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듦의 신학 - 당신의 소명을 재구성하라
폴 스티븐스 지음, 박일귀 옮김 / 도서출판CUP(씨유피)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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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의 마지막 날 교회 송구영신예배에 참석했다. 자정이 다 되어가고, 드디어 2019년을 맞이하는 마지막 10초의 카운트다운을 함께 소리내어 연호한 후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서로 악수를 하고, 포옹을 하며 새해 인사와 덕담을 나누는 진풍경이 펼쳐진다. 나에게도 몇몇 사람들이 악수를 청하고, 인사를 건네기에 얼떨결에 함께 인사를 나누기는 했지만 예년과 달리 나는 이 순간이 뭐가 그렇게 기쁘고 좋은지 모르겠다. 어떻게 생각하면 나이 한살 더 먹은건데 그게 그렇게 축하할만한 일인가? 나이를 먹는 다는 것은 엄밀히 말하면 우리 모두가 점점 더 죽음에 가까워 간다는 의미가 아닐까? 어차피 인간은 모태에서 태어남과 동시에 죽음을 향해 가는 존재들이다. 요람을 즐김과 동시에 무덤을 향해 가는 인간의 실존적 모순을 보며 나이를 먹는다는 사실에 대한 또 하나의 깨달음을 움켜쥔다.

초고령화 사회로의 진입이 예전 여타 선진국들의 진입시기보다 훨씬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다고 하는 한국 사회에서 이제 노인문제는 단지 우리집에 노인이 없기에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치부해버리기에는 결코 가볍지 않은 이슈가 되었다. 답보 상태의 출산율은 향후 노인인구를 부양해야 할 사회 경제인구의 감소를 의미하기에 국가 존립 자체의 위기설까지 나올정도로 노인 인구의 증가는 그야말로 지금 우리 한국 사회의 전반적인 사회문제가 되어버린지 오래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연말에 만나게 된 본서 <나이듦의 신학>은 평생을 목회자와 신학자로 살았던 저자 폴 스티븐스가 나이가 들어가는 것의 진정한 의미를 신학적 성찰을 통해 담담한 필치로 써내려간 저작이다. 소명, 영성, 유산이라는 세 가지 핵심주제를 나이듦과 연관시켜서 설명하는 본서의 내용이 의외로 흥미롭다. 나이가 들고 노년에 접어들게 될 때 이 사회는 은퇴라는 이름표를 노인들의 앞가슴에 강력하게 부착시켜준다. 더 이상 사회로부터 무가치함과 불필요함의 대상으로 분류되어 버리는 것과 같은 이러한 모습은 은퇴라는 딱지 앞에서 대부분의 노인들이 겪는 소외감이며 아픔이다. 그러나 저자는 나이듦의 결과로 수반되는 은퇴라는 매력적이지 않은 주제를 밀어내고 한가지 혁신적인 성경의 가치를 제시한다. 그것은 바로 다름아닌 책의 첫 장에 등장하는 키워드인 '소명' 이다.

은퇴는 소명을 통해 끊임없이 행하여야 할 노동으로 우리를 이끈다. 저자는 은퇴를 재구성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소명에 기인한 노동임을 강조한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내 이웃을 섬기는 노동이야말로 우리를 은퇴라는 레드카드를 받고 피치 밖으로 퇴장시키려는 유무형의 요소들 앞에서 여전히 정력적으로 하나님의 나라와 이웃을 섬기는 현역 선수로서의 삶을 유지토록 돕는다.

스위스의 종교개혁가 기욤 파렐은 너무나 잘 알려져 있는 젊은 청년 존 칼빈에게 함께 종교개혁의 과업에 동참할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선배 종교개혁가 기욤 파렐의 이 제안에 존 칼빈은 단지 자신은 조용히 쉬고 싶다는 의견을 피력하며 종교개혁 동참을 거절한다. 그러한 칼빈에게 파렐은 "하나님의 종에게 죽음 외에는 쉼이 없다. 정녕 너가 그렇게 쉬고 싶다면 나는 너의 그 휴식에 하나님의 저주가 임하기를 바란다" 라는 독설을 퍼부었고, 이 이야기를 들은 청년 칼빈은 파렐 앞에서 어린아이와 같이 펑펑 울며 종교개혁에 동참할 것을 다짐하고, 인류 역사를 뒤바꾸어 놓는 위대한 종교개혁의 과업을 이룬다. 그렇다. 소명은 은퇴를 무색케한다. 참된 그리스도인들에게 죽음 외에는 쉼이 없고, 은퇴란 없다. 단지 하나님께로부터 온 거룩한 부르심, 즉 소명만이 있을 뿐이다.

