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의 노래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오래 전 주말 저녁 TV로 방영했던 "불멸의 이순신" 이라는 드라마를 본 적이 있다. 그 이후 '명량' 이라는 영화가 제작되어 많은 관객을 불러모았다. 한국인에게있어 모르면 간첩일 정도로 누구나가 다 아는 이순신 장군의 이야기였기에 큰 관심이 없었고, 더군다나 어린시절 위인전으로 충분히 접했던 이야기라서 그런지 드라마가 내게는 별다른 신선함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나는 우연찮게 TV 앞에 앉았다가 보게 된 드라마의 재미에 완전히 함몰되었다. 그러면서 드라마의 원작이 궁금해지기 시작했고 이 드라마가 두 편의 원작을 토대로 제작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이후 사람들이 많이 추천하는 두 편의 원작 중에서 <칼의 노래>를 구입해서 읽었다.

드라마는 감칠맛나는 묘미를 이어가기 위해서 중요한 순간에 끊어버리는 단점을 가진다. 그래서 나의 인내심 없는 성격 덕분에 나는 급기야 원작을 구입해서 읽었다. 책을 붙잡고 읽는 순간 나는 순식간에 책 속으로 빠져들었고 거침없이 읽어갔다. 책의 내용은 드라마의 내용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와 느낌을 가진다. 책은 성웅 이순신 장군의 눈으로 모든 사건과 상황들을 보고 쏟아내는 1인칭 자전적 소설의 구조를 택한다. 그러면서 이순신 장군의 세밀한 심리 묘사와 내적 고뇌의 흔적들을 가감없이 묘사한다. 그렇기에 책을 펼쳐 든 독자는 마치 장군의 곁에서 그의 일거수일투족 모든 것을 지켜보는 것과 같은 생생한 문학적 현장감을 체감할 수 있다.

사실 나는 소설책을 크게 선호하지 않는다. 살아있는 인간의 비릿한 콧김이 서리지 않은 허구적인 것이 싫어서라는 지독한 편견 때문에 그런지 애써 소설이라는 장르를 나의 서가에서 밀쳐낸 지 오래다. 그런데 TV 드라마를 통해 본서를 만난 순간 내가 그토록 고집스럽게 붙들고 있던 편견이 속절없이 무너져 내렸다. 픽션의 요소가 적지 않게 가미되었지만 역사라는 팩트에 기반한 소설이기에 사실성은 물론이거니와 독자를 끌어들이는 그 재미와 마성의 몰입감이 마치 물귀신의 그것과 같다.

무엇보다도 충격적으로 다가왔던 점은 작가인 김훈에 의해 하얀 종이 위에 펼쳐지는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의 현란한 글사위와 수려한 글놀림의 향연이었다. 그의 글은 마치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기암절벽의 장관을 보는 것과 같아 독자로 하여금 숨이 막히게 만드는 저릿함 함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짜릿한 카타르시스 또한 느껴진다. 본서를 향해 한국 문학계에 벼락같이 쏟아진 축복이라고 말하는데 책을 펼쳐든 순간 글을 모르는 내가 보기에도 진정한 수작 중의 수작임을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책 자체가 가지는 아우라가 시쳇말로 장난이 아니다. 더불어 한국인으로 태어나 살면서 우리 글이 이렇게 화려하면서도 담백하며 깊은 느낌의 문자였음을 보여주는 것은 작가가 책을 통해서 독자에게 전해주는 덤이다.

 

나로 하여금 작가의 이력을 검색하게 만든 책!

작가 김훈...<칼의 노래> 속에서 보여지는 그의 글은 원색적이고 감각적이다. 400여년 전 전쟁의 참혹함을 묘사한 문장들은 작가의 손끝에서 묻어 나오는 마치 기예와 같은 글놀림으로 인해서 피비린내와 물비린내가 진동한다. 그렇기에 그의 글은 끈적대며 살아 있는 듯 징그러울 정도로 몸서리쳐진다. 장군의 눈 앞에 펼쳐진 바다에 떠 있는 수를 헤아릴 수 없는 아귀떼와 같은 적들(그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영혼들이다. 아니 도리어 죽음을 즐기는 자들이라고 표현된다)과 자신의 등 뒤에서 칼을 겨누고 있는 임금의 의심 가득한 눈초리로 인한 진퇴양난의 인간적 고뇌들, 그리고 소리없이 다가오는 죽음에 대한 공포 그러나 마음대로 죽을 수 없는 자신의 잃어버린 의지, 바람 앞에 꺼져가는 등불처럼 위기에 빠진 조국의 운명을 홀로 지고가야만 하는 몸이 바스라지는 듯한 책임감과 억눌러오는 부담감, 그리고 자신의 사지가 찟겨져 나가는 듯한 현재적 고통을 경험케하는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기억들...이 책은 너무나 인간적인 이순신 장군의 모습을 정직하게 그려낸다.       

그래서 나는 이 책에 더욱더 큰 매력을 느낀다. 인간 냄새 나는 '인간 이순신'의 모습을 표현한 작가는 그가 냉철한 군인이기에 앞서 그의 몸 안에도 따뜻한 피와 물이 흐르고 있음을 여실히 드러내주는 수고를 마다 않는다. 또한 책을 읽다보면 난세에​ 탁월하게 준비된 리더에 의해 한 나라의 운명이 결정된다는 절대불변의 진리를 발견하는 희열을 느낀다. 더군다나 그 표본이 400여년 전 우리의 조상인 이순신 장군이라는 사실은 새삼 장군에 대한 한없는 존경과 경외심마저 불러일으킨다.

