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신뢰 - 인생의 모든 답은 내 안에 있다 현대지성 클래식 36
랄프 왈도 에머슨 지음, 이종인 옮김 / 현대지성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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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주먹을 믿겠다!"라는 걸쭉한 호언을 심심찮게 듣고 자랐기에 스스로의 힘을 믿고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겠노라는 외침이 전혀 낯설지가 않습니다. 그런데 19세기 미국의 위대한 사상가 '랄프 왈도 에머슨'은 인간 존재의 숨겨진 잠재력을 거침없이 끄집어 내기 위한 그만의 사상적 고찰을 몇 권의 책으로 엮었습니다. 이번에 그의 철학적 담론이 녹아져있는 짤막한 세 편의 에세이가 현대지성 출판사에서 한 권의 책으로 출간되었는데요 '자기 신뢰', '운명', '개혁하는 인간'이 그것이죠.

 

자기 본성에서 나오는 법을 제외하고는 그 어떤 법도 자신에게 신성할 수 없다. p19

 

이단성 교리를 가진 유니테리언파의 목회자였던 에머슨이 가진 대표적 사상은 초월주의, 범신론입니다. 에머슨의 자기 신뢰는 인간의 영혼과 자연의 합일을 지향합니다. 자연을 신의 한 형태로서 이해했으며 인간 내면 안에 이미 신적 요소가 존재하며 그것을 깨닫고 발견하며 회복하는 길만이 바른 인간성을 향해 가는 길임을 설파합니다. 그의 주장은 사회적 관습과 다양한 제약 속에서 탈피하여 올바른 인간이 되기 위해 인간 스스로가 신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죠. 그렇기에 인간을 포함한 모든 자연 만물 속에 신성이 깃들어져 있음을 말하는 스피노자의 범신론은 에머슨의 중요한 사상적 원류의 하나로서 작용합니다.

특별히 책의 타이틀인 '자기 신뢰'는 인간에 대한 깊은 통찰을 가늠해볼 수 있는 작품이죠. 종교적인 문제를 떠나 하나의 사상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할 때 초월주의는 저자가 살던 당시 미국의 사회적 배경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에머슨은 급격한 산업화로 인한 미국 사회의 경제 발전과 그로 인해 증대된 부가 미국인들의 삶은 윤택하게 해주었을지 모르지만 그들의 정신이 텅 빈 공터와 같았음을 간파했습니다. 이러한 인간들의 공허한 외적 삶에 있어서 중요한 점은 눈에 보이는 삶이 아닙니다. 인간은 자신의 이성을 뛰어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떠한 영혼의 존재(오버 소울)를 통해 궁극의 '일자'와의 합일을 통해서만 완벽하고 참된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죠. 인간 이성의 극대화, 내가 신이고 신이 내가 되는 인간성의 극치와 만개!

에머슨은 온전한 신의 경지에 도달하는 자기 신뢰는 운명과 맞서 싸울 수 있음을 이야기하며 두 번째 에세이 '운명'으로 논지를 이어갑니다. 그는 운명을 제약으로 이해했습니다. 인간의 삶을 제약하는 모든 것은 운명입니다. 그러한 운명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은 용기를 가지는 것이며 운명은 운명으로 맞설 수 있습니다. 즉 운명에 순응하지 말라는 것이죠! 내가 신이 된 마당에 그깟 정해진 운명이 나의 가는 앞길을 막지 못하도록 하라는 일종의 격려인 것입니다.

 

운명은 성품의 결과다. p105

 

그런데 2장에서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대목이 있습니다. 인간의 운명이 성품의 결과라는 점! 사람은 자기 성품이 서로 연관된 여러 사건 속에서 구현되며 그 사건들은 자신에게서 나오고 그를 따라다니며 그러한 사건들은 성품과 함께 확대되어 간다는 것입니다. 즉 우리가 일상에서 만나게 되는 크고 작은 모든 사건들은 나의 성품에 기인한다는 것입니다. "이 무슨 개똥같은 소리인가?"라고 반문할 수도 있는데 에머슨이 진술한 이야기의 진의를 알고 나면 무릎을 치게 됩니다. 예를 들어 내가 이웃과의 관계에서 선한 성품을 갖고 그들을 착한 마음으로 대하고 인간의 예의로서 선행을 베푸는 삶을 살았다면 언젠가는 반드시 내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그들의 도움을 받는 일이 생길 수도 있다는 것이죠. 그러나 반대로 내가 악한 성품에 기인한 지독한 악행을 저지르고 살아왔다면 그것으로 인해 언젠가는 반드시 나에게도 좋지 못한 일이 생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에머슨은 삶을 인과 작용의 한 조각일 뿐이라고 정의합니다. 에머슨이 동양 사상에도 깊이 심취해 있었다는 사실을 살펴볼 때 마치 불교 연기설의 한 부분을 보는 것만 같습니다.