2장을 통해 독자는 나이를 먹으면 자신의 삶의 오랜 경험과 경륜으로 인해 고집이 세지고, 욕심이 많아지며 자기 주장이 강해짐과 동시에 완고함으로서 변화되기 어렵고, 젊은이들에게 잔소리에 가까운 말들을 끊임없이 쏟아내며 조그만 일에도 역정을 내는 등의 소위 이 책에서 말하는 노년의 악덕스러운 모습을 발견한다. 그러나 반면에 독자는 책을 통해 노년의 미덕 또한 분명 존재함을 보게된다. 겸손과 절제, 인내의 덕목을 통해 노인들은 미숙한 젊은이들의 언행을 너그러움과 관대함으로 참아줄 수 있으며 어른으로서의 진정한 권위들을 세워간다. 점점 더 말수가 줄어들며 하고 싶은 이야기보다는 들어줄 수 있는 귀의 예민성이 발달하게 되는 것은 노년 세대가 가질 수 있는 미덕 중의 가장 큰 덕목이다. 삶의 갖은 풍파를 다 겪은 인생의 선배들로서 믿음, 소망, 사랑의 미덕이 그의 삶 속에서 마치 끓이면 끓일수록 우러져 나오는 진국과 같이 흘러나온다는 사실은 나이듦의 가치를 드높인다.

본서를 통해 가장 인상깊게 다가왔던 내용은 바로 죽음을 준비하는 것에 관한 저자의 깊은 통찰이다.

키케로는 이렇게 말했다. "여행자가 여행이 끝날 무렵 짐을 늘리는 것만큼 터무니 없는 일이 또 있는가?" p45

"청교도들은 나이가 드는 것에 사회적 종교적 의미를 많이 부여한다. 그들은 가장 나이가 많은 사람에게도 삶의 매순간을 소중히 여기면서도 인생의 권리를 포기하는 준비를 하도록 격려한다." p202

인생에 대한 자신의 소유와 권리를 점차 포기해가는 것. 눈에 보이는 재산의 사이즈를 줄여가는 것 뿐만 아니라 자신의 정과 욕심, 인생을 향한 기대와 같은 우리를 이 땅의 것에 소망을 품고, 미련갖도록 만드는 모든 유무형의 가치와 권리를 과감하게 포기해가는 삶의 연습이 필요하다.

책을 덮으며 존경하는 멘토 목사님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자신은 지금의 노년을 바라보는 이 시간을 20대 풋풋한 젊음의 시간과 맞바꿀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고 해도 결코 바꾸고 싶은 마음이 없다고 말한다. 노년만이 가질 수 있는 그 백발의 면류관이 지닌 깊은 삶의 경륜과 지혜는 젊은이들은 결코 깨달을 수 없고, 가질 수 없는 어떠한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고귀한 가치를 지니기에 본인은 지금의 나이듦을 사랑한다는 말씀이었다. 새해가 되고 나도 나이를 한살 먹으며 이 말씀의 의미를 조금이나마 이해하며 동의하게 된다.

나이를 먹어가는 것은 이제 사회로부터 밀려나서 뒷방 늙은이 신세로의 전락이 아닌 소명의 성취와 완성이라는 더 큰 가치로의 전향을 의미한다. 또한 믿음과 소망, 사랑이라는 경건의 진작, 노인들만이 가진 그 헤아릴 수 없는 경륜과 지혜를 다음 세대에게 유산으로 전수하는 것이라는 사실에 대한 깨달음은 본서를 통해 독자가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메시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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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읽는 철학 - 꼭 알아야 할 현대철학자 50인
이순성 지음 / 마리서사(마리書舍)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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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책]

철학하면 무엇인가 심오하고 복잡하며 머리가 깨질 것만 같이 난해한 이미지를 떠올리게 된다. 사실 틀린 생각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평범한 사람들에게 있어서 철학이라는 학문 자체가 가진 고유의 느낌은 쉽지 않다는 것이고, 철학이 가진 학문적 아우라가 여타 다른 학문들이 가진 느낌과는 차원이 다르기에 접근하는 것이 수월한 학문의 분야는 아니다. 그리고 사실 오늘 하루 벌어 내일 하루를 살아가야 하는 일반적인 사람들에게 있어서 형이상학적이고 무형의 의미를 다루는 철학은 매력이 없을 뿐더러 실제적이지 않기에 관심 밖의 주제이다.

