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네, 정말 그 길을 가려나
김남준 지음 / 생명의말씀사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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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인 개신교 교단 신학대학원 두 곳의 입학 경쟁률이 2:1이 안 되는 수치로 떨어졌다는 뉴스를 접한 적이 있습니다. 두 학교 모두 소위 공부 잘한다는 기독 학생들이 목회자가 되기 위해 지원하는 학교로서 예전에는 삼수, 사수까지 하는 학생들이 있을 정도로 치열한 경쟁률을 보였던 학교들이었는데 이제는 그 인기가 예전만치 않다고 하네요. 한편으로는 개인적으로 잘 되었다 생각도 합니다. 목회 사역은 너나 나나 그냥 마땅히 할 것 없어서 하자는 생각을 갖고 시도해볼 만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죠.

여기에 목회자를 꿈꾸는 사람들을 위해 실제적 지침을 소개한 책 한 권이 있는데 현재 안양 열린교회를 담임하고 계시는 존경하는 김남준 목사님께서 오래전 집필하신 저작 <자네, 정말 그 길을 가려나>입니다. 신학을 준비하는 학생들, 목회자 후보생, 목회자 모두를 염두에 두며 집필된 본서는 한 사람의 목회자가 목회의 길을 걷기 위해 먼저 준비되며 갖추고 있어야 할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조언들로 가득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저자인 김남준 목사님의 경건과 탁월한 지성, 다양한 경험과 함께 농축되어 걸쭉한 진액과 같이 전달되어지죠.

목회자로서 소명을 느끼십니까? 피할 수 있는 데까지 피해 보십시오. 그것이 가능한 한 소명이 아닙니다. 찰스 스펄전, p37

 

저자는 우선 신학의 길을 걷기 원하는 사람들에게 '소명'의 문제를 거론합니다. 신학교 안에 소명의 문제를 분명히 하지 않은 채 그냥 막연한 기대를 갖고 입학한 학생들이 많다는 사실을 이야기하며 참된 신적 소명을 확인하는 것의 의미와 방법을 나눕니다. 소명을 확인하지 않은 학생들이 목회자가 될 때 본인과 교회가 맞닥뜨리게 될 불행과 위험성은 불을 보듯 뻔합니다. 그렇기에 저자는 목회의 길이 결코 명확한 의식 속에서 확인되지 않고 갈 수 있는 만만한 길이 아님을 애타는 심정으로 거듭 강조합니다. 또한 저자는 세례 요한의 예를 들면서 목회는 한 사람의 전 인격이 복음에 대한 타오르는 열망과 구령의 열정, 이것을 전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다는 영혼을 흔드는 단장의 고통을 느끼는 가운데 분명한 결단이 요구되는 일임을 강조합니다.

책은 소명을 확인하는 문제에 이어서 신학생들이 갖추어야 할 실제적인 준비와 지침으로서 다섯 가지 항목을 말합니다. 육체적, 지성적, 인격적, 정서적, 영적 준비가 그것이죠. 목회자가 지켜야 할 건강의 중요성은 물론이거니와 육체적 순결함은 너무나도 중요한 사안입니다. 잊힐만하면 매스컴에 오르내리는 목회자들의 성적 비행과 추문들이 교회에 수치를 더하고 그리스도의 이름에 먹칠을 합니다. 더불어 이러한 사건들은 복음 전파에 크나큰 장애물로 다가오죠.

또한 목회자는 또렷한 지적 각성과 날카로운 지성의 칼날이 예리하게 날 선 사람이어야 합니다. 저자는 본 장을 통해 역사적으로 기독교 안에서 이루어진 지성 우월주의와 반(反)지식주의의 실체를 밝힘과 동시에 바른 기독교 지성의 필요성을 위대한 신학자요 목회자였던 종교개혁자 '존 칼빈'의 감동적인 일화를 들어 설명합니다.

지금의 조국 교회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문제 중 하나는 지성적으로 준비되지 않은 무자격 목회자들의 양산입니다. 그리고 거기에 더하여 목회자들의 바른 성품과 고결한 인품의 부재는 조국 교회에 어려움을 배가시키는 요인 중의 하나이죠. 다듬어지지 않은 목회자의 모난 인격은 성도들의 마음에 상처가 되고, 교회를 아프게 만듭니다. 교회는 고난 중에 순종을 배워가고, 이유 없는 비난과 비판 속에서도 인내할 줄 아는 올곧은 성품을 가진 목회자를 필요로 합니다.

