 / 미술문화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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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색 바탕 하늘에 정체를 알 수 없는 노란색 회오리와 같은 모양들이 캔버스를 뒤덮고, 한쪽 곁에는 이름모를 검은 색 물체가 마치 불꽃처럼 치솟아 있는 그림을 접하고서는 그 묘한 느낌에 한동안 그림을 뚫어지게 쳐다본 적이 있다. 잠시 후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것은 19세기 네덜란드의 유명한 화가 '빈센트 반 고흐'가 그린 <별이 빛나는 밤>이라는 작품이었다. 우리나라로 치면 소주와 같이 당시 프랑스의 서민주(酒)였던 압생트를 끼고 살았던 반 고흐가 압생트 중독에 의해 물체가 노랗게 보이는 환각증세를 보이며 그린 것이기에 별이 마치 노란색 회오리바람과 같이 표현되었다고 하는 설명을 듣고 반 고흐의 다소 기인적인 행보에 관심이 쏠렸다. 그러면서 동시에 항상 반 고흐의 이야기에서 빼놓을 수 없이 짝궁과 같이 등장하는 우리에게 너무나 잘 알려진 또 한명의 19세기 프랑스의 화가 '폴 고갱'의 삶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었던 적이 있다.

반 고흐, 폴 고갱 19세기를 살다간 비운의 천재 화가들, 그리고 그들이 남긴 유명한 작품들. 단지 이 문장하나로 그들의 모든 것을 표현했다는 생각은 한 시대를 풍미했고, 그들이 근대 미술계에 남긴 크나큰 영향력을 감안할 때 매우 무지하고 제한적인 설명이다. 본서는 '아티스트 커플'이라는 기획으로 동시대를 살다간 예술가들 가운데 삶과 예술적인 부분에서 서로에게 크고 작은 유무형의 영향을 끼치면서 때로는 친구와 같이 또 때로는 선의의 경쟁자로서 크나큰 예술사적 족적을 남긴 위대한 예술가 두 사람을 밴딩하여 그들의 삶과 예술혼, 그들이 남긴 발자취를 함께 따라가 볼 수 있도록 집필된 매우 흥미로운 저작이다.

빈센트 반 고흐는 1853년 네덜란드의 브라반트 지방의 어느 작은 마을,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모두 개신교 목회자였던 가정에서 태어났다. 가업처럼 자연스럽게 자신 또한 목회자의 길을 걷기를 소원했지만 학문적 능력의 미달로 신학대학에 갈 수 없었고, 그 이후 복음학교를 통해 전도사로서 복음전도자의 삶을 살아가게 된다. 벨기에 탄광촌에서 위험하고 열악한 상황에 노출되어 살아가는 가난한 광부들의 삶을 그들과 부대끼며 옆에서 직접 목격한 그 시간은 이후 그의 화가로서의 삶의 근본적인 정체성을 형성한 계기가 된 경험으로 다가온다. 자신보다 앞서 살다 간 화란의 유명한 화가 렘브란트의 성화들을 보며 쳇바퀴 돌듯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는 처절한 가난의 굴레 속에서 한줄기 희망도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목회자가 아닌 캔버스의 화폭을 통해 복음의 전달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라는 생각은 반 고흐를 화가의 길로 접어들게 했다. 

고흐보다 5년 이른 1848년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난 폴 고갱은 해군에서의 군생활과 이후 주식중개인이라는 특이한 이력을 가진다. 1882년 파리의 주식시장이 붕괴되면서 고갱은 주식중개인으로서의 삶을 청산하고 전업 화가로서의 길을 선택한다. 본서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은 고갱이 전업 화가로서의 길을 선택하게 된 결심에는 "이번에 전업 화가가 되지 않으면 더 이상 기회가 오지 않을 것 같다" 는 그 자신의 굳은 결의가 깔려있다.

이후 자신들만의 작품 세계를 구축하며 다양한 작품들을 화폭에 담지만 당시 유럽의 화단은 이들의 그림에 대해 별 관심이 없었고, 이들의 화풍을 썩 반가워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그림을 그려서 그림을 팔아 먹고 살아가야 하는 전업 화가들에게 있어서 그림이 팔리지 않는다는 사실은 곧 생계의 곤란으로 이어짐이 자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끔찍한 가난보다 이 숨겨진 천재 화가들을 괴롭힌 더 잔인하고 고통스러웠던 사실은 그들의 작품과 작품 세계가 당시 사람들에게 철저히 소외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말할 수 없는 외로움과 거절감이었고, 그것은 곧 그들의 존재적 고독을 부추겼다.

