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의 노래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오래 전 주말 저녁 TV로 방영했던 "불멸의 이순신" 이라는 드라마를 본 적이 있다. 그 이후 '명량' 이라는 영화가 제작되어 많은 관객을 불러모았다. 한국인에게있어 모르면 간첩일 정도로 누구나가 다 아는 이순신 장군의 이야기였기에 큰 관심이 없었고, 더군다나 어린시절 위인전으로 충분히 접했던 이야기라서 그런지 드라마가 내게는 별다른 신선함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나는 우연찮게 TV 앞에 앉았다가 보게 된 드라마의 재미에 완전히 함몰되었다. 그러면서 드라마의 원작이 궁금해지기 시작했고 이 드라마가 두 편의 원작을 토대로 제작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이후 사람들이 많이 추천하는 두 편의 원작 중에서 <칼의 노래>를 구입해서 읽었다.

드라마는 감칠맛나는 묘미를 이어가기 위해서 중요한 순간에 끊어버리는 단점을 가진다. 그래서 나의 인내심 없는 성격 덕분에 나는 급기야 원작을 구입해서 읽었다. 책을 붙잡고 읽는 순간 나는 순식간에 책 속으로 빠져들었고 거침없이 읽어갔다. 책의 내용은 드라마의 내용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와 느낌을 가진다. 책은 성웅 이순신 장군의 눈으로 모든 사건과 상황들을 보고 쏟아내는 1인칭 자전적 소설의 구조를 택한다. 그러면서 이순신 장군의 세밀한 심리 묘사와 내적 고뇌의 흔적들을 가감없이 묘사한다. 그렇기에 책을 펼쳐 든 독자는 마치 장군의 곁에서 그의 일거수일투족 모든 것을 지켜보는 것과 같은 생생한 문학적 현장감을 체감할 수 있다.

사실 나는 소설책을 크게 선호하지 않는다. 살아있는 인간의 비릿한 콧김이 서리지 않은 허구적인 것이 싫어서라는 지독한 편견 때문에 그런지 애써 소설이라는 장르를 나의 서가에서 밀쳐낸 지 오래다. 그런데 TV 드라마를 통해 본서를 만난 순간 내가 그토록 고집스럽게 붙들고 있던 편견이 속절없이 무너져 내렸다. 픽션의 요소가 적지 않게 가미되었지만 역사라는 팩트에 기반한 소설이기에 사실성은 물론이거니와 독자를 끌어들이는 그 재미와 마성의 몰입감이 마치 물귀신의 그것과 같다.

무엇보다도 충격적으로 다가왔던 점은 작가인 김훈에 의해 하얀 종이 위에 펼쳐지는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의 현란한 글사위와 수려한 글놀림의 향연이었다. 그의 글은 마치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기암절벽의 장관을 보는 것과 같아 독자로 하여금 숨이 막히게 만드는 저릿함 함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짜릿한 카타르시스 또한 느껴진다. 본서를 향해 한국 문학계에 벼락같이 쏟아진 축복이라고 말하는데 책을 펼쳐든 순간 글을 모르는 내가 보기에도 진정한 수작 중의 수작임을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책 자체가 가지는 아우라가 시쳇말로 장난이 아니다. 더불어 한국인으로 태어나 살면서 우리 글이 이렇게 화려하면서도 담백하며 깊은 느낌의 문자였음을 보여주는 것은 작가가 책을 통해서 독자에게 전해주는 덤이다.

 

나로 하여금 작가의 이력을 검색하게 만든 책!

작가 김훈...<칼의 노래> 속에서 보여지는 그의 글은 원색적이고 감각적이다. 400여년 전 전쟁의 참혹함을 묘사한 문장들은 작가의 손끝에서 묻어 나오는 마치 기예와 같은 글놀림으로 인해서 피비린내와 물비린내가 진동한다. 그렇기에 그의 글은 끈적대며 살아 있는 듯 징그러울 정도로 몸서리쳐진다. 장군의 눈 앞에 펼쳐진 바다에 떠 있는 수를 헤아릴 수 없는 아귀떼와 같은 적들(그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영혼들이다. 아니 도리어 죽음을 즐기는 자들이라고 표현된다)과 자신의 등 뒤에서 칼을 겨누고 있는 임금의 의심 가득한 눈초리로 인한 진퇴양난의 인간적 고뇌들, 그리고 소리없이 다가오는 죽음에 대한 공포 그러나 마음대로 죽을 수 없는 자신의 잃어버린 의지, 바람 앞에 꺼져가는 등불처럼 위기에 빠진 조국의 운명을 홀로 지고가야만 하는 몸이 바스라지는 듯한 책임감과 억눌러오는 부담감, 그리고 자신의 사지가 찟겨져 나가는 듯한 현재적 고통을 경험케하는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기억들...이 책은 너무나 인간적인 이순신 장군의 모습을 정직하게 그려낸다.       

그래서 나는 이 책에 더욱더 큰 매력을 느낀다. 인간 냄새 나는 '인간 이순신'의 모습을 표현한 작가는 그가 냉철한 군인이기에 앞서 그의 몸 안에도 따뜻한 피와 물이 흐르고 있음을 여실히 드러내주는 수고를 마다 않는다. 또한 책을 읽다보면 난세에​ 탁월하게 준비된 리더에 의해 한 나라의 운명이 결정된다는 절대불변의 진리를 발견하는 희열을 느낀다. 더군다나 그 표본이 400여년 전 우리의 조상인 이순신 장군이라는 사실은 새삼 장군에 대한 한없는 존경과 경외심마저 불러일으킨다.

이순신이라는 민족 영웅을 본서보다 더 현실적이면서도 흥미롭게 묘사한 책이 또 있을까싶다. 장군의 마음 속 심연에 들어갔다 나온 사람마냥 작가의 심리묘사가 너무나 사실적이고 세밀하다. 400여년 전 장군의 환생을 보는 것 같은 착각과 함께 마치 글을 쓰는 동안 이순신 장군의 영혼이 작가에게 빙의된 듯한 섬찟한 느낌마저 지울 수 없다. 지금껏 다수의 책을 읽고 있지만 개인적으로 나는 글을 가지고 논다고 여겨지는 사람을 만나본 적이 없다. 그런데 김훈 작가는 본서를 펼쳐든 순간 "아! 글 자체에 생명력을 부여하고, 글을 자유자재로 가지고 논다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 유일한 작가다.

책을 펼쳐들면 간결하고 정제된 어휘와 극도로 절제된 문장 하나 하나가 내뿜는 문학적 포스가 예사롭지 않음을 대번 느낄 수 있다. 선 굵은 문장의 마디마디가 마치 오랜 세월 노질로 여기저기 굳은 살이 박히고, 뼈마디가 기형적으로 굵어진 뱃사공의 그것과 같이 투박스럽다가도 언제 그랬냐는듯이 첫날 밤 새색시의 수줍음과 같이 여리고 여린 처녀성의 순결함을 머금는다. 나는 글을 너무 잘 쓰는 사람을 만나면 솔직히 질투어린 짜증이 난다. 감히 비교할 대상이 안되는 김훈 작가의 글을 읽고 느낀 나의 첫 감정이 그랬다. 그리고 책을 덮으며 겸손히 머리를 조아리고 존경을 표하는 나의 모습을 본다. 더 이상의 미사여구가 필요없는 그야말로 한국 문학계에 쏟아진 벼락같은 축복! <칼의 노래>

"칼이 울었다!" 더 이상의 수식어는 사족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