또한 고매한 인격과 인품에 더해 필요한 것은 복음전도자로서 갖추고 있어야 할 사랑과 열정의 정서적 준비입니다. 날카롭고 차가운 지성은 복음과 영혼에 대한 따뜻한 심장으로 균형을 이루어야 하죠. 저자는 본 장에서 지식과 더불어 따스한 사랑, 거룩한 정서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18세기 미국의 위대한 신학자였던 '조나단 에드워즈'는 그의 책 <신앙감정론>에서 신령한 지식은 반드시 하나님을 향한 거룩한 정서를 동반한다고 이야기합니다. 목회자는 자신의 삶 속에서 여전히 살아계시고 일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현재적 경험이 필요합니다. 바르고 건강한 정서는 하나님의 실존에 대한 의식과 체험이 목회자 본인의 삶을 관통함으로써 자신의 실존과 맞부딪치는 신적 경험을 통해 배태되는 것이죠.

 

 

신학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이제는 거의 필독서로서 고전의 명성(?)을 얻게 된 책이 얼마 전 출간 24주년 50쇄를 찍으며 개정판을 출간했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매우 기쁘고 축하할 만한 일입니다. 신학함에 있어서 이처럼 훌륭한 가이드북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조국 교회와 목회자 후보생들, 현직 목회자들에게는 크나큰 축복입니다.

예전에는 교회에서 열심히 봉사하며 교회 어른들의 눈에 띄는 청년들이 시도 때도 없이 듣던 이야기 한 가지가 있습니다. 바로 "자네, 신학 하는 게 어떻겠나?"라는 말이었죠. 저 또한 그런 이야기를 심심찮게 듣던 사람이었습니다. 당시에는 교회 어른들로부터 그런 말을 들으면 괜히 우쭐해져서 며칠 동안 구름 위를 거니듯 지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목회자로서의 소명을 확인하는 과정이 교회로부터의 외적 소명뿐 아니라 나의 정확하고 또렷한 의식 속을 파고들어오는 내적 소명의 검증을 거쳐야 한다는 중요한 사실을 배우고 난 이후부터는 목회자의 소명이 동네 마켓에서 물건 구입하듯 손쉽게 주어지고 얻을 수 있는 그 무엇이 아님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본서는 이러한 나의 경험을 더욱 공고하게 만들어 주었고요.

일단 이 책의 1차 독자는 신학을 준비하는 학생들과 목회자 후보생들, 이미 신학의 길을 마치고 임상 목회의 현상 속에서 사역하고 있는 현직 목회자들입니다. 그러나 내가 섬기고 있는 교회의 목회자들을 더 잘 이해하기 원하는 성도들 또한 2차 독자로서 충분히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책의 내용 자체가 신앙적으로 배울 점이 많기에 매우 유익하고, 목회자들이 준비해야 하는 다섯 가지의 영역이 신앙을 가진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적용 가능한 내용입니다. 그리고 김남준 목사님의 저작이 가진 경건의 깊이는 이미 아는 사람들은 다 아는 명불허전이기에 책의 가치는 헤아릴 수 없이 크다 여겨집니다. 더불어 저자가 경험한 다년간의 사역 현장의 생생한 이야기들이 수록되어 있기에 은근히 흥미롭다는 점은 책이 주는 보너스이자 즐거움입니다.