마지막 세 번째 에세이 '개혁하는 인간'은 산업화로 인해 경제적 부를 축적한 미국 사회의 겉은 화려하지만 속은 텅 빈 미국인들의 영혼과 내면의 무지를 일갈합니다. 에머슨은 바른 인간이 되려고 하는 이들에게 거짓된 마음, 속이고 아첨하는 환대를 경계하라고 말합니다. 세속화된 인간들이 흘려주는 썩은 꿀을 빨아먹는 삶을 멈추라는 것이죠! 더불어 개혁하는 인간에게 있어서 그가 누릴 수 있는 최고의 가치는 자신의 손으로 삽을 잡고 땀을 흘림으로써 얻게 되는 그 소산물을 먹는 노동임을 강조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먹고살기 위해서 손에 흙을 묻히고 기름을 묻히는 직업과 노동의 가치를 중시하지 않는 사회 속에서 신성한 땀의 가치를 말한 것이죠! 그렇기에 에머슨의 개혁하는 인간은 무위도식하는 삶이 아니라 운명을 개척하는 인간상의 모습을 의미합니다.

 

 

세 편의 에세이 전면에 흐르는 공통적인 키워드는 영혼, 자연, 운명, 개혁입니다. 영혼이 깃든 인간의 잠재력과 내면의 힘을 신뢰함으로써 우리를 둘러싼 운명을 개척하고 개혁하는 인간만이 참된 인간상의 표본이라는 것이죠! 에머슨이 책에서 말하는 신은 정통 기독교가 말하는 그 하나님과는 거리가 멉니다. 하나님의 외양만을 갖춘 전혀 다른 신적 요소를 이야기하는 그만의 레토릭임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러한 에머슨에게 있어서 신적 존재는 필요 없습니다. 왜냐하면 바로 인간이 신이기 때문이죠! 전통과 종교라는 허울을 벗어던지고 내 안에 존재하는 신적 요소를 극대화함으로써 내가 신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본서는 신의 모든 계시가 담겨있다고 믿는 자연과의 합일을 추구하는 범신론적 뉴에이지 사상이 책의 저변에 촉촉이 깔려있습니다. 또한 조금만 주의 깊게 보면 영혼과 빛이라는 일루미나티적인 사상도 책의 곳곳에 스며들어 있음을 쉽사리 발견할 수 있습니다.

또한 프리메이슨의 국가 정신이 반영된 미국의 개척, 독립 정신의 초석이며 사상적 배경이 된 책으로서 대표적 무신론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의 초월주의에 깊은 영감을 끼쳤다고 하는 책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책의 분위기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와 비슷함을 느낄 수 있네요. 더불어 그 유명한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에머슨의 제자이며 소로의 명작 <월든>이 실제로 소로가 에머슨이 소유한 호숫가 숲속에 오두막을 짓고 살면서 집필했다고 하는 내용도 흥미롭습니다.

서두에서 말한 "내 주먹을 믿겠다!"라는 호기로운 외침 속에서 깊은 서글픔을 느끼는 것은 나 자신이 결코 내 주먹을 믿고 신뢰할 수 없는 사람임을 알기에 그렇습니다. 책을 덮으며 나는 내가 결코 나를 믿을 수 없으며 신뢰할 수 없다는 그 사실을 신뢰하는 사람임을 확인합니다. 나만큼 불완전하고 죄악으로 가득한 모순투성이 인간도 없음을 알기에 에머슨이 말하는 자기 신뢰가 나에게만큼은 해당 사항이 없음을 깨닫게 된 시간이기도 했죠. 나 자신을 볼 때마다 부딪치는 인간적 한계와 존재의 무익함을 절감하는 나에게는 에머슨이 말하는 신이 아닌 진짜 신이 필요합니다. 매일 아침 눈을 떴을 때 햇살과 함께 쇠락해져가는 내 영혼의 곤고함을 바라보며 그 어디에서도 삶의 소망과 원천을 찾을 수 없는 인간 존재의 비루함을 느낄 때 내 안에 에머슨의 신은 없습니다. 그렇기에 나는 오늘도 십자가로 증명된 참된 하나님을 갈망할 뿐입니다.

인간이 신이 될 수 있고 인간의 내면 안에 녹아져 있는 자연적 본성, 신적 합일을 통해서 스스로를 신뢰하고 주어진 운명을 개혁하고 개척할 수 있다는 가르침과 주장은 역사가 깊습니다. 아울러 신비주의, 범신론적 요소가 가득한 본서의 독자 포인트는 나의 모든 상황을 뛰어넘는 초월주의에 있습니다. 이 책은 인간 능력의 극대화라는 인본주의적 주장의 극치를 맛볼 수 있는 훌륭한 저작이라고 여겨집니다. 본서를 통해 인간 존재의 무한 신뢰, 더 나은 인간상으로의 발전과 향상, 운명의 수동적 순응이 아닌 인간의 자유로운 의지로서 결정하고 맞설 수 있다는 사상 등은 인간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독특한 관점을 제시해 주리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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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히틀러의 아이였습니다 - '레벤스보른 프로젝트'가 지운 나의 뿌리를 찾아서
잉그리드 폰 울하펜.팀 테이트 지음, 강경이 옮김 / 휴머니스트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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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연코 뿌리뽑힘은 인간 사회가 경험하는 가장 위험한 병폐다.

