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백질의 일생 - 탄생에서 죽음까지, 생명 활동의 무대에서 펼쳐지는 은밀하고 역동적인 드라마
나가타 가즈히로 지음, 위정훈 옮김, 강석기 감수 / 파피에(딱정벌레) / 2018년 11월
평점 :
일시품절


 

 

근래들어 아침마다 일어나서 나도 모르게 습관적인 행동 하나를 하곤한다. 욕실에 들어가 거울을 빤히 쳐다보며 얼굴의 모공과 주름을 자세히 들여다보기도 하고, 머리를 쓸어 넘기며 부쩍 늘어난 흰머리를 제모 집게를 이용하여 몇가닥씩 뽑아내는 소소한 나만의 작업(?)시간을 보내고는 하는데 이럴 때마다 머리속에 떠오르는 생각은 "아! 나이를 먹으니 나의 세포들이 점차 죽어가는구나!" 라는 부인할 수 없는 현실에 대한 자각이다. 영원히 늙지 않고 생기발랄한 어린이의 모습으로 살았다는 동화 속 피터팬이나 죽지 않고 영생을 꿈꾸며 불로장생의 길을 찾았던 그 옛날 중국 진나라의 시황제가 있었지만 결국 그들은 모두 한낱 동화 속의 주인공이었으며 오래 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죽음을 피할 수 없었던 연약한 인간에 불과했다.

이러한 가운데 일본 세포 생리학의 권위자인 '나가타 가즈히로' 교수의 책 <단백질의 일생>을 접하게 된다. 인간의 몸은 약 60조개라는 믿기지 않는 숫자의 세포로 이루어져있다. 그리고 이 세포는 단백질이라는 매우 중요한 구성요소를 갖는다. 이 책은 이렇게 우리 몸의 세포를 이루는 단백질의 탄생, 성장, 수송, 죽음이라는 마치 인간의 일생과 비교되는 단백질의 활동 사이클을 기록한다. 중고교 시절 생물시간에 잠시 공부했던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있어서 세포, 핵, 소포체, 리소좀, 리보솜, 미토콘드리아 등의 용어는 크게 낯설지 않다. 그러나 조금만 깊이 들어가면(사실 깊이 들어가는 차원도 아니겠지만)세포, 단백질의 활동과 작용에 대해서 자세하게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은 아마 드물것이다.

단백질은 개체의 생명 유지를 위해서 에너지를 전달하고 질병을 예방하는 등의 우리 몸에 없어서는 안될 매우 중요한 역할을 감당한다. 반면 단백질의 이상 축적은 알츠하이머나 한때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광우병과 같은 몹쓸 질환 발생의 원인이 된다고도 하니 단백질의 이중적인 모습 또한 보게된다. 그러나 책을 읽다보면 단백질의 부정적인 영향보다는 단백질이 우리 몸에 기여하는 순기능적 요소가 더 많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특별히 나는 본서를 통해 단백질에 대한 2가지의 인상 깊은 내용을 읽을 수 있었다. 첫번째는 '분자 샤프롱'에 관한 내용이다. 샤프롱이라는 말은 프랑스어로 모자를 뜻하는 '샤포'에서 유래했는데 사교계에 데뷔하는 어린 아가씨를 무도회장에 데려다주고 대기실에서 기다리는 여성이 샤포를 쓰고 있었다는 데서 그 명칭을 가져왔다. 다른 단백질이 변성되지 않고 올바로 성장하여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분자 샤프롱이라는 단백질이 그 옆에서 보호자의 역할을 한다. 자신이 보호한 단백질이 건강하게 성장하게 되면 분자 샤프롱은 조용히 떨어져 나감으로써 자신의 소임을 완수하고 무대 뒷편으로 조용히 사라진다. 
마치 희랍신화에 나오는 멘토르가 자신의 친구 오디세우스의 아들을 후견인과 같이 보호하고 가르침으로써 멘토가 되어준 것이나 헬라시대 주인의 아들이 성장할 때까지 곁에서 가르치고, 보호하며 학교에 데려다주는 등의 일을 감당했던 노예로서의 몽학 선생을 떠올리게 된다.