비슷한 시기에 태어나서 비슷한 삶의 행태를 가졌지만 고흐와 고갱은 전혀 다른 삶의 색깔을 가진다. 반 고흐를 볼 때 독자는 캔버스를 통해 지독한 가난에서 신음하는 사회 밑바닥 계층의 사람들을 향한 고흐의 끝없는 연민이 <감자먹는 사람들>과 같은 작품으로 표현되어짐을 발견하게 된다. 그렇기에 반 고흐는 마치 붓을 든 수도사로서 그의 작품 하나하나에는 구도자의 농익은 메시지가 역력하다.

반면 폴 고갱은 자신의 작품 세계가 문명화 된 유럽 화단에서 받아들여지지 않고, 인정받지 못함에 대한 분노를 안고 남태평양의 타히티섬으로 태곳적 향기를 찾아 떠난다. 그곳에서 그는 가공되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원시 자연의 피사체에 대한 탐닉을 캔버스에 적나라하게 풀어낸다. 마치 자신의 예술가적 역량을 몰라주는 유럽인들에 대한 반항의 분출과 같이 말이다. 그렇기에 폴 고갱은 제도권과 문명 사회에 대한 강력한 도전을 감행하는 붓을 든 투사와 같은 이미지가 강하다.

반 고흐와 폴 고갱은 생전에 프랑스 아를에서 잠시나마 함께 기거하며 작품 활동을 함께하는 역사적인 조우의 시간을 갖는다. 그러나 두 사람은 작품 세계에 대한 서로 상반된 견해로 인해 사사건건 논쟁과 갈등을 이어갔고, 마치 물과 기름처럼 함께 융화될 수 없는 그런 애증의 관계 가운데서 마침내 고갱이 고흐를 떠나며 세기의 만남은 이렇게 막을 내린다. 그리고 미술의 문외한이 사람들도 잘 알다시피 이 때 고흐는 고갱이 자신을 떠난다는 사실에 대한 불안증세로 말미암아 자신의 귓볼을 자르는 엽기적 기행을 보인다.

고독한 영혼의 화가들이라는 책의 부제에서 느껴지듯이 독자는 본서를 통해 고흐와 고갱이라는 한 시대를 살다간 위대한 천재 화가들의 삶과 그들의 작품 세계, 예술혼을 느낄 수 있다. 당시 대중은 그들의 작품을 이해할 수 없었고, 주류 화단에서는 그들의 작품이 환영받지 못했지만 고흐와 고갱이 죽은 후 이들의 작품과 화풍은 후기 인상주의로 대표되어지는 미술사에 한 획을 그으며 이제는 값을 매길 수 없는 천문학적인 액수의 작품들로 평가되어지고 있다.

사람들에게 배척되어지고, 무관심 속에 소외되며 평생 끔찍한 가난과 지독한 외로움으로 점철된 자신들의 그러한 비참한 삶을 새하얀 캔버스 화폭 하나에 오롯히 쏟아내었던 두 천재 화가들의 삶의 민낯을 보며 깊은 상념에 젖는다. 물과 불처럼 전혀 다른 색깔의 인물됨을 가진 고흐와 고갱이었지만 본서를 주의깊게 정독하며 마지막 페이지를 덮은 독자라면 그들에게 유일한 공통점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이들의 캔버스에서만 묻어나는 독특한 체취로서 다름아닌 오늘도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억척스럽게 살아내는 평범한 사람들의 냄새이다. 고흐에게는 그것이 흙을 먹고 살아가는 소시민들의 삶으로 표현되어졌고, 고갱에게는 때묻지 않은 타이티 원주민들의 원시적 몸짓으로 표현되어졌는데 대상의 차이만 있을 뿐 그 의미에 있어서는 별반 다름이 없다.

화가들은 그가 죽어야지만 작품의 가치가 올라간다는 속설을 접한 적이 있다. 동시대를 살다간 고독한 영혼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와 폴 고갱이라는 이 위대하고 천재적인 그러나 사람 냄새 물씬 풍기는 이들에게 있어서만큼은 이러한 속설이 한낱 얄팍한 상술어린 이야기일 뿐이다. 왜냐하면 이들의 작품은 결코 값을 매길 수 없는 즉, 가치 평가를 불허하는 영혼 그 자체이기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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