이제 우리는 "자네, 신학 하는 게 어떻겠나?"의 물음이 "자네, 정말 그 길을 가려나"의 질문으로 바뀌어야 하는 시대 가운데 있습니다. 저자는 일갈합니다. 돌이킬 수 없는 목회자의 길, 그곳에는 따라오는 영광이나 사람들의 박수갈채 같은 것은 없다고 말입니다. 오히려 저자 본인이 몇 년 간 잠자리에 들 때마다 "오늘 밤 눈을 감으면 내일 아침에는 천국에서 눈을 떴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수없이 해보았다 고백할 정도로 목회 현장에서 느끼는 존재를 짓누르는 중압감과 심적 고통이 말할 수 없이 크다는 것이죠. 그렇기에 이 길은 명예와 칭찬보다는 멸시와 천대, 비웃음과 조롱이 기다리는 목회 현장의 끝에서 오직 상주시는 분,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달려가야 할 고통으로 점철된 외로운 길입니다. 신학을 공부하기 위해서 준비 중입니까? 이미 신학을 공부하는 중입니까? 아니면 신학 공부를 모두 마치고 목회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그도 아니면 평범하게 교회를 섬기는 성도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이 모든 대상의 독자를 아우르는 한 권의 책을 통해 참된 신학함이 무엇인지를 더 잘 이해하고 배울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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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의 노래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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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후의 명작 <칼의 노래>는 한국 문학계에 벼락같이 쏟아진 축복이라고 말한다. 그만큼 '김훈'작가의 문학적 위상과 영향력이 크다는 의미다. 십여 년 전 <칼의 노래>를 통해서 김훈 작가를 처음 만났다. 그의 짧고 날카롭게 쳐내는 단말마적 문장과 어휘 앞에서 기가 질려 입을 다물지 못했다. 글이 춤을 춘다는 의미를 아는가? 김훈을 만나기 전에는 나도 몰랐다. 그의 글은 생명력이 있다. 푸르게 날 선 작두 위에서 춤을 추는 무녀와 같이 마치 살아 꿈틀대는 한 마리의 짐승과 같다. 또한 낮게 깔린 아침 안개와 같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세차게 휘몰아치는 광풍과 같이 달려들어 독자의 심성을 닦달한다. 그래서 그의 글을 읽다 보면 몇 번의 감정적 카타르시스를 경험한다. 평온하지만 조바심이 나는 이유다.

<칼의 노래>에 이어 이번에는 <현의 노래>다. 제목에서부터 약간의 싱크를 느끼게 만드는 묘한 매력이 독자의 기대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인다. 삼한 시대 대가야 출신의 악사 우륵이 주인공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가야금과 소리의 자취를 가야국의 성쇠라는 큰 틀 안에 담았다. 신라와 백제의 틈바구니에서 부족 연맹체로 명맥을 유지했던 가야의 역사적 수명은 질기지 못했다. 그러나 그 안에서 탄생한 가야의 소리는 가야가 역사에서 사라진 지 150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후대의 손끝에서 되살아나고 있다. 작가는 가야국의 행보를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픽션화했다. 책은 가야의 순장 제도와 쇠(金), 금(琴)과 소리의 역학을 오묘하게 조화시켰다. 가야금의 창시자인 우륵 외에 허구적 인물인 가야의 대장장이 '야로'를 통해 쇠와 금을 문학적으로 대비한다. 야로를 통해 만들어진 병장기는 사람을 죽이는 살상의 도구다. 야로가 말하는 쇠(金)란 본시 주인이 없다. 쇠로 만들어진 병장기는 사람을 알아보지 않고 들린 자의 손에 의해 사용될 뿐이다. 반면 우륵의 금(琴)과 그것에서 울리는 소리는 듣는 자의 마음을 달래고 들뜬 감정을 가라앉히는 생(生)의 도구가 된다. 그러나 우륵이 말하는 소리 또한 주인이 없다. 소리는 제각각의 길이 있음으로 소리로서 흩어지기에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새로움과 낯섦이 공존한다. 그렇기에 금(琴)의 소리는 쇠(金)의 병장기와 달리 금(琴)을 잡은 자의 손에 의해서 시원(始原)의 소리를 낼 수 없다.

가야가 멸망으로 치닫는 소설의 흐름 속에 등장하는 깊은 비애는 바로 순장의 현장에서 극대화된다. 왕의 죽음과 함께 다수의 생목숨들을 생장(生葬) 시켜버리는 순장은 앞으로 다가올 가야의 멸절을 예견케하는 문학적 장치로서 일종의 복선이다. 그런데 작가는 왜 소설의 적지 않은 지면을 할애하여 순장의 비참함을 묘사하고 있을까? 왕의 사체는 오천근이 넘는 덩이 쇠판에 눕는다. 병장기로서 죽음을 부르는 쇠(金)가 순장에서는 왕의 죽음을 맞이한다. 애꿎은 생목숨들이 왕을 둘러싸고 함께 묻히게 되면 비로서 순장의 마지막 절정은 금(琴)에게 맡겨진다. 금(琴)의 소리는 생장되어 여전히 목숨이 붙어있는 사람들의 남은 생을 달랜다. 작가는 순장이라는 생(生)과 사(死)가 만나는 비극의 현장 속에서 죽음으로 대변되는 쇠(金)와 생명으로 대변되는 금(琴)을 소환한다. 즉, 각기 다른 이미지를 한 장소에서 중첩시키고 각기 다른 의미를 부여한다. 죽음을 상징하는 병장기의 재료인 쇠(金)를 금(琴)과 대비함으로써 금(琴)과 소리가 가진 의미의 중요성을 도드라지게 부각시킨다. 작가의 문학적 탁월함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가야가 신라에 의해 멸망한다. 우륵의 소리를 청한 신라의 진흥왕은 가야의 소리를 신라의 소리로 받고자 한다. 그리고 세 명의 신라 관원들이 우륵으로부터 금(琴)과 소리, 춤을 배운다. 죽음을 앞둔 우륵은 자신의 소리를 받아가지고 돌아가는 젊은 신라 관원들에게 자신의 금(琴)을 내어준다. 그러고는 이렇게 말한다.