시몬 베유

 

10여 년 전 캄보디아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3주가량의 일정 중 지금도 생각하면 마음 아픈 경험 중 하나가 프놈펜에 있는 제노사이드 추모관 방문입니다. 1975년부터 79년까지 공산정권 크메르루즈가 자국민 200만 명을 학살한 킬링필드의 현장을 고스란히 보존한 곳이죠. 그런데 크메르루즈가 캄보디아를 문명 이전의 원시 농민 공산주의 국가로 회귀시키기 위해 사회 재편성의 일환으로 자행한 대대적인 지식계층의 학살과 더불어 행한 일 중의 하나가 바로 mass marriage(집단 결혼)입니다. 생전 일면식도 없는 남녀를 양쪽으로 줄지어 세워 놓고 마치 소개팅 자리에서 파트너를 고르듯 공산당이 현장에서 즉석 매칭해주는 남녀가 강제 결혼을 하는 것이죠. 이러한 해괴망측한 일들로 인해 버젓이 배우자와 아이들이 있는 기존의 가정이 빠르게 해체되어갔고, 강제적으로 맺어진 결혼 관계를 통해서 새로운 아이들이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폴 포트 정권 붕괴 이후 캄보디아 사회 전체의 가족 체계를 얽히고설킨 실타래 마냥 엉망진창으로 만든 원흉이 된 것이죠.

요 며칠 이런 정체성과 뿌리에 대한 가슴 아픈 한 사람의 회고록 겸 작은 역사서 한 권을 만났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 나치에 의해 자행된 아리안족 인종 우월주의의 망령이 낳은 비극 '레벤스보른 프로젝트'의 희생자였던 '잉그리트 폰 욀하펜'여사의 책이 그것이죠. 당시 나치의 2인자였던 친위대장 '하인리히 힘러'는 북유럽 아리아인의 혈통적 우수성에 대한 병적인 집착과 망상에 사로잡혔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히틀러의 명을 받아 우등 민족인 독일의 아리아인이 전 유럽을 다스리는 나치 천년 제국을 꿈꿨는데요, 이러한 계획의 일환으로 나치 제3제국 우수 인종의 인구수를 증가시키기 위해 혈통적으로 검증된 남녀의 자유로운 성관계와 출산을 권장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힘러가 구상한 레벤스보른(생명의 샘) 프로젝트였죠. 그러나 힘러의 계산과는 달리 임신과 출산율이 폭발적으로 증가하지 않자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무력 점령한 유럽의 여러 지역에서 아리안족의 외모적 특성을 가진 어린아이들을 그들의 부모로부터 강제적으로 빼앗아 자신들의 레벤스보른 프로젝트 양육시설로 데려옵니다. 그리고 독일 각지의 순수 혈통을 가진 독일인 가정에 입양시킴으로서 아이들을 완전히 '독일화'시키게 되는데요, 이 책은 바로 이렇게 나치에 의해서 부모로부터 강제 납치되어 독일인 가정에서 양육되었던 저자가 자신의 정체성과 뿌리를 찾아가는 가슴 아픈 비극의 여정을 극도의 절제된 필치로 써 내려간 책입니다.

 

총통께 아이를 드리자! p144

 

저자 잉그리트는 책을 통해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에 의해 점령된 유고슬라비아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생후 9개월 된 아기였습니다. 그녀의 원래 이름은 '에리카 마트코'. 레벤스보른 프로젝트의 아이가 된 것이죠. 다소 부유한 독일인 가정에서 자신이 독일인으로 태어나 독일인 부부의 아이로만 알고 살아왔던 그녀는 열 살 무렵 우연한 기회에 자신이 위탁 양육된 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이후 그녀는 자신의 출생과 어린 시절 잃어버린 기억의 퍼즐 조각을 맞추기 위한 기나긴 여정을 시작합니다. 그러는 과정 중 레벤스보른 프로젝트라는 결코 믿을 수 없는 경악할만한 나치 우수 인종 프로그램의 숨겨진 내막을 알게 되죠. 나치 히틀러의 아이가 되어 잉그리트 폰 욀하펜이라는 독일인으로 살아왔던 지난 50여 년의 삶을 회고하며 잃어버린 뿌리에 대한 아픔, 정체성의 혼란이 가져다 준 슬픔, 모든 비극의 원흉인 나치 독일과 사실을 끝까지 무덤까지 가지고 간 그녀의 독일인 어머니에 대한 분노는 그녀가 진실을 찾아가는 여정의 대부분을 메우는 감정들이죠.

 

 

이 책은 한 사람의 뿌리를 찾아가는 회고록인 동시에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 독일에 의해 자행된 천인공노할 비극의 숨겨진 현장에 대한 역사고발서이기도 합니다. 아리아인의 어휘적 의미는 '존귀한 사람들'입니다. 이렇게 레벤스보른 프로젝트는 히틀러가 얼마나 인종과 혈통에 대해 사이코 패스적으로 집착했는지에 대해 보여줍니다. 또한 열등 종족의 청소라는 미명 하에 600만 명이 넘는 유대인 홀로코스트, 인종적 순결과 경제적 이유로 장애와 정신질환, 불치병을 앓는 자국민 8만 명을 안락사 시킨 이른바 T4 작전이 그것을 증명합니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한 사실은 레벤스보른이 우등 종족의 번식이라는 정반대의 개념으로 탄생했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레벤스보른 프로젝트는 어느 한쪽의 피는 더럽기에 죽여야 하고 또 다른 쪽의 피는 깨끗하기에 살려야 한다는 우생학적 모순과 극도의 광기 어린 인종적 오만함의 극치를 보여준 20세기 최대의 비극이었던 것이죠.