이순신이라는 민족 영웅을 본서보다 더 현실적이면서도 흥미롭게 묘사한 책이 또 있을까싶다. 장군의 마음 속 심연에 들어갔다 나온 사람마냥 작가의 심리묘사가 너무나 사실적이고 세밀하다. 400여년 전 장군의 환생을 보는 것 같은 착각과 함께 마치 글을 쓰는 동안 이순신 장군의 영혼이 작가에게 빙의된 듯한 섬찟한 느낌마저 지울 수 없다. 지금껏 다수의 책을 읽고 있지만 개인적으로 나는 글을 가지고 논다고 여겨지는 사람을 만나본 적이 없다. 그런데 김훈 작가는 본서를 펼쳐든 순간 "아! 글 자체에 생명력을 부여하고, 글을 자유자재로 가지고 논다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 유일한 작가다.

책을 펼쳐들면 간결하고 정제된 어휘와 극도로 절제된 문장 하나 하나가 내뿜는 문학적 포스가 예사롭지 않음을 대번 느낄 수 있다. 선 굵은 문장의 마디마디가 마치 오랜 세월 노질로 여기저기 굳은 살이 박히고, 뼈마디가 기형적으로 굵어진 뱃사공의 그것과 같이 투박스럽다가도 언제 그랬냐는듯이 첫날 밤 새색시의 수줍음과 같이 여리고 여린 처녀성의 순결함을 머금는다. 나는 글을 너무 잘 쓰는 사람을 만나면 솔직히 질투어린 짜증이 난다. 감히 비교할 대상이 안되는 김훈 작가의 글을 읽고 느낀 나의 첫 감정이 그랬다. 그리고 책을 덮으며 겸손히 머리를 조아리고 존경을 표하는 나의 모습을 본다. 더 이상의 미사여구가 필요없는 그야말로 한국 문학계에 쏟아진 벼락같은 축복! <칼의 노래>

"칼이 울었다!" 더 이상의 수식어는 사족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신곡 - 책 읽어드립니다, 신과 함께 떠나는 지옥 연옥 천국의 대서사시
단테 알리기에리 지음, 구스타브 도레 그림, 서상원 옮김 / 스타북스 / 2019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몇해 전 개봉하여 1000만 관객을 찍은 영화 <신과 함께>는 윤회사상을 비롯한 불교적 세계관을 흥미롭게 묘사한 작품으로서 관객들의 호평을 받았다. 그런데 오늘 리뷰하는 책 <신곡> 또한 내세에 대한 가톨릭적 세계관을 보여주기에 제격인 저작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탈리아의 시인 '단테 알리기에리'는 본 작품을 1307년 시작해서 1321년에 완성했다. 지옥편, 연옥편, 천국편으로 구성된 본서는 저자 단테가 35살 성(聖)금요일을 앞둔 전날 밤 체험한 일종의 영적 기행담이다. 어느 음침한 숲속에서 눈을 뜬 단테는 빛이 비추는 언덕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려는 중 자신을 가로막고 서 있는 세 마리의 야수들을 보게 된다. 그것은 바로 육욕을 상징하는 표범, 권력과 야망을 상징하는 사자, 탐욕을 상징하는 늑대로서 이들 앞에 선 단테는 너무나 두려운 나머지 자신을 도와달라고 허공을 향해 외친다. 그의 기도가 응답된 듯 잠시 후 그의 앞에 나타난 사람은 단테가 스승으로서 그토록 존경했던 로마의 시인 '베르길리우스' 였다. 이후 베르길리우스는 단테를 데리고 영원한 곳으로 안내하는 안내자와 조력자의 역할을 자처한다.

이로서 단테가 환상 속에서 여행하게 되는 첫번째 관문인 지옥편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베르길리우스를 따라 단테는 먼저 지옥의 참상을 경험하게 된다. 그가 목격하게 된 지옥은 9개의 등급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각 등급의 지옥은 생전 세상에서 지은 죄의 경중에 따라 죽은 영혼들이 그 죄의 대가로서 영원토록 형벌을 받는 장소다. 이곳에서 단테는 수 많은 사람들이-그중에서는 너무나 유명한 사람들을 포함하여-끊임없는 고통의 형벌을 받고 있는 장면을 목도하며 두려움에 몸서리친다. 생전 다른 이들을 향한 기만, 배신, 정욕을 포함한 각종 악행을 저지르며 살다간 사람들은 이 지옥 심연에서 벗어날 수 없는 고통을 생생하게 맛보게 되는데 그것은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는 고통의 무한연속이다.