이 책의 저자 이순성 박사는 책의 서문에서 왜 우리가 서양철학에 특별히 현대철학에 관심을 두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현대의 정치가 왜 이런가? 현대인들은 왜 이렇게 생각하고 살아가는가? 현대의 문화는 왜 이렇지? 와 같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우리를 둘러싼 삶의 환경이 가지는 의미를 파악하는 데 있어서 현대철학을 아는 것만큼 더 볼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책은 우리가 학창시절 익히 들어 알고 있는 소크라테스나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같은 고대 희랍의 철학자나 그 외 중세, 근대를 대표하는 철학자들의 이름은 등장하지 않는다. 본서의 포커스는 19세기부터 20세기에 걸쳐 소위 현대의 철학사조를 이끌었고, 또한 이끌고 있는 현대철학과 철학자들을 소개하는 것에 중점을 둔다. 개인적으로 풍문으로 이름을 많이 들어봤던 철학자들이 적지 않게 등장해서 생소한 언어들이 제법 가득한 책을 읽는 내내 반가움으로 다가왔다. 마치 나 혼자 전혀 낯선 어느 모임에 갔는데 그곳에서 동네 친구를 만난 것과 같은 낯설음 속에서의 반가움이랄까!

 

 

현상학과 실존주의의 대표격인 19세기 말 독일의 철학자 후설부터 야스퍼스, 하이데거와 같은 실존주의 철학자들을 다루는 1장부터 2장 비판이론의 푸랑크푸르트 학파를 통해서 <자유로부터의 도피>의 저자 에릭 프롬을 만난다. 구조주의와 포스트구조주의를 설명하는 3장을 통해 <슬픈 열대>의 저자 레비스트로스, 현대신화론의 롤랑 바르트, 모든 규정과 틀에 대한 저항과 해체를 선보인 포스트모더니즘, 정치철학의 5장에서는 공동체에서의 정의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 베스트셀러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 마이클 샌델, 분석철학을 설명하는 6장을 통해 그림이론의 비트겐슈타인 그리고 마지막 7장에서는 현대의 가장 큰 화두 가운데 하나인 페미니즘, 환경철학, 생명윤리가 다루어지고 있다.

근대 서구 문명사회는 인간 이성에 대한 무한신뢰의 사고, 사회구조, 유토피아적 세계관에 대한 동경이 한 시대를 주름잡았던 시대 사조이며 일종의 정신적 흐름이었지만 1, 2차 세계대전을 통해 인간이 인두겁을 쓰고 저지를 수 있는 끔찍한 전쟁 범죄들의 민낯을 통해 인간이 어디까지 같은 인간에게 잔인해 질 수 있으며 짐승과 같은 야만의 수준으로 치달을 수 있는지를 여과없이 목격함으로서 인간 이성에 대한 무한한 희망은 산산조각 나버렸고, 이러한 정신적 공항 상태 가운데서 등장한 것이 바로 인간 실존의 문제를 이야기한 실존주의 철학이었다.

우리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에 의한 600만 유대인 대학살을 잘 알고 있다. 당시 나치는 강제수용소로 끌려온 유대인들을 학살해야하는 상황에서 독일군 병사들이 무기를 들지 않은 유대인들을 일방적으로 죽여야하는 이 끔찍한 딜레마 속에 주저하며 망설임을 보이자 한가지 묘책(?)을 강구한다. 그것은 유대인들을 인간으로 보이지 않게끔 만들면 된다는 생각!

수만명의 유대인 수용시설에 화장실을 단 1개 만들어놓고,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는 시간은 고작 10분. 이러한 상황이 되자 다수의 유대인들은 변을 보지 못하는 배변장애에 어려움을 겪었고, 얼마 후 수용소 내부는 화장실을 가지 못하는 사람들의 변과 오물로 넘쳐나는 사태가 벌어진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유대인들은 똥 속에서 마치 돼지와 같은 천한 짐승과 같은 모습으로 변하기 시작했고, 이러한 유대인들에 대해 나치 독일군 장교들은 사병들에게 이제 이들은 보는 바와 같이 인간이 아닌 더럽고 냄새나는 짐승들일 뿐이라고 세뇌시키며 학살의 분위기를 자연스럽게 조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하루에 한컵씩 배급되는 물을 가지고 반은 식수로 반은 세수와 면도를 하기 위한 물로 사용하며 그 오물 가운데서도 자신을 깨끗함과 청결함으로 지켰던 사람들은 이상하게도 생명이 계속 연장되는 일이 생긴다. 그리고 수용소 벽면에는 이러한 글귀가 새겨진다. "살고 싶으면 세수를 하라!"

