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피터 래빗 전집 (양장 스페셜 에디션)
베아트릭스 포터 지음, 윤후남 옮김 / 현대지성 / 2018년 5월
평점 :
품절
필통, 연필, 공책, 책가방 심지어는 도시락 뚜껑까지 우리의 일상에서 매우 쉽게 찾아 볼 수 있는 캐릭터들 가운데 몇가지를 꼽으라면 단연 미키 마우스, 도널드 덕과 같은 소위 디즈니 사단의 캐릭터 일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월트 디즈니나 픽사 계열의 캐릭터와 더불어 알게 모르게 우리 일상의 물건 속에서 심심찮게 발견하게 되는 캐릭터가 있는데 바로 오늘 리뷰를 통해 소개하는 본서의 주인공 '피터 래빗' 이다.
피터 래빗은 19세기 영국의 여성 화가이며 동시에 작가인 '베아트릭스 포터'의 손에 의해서 탄생된 이름에서도 눈치챌 수 있듯이 토끼를 의인화 한 캐릭터이다. 번역자의 해제를 보면 책과 저자에 관한 소개가 상세하게 나와 있기에 길게 나열할 마음은 없다. 단지 산업혁명으로 인한 급속한 경제성장의 빅토리아 시대는 여성에 대한 차별과 보이지 않는 억압을 통해 당시의 여성들에 대한 정규적인 교육을 허락하지 않는 그러한 사회 분위기를 가졌으며 이러한 상황 속에서 저자인 베아트릭스 포터는 어린 시절부터 가정교사로부터 전문적인 지식이 아닌 여성들이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교양을 위한 교육만을 받으며 성장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그녀는 자신의 주변에 있는 자연과 애완동물들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매우 뛰어난 그림 실력을 가졌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탁월한 미적 감각을 물려받게 된다.
본서는 이렇듯 여성들이 사회에 진출하여 전문적인 지식을 배우고 그 꿈을 펼치기 어려웠던 암울했던 시대 분위기 속에서 탄생했다. 이번에 4편의 미출판작을 포함한 총 27권으로 구성된 <피터 래빗 전집>이 현대지성 출판사를 통해 양장 스페셜 에디션으로 출간된 점은 피터 래빗을 아는 독자들에게 있어서는 매우 의미 깊고 행복한 일이다. 어린이들을 위한 동화라고 볼 수 있지만 결코 어린이들만을 위한 동화라고 단정 지을 수 없는 이유는 본서가 들려주는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상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으며 인간 군상의 민낯을 여과없이 보여주고 있다는 인정하고 싶지 않은 불편한 진실 때문일 것이다.
저자는 짧막한 이야기들 속에 각각의 주인공이 되는 동물들을 등장시킨다. 피터 래빗이라는 파란 재킷을 입은 악동 토끼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1편부터 27편의 이야기들은 별개의 흥미 진진한 스토리를 가지고 진행된다. 그리고 중간 중간 주인공 피터 래빗이 재등장하는 몇편의 이야기들이 함께 수록됨으로서 이 책이 피터 래빗이 주인공임을 상기시킨다. 그러나 전체적인 내용은 결코 연결되거나 이어지지 않으며 단편적이다. 하지만 위에서 기술했듯이 당시의 시대와 100년이 훌쩍 지난 지금의 시대상을 엿볼 수 있는 하나의 주제가 본서의 전체를 관통하고 있음을 어렴풋이 느낄 때 이 책은 단편마다 주인공과 이야기의 주제가 다르지만 책 속에 흐르는 맥락이 줄줄이 사탕처럼 꿰어져서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내는 옴니버스식 구성이라고 말해도 무리가 없다.
우선 이 책을 받아들고 펼쳤을 때 아마 독자들은 두번 놀라게 될 것인데 첫번째로 저자의 아기자기하고 디테일한 그림 솜씨에 놀라고, 두번째는 독자로 하여금 손에서 책을 놓을 수 없게 만들며 동시에 책 속으로 빨아 들이는 듯한 흡입력에 재차 놀라게 될 것이다. 단순한 동화가 아닌 재미와 인간사의 교훈을 동시에 선사하는 본서의 힘과 매력 앞에 순식간에 페이지가 넘어가는 신기한 경험을 한다. 책을 읽으면서 다음 이야기는 어떠한 내용이 펼쳐질 까 궁금해하며 책장을 넘기는 손가락에 침을 묻혀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본서는 바로 이와 같이 독자들로 하여금 독서의 흥분을 자아내게 하는 매력으로 가득차 있다.
사랑스러운 피터 래빗과 그의 친구들, 욕심 많고 교활한 여우, 힘없는 다람쥐들에게 뇌물을 받아먹고 사는 음흉한 올빼미, 약삭빠른 부부 쥐, 능청스러운 악당 오소리 그리고 이들을 능가하는 지구상에서 가장 더럽고 탐욕스러우며 썩은 시궁창 같은 욕망으로 점철된 죄악 덩어리 인간에 이르기까지 독자는 등장하는 모든 캐릭터들이 가지는 개성과 그들의 언행을 통해 인간사의 한 단면을 정직하게 마주해야하는 결코 유쾌하지만은 않은 경험도 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어쩌랴? 이것이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의 세상이고, 저자인 베아트릭스 포터가 살았던 시대였던것을...
아름답고 예쁜 삽화와 흥미진진한 동물들의 모험 이야기, 그리고 그 속에서 독자들에게 깊은 깨달음을 불러 일으키며 들려져오는 진실의 목소리가 코드화 된 반전 매력 가득한 어린이를 위해 쓰여졌지만 어른들을 위한 동화, <피터 래빗 전집>. 오랫만에 만난 또 하나의 귀중한 저작으로서 나의 서가 한자리를 당당하게 차지하게 된 기꺼이 추천해주고 싶은 소장각 충만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