끔찍한 비명과 처절한 울부짖음이 가득한 지옥을 벗어나 단테가 이른 곳은 다름아닌 연옥이다. 7개의 죄악인 교만, 질투, 분노, 나태, 인색, 탐욕, 애욕의 죄를 정화하기 위한 장소로서 개신교에서는 인정하지 않지만 가톨릭에서는 매우 중요한 교리로 인정되는 연옥의 존재에 대해서 알 수 있는 흥미로운 장이다. 가톨릭에서 말하는 연옥은 지옥에 갈 정도의 죄를 짓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천국으로 곧장 직행할 만한 공덕을 쌓지 못한 사람들이 천국으로 가기 전 죄를 씻으며 중간에 머무는 장소다. 이곳에 온 영혼들은 자신들이 지은 다소 경미(?)한 죄악들에 대해 회개하면서 나름 연옥이 제시하는 보속의 행위들을 이어간다. 그 기간은 100년이 될 수도 있고 500년이 될 수도 있지만 그들에게는 이 보속의 기간을 온전히 통과하고 나면 그래도 천국으로 향할 수 있다는 실낱같은 소망이 있기에 단테가 거쳐 온 지옥과는 비교할 수 없는 온화함과 작은 환희가 존재하는 그야말로 죄를 씻는 정죄(淨罪)의 공간이다. 그리고 살아있는 자들의 중보적 기도가 있게 될 때 이 연옥에 있는 영혼들의 보속의 기간은 단축되기에 책에서는 연옥을 통과하는 단테에게 자신을 위해서 기도해달라고 부탁하는 영혼들의 모습을 심심찮게 보게된다. 그리고 이러한 부분에서 독자는 1517년 종교개혁의 직접적인 도화선이 된 교황 레오10세의 성베드로 성당 건축을 위한 면죄부 판매에 얽힌 비화를 기억해 낼 수도 있다.

연옥을 지나 이제 스승 베르길리우스는 단테를 그가 사모하는 여인 '베아트리체' 에게 맡기고 사라진다. 천국의 문 앞에 이른 단테는 베아트리체를 따라서 10개의 층으로 구성된 천국을 여행한다. 연옥을 통해서 인간의 본성과 죄악을 정화한 영혼에게 있어서 남은 것은 선과 도덕적 덕목의 실천이다. 천국은 완전한 선의 집합체이신 하나님이 계시는 장소로서 그곳에 다다른 인간 영혼에게 요구되어지는 것은 온전한 정의와 사랑의 실천이다. <신곡>은 단테가 환상 속에서 경험한 영적 기행담이지만 비단 사후 세계에서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어쩌면 단테가 살다간 중세 시대의 현실을 겨냥한 종교적 메시지의 진의가 더 진득하게 묻어나는 작품이 아닐 수 없다. 천국편에서도 등장하는 내용이기는 하지만 인간의 자유 의지를 강조하는 내용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사실은 단테가 경험한 지옥과 연옥, 천국이 의미하는 바는 모두 인간의 의지에 대한 중요성을 깨닫게한다. 현실 세계 속에서 지옥은 인간 스스로가 의지적으로 결정하고 만들어가는 것이다. 타인을 미워하고 증오하며 빼앗고 갈취함도 모자라 죽이기까지 하는 인간의 타락한 행위는 인간의 자발적 의지로서 그야말로 지옥을 탄생시킨다. 그리고 그보다 못한 죄악들을 행하지만 그것을 벗어나서 천국을 갈망하기 위해 연옥에서와 같이 보속의 행위를 끊임없이 행하는 행위의 자발적 주체 또한 의지를 가진 인간 자신이다. 또한 궁극적 선의 실천을 위한 정의와 도덕, 사랑의 행위를 갈망하는 천국이 요구하는 덕목 또한 인간의 의지를 필요로 하기에 어쩌면 단테가 경험한 사후 세계의 모습은 단테의 시대상을 적실성있게 반영한 것이 아닐까?

워낙 유명한 대서사시로서의 고전인 단테의 <신곡>이 'tvN 책 읽어드립니다'를 통해서 소개 된 후 꼭 읽어봐야지 생각만하다가 이번 기회에 완독할 수 있었다. 단테가 살았던 당시의 현실과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의 현실이 결코 크게 다름이 없다. 단테가 여행을 시작하기 전 만났던 세 마리의 야수가 상징하는 육욕과 권력야망, 탐욕의 모습이 인간 세상 어디에나 존재한다는 사실은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기에 그리 놀랍지만은 않다. 인간 누구에게나 상존하는 죄악된 본성에서의 탈출과 덕을 지향하고자 원하는 인간의 근원적 갈망의 민낯을 지옥과 연옥, 천국이라는 내세의 구조를 통해서 표현한 단테의 문학적 천재성이 돋보이는 이 책은 고전으로서의 그 가치가 빛을 발하는 저작이다. 또한 개신교 종교개혁이 있기 전 탄생한 저작답게 인간 의지의 자유라는 가톨릭적 색채가 묻어나기에 가톨릭의 신학적 교리들과 분위기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도 적지 않은 도움을 얻을 수 있는 책이다. 녹음이 짙어가는 5월, 혹 그동안 어렵게만 느껴져 멀리했던 고전이 내뿜는 향기 속에 취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개신교와 가톨릭,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가
그레그 앨리슨 & 크리스 카스탈도 지음, 전광규 옮김 / 부흥과개혁사 / 2017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개신교 신자로서 흥미로운 책 한권을 만났다. 제목 그대로 개신교와 가톨릭의 공통점과 차이점에 대한 책이다. 예전에 주변 지인들로부터 가톨릭하고 우리 개신교는 어떤면에서 차이점이 있는건가요? 라는 질문을 받은 적이 몇번 있었다. 그럴 때마다 대충 주워들은 풍월로 수박 겉 핥기식의 대답만을 해주었던 기억이 있다. 그러면서 이 책을 읽으며 같은 기독교라고 하지만 개신교와 가톨릭이 어떤 면에서 같고 또 어떤 면에서 다른지에 관한 명쾌한 답변들을 배워갈 수 있었던 유익한 독서의 시간이었다. 두명의 저자 중 한명인 '크리스 카스탈도' 목사는 개신교 목사가 되기 전 가톨릭 교회에서 전임사역자로 일한 바 있기에 책이 담고 있는 내용의 정확성에 대한 신뢰를 높여준다.