무엇을 말하는가? 인간 실존의 적나라함을 보여주는 예화이다. 인간이 실재 존재하는 자신의 존재 자체를 망각해버릴 때 인간은 동물로 전락해버린다. 그러나 자신이 인간임을 잊지 않고 끊임없이 존재의 몸부림을 행할 때 인간은 비로소 참된 인간이 될 수 있다. 오늘도 우리는 수 많은 생각과 선택의 순간 속에서 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 선택하고, 선택하며 또 선택하는 삶을 살아간다. 그 선택의 결과를 먹는 것은 우리 자신이다.

철학은 이렇게 우리가 단지 먹고 살기 위해서 발버둥치는 삶의 현실 속에서 우리에게 인간다움이 무엇인지를 깨닫도록 독려하는 매우 귀중한 도구이며 우리의 인간다움의 갈길을 가르쳐주는 이정표이다. 비단 19세기 말부터 20세기까지의 실존주의 철학 뿐 아니라 본서를 통해 독자는 다양한 현대철학의 사조들을 그나마 쉽게 접하고 이해할 수 있다. 책 자체가 20세기 현대철학의 가장 중요한 철학 사조의 핵심과 철학자들을 컴팩트하게 다루고 있기에 철학에 대해 지레 겁먹은 독자라면 본서를 먼저 읽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오죽하면 본서를 소개하는 문구가 '가장 중요한 것만 남긴 가벼운 철학책!' 이겠는가? 물론 내용은 절대 가볍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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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건으로 읽는 세계사 - 세계사에서 포착한 물건들의 파란만장한 연대기 테마로 읽는 역사 1
미야자키 마사카츠 지음, 박현아 옮김 / 현대지성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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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주말마다 아이들을 데리고 가족과 함께 장을 보기위해 <트0이0스>라는 대형 창고형 매장에 가곤 한다. 다들 많이 이용하고 있는 <코0트0>와 같은 개념의 대형 쇼핑매장인데 갈때마다 매장 안에 다양한 종류와 수 많은 물량의 물건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것을 보며 "와! 이 많은 물건들이 사람들에게 모두 다 팔려나가는 거겠지?"라고 내심 놀라움을 표현한다. 그러나 정작 셀 수 없이 많은 먹거리와 매대를 가득 채운 각종 생활 용품들의 진열된 모습을 보며 저 물건이 어떻게 탄생했고, 어떻게 지금의 우리가 먹게 되었으며 사용하게 되었는가에 대한 깊이 있는 생각은 한번도 해본적이 없기에 본서 <물건으로 읽는 세계사>라는 책 제목은 나의 독서욕을 제대로 자극했다.

저자는 책을 통해 인류 문명의 탄생 시점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인류 역사와 그 궤를 같이하며 탄생한 기념비적인 37개 유무형의 물건에 대한 소위 사물 바이오그래피를 작성한다. 인류 문명의 발원지인 4대강 유역을 배경으로 탄생한 수로와 제방, 문자, 도장, 달력, 도로 등은 도시의 출현과 복잡한 사회의 커뮤니케이션 발달, 사회의 질서유지 등의 필요를 충족시켰다. 이후 유목민들의 주무대였던 대초원의 시대를 통해 동서 양대 문명의 교류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는데 대초원 유목민들에게 가장 중요했던 아이템은 단연 사막에서 그들의 주요 교통수단으로 사용되었던 단봉낙타의 출현이었다. 또한 화약을 통해 전쟁술의 비약적 발전이 이루어졌고, 말을 타는 유목민들에게 기능적인 장신구였던 벨트와 의복인 바지의 탄생 스토리 또한 흥미롭다. 더불어 이슬람 지역으로부터의 커피와 위스키의 유입은 유럽의 기호, 음료 문화에 역사적 변화를 가져온 이야기도 처음 듣게 되는 흥미로운 사실이다.