전후 수많은 유럽의 아이들이 나치에 의해 지워져버린 자신의 정체성과 뿌리로 인해 혼란스러운 삶을 살았습니다. 내가 누구이며 나의 진짜 부모는 누구인지에 대한 존재의 근원을 흔드는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난 것이죠. 마치 리뷰의 서두에서 말한 캄보디아의 집단 결혼으로 인해 태어난 아이들과 기존의 아이들, 집단 결혼의 당사자들이 얽히고설켜버린 가족 관계 안에서 느끼는 감정의 그것과 같다고 말할 수 있겠지요. 저자는 자신의 내장을 끊어놓는 것만 같이 고통스러웠던 뿌리를 찾는 지난한 여정의 끝에서 독자의 마음을 울리는 깊은 깨달음을 선사합니다. 오랜 세월 독일인으로 살아온 자신이 유고슬라비아에서 아직까지 생존한 자신의 혈육의 흔적을 만났을 때 느낀 감정은 반가움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는 것이죠. 오히려 그녀는 자신과 더 많은 시간을 '가족'이라는 끈으로 함께한 독일인 동생과의 관계에 더 큰 친밀감을 느끼는 자신을 보며 나치가 고수했던 피의 이데올로기를 무너뜨리는 깨달음을 말합니다. '피'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미치광이 한 사람이 수를 헤아릴 수 없는 사람들에게 끼친 말할 수 없는 역사적 비극의 현장 속에서 자신의 뿌리를 찾아가는 저자의 감정의 곡선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보는 이의 마음도 숙연해집니다. 저자는 자신이 레벤스보른 프로젝트의 아이로 키워졌지만 지금 자신의 삶은 결코 나치가 결정한 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님을 말합니다. 물리치료사로서 수많은 장애 아동의 삶을 치료하고 돌보는 지금의 잉그리트 폰 욀하펜의 삶은 그녀 자신이 선택한 것이라는 고백이 깊은 감동으로 다가옵니다. 나치는 그녀를 유전학적, 우생학적 순수 혈통의 시험관 속에서 규정하려 했지만 자신의 참된 정체성은 자신의 자유로운 의지의 선택의 결과였음을 고백하는 그녀의 용기에 박수를 보냅니다. 더불어 그녀는 이 여정의 끝에서 과거를 이해할 뿐 아니라 용서하는 법도 배워야 한다는 깨달음을 말하며 자신의 뿌리를 찾아 헤맨 15년의 기나긴 과거로의 여행의 마침표를 찍습니다.

지난 주말 영국에서 활약하고 있는 한국의 유명 축구 선수가 인종 차별을 당했습니다. 지난해에는 미국에서 비무장한 흑인이 백인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죽임을 당했습니다. 이것이 21세기 문명의 정점 한가운데서 벌어지고 있는 인종 차별과 혐오의 현주소입니다. 우리 사회 깊숙이 뿌리박혀 있는 광기 어린 인종 차별주의와 혐오의 망령은 깊기만 합니다. 인간을 인간 그 자체로 보는 것이 아니라 혈통과 피부색, 생김새로 재단하고 분류하는 이 오만스럽고 야비한 인종 차별의 역겨운 행태는 언제쯤 막을 내릴까요? 저자 잉그리트가 말한 그대로 피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더 똑똑한 인종도 없고 더 멍청한 인종도 없습니다. 그것은 개별 민족성의 차이일 뿐 그것을 그렇게 분류하고 구분하는 관점 자체가 문제인 것이죠. 책은 뿌리를 찾는 모험으로 시작해 삶의 진정한 의미와 가치를 되새겨보는 결말로 끝맺습니다. 더불어 20세기 중반 제대로 미친 한 사이코패스 집단에 의해 자행된 유럽 역사의 비극은 차별과 혐오가 일상이 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크나큰 경종이 되어 돌아옵니다. 그리고 그 반향이 너무나 크기에 이 책을 집어 들고 읽을 독자들에게는 기나긴 심호흡이 요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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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수용소에서 (양장) - 빅터 프랭클의
빅터 프랭클 지음, 이시형 옮김 / 청아출판사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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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가능하면 매일 같이 면도를 하게. (중략)자네들이 살아남기를 바란다면 한가지 방법밖에는 없어. 일할 능력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거야. (중략)그러니까 늘 면도를 하고 똑바로 서서 걸어야 한다는 사실을 명심하게. p50

 

면도를 하고 뺨을 문질러서 혈색이 좋게 보이도록 해야지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처절하고 절박한 삶을 향한 의지가 위의 문장처럼 녹녹히 녹아져 있는 글도 없을 겁니다. 위의 글은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에 의해 인간 도살장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수감 생활을 하며 그 참혹함의 상황을 지극히 담담하고 절제된 필치로 기록하여 전 세계 독자들의 관심과 호응을 이끌어 낸 베스트셀러, '빅터 프랭클' 박사의 <죽음의 수용소에서>에 나오는 한 대목입니다. 저자는 이곳에서 3년의 시간을 보내며 시시각각 다가오는 죽음의 공포 속에 보이는 인간들의 삶을 향한 다양한 생각과 의지, 심리적 반응을 자신의 경험담과 적절히 혼합하여 한편의 훌륭한 정신심리학 보고서를 완성했습니다. 인간이 인간에게 저지를 수 있는 행위 중 인류 역사상 최악이라 불리는 나치 홀로코스트의 중심부에서 벌어진 지옥의 참상을 오롯이 겪어내며 그 안에서 발견한 삶과 죽음의 의미를 기록한 책의 내용이 일상을 살아가는 독자들에게는 무척 충격적이면서도 생경하지 않을 수 없지요.