책은 약 180여페이지 정도로 분량이 그리 많지 않기에 독자들에게 있어서 일단 부담이 없다. 총 7장으로 구성되어 1장에서는 개신교와 가톨릭의 근본 신념의 차이를 이야기하고, 2장에서는 개신교와 가톨릭이 공통적으로 일치하는 10가지 부분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3장부터 6장까지는 개신교와 가톨릭의 주요 차이점 9가지를 비교하며 설명하고, 마지막 7장에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신교와 가톨릭 모두에게 소망이 있는 이유를 제시하며 책을 마무리한다. 책이 가지는 장점은 일단 개신교와 가톨릭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상호 비교하며 서술하고 있기에 독자로 하여금 각자가 주장하는 성경적이고 교리적인 내용에 대해서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이다.

개신교와 가톨릭의 공통점을 말할 때 10가지 부분에서의 공통적인 주제들을 이야기한다. 그것은 바로 기독교 신학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교리적 내용들로서 예를들어 신론, 기독론, 성경론, 구원론, 성령론, 인간론과 죄론, 교회론과 종말론 등이다. 신학을 공부하지 않은 일반적인 신자된 독자들이 내용을 상세하게 이해하는 것이 쉽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저자들이 최대한 신학적이거나 현학적으로 서술하는 것을 피했기에 기본적으로 교회를 성실하게 출석하며 신앙생활을 한 독자들이라면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인식을 말하는 기독론에 있어서 개신교와 가톨릭은 모두 삼위일체에 있어서 둘째 위격을 가지신 예수 그리스도의 정체성 및 위치를 동일하게 인정한다. 또한 역사적으로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을 부인하는 각종 이단들이 성행한 가운데서도 개신교와 가톨릭은 예수님의 완전한 신성과 인성을 동일하게 옹호하고, 예수님을 성육신하신 신인으로서 두 본성을 소유하시며 하나의 인격을 지니신 분으로서의 전통적 기독론의 바탕 위에서 같은 믿음을 고백한다.

반면 개신교와 가톨릭의 주요 차이점을 이야기하는 챕터에서는 가장 중요한 교리적 차이에 대한 주제들을 상호 비교하며 기술한다. 성경과 전통, 해석에 있어서의 차이점, 하나님의 형상과 죄, 마리아, 교회와 성례, 구원에 대한 상호 다른 견해를 비교함으로서 그동안 서로에 대해 막연히 알고 있었던 얕은 지식들과 때로는 서로에 대한 오해를 불식시키는데 있어서 매우 큰 도움이 된다. 많은 부분에서 공통점을 가지고 있지만 또 적지않은 부분에서 심각한 교리적 차이점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배제할 수 없다. 대표적으로는 구원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칭의에 대한 서로의 견해가 다르다는 점이다. 가톨릭에서 말하는 칭의란 성례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가 성도의 영혼 안에 주입되어짐으로서 그 은혜와 협력하는 성도의 행위가 공로로서 쌓여질 때 하나님이 보시기에 의롭게 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개신교에서 말하는 칭의란 인간의 행위를 배제하고 단지 인간이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믿음으로 하나님이 그리스도의 의의 완전함을 통해 예수의 의가 우리에게 전가됨으로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여져지고 그런 우리를 하나님께서는 의롭다 여기신다고 말한다.

큰 교의적 주제 안에 세부적인 교리들, 예를들어 7성례, 성찬, 연옥, 정경과 외경의 문제, 교회의 권위 등과 같은 주제들 또한 평이하게 비교 설명되어 있기에 개신교와 가톨릭 신자들의 이해를 돕는 데 있어서 매우 유용하다. 이 책은 개신교 출판사를 통해 개신교 신학교의 교수와 목사가 저자로 참여하여 쓰여졌다. 그렇기에 이 책이 개신교의 입장을 두둔하는 편향적 관점에서 쓰여졌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저자들이 매우 객관적인 입장에서 서술하려고 노력한 흔적들이 책의 곳곳에서 발견된다. 오히려 "이 사람들 개신교 목회자들 맞아!" 라고 여기며 저자들의 약력을 다시 들춰보게 될 정도로 개신교 입장에서 볼 때 불합리(?)하게 표현된 단어들도 있다. 물론 저자들이 개신교 목회자들이기에 간혹 주관적인 표현들이 없지 않아 있지만 그것 또한 가톨릭의 입장을 비난하거나 깍아내리려는 불순한 의도가 전혀 없음을 문맥을 통해 쉽게 직감할 수 있다.