그밖에 대항해 시대와 산업혁명의 시대, 그리고 대량소비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인류 문명과 뗄래야 뗄 수 없는 매우 깊은 관계 속에서 탄생한 수 많은 물건들의 탄생배경과 비화는 독자로 하여금 책을 읽는 재미 속으로 빠져들게 만드는 힘이 있다. 특별히 나는 대항해 시대의 설탕과 산업시대의 금에 관한 내용을 매우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자본주의 경제를 일으킨 조미료로 설탕을 지목하는 저자의 설명을 통해 단맛의 뒤에 숨겨진 뼈아픈 역사를 발견하게 된다. 설탕의 원료가 되는 사탕수수를 재배하기 위해서 수 많은 노동력이 필요했고, 서구 열강은 흑인 노예들을 자신들의 탐욕을 채우기 위한 수단으로 선택한다. 지배와 피지배의 착취 구조 탄생의 중심에 우리가 즐겨 먹는 기호식품에 빠지지 않고 들어가는 설탕이 있다는 사실은 참으로 놀랄만한 이야기이다.

또한 산업시대 금에 대한 이야기 또한 눈길을 멈추게 한다. 어린 시절 경제에 대한 이해가 없을 때 돈은 무슨 기준으로 만들어지고, 유통되는가에 대한 의문이 항상 있었다. 나이를 먹고 금의 가치를 배우며 어린 시절 가졌던 그 질문의 답을 찾았으나 항상 먹을 수도 없는 일종의 광석인 금이 전 세계의 통화와 경제의 기준이 된다는 금본위제를 생각해내고 그것을 사회의 경제적 약속으로 삼게 된 발상은 정말 기발하다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흙이나 돌과같이 아무렇게나 굴러다니고 얻을 수 있는 것은 돈의 가치가 없는 것이며 오직 찾기 어렵고 희소가치를 지닌 무엇인가가 필요했는데 그게 바로 금이었다는 사실.

37가지 인류 역사 속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 물건들의 탄생 비화가 소개되고 있지만 여기에서 언급되지 않은 또 다른 유무형의 물건들이 얼마나 많겠는가! 오늘도 우리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자명종 시계의 알람을 끄고, 스마트폰으로 밤새 나에게 온 메시지와 SNS의 알림을 확인한다. 각종 요리도구를 이용하여 음식을 만들어 아침식사를 하고, 수도꼭지를 틀고 세수를 하며 치약과 칫솔을 이용하여 양치질을 하고, 전기 면도기를 사용해 말끔하게 면도를 한 후 향긋한 스킨 로션을 피부에 아낌없이 도포한 후 준비된 셔츠와 바지 또는 치마를 입고 외투를 걸친 후 구두 또는 운동화를 신고 현관문을 열고 나서 자동차와 지하철 등을 이용하여 각자의 일터와 학교, 삶의 현장 속으로 흩어진다.

이렇듯 우리의 일상 속에서 알게 모르게 너무나 밀접히 연관된 수 많은 물건들에 둘러싸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있어서 유무형의 물건들이 가지는 가장 큰 특징은 바로 인간의 필요에 의해서 탄생되었다는 단 한가지의 공통적인 탄생 배경을 가진다는 점이다. 더불어 각 시대마다 새로운 물건들의 발명과 탄생을 통해 인류의 문화는 급격한 변화를 겪기도 했고, 기존 사회 체계의 획기적인 변혁과 발전을 이루기도 하며 새로운 역사의 한페이지를 끊임없이 기록하게 된다. 생기 없는 유무형의 물건들은 인류의 필요에 의해서 역사의 무대 정면에 등장했고, 간혹 그 필요가 사그라들거나 대체 물건의 발명등에 의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기를 반복했지만 결국 인류 역사라는 나무에 문명의 발전과 성장이라는 생명력있는 열매를 맺는 중요한 토양이 되었다는 사실 하나 만큼은 우리가 주목해보아야 할 대목이다.

