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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위안 - 완역본 ㅣ 현대지성 클래식 2
보에티우스 지음,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18년 6월
평점 :

인생의 깊은 의미를 깨닫고 그 안에서 삶의 진정한 만족과 행복을 찾고자 하는 마음은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있는 본성일 것이다. 그러나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 현대인들은 사실 얼마나 인생의 의미를 탐구하고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성찰하는 시간을 갖고 살아가는가? 이러한 다소 근원적이고 원색적인 물음 앞에서 본서 <철학의 위안>을 만난다. 이제 로마 제국의 운명이 사그러져가는 시대의 끝자락에서 만나게 되는 본서의 저자 '보에티우스'는 로마의 철학자이며 정치가로서 젊은 시절 남부러울 것 없을 정도의 부와 명예, 권력을 맛본 인물이다. 그러나 그러한 그가 정적들에 의해 억울한 누명을 쓰고 유배당하여 이제 감금 상태에서 처형 당할 날만을 기다리며 집필한 책이 바로 본서 <철학의 위안>이다.
우선 본서의 겉표지를 살펴보면 세계 3대 옥중문학이라고 소개되어지고 있다. 기독교의 사도 바울이 쓴 4개의 옥중서신, 청교도 목회자 존 번연의 <천로역정>, 그리고 보에티우스의 본서 <철학의 위안>. 이렇게 옥중문학의 고전으로서 본서는 다른 두 위대한 옥중문학과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한다.
본서는 총 5권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특징적인 것은 유배지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저자가 자신 앞에 나타난 철학의 여신과 주거니 받거니 대화하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집필상의 독특성을 보인다. 또한 1권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에서 항상 산문과 시를 결합하여 저자가 느끼는 삶에 대한 고민과 번뇌 그리고 그에 대한 의인화 된 철학 여신의 답변, 그리고 그 해당 주제에 걸맞는 시로서 구성되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한 특징이다.
누명을 쓴 자신의 억울함에 대한 토로, 운명과 참된 행복, 최고선, 신의 섭리와 인간의 자유의지 등의 내용들이 철학 여신과의 대화를 통해서 깊은 깨달음을 선사한다. 구체적으로 인간의 끝없는 부와 명예, 권력, 쾌락을 탐닉하고 추구하는 성향에 대한 철학 여신의 가르침은 그러한 세속적인 가치들이 인간들에게 있어서는 가장 큰 인생의 목적이며 추구하는 최고선이지만 사실 그것들은 진정한 최고선이라고 볼 수 없고, 진정한 최고의 선은 시간이 지나서 소멸해버리고 마는 부와 명예 권력, 쾌락과 같은 세속적이고 저급한 가치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오직 변함이 없고 다함이 없는 일자(一者), 즉 영원불멸의 신적 존재라는 사실이다.
당대 그리스 로마의 시대 사상을 이끌었던 스토아 철학과 신플라톤주의,아리스토텔레스와 같은 철학 사조들의 영향으로 본서는 매우 종교적이며 사유적임을 볼 수 있다. 인생에서 만나게 되는 모든 굴곡진 삶의 문제들과 얄굿은 운명의 지난한 여정들을 깊이 있게 통찰하며 발견되어진 의문들을 최고선이며 참된 미덕인 신적 존재 앞에서 위로 받고 격려받기를 바라는 메시지가 녹녹히 녹아져있기에 본서는 적지않게 종교적인 색채를 띈다. 그러나 독자들이 특별히 의아하게 여길 이유가 없는 것은 저자인 보에티우스 자신이 독실한 기독교 배경의 가정에서 자라왔다는 사실을 역자의 해제를 통해 발견하게 될 때 본서에 전체적으로 흐르는 종교적 메시지들을 거부감없이 기꺼이 수용해 줄 수 있는 넉넉함을 발휘할 수 있으리라.
그래서 의인화 된 철학 여신과의 대화를 보면 마치 구약 성경 잠언서를 통해 의인화 된 '지혜'를 보는 것과 같고, 악인이 잘되고 의인이 고난받는 것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구절에서는 구약 성경 하박국서를 보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더불어 섭리, 자유의지와 같은 주제들 그리고 본서 곳곳에 묻어나는 위대한 교부 아우구스티누스의 아련한 향기 또한 저자가 어떠한 종교적 배경을 지녔을 지에 대해 독자로 하여금 충분히 추론하게 만드는 데 부족함이 없다.
인생이라는 길면 길고 짧으면 짧은 여정을 지날 때 우리는 얼마나 자주 멈추어서 우리가 가고 있는 길을 돌아보고 앞으로 걸어갈 길을 가늠해보는가? 자식 새끼들 키우며 먹고 살기 바쁘지만 본서에서 말하는 최고선, 최고의 미덕을 지닌 신적 존재 앞에서 내 삶을 반추하며 잘 걸어가고 있는지 질문 한번 던져 본 적은 없는가? 책장을 덮으며 깊은 한숨을 내쉰다. 눈 앞의 문제, 이루고 취해야 할 과업들, 달성해야 할 목표들이 우리에게 진정한 위안과 안식을 가져다 주지 못한다. 미친듯이 우리네 삶을 드라이브해가는 우리를 둘러싼 삶의 정황들과 우리를 한시도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는 삶의 문제더미 가운데서 인생의 참된 가치를 발견하며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진정한 평안과 위로의 근원을 발견하는 것이야말로 얼마나 행복한 일일까?
자신의 걸어 온 인생의 시간들을 반추하며 세속적 가치에 의해 무채색이었던 인생의 시간들을 깊은 철학적 사유를 통해 의미있고 아름다운 색깔들로 덧칠하고 채색하였던 저자, 보에티우스. 그의 이성과 지성은 철학이 선물해 준 말할 수 없이 고귀한 인생의 해답들로 인해 깊이 고양되었고, 그의 사고는 무한히 확장되어 갔다. 그러나 우리가 책을 내려놓으며 소스라치게 놀라는 것은 바로 이와같이 보석과 같은 진실된 가르침과 철학적 사유의 모든 결과물들이 바로 죽음을 담담히 기다리던 사형수의 신분 가운데서 나왔다는 믿기지 않는 사실이다. 처형당할 날을 기다리며 인생을 의미있게 정리했을 저자의 파리하고 수척한 모습이 상상되어졌을 때 필자는 온몸에 소름 돋는 경험을 한다. 신 앞에서 쇠락한 영혼으로 인생의 참된 의미를 발견하고 위안을 얻기 원하는 모든 이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고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