정신과 의사인 저자는 아우슈비츠라는 지옥에서 사람들이 보인 감정의 굴곡진 변화를 정신심리학적 단계에 맞춰 설명합니다. 나치 친위대 장교의 손가락이 오른쪽이면 작업장행이고, 왼쪽이면 가스실행이라는 삶의 죽음의 갈림길에서 사람들이 보이는 감정과 반응에 대해 저자가 자신만의 다소 직업적으로 느껴지는 사유를 행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 더 놀라울 따름이죠. 아무튼 아우슈비츠에 도착한 사람들의 첫 번째 반응은 믿고 싶지 않은 현실에 대한 충격입니다.

 

이 세상에는 사람의 이성을 잃게 만드는 일이 있는가 하면 더 이상 잃을 이성이 없게 만드는 일도 있다.

고트홀드 레싱, p51

 

이후 며칠이 지나면 사람들에게 정신적인 무감각의 단계가 찾아온다고 합니다. 눈앞에서 감시병들에 의해 동료 수감자가 참혹한 린치를 당하는 장면을 목격해도 어떠한 혐오감이나 공포, 동정심도 느낄 수 없게 되는 상태인 것이죠. 저자 또한 두 시간 전에 본인과 이야기를 나누었던 동료가 눈앞에서 시체가 되어 끌려나가는 현장 속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먹던 수프를 맛있게 먹었다는 이해할 수 없는 경험을 나눕니다. 인간 정신의 무감각함이 가져다준 감정 둔화의 전형을 보여 준 것이죠.

 

그런데 저자는 지옥의 상황 속에서도 자신보다 더 연약한 동료에게 자신이 가진 빵 한 조각을 기꺼이 내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동료 수감자의 고혈을 뽑아 먹음으로써 자신의 안위만을 챙기는 돼지 같은 짐승들이 있었다는 기이한 사실을 이야기하며 조금 독특한 인간 이해를 밝힙니다. 즉, 수면과 식량부족, 죽음의 공포로 인한 환경이 수감자에게 특정한 행동을 유도할 수는 있지만 최종적으로 그 사람이 어떤 종류의 사람이되는 가의 문제는 결국 그 개인의 내면적인 선택의 결과이지 수용소라는 환경의 영향이 아니라는 점이죠. 이것은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많은 점을 시사합니다. 어린자녀를 끔찍하게 학대하고 죽음에 이르게 한 인면수심의 인간들도 결국은 그들의 내면이 살인마의 삶을 살기로 선택한 것이지 그들이 처한 환경의 영향은 아니라는 것이죠.

 

인간이 시련을 가져다 주는 상황을 변화시킬 수는 없다. 하지만 그에 대한 자신의 태도를 선택할 수는 있다. p233

 

 

또 한 가지 저자는 매일매일 죽음을 등에 업고 살아가는 수감자들 중 끝까지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발견되는 눈여겨볼 만한 사실은 사랑하는 대상에 대한 끊임없는 갈망과 자신의 삶에서 살아 남아야할 의미와 목적을 잊지 않았다는 매우 중요한 핵심을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이점이 바로 이 책의 나머지 2부와 3부의 내용을 이루는 로고테라피의 기본 개념입니다. 저자가 자신의 끔찍했던 수용소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연구의 결과를 도출해 낸 로고테라피는 미래에 환자가 이루어야 할 과제가 갖고 있는 의미에 초점을 맞춘다는 의미입니다. 지옥과 같은 아우슈비츠에서 도저히 살아나갈 수 없다는 절망 속에 자살을 선택하려는 사람들이 중도에 자살을 포기하는 이유도 바로 자신이 살아남아야 할 이유와 미래의 의미를 되새겼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일견 죽음에 이르는 병은 다름 아닌 '절망'이라고 말한 키에르케고르의 말이 생각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살아 돌아온 사람이 시련을 통해 얻은 가장 값진 체험은 모든 시련을 겪고 난 후, 이제 이 세상에서 신(神)이외에는 아무것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하는 경이로운 느낌을 갖게 된 것이다. p161

 

마침내 저자인 빅터 프랭클은 종전과 더불어 지옥에서 살아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이처럼 인류가 결코 직접 체험하기를 꺼리는 끔찍한 비극 속에서 또 다른 미래의 인류를 위한 지적 유산을 잉태하고 출산했습니다. 저자가 1부의 끝에 남긴 위의 문장들은 특별히 지금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깊은 통찰을 제공합니다. 지옥에서 생환한 아우슈비츠의 생존자들은 아마도 그들에게 주어진 남은 자유의 삶 속에서 정말 신(神) 이외에는 어떤 상황도, 어떤 사람도 두렵지 않은 삶을 살다 갔으리라 생각됩니다. 왜냐하면 아우슈비츠라는 생지옥을 경험하고 돌아온 사람들에게 사실 무엇이 두렵고, 어떤 인간들이 무서울 수 있을까요?