210여페이지 짧막한 책의 마지막 덮개를 덮으며 내 주변에 흩어져 있는 물건 하나하나가 허투로 보이지 않는 작은 경험을 하게 된다. 당장 지금 내 앞에 놓여져 있는 <모00 153 검정 볼펜>이 나를 째려보고 있다. "내가 얼마나 깊은 역사와 스토리를 가지고 있는지 아느냐고?" 인류의 편의와 좀 더 안락하고 인간다운 삶을 위해서 탄생된 수 많은 유무형의 생명없는 물건들에게 깊은 경의를 표하는 오버액션을 취해본다. "고맙다! 너희들이 있어서 오늘도 내가 인간으로서 누릴 수 있는 당연하지만 당연하지 않았을 수도 있을 사치스러운 편의를 누리고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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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한 번쯤 다른그림찾기
큰그림 편집부 지음 / 도서출판 큰그림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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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어린이 만화 잡지의 대명사 보물섬이나 그외 학생 잡지 뒷편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놀이들 가운데 하나가 바로 숨은 그림찾기, 미로찾기 그리고 다른그림찾기 등이였다. 그중에서도 다른그림찾기는 후에 70~80세대들의 영원한 영혼의 고향, 꿈과 추억이 깃든 동네 오락실에서 다른 그림찾기 아이템으로 등장하게 되는데 보통 일본 계열의 소프트웨어가 대표적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재미있는 배경음악이 흘러나오고 옆에서는 초조하게 시간이 흘러가는데 눈을 아무리 크게 뜨고 쳐다보아도 양분된 두개의 동일하지만 어딘가 동일하지 않은 화면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다른 부분을 찾기 위해 진땀을 흘렸던 아련한 기억이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이런 재미있는 다른그림찾기 책 한권을 만났다. <누구나 한 번쯤 다른그림찾기>라는 제목에서 풍겨지듯이 다른그림찾기 또는 틀린그림찾기는 누구나 한 번쯤은 해보았을 게임이라는 뉘앙스가 물씬 풍기지 않는가?

매우 기대되는 마음을 가지고 책이 도착하기만을 기다렸고, 퇴근하여 책을 받아 둔 순간 벌써 우리집 7살 1호는 혼자서 한 두개의 미션을 클리어한 상태였다. 녀석! 제법인대! 역시 어릴적 동네 형들과 함께 88오락실에서 단련된 아빠의 유전자를 그대로 물려받았군!이라고 생각하며 오랜만에 아이와 즐거운 시간을 갖을 수 있었다.

책을 펼치는 순간 독자는 각 장마다 상하로 양분되어 있는 정말 똑같지만 어딘가 똑같지 않을 다양한 컨셉의 그림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각 미션마다 페이지 아래에는 해당되는 미션의 난이도, 완수해야 할 시간, 다른그림의 갯수가 적혀있고, 책의 맨 뒷쪽에는 역시 동아전과, 표준전과와 같이 모범답안이 친절하게 수록되어 있기에 독자는 재미있게 미션을 수행하고 해답을 맞춰볼 수 있다.

 

 

상기 사진은 우리집 1호와 내가 직접 미션을 클리어한 장면이다. 주방 곳곳에 숨어있는 다른그림을 누가 더 빨리 찾는지 시합을 했는데 정말 눈을 크게 뜨고 찾아야지만 찾을 수 있는 것도 있고, 그냥 스쳐 지나가며 찾을 수 있는 부분도 있기에 크게 긴장하지 않아도 된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서로 더 많이 찾겠다는 열심이 급기야는 과열 양상으로 치달아서 책을 혼자 독점하다시피하여 뒷편의 해답을 대놓고 열어보는 1호의 반칙성 플레이를 보며 김이 빠지기도 했지만 어느새 어린 시절 산수 문제를 풀다가 막히면 제 풀에 못이겨 뒷편의 모범답안을 흘낏 들쳐보았던 나의 어린 시절이 떠올라 실소를 감추지 못한다. 어떻게 내 새끼 아니랄까봐 그런 것까지 닮았냐!

아무튼 TV와 영상매체에 길들여진 요즘 세대의 아이들에게 본서는 이미 오락실의 게임으로도 등장했지만 책으로서의 아날로그적 감성을 깨어주는데 안성맞춤이다. 또 한가지 책이 가진 장점은 고도의 집중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는 것. 물론 우리집 1호처럼 진득하게 끝까지 남은 한개의 다른그림을 찾기 위해서 인내력과 집중력을 발휘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어디 이 세상 모든 아이들이 우리집 1호와 같겠는가? 써놓고 보니 내 새끼 디스구나!