너희들의 나라가 삼한을 다 부수어서 차지한다 해도 그 열두 줄의 울림을 모두 끌어내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니 늘 새롭고 낯설지 않겠느냐. p314

가야의 여러 고을이 가진 고유의 소리를 열심히 연습하여 기량을 연마하면 주법은 따라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소리 안에 담긴 가야의 정신만은 결코 흉내 낼 수 없다는 의미다. 책을 덮으며 소리는 주인이 없지만 주인이 있음을 발견한다. 우륵이 말하는 소리는 허공 속에 사그라지는 불꽃과 같다. 무형의 공간 속 침묵과 정적의 흐름을 가르는 소리가 가진 숨결은 부드럽지만 매섭다. 혼을 잠재우고 넋을 달래며 날랜 기운을 가라앉힌다. 잔잔한 강물과 같이 흐르다가도 득달같이 달려들어 갑작스럽고 광포하게 휘몰아간다. 우륵이 가진 소리는 이처럼 주인을 모르는 짐승을 걷어키우듯 소리를 접한 신라 관원들의 그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작가의 글들을 접하면서 느끼는 것은 아마도 그가 글을 쓰기 전 이야기를 전개하기 위한 소재에 대해 깊은 숙고와 사유의 시간들을 몸으로 부딪치며 체득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닐까 다소 시건방진 생각을 해본다. 세월과 함께 만나는 작품의 소재는 작가의 연륜과 어우러져 한편의 훌륭한 문학적 재료로 재탄생한다. <칼의 노래>에서는 눈이 녹은 현충사를 찾아가 이순신의 칼을 한참 동안 바라보며 해가 질 무렵 돌아왔다. <현의 노래>에서는 관람객이 없는 국립국악원 악기박물관을 찾아 악기를 한참 동안 들여다보다가 혼자서 밥을 사 먹곤 했다.

작가는 영혼을 울리는 한편의 글을 위해 통과의례와 같이 작품의 소재가 될 그것과 무언의 대화를 주고받는 일종의 의식을 치른다. 그 고독과 홀로 있음의 시간을 통하여 영겁의 간극을 좁히기 위해 무던히도 애쓴다. 그리고 내면의 울림으로 무형의 대상과 교감하고 그것으로부터 오는 반향을 그에 몸에 오롯이 받아낸다. 이것은 나와 같은 범인들이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문장과 글을 배태시키는 일종의 지난한 출산 과정이다. 내려받은 영혼을 글의 심부에 담아내기에 마른 장작과 같이 죽은 어휘와 문장이 생기를 얻고 비로소 호흡한다.

책은 빈 공간을 허용치 않는다. 문장 속 여백과 여백의 사이 공간을 짧게 쳐낸 듯한 김훈 특유의 글 사위가 오금을 저리게 한다. 봄날 마른 겨를 키질하듯 중구난방 제각기 흩어져있는 어휘의 무질서 속에서 알곡과 가라지를 걸러내는 것과 같이 문장의 곁가지를 걷어낸다. 한 곳으로 소급되어 정제된 글을 댓돌 위 짚신처럼 가지런히 정렬하는 것도 작가의 섬세함에서 비롯된다. 질서를 부여한 어휘와 문장을 완성도 있게 치댄다. 지향하는 바가 각기 다른 어휘와 문장이 조화롭게 어울리며 결코 투박하지 않은 이유는 작가가 세월을 통해서 얻은 그만의 내공이라고 밖에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항상 탐독하며 느끼는 점은 작가의 글이 매우 회화적이라는 사실이다. 글을 읽는지 그림을 보는지 구분이 난해하다. 활자를 그림 그리듯 그려내는 문장 구사력은 이미 경지에 이르렀다고 표현해도 결코 과하지 않다. 그렇기에 건드리면 금세 터질 것만 같이 물오른 꽃봉오리와 같이 그의 글은 이미 충분히 농익었다. 글을 가지고 놀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글에 생명력을 부여하고 한판 거하게 춤사위를 벌이듯 글을 마음대로 가지고 놀 수 있는 작가의 문학적 천재성을 확인하게 되는 또 하나의 명작이다. 감히 흉내 낼 수 없는 신들린 듯한 문장과 어휘가 내뿜는 아우라에 압도당한다. <칼의 노래>와 더불어 그의 글은 미쳤다!