우리 몸을 이루는 세포 안에서 벌어지는 작은 생명 활동 속에서 깊은 감동을 받게 된다. 다른 세포와 단백질들이 건강하게 자라서 자신의 제 기능을 올바로 감당할 수 있도록 도움으로써 개체 전체의 생명과 건강 유지를 위해 기꺼이 조연의 역할을 마다하지 않고 수행하는 분자 샤프롱이라는 작은 단백질의 헌신이 귀함을 느낀다. 자신만이 사람들의 모든 관심과 스포트 라이트를 받으려고 미친듯이 열망하기에 남을 옆에서 조용히 서포트하고, 다른 이들의 성공을 위해 아낌없이 자신을 내어주는 일의 가치가 퇴색되어져 가는 요즘 세대의 시대상이 떠올라 씁쓸함을 감출 수 없다.

두번째로는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읽게 된 세포의 죽음에 관한 내용이다. 세포의 죽음에는 고온, 독물, 영양부족, 외부로부터의 충격 등으로 세포막이 손상되어 세포가 죽는 이른바 괴사라고 불리는 네크로시스와 세포의 생리적인 조건하에서 세포가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기에 세포의 자살이라고 불리는 아포토시스가 있다. 네크로시스는 강제적인 타의의 의한 죽음이지만 나의 눈길을 끌었던 점은 바로 세포가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세포의 자살, 즉 아포토시스에 관한 내용이다.

책에는 자세히 설명되어지지 않았지만 얼마 전 존경하는 목사님의 설교를 통해 동일한 내용을 접하고 깊은 감동에 빠진 적이 있다. 세포의 죽음은 그냥 단순한 죽음이 아니라 개체를 유지하기 위한 피할 수 없는 과정 중의 하나이다. 기능을 다한 세포가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고 이 세포가 죽을 때 ATP라는 에너지를 발생하게 되는데 이 에너지는 주변의 다른 세포들이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일에 사용되어진다. 즉, 내가 죽어서 다른 주변의 세포들이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마지막 숭고한 사명을 다하고 세포는 자신의 최후를 맞이한다는 사실에 깊이 전율했다.

그러나 한가지 더 재미있는 사실은 세포 중에서도 자신의 죽음을 끝까지 거부하고 살아남기 위해서 다른 세포들을 공격하여 영양분을 빼앗고 추할 정도로 발악을 하며 몸부림치는 세포들이 존재하는 데 이러한 세포들이 바로 암세포들이다. 내가 죽기 싫어서 다른 주변의 세포들을 공격하여 마침내 비대한 몸짓으로 개체 전체를 죽음으로 내모는 지독한 이기주의와 끔찍한 탐욕으로 점철된 세포들의 모습을 보며 또 다시 내 주변의 이웃들의 삶은 아랑곳하지 않고, 오직 나와 내 가족만 잘 먹고 잘 살면 된다 생각하며 이웃들의 눈에서 피눈물 나게 만드는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며 떳떳하게 살아가는 연일 매스컴을 뜨겁게 달구는 낯짝 두꺼운 쓰레기같은 잉여 인간들의 모습이 오묘하게 오버랩된다.

몇주 전 천문학 관련 도서를 두 권 읽은 적이 있다. 인간의 제한된 언어로는 표현할 수 없는 광대하고 광막한 우주의 스케일에 숨이 막힐 것만 같은 책이 주는 카타르시스를 경함한 적이 있는데 본서의 저자는 책의 서두에서 인간의 몸을 작은 우주 즉, 마이크로 코스모스라고 표현한다. 정확한 표현인 것 같다. 작은 우주라 불리는 인간의 몸을 구성하는 60조개의 상상할 수 없는 세포와 그 세포를 구성하는 단백질의 신묘막측한 일생을 보고 있노라면 다시 한 번 조물주의 위대함을 겸손하게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저자는 세포 생물학과 생리학에서 보여지는 세포, 단백질의 기능과 역할, 활동의 모습을 우리 인간의 실제적인 삶에 적용하고 접목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고 밝힌다. 인정한다. 하지만 책을 통해 개체의 생명 활동 어느 하나에도 관여하지 않는 부분이 없는 단백질의 일생은 분명 우리 일상을 돌아볼 수 있게 만드는 가르침을 내포한다는 점에 대해서 만큼은 독자 스스로가 판단할 몫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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