부쩍 일찍 찾아온 것만 같은 추운 겨울밤, 다른그림찾기 워크북 한권으로 아이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면야 그것이 집중력 향상에 도움이 되든 그렇지 않든 상관없다. 단지 워크북 한권을 통한 가족의 행복이라는 더 큰 보상으로 족하기에 그렇다. 시간 안에 다 못찾아도 되고 상대방보다 좀 못찾으면 어떻고, 중간에 해답을 보면 어떠랴! 살아가는 데에 아무 지장 없다. 동아전과, 표준전과 해답을 수시로 들춰보며 88오락실에서 저녁 늦게까지 갤러그와 너구리 오락에 빠져있다가 엄마에게 뒷덜미 잡혀 끌려갔던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지금 잘 살고 있는 내 자신이 산 증인이다. 오늘 저녁에는 아이와 함께 나머지 몇장의 미션이나 완료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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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백질의 일생 - 탄생에서 죽음까지, 생명 활동의 무대에서 펼쳐지는 은밀하고 역동적인 드라마
나가타 가즈히로 지음, 위정훈 옮김, 강석기 감수 / 파피에(딱정벌레)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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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품절


 

 

근래들어 아침마다 일어나서 나도 모르게 습관적인 행동 하나를 하곤한다. 욕실에 들어가 거울을 빤히 쳐다보며 얼굴의 모공과 주름을 자세히 들여다보기도 하고, 머리를 쓸어 넘기며 부쩍 늘어난 흰머리를 제모 집게를 이용하여 몇가닥씩 뽑아내는 소소한 나만의 작업(?)시간을 보내고는 하는데 이럴 때마다 머리속에 떠오르는 생각은 "아! 나이를 먹으니 나의 세포들이 점차 죽어가는구나!" 라는 부인할 수 없는 현실에 대한 자각이다. 영원히 늙지 않고 생기발랄한 어린이의 모습으로 살았다는 동화 속 피터팬이나 죽지 않고 영생을 꿈꾸며 불로장생의 길을 찾았던 그 옛날 중국 진나라의 시황제가 있었지만 결국 그들은 모두 한낱 동화 속의 주인공이었으며 오래 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죽음을 피할 수 없었던 연약한 인간에 불과했다.

이러한 가운데 일본 세포 생리학의 권위자인 '나가타 가즈히로' 교수의 책 <단백질의 일생>을 접하게 된다. 인간의 몸은 약 60조개라는 믿기지 않는 숫자의 세포로 이루어져있다. 그리고 이 세포는 단백질이라는 매우 중요한 구성요소를 갖는다. 이 책은 이렇게 우리 몸의 세포를 이루는 단백질의 탄생, 성장, 수송, 죽음이라는 마치 인간의 일생과 비교되는 단백질의 활동 사이클을 기록한다. 중고교 시절 생물시간에 잠시 공부했던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있어서 세포, 핵, 소포체, 리소좀, 리보솜, 미토콘드리아 등의 용어는 크게 낯설지 않다. 그러나 조금만 깊이 들어가면(사실 깊이 들어가는 차원도 아니겠지만)세포, 단백질의 활동과 작용에 대해서 자세하게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은 아마 드물것이다.

단백질은 개체의 생명 유지를 위해서 에너지를 전달하고 질병을 예방하는 등의 우리 몸에 없어서는 안될 매우 중요한 역할을 감당한다. 반면 단백질의 이상 축적은 알츠하이머나 한때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광우병과 같은 몹쓸 질환 발생의 원인이 된다고도 하니 단백질의 이중적인 모습 또한 보게된다. 그러나 책을 읽다보면 단백질의 부정적인 영향보다는 단백질이 우리 몸에 기여하는 순기능적 요소가 더 많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특별히 나는 본서를 통해 단백질에 대한 2가지의 인상 깊은 내용을 읽을 수 있었다. 첫번째는 '분자 샤프롱'에 관한 내용이다. 샤프롱이라는 말은 프랑스어로 모자를 뜻하는 '샤포'에서 유래했는데 사교계에 데뷔하는 어린 아가씨를 무도회장에 데려다주고 대기실에서 기다리는 여성이 샤포를 쓰고 있었다는 데서 그 명칭을 가져왔다. 다른 단백질이 변성되지 않고 올바로 성장하여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분자 샤프롱이라는 단백질이 그 옆에서 보호자의 역할을 한다. 자신이 보호한 단백질이 건강하게 성장하게 되면 분자 샤프롱은 조용히 떨어져 나감으로써 자신의 소임을 완수하고 무대 뒷편으로 조용히 사라진다. 
마치 희랍신화에 나오는 멘토르가 자신의 친구 오디세우스의 아들을 후견인과 같이 보호하고 가르침으로써 멘토가 되어준 것이나 헬라시대 주인의 아들이 성장할 때까지 곁에서 가르치고, 보호하며 학교에 데려다주는 등의 일을 감당했던 노예로서의 몽학 선생을 떠올리게 된다.

