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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건으로 읽는 세계사 - 세계사에서 포착한 물건들의 파란만장한 연대기 ㅣ 테마로 읽는 역사 1
미야자키 마사카츠 지음, 박현아 옮김 / 현대지성 / 2018년 12월
평점 :
절판

가끔 주말마다 아이들을 데리고 가족과 함께 장을 보기위해 <트0이0스>라는 대형 창고형 매장에 가곤 한다. 다들 많이 이용하고 있는 <코0트0>와 같은 개념의 대형 쇼핑매장인데 갈때마다 매장 안에 다양한 종류와 수 많은 물량의 물건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것을 보며 "와! 이 많은 물건들이 사람들에게 모두 다 팔려나가는 거겠지?"라고 내심 놀라움을 표현한다. 그러나 정작 셀 수 없이 많은 먹거리와 매대를 가득 채운 각종 생활 용품들의 진열된 모습을 보며 저 물건이 어떻게 탄생했고, 어떻게 지금의 우리가 먹게 되었으며 사용하게 되었는가에 대한 깊이 있는 생각은 한번도 해본적이 없기에 본서 <물건으로 읽는 세계사>라는 책 제목은 나의 독서욕을 제대로 자극했다.
저자는 책을 통해 인류 문명의 탄생 시점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인류 역사와 그 궤를 같이하며 탄생한 기념비적인 37개 유무형의 물건에 대한 소위 사물 바이오그래피를 작성한다. 인류 문명의 발원지인 4대강 유역을 배경으로 탄생한 수로와 제방, 문자, 도장, 달력, 도로 등은 도시의 출현과 복잡한 사회의 커뮤니케이션 발달, 사회의 질서유지 등의 필요를 충족시켰다. 이후 유목민들의 주무대였던 대초원의 시대를 통해 동서 양대 문명의 교류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는데 대초원 유목민들에게 가장 중요했던 아이템은 단연 사막에서 그들의 주요 교통수단으로 사용되었던 단봉낙타의 출현이었다. 또한 화약을 통해 전쟁술의 비약적 발전이 이루어졌고, 말을 타는 유목민들에게 기능적인 장신구였던 벨트와 의복인 바지의 탄생 스토리 또한 흥미롭다. 더불어 이슬람 지역으로부터의 커피와 위스키의 유입은 유럽의 기호, 음료 문화에 역사적 변화를 가져온 이야기도 처음 듣게 되는 흥미로운 사실이다.
그밖에 대항해 시대와 산업혁명의 시대, 그리고 대량소비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인류 문명과 뗄래야 뗄 수 없는 매우 깊은 관계 속에서 탄생한 수 많은 물건들의 탄생배경과 비화는 독자로 하여금 책을 읽는 재미 속으로 빠져들게 만드는 힘이 있다. 특별히 나는 대항해 시대의 설탕과 산업시대의 금에 관한 내용을 매우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자본주의 경제를 일으킨 조미료로 설탕을 지목하는 저자의 설명을 통해 단맛의 뒤에 숨겨진 뼈아픈 역사를 발견하게 된다. 설탕의 원료가 되는 사탕수수를 재배하기 위해서 수 많은 노동력이 필요했고, 서구 열강은 흑인 노예들을 자신들의 탐욕을 채우기 위한 수단으로 선택한다. 지배와 피지배의 착취 구조 탄생의 중심에 우리가 즐겨 먹는 기호식품에 빠지지 않고 들어가는 설탕이 있다는 사실은 참으로 놀랄만한 이야기이다.
또한 산업시대 금에 대한 이야기 또한 눈길을 멈추게 한다. 어린 시절 경제에 대한 이해가 없을 때 돈은 무슨 기준으로 만들어지고, 유통되는가에 대한 의문이 항상 있었다. 나이를 먹고 금의 가치를 배우며 어린 시절 가졌던 그 질문의 답을 찾았으나 항상 먹을 수도 없는 일종의 광석인 금이 전 세계의 통화와 경제의 기준이 된다는 금본위제를 생각해내고 그것을 사회의 경제적 약속으로 삼게 된 발상은 정말 기발하다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흙이나 돌과같이 아무렇게나 굴러다니고 얻을 수 있는 것은 돈의 가치가 없는 것이며 오직 찾기 어렵고 희소가치를 지닌 무엇인가가 필요했는데 그게 바로 금이었다는 사실.
37가지 인류 역사 속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 물건들의 탄생 비화가 소개되고 있지만 여기에서 언급되지 않은 또 다른 유무형의 물건들이 얼마나 많겠는가! 오늘도 우리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자명종 시계의 알람을 끄고, 스마트폰으로 밤새 나에게 온 메시지와 SNS의 알림을 확인한다. 각종 요리도구를 이용하여 음식을 만들어 아침식사를 하고, 수도꼭지를 틀고 세수를 하며 치약과 칫솔을 이용하여 양치질을 하고, 전기 면도기를 사용해 말끔하게 면도를 한 후 향긋한 스킨 로션을 피부에 아낌없이 도포한 후 준비된 셔츠와 바지 또는 치마를 입고 외투를 걸친 후 구두 또는 운동화를 신고 현관문을 열고 나서 자동차와 지하철 등을 이용하여 각자의 일터와 학교, 삶의 현장 속으로 흩어진다.
이렇듯 우리의 일상 속에서 알게 모르게 너무나 밀접히 연관된 수 많은 물건들에 둘러싸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있어서 유무형의 물건들이 가지는 가장 큰 특징은 바로 인간의 필요에 의해서 탄생되었다는 단 한가지의 공통적인 탄생 배경을 가진다는 점이다. 더불어 각 시대마다 새로운 물건들의 발명과 탄생을 통해 인류의 문화는 급격한 변화를 겪기도 했고, 기존 사회 체계의 획기적인 변혁과 발전을 이루기도 하며 새로운 역사의 한페이지를 끊임없이 기록하게 된다. 생기 없는 유무형의 물건들은 인류의 필요에 의해서 역사의 무대 정면에 등장했고, 간혹 그 필요가 사그라들거나 대체 물건의 발명등에 의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기를 반복했지만 결국 인류 역사라는 나무에 문명의 발전과 성장이라는 생명력있는 열매를 맺는 중요한 토양이 되었다는 사실 하나 만큼은 우리가 주목해보아야 할 대목이다.
210여페이지 짧막한 책의 마지막 덮개를 덮으며 내 주변에 흩어져 있는 물건 하나하나가 허투로 보이지 않는 작은 경험을 하게 된다. 당장 지금 내 앞에 놓여져 있는 <모00 153 검정 볼펜>이 나를 째려보고 있다. "내가 얼마나 깊은 역사와 스토리를 가지고 있는지 아느냐고?" 인류의 편의와 좀 더 안락하고 인간다운 삶을 위해서 탄생된 수 많은 유무형의 생명없는 물건들에게 깊은 경의를 표하는 오버액션을 취해본다. "고맙다! 너희들이 있어서 오늘도 내가 인간으로서 누릴 수 있는 당연하지만 당연하지 않았을 수도 있을 사치스러운 편의를 누리고 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