이 책은 죽음이라는 인간 실존이 맞부딪쳐야만 하는 궁극의 현실 앞에서 인간의 내면과 삶이 가진 진의를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전라의 모습으로 까발립니다. 그러나 저자의 진술이 결코 가볍거나 천박하지 않은 이유는 매일 자신을 기다리는 죽음의 문턱 앞에서 삶의 실존과 운명의 민낯을 그가 직접 체험했기 때문이죠. 죽음과 삶의 외나무다리 위에서 그에 대한 깊은 고민과 사유로서 탄생된 본서는 매우 큰 가치를 지닙니다.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는 대한민국의 현실 속에서 자신의 삶을 너무나 쉽게(?) 내던지는 사람들에게 이 책이 말하고 있는 '삶의 의미'에 대한 개념은 남다르게 다가옵니다. 저자가 본서를 통해 전하는 저작의 총체적인 메시지는 바로 살아야 할 이유와 의미가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이죠! 고난과 시련 앞에서 인간은 더 살고자 하는 생(生)에 대한 애착과 경향성을 가지는 존재임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살아야 할 이유와 목적이 없었기에 목을 매고 수용소의 고압전류 철조망에 몸을 던지는 사람들이 있었다고 하지만 그것은 그들에게 삶의 이유와 목적이 없었다는 것이 아니라 이유와 목적을 자신의 내면 안에서 발견하지 못했다고 표현하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삶과 죽음, 인생의 목적과 의미를 재조명해 볼 수 있었던 너무나 훌륭한 베스트 스테디셀러 <죽음의 수용소에서>는 역사가 존재하는 한 잊히지 않을 나치 홀로코스트와 함께 인류의 탁월한 지적 유산으로 기억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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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라와 태양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홍한별 옮김 / 민음사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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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가을 지인과 함께 방문한 어느 음식점에서 재미있는 경험을 했습니다. 음식을 주문한 후 한참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갑자기 멜로디 소리가 나면서 정체불명의 물체가 음식을 가져다주는 것이었죠. 자세히 보니 서빙을 하는 로봇이었습니다. 그야말로 인공지능 로봇이 인간의 영역을 빠르게 대체해 나갈 수 있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죠! 오래전 영화에서나 보았던 미래의 모습이 현실화되고 있음에 출처를 알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이 스쳐 지나갑니다. 며칠 전 인공지능 로봇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역할을 어디까지 감당할 수 있을까 하는 작은 의문에 답하는 듯한 소설 한 권을 만났습니다. 거장 '가즈오 이시구로'의 신작 <클라라와 태양>은 바로 이와 같은 질문에 개연성 있는 답변으로 다가오는 저작이죠.

가까운 미래에 인류는 인공지능 로봇의 다양한 역할 수행을 극대화하는 과학기술의 비약적 발전을 이루어냅니다. 소설 속 주인공 '클라라'는 AF(Artificial Friend) 즉, 인공지능을 가진 로봇으로서 인간 아이들과 함께하며 그들의 친구가 되어주는 목적을 위해 탄생한 존재입니다. 소녀 로봇 클라라는 다른 AF들과는 달리 뛰어난 관찰력을 통해 인간의 감정을 파악하고 인간의 생각과 심지어는 외적 행동의 특징까지 그대로 모방해 낼 정도의 탁월한 지적 능력을 가졌습니다. 로봇 판매 대리점의 쇼윈도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의 모습과 그들이 보이는 행동 패턴, 바깥세상의 분위기를 그녀만이 가진 예민한 관찰력과 분석 능력으로 취합, 분석, 데이터화함으로써 다른 AF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독특한 내재적 능력을 소유한 것이죠. 어느 날 이러한 클라라만이 가진 고유의 능력과 아우라를 직감한 인간 소녀 '조시'는 클라라를 자신의 AF로 데려가길 원합니다.

다른 구매자에게 판매될 뻔한 위기(?)를 모면하고 지루한 기다림 끝에 드디어 조시와 클라라의 운명적인 만남과 동반이 시작됩니다. 조시의 집에서 함께 살며 그녀의 곁을 마치 수행비서와 같이 지키는 AF 클라라는 조시가 여느 아이들과는 다름을 알게 되는데 그것은 조시가 매우 병약하다는 것이었죠. 자신의 주인인 여린 심성을 가진 소녀 조시에 대한 AF 클라라의 마음은 로봇이 가질 수 없는 애틋함의 감정으로 표출됩니다. 그리고 이것은 자신이 조시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하고자 하는 강렬한 바램으로 이어지게 되죠. 클라라는 동력의 일정 부분을 태양광을 통해 얻는 로봇으로 설정되어 있습니다. 그렇기에 클라라에게 태양은 자신의 삶을 유지시켜주는 생명의 근원으로서 에너지원이자 때로는 신적 존재로서 숭앙의 대상이기도 합니다.

아픈 조시를 위해 클라라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이라고는 근교에 있는 헛간을 찾아가 그곳에서 지는 해를 바라보며 조시의 병을 낫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하는 일과 공사장에서 매연을 만들어냄으로써 햇빛을 가리는 건설 장비의 파괴라는 조금은 엉뚱한 시도들로 표현됩니다. 그러나 클라라의 조시를 향한 사랑과 어떻게든 그녀의 병이 나아져서 건강하게 되기만을 바라는 마음과는 달리 조시의 엄마가 가진 생각과 계획은 이야기의 결말을 예상치 못하도록 이끌어가는데요...