우리 몸을 이루는 세포 안에서 벌어지는 작은 생명 활동 속에서 깊은 감동을 받게 된다. 다른 세포와 단백질들이 건강하게 자라서 자신의 제 기능을 올바로 감당할 수 있도록 도움으로써 개체 전체의 생명과 건강 유지를 위해 기꺼이 조연의 역할을 마다하지 않고 수행하는 분자 샤프롱이라는 작은 단백질의 헌신이 귀함을 느낀다. 자신만이 사람들의 모든 관심과 스포트 라이트를 받으려고 미친듯이 열망하기에 남을 옆에서 조용히 서포트하고, 다른 이들의 성공을 위해 아낌없이 자신을 내어주는 일의 가치가 퇴색되어져 가는 요즘 세대의 시대상이 떠올라 씁쓸함을 감출 수 없다.

두번째로는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읽게 된 세포의 죽음에 관한 내용이다. 세포의 죽음에는 고온, 독물, 영양부족, 외부로부터의 충격 등으로 세포막이 손상되어 세포가 죽는 이른바 괴사라고 불리는 네크로시스와 세포의 생리적인 조건하에서 세포가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기에 세포의 자살이라고 불리는 아포토시스가 있다. 네크로시스는 강제적인 타의의 의한 죽음이지만 나의 눈길을 끌었던 점은 바로 세포가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세포의 자살, 즉 아포토시스에 관한 내용이다.

책에는 자세히 설명되어지지 않았지만 얼마 전 존경하는 목사님의 설교를 통해 동일한 내용을 접하고 깊은 감동에 빠진 적이 있다. 세포의 죽음은 그냥 단순한 죽음이 아니라 개체를 유지하기 위한 피할 수 없는 과정 중의 하나이다. 기능을 다한 세포가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고 이 세포가 죽을 때 ATP라는 에너지를 발생하게 되는데 이 에너지는 주변의 다른 세포들이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일에 사용되어진다. 즉, 내가 죽어서 다른 주변의 세포들이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마지막 숭고한 사명을 다하고 세포는 자신의 최후를 맞이한다는 사실에 깊이 전율했다.

그러나 한가지 더 재미있는 사실은 세포 중에서도 자신의 죽음을 끝까지 거부하고 살아남기 위해서 다른 세포들을 공격하여 영양분을 빼앗고 추할 정도로 발악을 하며 몸부림치는 세포들이 존재하는 데 이러한 세포들이 바로 암세포들이다. 내가 죽기 싫어서 다른 주변의 세포들을 공격하여 마침내 비대한 몸짓으로 개체 전체를 죽음으로 내모는 지독한 이기주의와 끔찍한 탐욕으로 점철된 세포들의 모습을 보며 또 다시 내 주변의 이웃들의 삶은 아랑곳하지 않고, 오직 나와 내 가족만 잘 먹고 잘 살면 된다 생각하며 이웃들의 눈에서 피눈물 나게 만드는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며 떳떳하게 살아가는 연일 매스컴을 뜨겁게 달구는 낯짝 두꺼운 쓰레기같은 잉여 인간들의 모습이 오묘하게 오버랩된다.

몇주 전 천문학 관련 도서를 두 권 읽은 적이 있다. 인간의 제한된 언어로는 표현할 수 없는 광대하고 광막한 우주의 스케일에 숨이 막힐 것만 같은 책이 주는 카타르시스를 경함한 적이 있는데 본서의 저자는 책의 서두에서 인간의 몸을 작은 우주 즉, 마이크로 코스모스라고 표현한다. 정확한 표현인 것 같다. 작은 우주라 불리는 인간의 몸을 구성하는 60조개의 상상할 수 없는 세포와 그 세포를 구성하는 단백질의 신묘막측한 일생을 보고 있노라면 다시 한 번 조물주의 위대함을 겸손하게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저자는 세포 생물학과 생리학에서 보여지는 세포, 단백질의 기능과 역할, 활동의 모습을 우리 인간의 실제적인 삶에 적용하고 접목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고 밝힌다. 인정한다. 하지만 책을 통해 개체의 생명 활동 어느 하나에도 관여하지 않는 부분이 없는 단백질의 일생은 분명 우리 일상을 돌아볼 수 있게 만드는 가르침을 내포한다는 점에 대해서 만큼은 독자 스스로가 판단할 몫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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