최대한 객관성을 유지하며 사견이나 주관을 배제한 채 양 진영이 주장하는 교리적 팩트만을 다루려고 애쓴 흔적이 보인다. 그래서 문체는 매우 부드럽고 젠틀하다. 그렇다고 일부 개신교인들이 걱정하는 애큐메니컬적인 느낌도 없다. 그냥 사실만을 다루었을 뿐이다. 저자들은 마지막 장을 개신교와 가톨릭 모두에게 오직 예수 그리스도라는 소망이 있음을 이야기하며 책을 맺는다. 어쩌면 앞으로도 접촉점을 찾지 못해 계속되는 평행선을 그을 수도 있다. 어떠한 일에서든지 서로에 대해 깊이 이해하지 못한채 상대방에 대해 쓸데없는 적의를 불태우고 대립각을 세우는 것만큼 어리석고 우둔한 일도 없다. 그렇기에 이 책은 서로의 틀림이 아니라 다름을 말한다. 책을 통해 무조건적 비난과 비하가 아닌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는 종교적 성숙함의 향기가 진하게 묻어나오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동물농장 - 최신 버전으로 새롭게 편집한 명작의 백미, 책 읽어드립니다
조지 오웰 지음, 신동운 옮김 / 스타북스 / 2020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케이블 채널 tvN에서 '요즘 책방 책 읽어드립니다' 라는 프로그램이 인기다. 좋은 책 한권을 선정해서 역사교사로서 알려진 설민석씨의 책에 대한 강론(?)과 함께 참석한 패널들이 의견을 나누며 책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이다. 그런데 나는 TV를 볼 시간이 없어서 지금껏 한번도 시청한 적이 없다. 그냥 명성만 들었을 뿐. 좋은 책을 소개하고 그에 대해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마치 독서토론과 같은 분위기의 TV 프로그램이 있다고 하니 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반갑기 그지없다. 얼마 전 '요즘 책방'에서 조지 오웰의 명작 <동물농장>을 소개했다. 디스토피아 소설의 효시격인 <1984>라는 위대한 저작과 더불어 조지 오웰의 명성을 드높인 <동물농장>의 작품성은 말이 필요없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 작품을 읽은 적이 있다. 국내에서 세계문학전집을 출간한 많은 출판사들이 있는데 그중 한 곳에서 이미 오래전 출간한 본서를 만났다. 그리고 이번에 스타북스에서 현대적 감각과 디자인으로 산뜻하게 출간된 본서를 통해 다시 한번 초독때의 감흥을 느낀다.

이번 스타북스에서 출간된 <동물농장>은 각 챕터별로 소제목을 명기했다는 것이 눈에 띄는 특징이다. 그렇기에 독자는 이야기의 줄거리를 파악하는 데 있어서 매우 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또 한가지 스타북스 <동물농장>의 장점은 가독성이 매우 뛰어나다는 점이다. 11포인트 정도의 아주 적당한 활자 크기와 더불어 줄 간격도 여유있게 배정되어서 책을 읽는 내내 눈의 피로도 없이 술술 읽히는 장점이 있다. 책의 외적인 평가는 이 정도로 마치고 책의 내용을 살펴보자!

본서는 더 많은 것을 움켜쥐려고 바둥대는 인간의 추악한 탐욕과 타인을 지배하려는 끝없는 권력욕의 인간 세상을 풍자와 알레고리라는 서술 기법을 동원하여 고발한 근현대 영국 문학의 손꼽히는 작품 가운데 하나이다. 인간에 의해서 지배받으며 그들에게 자신들의 노동력과 생산력을 무한정 착취당하고 마지막에 가서는 자신들의 몸까지도 식용육으로 바쳐야만 하는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세상에 대해 반기를 들고 일어난 동물들과 그들이 사는 농장이 소설의 주요 배경이다.

돼지, 개, 말, 양, 젖소, 암소, 염소, 당나귀, 고양이, 닭, 오리, 까마귀 등의 농장에 살고 있는 동물들은 자신들을 소모품으로 여기며 착취하는 주인 인간에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키고 농장을 그들의 소유로 접수한다.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는 외침 하에 일어난 반란으로 접수된 그야말로 '동물농장'은 이제 동물들에 의한 나름의 질서와 규율로 운영되어져 간다. 그러나 문제는 차츰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이 증오하는 인간세상과는 달리 진정한 평등을 꿈꿔왔던 동물농장은 인간의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이른바 지식층으로 대변되는 지도자 계급인 돼지들에 의해서 다스려져가는 또 다른 모습의 인간세상으로 변질되어가는데...

민주적 사회주의를 꿈꾸었던 저자 '조지 오웰'은 정치 풍자적 요소가 가득한 본서를 통해 20세기 초 볼셰비키 혁명에 의해 세워진 소비에트 사회주의 이념의 변질에 대한 현실정치의 부조리와 모순을 고발하고 있는 동시에 시대와 장소를 뛰어넘어 어느 시대 어느 곳에나 있을 수 있는 인간 세상의 부조리와 불평등의 망령에 대한 우려를 알레고리라는 수사 기법을 동원하여 날카롭게 꼬집는다. ​결국은 어느 시대이든지 인간군상이 모여사는 곳에는 계급이 존재할 수 밖에 없고, 지배 계급은 피지배 계급을 억누르고 착취할 것이며 피지배 계급은 끝없이 지배 계급에게 자신들의 노동력과 생산력을 헐값에 제공할 수 밖에 없는 근원적 패악의 악순환이 계속될 것이라는 점이다.

