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듦의 신학 - 당신의 소명을 재구성하라
폴 스티븐스 지음, 박일귀 옮김 / 도서출판CUP(씨유피)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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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의 마지막 날 교회 송구영신예배에 참석했다. 자정이 다 되어가고, 드디어 2019년을 맞이하는 마지막 10초의 카운트다운을 함께 소리내어 연호한 후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서로 악수를 하고, 포옹을 하며 새해 인사와 덕담을 나누는 진풍경이 펼쳐진다. 나에게도 몇몇 사람들이 악수를 청하고, 인사를 건네기에 얼떨결에 함께 인사를 나누기는 했지만 예년과 달리 나는 이 순간이 뭐가 그렇게 기쁘고 좋은지 모르겠다. 어떻게 생각하면 나이 한살 더 먹은건데 그게 그렇게 축하할만한 일인가? 나이를 먹는 다는 것은 엄밀히 말하면 우리 모두가 점점 더 죽음에 가까워 간다는 의미가 아닐까? 어차피 인간은 모태에서 태어남과 동시에 죽음을 향해 가는 존재들이다. 요람을 즐김과 동시에 무덤을 향해 가는 인간의 실존적 모순을 보며 나이를 먹는다는 사실에 대한 또 하나의 깨달음을 움켜쥔다.

초고령화 사회로의 진입이 예전 여타 선진국들의 진입시기보다 훨씬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다고 하는 한국 사회에서 이제 노인문제는 단지 우리집에 노인이 없기에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치부해버리기에는 결코 가볍지 않은 이슈가 되었다. 답보 상태의 출산율은 향후 노인인구를 부양해야 할 사회 경제인구의 감소를 의미하기에 국가 존립 자체의 위기설까지 나올정도로 노인 인구의 증가는 그야말로 지금 우리 한국 사회의 전반적인 사회문제가 되어버린지 오래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연말에 만나게 된 본서 <나이듦의 신학>은 평생을 목회자와 신학자로 살았던 저자 폴 스티븐스가 나이가 들어가는 것의 진정한 의미를 신학적 성찰을 통해 담담한 필치로 써내려간 저작이다. 소명, 영성, 유산이라는 세 가지 핵심주제를 나이듦과 연관시켜서 설명하는 본서의 내용이 의외로 흥미롭다. 나이가 들고 노년에 접어들게 될 때 이 사회는 은퇴라는 이름표를 노인들의 앞가슴에 강력하게 부착시켜준다. 더 이상 사회로부터 무가치함과 불필요함의 대상으로 분류되어 버리는 것과 같은 이러한 모습은 은퇴라는 딱지 앞에서 대부분의 노인들이 겪는 소외감이며 아픔이다. 그러나 저자는 나이듦의 결과로 수반되는 은퇴라는 매력적이지 않은 주제를 밀어내고 한가지 혁신적인 성경의 가치를 제시한다. 그것은 바로 다름아닌 책의 첫 장에 등장하는 키워드인 '소명' 이다.

은퇴는 소명을 통해 끊임없이 행하여야 할 노동으로 우리를 이끈다. 저자는 은퇴를 재구성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소명에 기인한 노동임을 강조한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내 이웃을 섬기는 노동이야말로 우리를 은퇴라는 레드카드를 받고 피치 밖으로 퇴장시키려는 유무형의 요소들 앞에서 여전히 정력적으로 하나님의 나라와 이웃을 섬기는 현역 선수로서의 삶을 유지토록 돕는다.

스위스의 종교개혁가 기욤 파렐은 너무나 잘 알려져 있는 젊은 청년 존 칼빈에게 함께 종교개혁의 과업에 동참할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선배 종교개혁가 기욤 파렐의 이 제안에 존 칼빈은 단지 자신은 조용히 쉬고 싶다는 의견을 피력하며 종교개혁 동참을 거절한다. 그러한 칼빈에게 파렐은 "하나님의 종에게 죽음 외에는 쉼이 없다. 정녕 너가 그렇게 쉬고 싶다면 나는 너의 그 휴식에 하나님의 저주가 임하기를 바란다" 라는 독설을 퍼부었고, 이 이야기를 들은 청년 칼빈은 파렐 앞에서 어린아이와 같이 펑펑 울며 종교개혁에 동참할 것을 다짐하고, 인류 역사를 뒤바꾸어 놓는 위대한 종교개혁의 과업을 이룬다. 그렇다. 소명은 은퇴를 무색케한다. 참된 그리스도인들에게 죽음 외에는 쉼이 없고, 은퇴란 없다. 단지 하나님께로부터 온 거룩한 부르심, 즉 소명만이 있을 뿐이다.