 

 

저자 가즈오 이시구로가 거장이라 불리는 이유를 알게 해 준 책입니다. 저자는 인공지능 로봇과 병약한 인간 소녀와의 운명적 조우를 통해 현대인들의 인간성 상실에 대한 민낯을 우회하듯 꼬집습니다. 서로를 죽고 죽이는 패륜과 광기의 현장, 인간성 말살의 현주소를 되짚으며 인간이라면 놓치지 말아야 할 타자에 대한 사랑과 애정의 중요성을 저자만이 가진 과학적 상상력이라는 레토릭을 통해 훌륭하게 그려낸 것이죠. 그리고 현대 문명 속 AF 클라라는 이러한 작가의 메시지를 바르고 정확하게 투영해 낸 탁월한 문학적 소재가 되어 준 것이고요. 우리는 메마르고 건조한 현대인들의 일상 속에서 계산기를 두드리지 않은 채 누군가와 따뜻한 교분을 쌓고 서로의 정을 나눈다는 발상 자체가 넌센스인 세상을 살아갑니다. 그리고 저자는 소설을 통해 바로 이 부분을 정확히 건드려줍니다.

 

어쩌면 인간은 전부 외로운 것 같아요. 적어도 잠재적으로는요. p379

 

위의 클라라의 말을 통해 알 수 있듯 저자는 누군가에게 사랑과 위로를 받으며 용납 받고 싶지만 그 누구에게도 받아들여질 수 없는 현대인들의 근원을 알 수 없는 극심한 고독과 존재의 외로움을 명확히 직시했습니다. 인정하고 싶지 않기에 숨길 뿐 인간은 잠재적으로는 누구나 외로운 존재인 것이죠. 또한 저자는 인간이 만들어 낸 기계 문명의 부산물을 통해 피폐해진 인간 사회의 환부를 어루만지는 모순의 극치를 보입니다. 소설 속 과학기술의 총아로 대표되는 AF 클라라는 인간 소녀 조시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헌신합니다. 그렇기에 독자들로 하여금 차가운 기계 부속품으로 가득 찼을 클라라의 가슴 안에 따뜻한 심장이 뛰고 있을 것만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죠. 따스한 물과 피가 흐르는 인간조차도 같은 인간에게 줄 수 없는 지고지순한 사랑을 차가운 로봇이 기꺼이 내어줍니다. 개인적으로 이 부분에서 작가의 천재성에 탄식하며 온몸에 닭살이 돋는 듯한 소름을 경험합니다.

더불어 마지막 책장을 덮으며 작가는 왜 책의 제목을 '클라라와 태양'이라고 지었을까라는 의문이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책의 내용을 상기하는 중 태양이 의미하는 메타포를 깨달았을 때 입에서 외마디 신음소리가 흘러나옵니다. 본서의 초반, 매장 진열대에서 햇살을 받아들이는 클라라에게 다른 소년 AF가 욕심이 많다고 꾸중하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AF 클라라에게 태양이 의미하는 바는 로봇의 기능과 개체를 유지시켜주는 에너지원, 즉 생명과 같은 존재인 것이죠. 클라라는 이렇게 태양의 햇살을 갈망합니다. 그러나 소녀 조시를 만난 후 클라라의 사랑의 대상은 더 이상 햇살을 내려주는 물리적 태양이 아닌 자신의 주인으로서의 소녀 조시 자체였던 것이죠. 조시만이 자신을 AF로서 존재하게 만드는 유일하면서도 근원적인 이유로서의 태양이 된 것입니다. 이렇듯 클라라는 태양을 갈망하며 사랑했던 것과 같이 소녀 조시에게 자신의 대가를 바라지 않는 일방적 사랑을 보냅니다. 본서는 이처럼 기계와 인간이라는 조화되지 않을 것만 같은 상이한 존재의 간격을 부드럽고 아름다운 어울림의 필치로 가득 수놓은 명작입니다. 또한 현대 문명의 어두운 그늘과 인간의 본질을 정확히 꿰뚫는 세계와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와 철학적 통찰을 통해 작가의 문학적 내공을 느끼기에 충분한 수작이기도 하고요. 요즘과 같이 눈부신 햇살이 찬란한 때에 만나본다면 마음마저 따뜻해질 작품이 되지 않을까싶네요!

<출판사로부터의 서평 의뢰를 통해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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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맨도 응가를 한대 토이북 보물창고 15
파라곤 북스 지음, 마술연필 옮김 / 보물창고 / 2021년 4월
평점 :
절판


 

결혼, 임신, 출산, 육아의 모든 시간들은 각각의 스테이지를 클리어하듯 행하는 pc 게임의 그것과는 전혀 다른 세계입니다. 각각의 과정들이 통합적으로 연결되어 있기에 현재의 시간은 과거와 미래의 타임라인 위에서 서로에게 깊은 유기적 연관성을 가집니다. 그런 의미에서 육아의 시간도 마찬가지라고 느껴지네요. 출산 후 선잠을 자는 아이로 인해 항상 잠이 부족해서 다크서클이 무릎까지 내려왔던 시기를 통과하고 나면 이유식과 기저귀 탈피의 시간이 옵니다.