개인적으로 이번에 재독하며 발견하게 되는 점은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모든 권력을 손에 넣은 수퇘지 '나폴레옹'을 비롯한 지도층 돼지들이 전화를 신청하고, 라디오를 구입했으며 잡지를 예약구독하고, 입에는 파이프 담배를 물고, 인간의 옷장에서 옷을 입으며 농장을 방문한 이웃농장의 인간들과 함께 한 식탁에 둘러 앉아 희희덕거리는 모습 속에서 인간이든 돼지든 간에 그들의 본성 속에는 남보다 더 누리는 것에 대한 탐욕의 DNA가 항존한다는 사실에 대한 발견이다. 초기 메이너 농장의 돼지들은 분명 인간과 인간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문명의 도구들에 대해서 적대적이었고 역겨워했다. 입장이 바뀌고 난 이후 그들 또한 인간의 모습을 동경함으로서 그들이 그토록 혐오했던 인간의 모습으로 동화되어 가는 장면은 독자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인간들과 어울려 한 식탁에서 카드놀이를 하고 있는 돼지들의 얼굴이 인간인지 돼지인지 구별이 가지 않게 되었다는 묘사로서 끝나는 결말은 이 땅의 모든 존재가 지닌 그 존재적 타락의 동일성을 의미한다.

그 이유는 인간 본성의 전적 타락에서 손쉽게 답을 찾을 수 있다. 인간 본연의 모습은 죄로 오염되었으며 신적 형상을 읽어버린 인간 본성 또한 전적인 타락의 길로 빠져들었다. 인간 본성의 부패와 타락으로 말미암아 인간 세상은 절대로 평등해질 수 없다. 인간 본성의 부패와 타락은 인간성 자체를 인간들에게 다른 인간을 무자비하게 짓밟고 갈취하고 빼앗아 자신이 더 많이 가져야만하는 극도의 이기심과 탐욕으로 변질시켜 놓았기 때문이다. 인간 내면에 선한 것이 있는가? 근원적으로 파고 들어갈 때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사실 인간만큼 더럽고 탐욕으로 쩌든 추한 존재가 세상 어디에 또 있는가?

조지 오웰은 이 책을 통해 당시 시대적 상황 속에서 악의 축으로 여겨졌던 소비에트 볼셰비키 혁명에 대한 조롱과 풍자를 알레고리 기법을 통해 통렬하게 비판하고 마음껏 비웃었지만 사실 나는 책을 덮으며 어쩌면 조지 오웰의 펜 끝은 또 다른 영역을 가리키고 있을 것이라는 마치 음모론의 한 조각과 같이 섬찟한 나만의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조지 오웰이 살던 20세기초 영국 사회인들 어디 제대로 된 사회였겠는가? 영국 제국주의 식민지 정책과 같은 비인도적 정책들은 아마 조지 오웰에게 있어서 반길만한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의 또 다른 걸작인 <1984>를 보기만해도 우리는 그 사실을 너무나 뚜렷이 인식할 수 있다. 조지 오웰의 전체적인 작가 정신의 근저는 우리 사회 아니 인류 문명의 밑바닥에 깔려있는 계급주의의 망령에 대한 혐오이며 우려이다. 아이러니컬한 사실은 어차피 그가 추구했던 민주적 사회주의나 공산주의 아니면 그에 반해 훌륭하다고 말하는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자유 민주주의 또한 차악일 뿐 최선은 아니라는 사실은 우리 사회가 가진 극심한 빈부 격차와 연일 계속되는 탐욕으로 점철된 기득권층의 갑질로서 증명된다. 조지 오웰은 이 부분을 정확히 직시했고, 그렇기에 <1984>를 비롯해 그의 책 <동물농장>은 그의 문학적 천재성이 여실이 드러나는 작품이 아닐 수 없다.

힘 가진 자들이 힘없는 자들의 육체는 물론 영혼까지 탈탈 털어버리는 이 시대의 추악한 모습들이 동물농장의 리더인 수퇘지 나폴레옹과 그를 따르는 돼지들의 행태와 교묘하게 오버랩되어 실소를 금치 못하게 만든다. 한권의 소설이 가져다 주는 재미와 씁쓸한 교훈을 동시에 가져다 주는 조지 오웰의 시대를 읽는 혜안의 탁월함이 그대로 녹아져있는 소설 <동물농장>은 분명 조지 오웰이 살았던 20세기 초 당시의 시대 상황을 반영한 정치풍자와 우화의 요소가 가득한 작품이지만 나에게는 그 안에서 타락으로 귀결될 수 밖에 없는 인간 본성의 역겨움을 발견한 작품으로 기억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틸리 서양철학사 - 소크라테스와 플라톤부터 니체와 러셀까지
프랭크 틸리 지음, 김기찬 옮김 / 현대지성 / 2020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오늘 아침 N번방 사건 공범인 피의자의 신상이 공개되었다. 아직 교복이 어울릴만한 애띤 얼굴에 긴장감이 역력한 18세 청소년이었다. 고개를 푹 숙인 채 기자들의 질문 공세 속에서 도대체 지금 본인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사태의 심각성이나마 제대로 파악했는지조차 의심스러웠다. 어린이들을 포함한 다수 여성의 육체와 정신을 유린한 이 짐승같은 존재들의 민낯을 보며 인간 존재와 그들의 내면 깊숙한 곳에 상존하는 인간성의 본질을 되돌아보게 되는 아침이다. 도대체 무엇이 저들을 이런 끔찍한 괴물들로 만들었을까?