2장을 통해 독자는 나이를 먹으면 자신의 삶의 오랜 경험과 경륜으로 인해 고집이 세지고, 욕심이 많아지며 자기 주장이 강해짐과 동시에 완고함으로서 변화되기 어렵고, 젊은이들에게 잔소리에 가까운 말들을 끊임없이 쏟아내며 조그만 일에도 역정을 내는 등의 소위 이 책에서 말하는 노년의 악덕스러운 모습을 발견한다. 그러나 반면에 독자는 책을 통해 노년의 미덕 또한 분명 존재함을 보게된다. 겸손과 절제, 인내의 덕목을 통해 노인들은 미숙한 젊은이들의 언행을 너그러움과 관대함으로 참아줄 수 있으며 어른으로서의 진정한 권위들을 세워간다. 점점 더 말수가 줄어들며 하고 싶은 이야기보다는 들어줄 수 있는 귀의 예민성이 발달하게 되는 것은 노년 세대가 가질 수 있는 미덕 중의 가장 큰 덕목이다. 삶의 갖은 풍파를 다 겪은 인생의 선배들로서 믿음, 소망, 사랑의 미덕이 그의 삶 속에서 마치 끓이면 끓일수록 우러져 나오는 진국과 같이 흘러나온다는 사실은 나이듦의 가치를 드높인다.

본서를 통해 가장 인상깊게 다가왔던 내용은 바로 죽음을 준비하는 것에 관한 저자의 깊은 통찰이다.

키케로는 이렇게 말했다. "여행자가 여행이 끝날 무렵 짐을 늘리는 것만큼 터무니 없는 일이 또 있는가?" p45

"청교도들은 나이가 드는 것에 사회적 종교적 의미를 많이 부여한다. 그들은 가장 나이가 많은 사람에게도 삶의 매순간을 소중히 여기면서도 인생의 권리를 포기하는 준비를 하도록 격려한다." p202

인생에 대한 자신의 소유와 권리를 점차 포기해가는 것. 눈에 보이는 재산의 사이즈를 줄여가는 것 뿐만 아니라 자신의 정과 욕심, 인생을 향한 기대와 같은 우리를 이 땅의 것에 소망을 품고, 미련갖도록 만드는 모든 유무형의 가치와 권리를 과감하게 포기해가는 삶의 연습이 필요하다.

책을 덮으며 존경하는 멘토 목사님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자신은 지금의 노년을 바라보는 이 시간을 20대 풋풋한 젊음의 시간과 맞바꿀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고 해도 결코 바꾸고 싶은 마음이 없다고 말한다. 노년만이 가질 수 있는 그 백발의 면류관이 지닌 깊은 삶의 경륜과 지혜는 젊은이들은 결코 깨달을 수 없고, 가질 수 없는 어떠한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고귀한 가치를 지니기에 본인은 지금의 나이듦을 사랑한다는 말씀이었다. 새해가 되고 나도 나이를 한살 먹으며 이 말씀의 의미를 조금이나마 이해하며 동의하게 된다.

나이를 먹어가는 것은 이제 사회로부터 밀려나서 뒷방 늙은이 신세로의 전락이 아닌 소명의 성취와 완성이라는 더 큰 가치로의 전향을 의미한다. 또한 믿음과 소망, 사랑이라는 경건의 진작, 노인들만이 가진 그 헤아릴 수 없는 경륜과 지혜를 다음 세대에게 유산으로 전수하는 것이라는 사실에 대한 깨달음은 본서를 통해 독자가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메시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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