둘째 아이가 이제 기저귀를 떼야 하는 시기가 좀 지났는데 쉽사리 기저귀를 벗어버리지 못합니다. 쉬야는 용케도 아기 소변기에 보도록 습관을 들였지만 문제는 응가였습니다. 멋진 그림이 그려져있는 팬티를 사줬고 본인도 평소에 신나게 입고 생활하지만 희한하게도 응가가 마려울 때는 새 기저귀를 갈아입고서야 편하게 응가를 하는 모습을 보며 우리 부부는 첫째 아이 때와는 전혀 다른 상황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이런 난감한 상황을 타개해보고자 인터넷의 육아맘들이 올린 글들도 찾아보고 다양한 조언들을 들어봤지만 딱히 변화의 기미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는 와중에 이 책<슈퍼맨도 응가를 한대>를 만납니다.

이 책은 유아들의 독립적인 배변 훈련을 위해서 만들어진 작은 그림책입니다. 예쁜 일러스트레이션과 몇 장 되지 않는 짧은 스토리로 유아들의 흥미를 끌도록 기획되었네요. 책에서는 본인이 슈퍼맨이라고 여기는 기저귀를 찬 유아가 자신의 집 강아지와 함께 망토와 가면을 쓰고 등장합니다. 자기가 이제 새로운 일을 시도하려고 하는데 그것이 바로 변기에서 응가를 보는 일인 것이죠. 그러면서 슈퍼맨 형아(?)는 이 책을 보게 될 아이들에게 "너도 한번 해 보지 않을래?"라며 변기 사용을 살며시 권합니다. 그리고 슈퍼맨 형아는 자신의 변기 위에 앉습니다. 그러나 즉각적으로 별다른 반응이 없자 일어나서 다시 밖으로 놀러 나가려는 순간 또다시 반응이 오는 것을 느끼고서는 다시 앉아 열까지 숫자를 세며 응가에 성공합니다. 그리고 곧이어 기저귀와의 작별을 외치며 이 책을 읽는 유아 독자들에게 큰 형아 팬티를 입는 즐거움과 환희를 느껴보길 권고하네요.

 

 

재미있습니다. 유아들에게 응가를 성공하면 '큰 형아 팬티'를 입을 수 있다는 것이 마치 크나큰 명예의 훈장처럼 여겨지도록 적절한 보상기제로 설정되었죠. 일러스트레이션도 유아 독자들의 눈높이에 딱 맞습니다. 유아 그림책의 전형적인 특징인 두꺼운 하드보드 페이지와 선명한 컬러, 적은 글 밥 구성 등 모든 것이 완벽하게 구성된 배변 훈련 놀이북입니다. 책이 도착하고 둘째 아이에게 책을 보여주었습니다. 매우 좋아하고 즐거워하면서 몇 번을 읽어달라고 하네요. 책의 내용을 보며 매우 흥미로워하지만 사실 책 한 번을 읽었다고 그동안 본인이 고집하고 있는 기저귀 배변의 습관이 한순간에 고쳐지기는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잘 타이르기도 하고 약간의 협박(?)도 해보고 본인이 좋아하는 선물을 사주겠다고 보상을 제시해보기도 했지만 이러한 모든 당근과 채찍의 방법이 별반 소용이 없습니다. 쉬야는 화장실에 설치해놓은 유아 소변기로 달려가지만 응가는 그렇지 못함을 보면서 아이가 가진 무엇인가 말 못 하는 고민이나 어려움이 있지는 않을까 생각해 보기도 합니다. 아이에게 어떠한 불편함이 있기에 유아 변기에 앉는 것이 어려움으로 다가오는 것임을 이해하면서 아직은 좀 더 기다려보게 되네요. 아무튼 <슈퍼맨도 응가를 한대>는 아이의 흥미를 끄는 데 있어서는 일단 1차적으로 합격을 했습니다. 흥미 없는 책들은 별로 쳐다보지도 않는 아이들의 특성상 아이가 흥미를 가졌다는 것 자체로 이 책에 좋은 점수를 주고 싶어요. 아이의 시선과 손이 쉽게 닿는 곳에 이 책을 잘 꽂아 두었습니다. 언제든 본인 스스로가 책을 꺼내서 펼쳐볼 수 있도록 말이죠. 어차피 글을 읽을 줄은 모르고 그림으로 메시지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유아들의 특성상 예쁜 일러스트레이션을 자주 접하면서 슈퍼맨 형아가 변기에 앉아 있는 모습을 통해 전달하는 메시지를 '역하지각'의 그것과 같이 인지하기를 바랄 뿐이죠.

리뷰의 서두에서도 이야기했듯이 육아는 정말 하나의 단계를 끝냈다고 보너스 점수가 주어지고 새로운 파워를 얻어 다음 단계의 미션을 수행하는 pc 게임의 성격과는 전혀 다름을 뼈저리게 느끼는 요즘입니다. 출산과 육아는 모든 단계가 통합적으로 인과관계 속에서 서로에게 알게 모르게 영향을 주고받으며 한 아이의 습관과 개성, 정체성이 형성되어 가는 일종의 예술입니다. 고통과 인고의 시간을 거쳐 하나의 훌륭한 예술작품이 탄생되듯 아이를 믿고 어느 정도 인내하고 기다려주는 시간이 더 필요한 것 같습니다. 일단 아이가 이 책에 대한 흥미를 가졌기에 언젠가는 책 속 슈퍼맨 형아가 하듯이 변기에 앉아 슈퍼 변기 파워를 외치며 기저귀 없이 볼 일 보는 인간의 가장 원초적 욕구로서의 카타르시스를 만끽할 순간을 기대하면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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