이러한 질문 앞에서 활자 크기 10포인트 800여페이지의 분량만으로도 독자들의 기를 죽이는 어마무시한 철학서 한권을 만난다. 철학의 명문 프린스턴 대학교의 철학교수를 지낸 '프랭크 틸리' 교수에 의해 1914년 초판 발행된 <틸리 서양철학사>이다. 저자는 서문을 통해 일단 고대 동양 철학과 사상은 사유 체계가 명확하게 성립되지 않았기에 배제하고, 개인과 국가, 사회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끼친 철학과 사상에 대해서 소크라테스 이전 자연철학부터 근현대 철학에 이르기까지 서양의 철학과 사상의 흐름을 각 시대를 대표하는 철학자들과 그들의 이론을 바탕으로 나열했음을 밝힌다.

인류의 태동 이후 인간은 자신을 둘러싼 우주와 자연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과 의심 속에서 그것의 기원과 구조, 기능을 탐구하기 위해서 다양한 사유의 작업을 해나갔다. 저자는 한 철학의 역사적 기원과 개인적 동기, 하나의 철학 체계는 한 개별 지성의 창조적 사유의 산물이며 그 창시자의 인격을 반영한다라고 말했다. 즉 다른 이들보다 좀 더 깊은 생각과 탐구의 정신을 지닌 그 시대의 지성은 그 시대가 요구하는 물음 앞에서 답을 찾기 위해 몸부림쳤으며 그것에는 자연스럽게 나름의 답을 발견한 하나의 철학 체계를 형성한 지성인들의 인격이 고스란히 반영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책을 통해 저자가 강조하는 바는 철학이라는 것이 오직 자신만의 세대가 가진 물음과 그에 대한 답변으로서 종결되는 한계성에 그치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점이다. 창의적 철학자는 동시대의 다양한 영역에서의 새로운 개념들과 더불어 과거 철학사로부터 이끌어 낸 전통적 개념과 통찰을 살찌워야 한다는 것이다. 해 아래 새것이 없다고 하지 않던가? 그렇기에 진정한 철학은 내가 살고 있는 지금의 문제와 그것에 대한 정답만이 최고라는 오만을 견제할 때 더욱 더 풍요로운 사유 체계의 완성을 향해 달려갈 수 있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방금 위의 이야기와 같이 각 시대와 세대를 대표하는 철학자들과 그들의 철학 사상이 독단적인 움직임 속에서 역사적 단절성을 갖는 것을 철저히 배제하고 자신들의 앞 시대를 살다간 선배 철학자들과 그들의 사유에 대한 직간접적인 연관성을 추구했음을 너무나 뚜렷하게 밝히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독자는 유독 하나의 시대 정신만이 한권의 책을 관통한다고 볼 수는 없고 각 시대마다의 철학 사상들이 마치 유아용 토마스 기차 장난감과 같이 어느 정도의 연결성을 이루며 진행됨을 발견할 수 있다.

총 22장으로 구성된 본서는 1장 자연철학부터 22장 실용주의 실증주의 분석철학까지 시대를 대표하는 철학 사상을 앞뒤의 사상체계들과의 시대적 연관성을 무시하지 않은 채 매우 깊이 있게 서술하고 있다. 사실 나와 같은 철학의 문외한은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로 이어지는 그리스 철학의 범주에서부터 철학의 기원을 생각하길 좋아한다. 왜냐하면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의 그 난해함을 굳이 이해하기 위해서 통과해야만 하는 그 지난한 정신적 사유의 과정들이 너무나 고통스럽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기에 중세철학이나 근대 계몽주의 철학과 같은 우리에게 상대적으로 많이 알려져 있는 철학 사조들과는 달리 소크라테스 이전의 자연 철학자들에 관한 그들의 사상과 이론에 대해서 좀 더 심도있게 접할 수 있었던 것은 이번 독서를 통해 얻을 수 있었던 귀한 이득이었다.

밀레토스 학파 또는 이오니아의 자연 과학자들로 불리는 탈레스, 아낙시만드로스, 아낙시메네스와 같은 철학자들은 이 세상의 실체의 문제에 깊은 관심을 기울였고, 그들 사유의 소재로 삼았다. 초기 고대 철학자들은 대부분 과학자들이었다. 만물의 질료이며 원초적 재료는 물이기에 만물은 물로 시작해서 물로 돌아간다고 주장했던 탈레스나 생물의 기원을 밝히며 사람은 원래 물고기였음을 주장하며 마치 이후 다윈 진화론의 고전판 버전과 같은 사유를 설파하기도 한 아낙시만드로스 그리고 사물들의 제일 원리이며 근본실체는 공기, 증기, 안개이며 공기는 생명의 원리이자 우주의 원리임을 주장한 아낙시메네스까지 어찌보면 우리가 먹고 살아가는 문제에 있어서 모르고 살아도 하등 문제 없고, 지장없는 마치 개똥 철학같은 이야기들을 매우 심도있게 나열한다. 그러나 이러한 자연 철학자들이 관심있게 궁구한 우주와 세계의 실체의 문제는 당장 우리네 삶에 큰 연관성이 없다할 수 있지만 인간 존재의 문제와 연결될 때 그렇게 만만하고 쉽게 치부해버릴 수만은 없는 다소 심각한 이슈가 될 여지가 충분한 철학적 주제들을 끄집어온다.

예를 들어 우주가 어떻게 만들어졌고, 세계를 구성하는 실체의 문제는 무엇이며 그 세계와 우주를 구성하는 자연과 인간은 무엇이며 그것이 인간과 맺는 관계에 대한 모든 사유의 물음을 차단해버리고 당장의 배고픔과 추위를 피할 수 있는 의식주의 문제에만 매달린다면 인간은 한낱 아낙시만드로스가 말한 물고기와 같은 존재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우주의 기원도 모르고 세계가 어떻게 구성되었는지조차 모르며 인간 존재의 기원이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을 때의 결과는 지금 현시대가 맞닥뜨린 각종 윤리적 문제들과 결코 관련없지 않다. 전쟁, 폭력, 살인, 강간, 낙태, 아동 성매매, 인종청소, 유아살해, 장기밀매, 안락사, 동성애, 식인풍습, 유전자 조작, 대리모 출산 등 현대 우리 사회가 겪는 수 많은 난제들에 대해 그것이 오직 독립적으로 발생한 시대의 아픔이라고 말하는 것만큼 무지한 답변은 없다.

자연철학으로부터 시작된 우주의 생성과 기원의 문제는 인간과 신 존재의 증명을 요구하며 종교와 중세철학의 시대로 바통을 넘겼다. 이후 신 존재의 증명을 둘러 싼 끊임없는 종교적 논쟁은 다시 인간성 회복이라는 지성과 이성의 시대인 계몽주의 근대 철학에 그 철학적 사유의 주도권을 넘긴다. 종교에 대한 이성의 탁월함을 맹신했던 인간은 1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인간이 같은 인간에게 저지른 그 끔찍한 전쟁의 참혹성을 통해 다시금 인간 이성의 무한 맹신이라는 화려한 망상을 떨쳐버리기에 이른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이 있은 후 인간 정신과 철학의 무대는 전후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상대성의 인정과 다원화라는 새시대를 맞이하기에 이른다. 이제 인간은 신 존재에 대해서 고민하지 않으며 그렇다고 인간 지성과 이성에 대한 맹신도 거부한다. 오히려 과학기술이 새로운 인간 문명의 총아로서 떠오른 현대인들에게는 편리함과 그로 인한 즐거움, 효율성이라는 최고의 철학적 주제가 대세다. 그렇기에 효율성의 측면에서 장기매매가 이루어지며 돈을 벌기 위해서 불법 낙태를 시술하고 안락사를 시행하는 의료인들이 존재하고, 유전자 조작을 통해서라도 불멸의 삶을 꿈꾸기에 이르렀다.

본서는 단순히 서양철학사의 시대적이며 연대기적인 나열로서 이루어진 책이 아니다. 고대 자연주의 철학의 시대부터 근현대 철학에 이르기까지 각 시대의 대표적 철학사상과 철학가들이 그들이 살던 당시의 사회, 정치, 문화적 정황 속에서 어떻게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받았는지에 관한 논의가 주를 이룬다. 그렇기에 철학을 전공하지 않은 독자들에게 다소 어려울 수도 있는 내용은 잠시 이해의 과정을 스킵하고 넘어간다해도 이후의 논지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크나큰 어려움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특별히 틸리 교수가 철학적 논의를 심술궂게 비꼬아서 표현하지 않았기에 오히려 문체의 명확함과 명료함으로 인해 다른 책들보다는 표현에 있어 매끄럽게 다가오는 철학서이다.

10여일간 벽돌과 같은 책 한권에 파묻혀서 사고의 바다 속에서 허우적댔다. 영원한 이국의 언어와 같은 철학. 잠간 농담과 같이 표현했지만서도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의 세상 속에서 철학을 모른다고 실제로 밥 벌어 먹고 사는데에는 아무런 지장도 없는 관념적 학문으로서의 철학. 그러나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가는 데 있어서 배부르고 등 따시면 된다는 어른들의 이야기는 그 시대 어르신들의 시대적 유물로서 잠시 밀어놓고,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는 좀 더 생각하며 살아야 하지 않을까? 자연 철학자들과 같이 거창하게 우주와 세계를 논하는 것은 차치하고서라도 나와 내 이웃과의 관계라는 협의적 의미에서 인간 실존의 문제를 좀 더 심각하게 고민해볼 필요가 지금과 같은 시대만큼 필요한 때가 또 있을까싶다. 자기가 왜 태어났고 본인의 인생의 목적은 무엇이며 나를 둘러싼 내 이웃들의 존재와 그들 하나하나의 가치는 무엇인지에 대해서 생각하기를 멈췄을 때 리뷰의 서두에서 이야기한 N번방의 괴물들이 탄생한다. 완연해가는 봄 기운 속에 이번 시즌에는 우리 모두 가벼운 책들을 좀 내려놓고 머리에 쥐가 날 수도 있는 고생스러움을 선택함으로서 아낙시만드로스가 말한 물고기가 아님을 증명해보이는 것은 어떨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