이 시대의 진정한 글쟁이! 내가 당신과 동시대를 살아가며 당신의 글을 나의 심상으로 게걸스레 탐독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소름 끼치도록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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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같은 사람입니다 - 치매, 그 사라지는 마음에 관하여
린 캐스틸 하퍼 지음, 신동숙 옮김 / 현대지성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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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을 내가 통제할 수 없다는 두려움

우리나라는 2026년 초고령화 사회 진입을 앞두고 있다. 저출산 초고령화 사회의 다양한 문제 가운데 하나는 치매 노인의 증가다. 한국인 치매 유병률은 85세 이상 노인 중 40퍼센트로 3명 중 1명이 치매에 걸린다. 기억력을 잃어가며 가족과 지인들을 알아보지 못하고 결국에는 나 자신마저 잃어버리는 몹쓸 병! 알츠하이머병으로도 불리는 치매는 한 인간의 모든 기억 저장소를 점차적으로 포맷해버리는 머릿속의 지우개와 같다. 봄의 끝자락에서 모든 이들의 불청객, 치매에 관한 잔잔한 감동을 선사하는 책 한 권을 만난다. '린 캐스틸 하퍼'의 <여전히 같은 사람입니다>

저자는 현재 뉴욕의 한 교회에서 노인 담당 목회자로 사역하고 있다. 7년간 노인 요양 시설에서 치매 노인 담당자로 일한 자신의 경험과 활동적이었지만 치매에 걸린 외할아버지와의 아련한 기억을 넘나들며 자신이 바라본 치매인의 그 깊은 존재적 의미를 섬세한 필치로 부드럽게 그려낸다. 또한 부모에게서 치매 유발 위험 유전자를 한 쌍씩 물려받아 치매 유병률이 50%인 자신의 삶을 들여다보며 기록한 치매와 삶의 본질에 대한 깊은 성찰이 묻어나는 매우 인상 깊은 책이다.

책은 총 9개의 챕터로 구성된다. 현대판 고려장. 치매인이 기억을 잃어버리는 순간 세상 또한 치매인을 세상의 기억 속에서 지워버리는 것이 우리 사회의 현주소다. 싱그럽고 탄력 있는 젊음과 활기와 건강, 역동성을 찬미하는 세상의 전당 속에 늙음과 병듦 더군다나 치매인의 공간은 없다. 이렇듯 나이 듦과 치매는 사회적으로 용인될 수 없는 암묵적 터부다. 치매인과 함께 지낸 시간 동안 그들의 내면 안에 숨겨진 존재의 본질과 삶의 의미를 발견해가는 저자의 이해가 깊다. 특별히 '우리 영혼을 밝히는 어두움'이라는 역설적 소제목이 눈길을 끈다. 어두움에 대한 저자의 탁월한 통찰이다. 빛의 문명이 발산해내는 다양한 부작용에 반해 어두움이 주는 안식과 평안함의 상대적 인식 재고! 어두움은 틀렸고 빛만이 옳다는 정형화된 인식 속의 치매는 분명 어둠이다. 그렇기에 그것은 나쁜 것이고 빨리 분리수거해버려야 하는 쓰레기이다. 그러나 저자는 치매인이 가지는 어두움의 개념을 빛과의 경계에서 접속한다. 자신의 삶을 잃어버렸지만 여전히 그들의 내면은 깊은 어두움이 아닌 빛과의 경계에 서 있을 뿐이다.

 

 

어둠은 깊어졌지만 삶도 진해졌다

그렇다. 어두움이 다가올 때 삶의 본질은 더 뚜렷해진다. 저자는 행복에 겨운 밤의 시간에 자리를 내어줄 때가 찾아옴을 말한다. 그것이 누구에게는 평안한 죽음일 수도 있고 그 누구에게는 알츠하이머병과의 동행을 의미할 수도 있다. 그러나 본질은 인간은 누구나 늙고 병들며 죽는다는 사실이다. 영원한 젊음과 싱그러움은 없다. 책은 마지막 10년을 치매인으로 살았던 미국의 탁월한 지성 '랄프 왈도 에머슨'의 이야기를 소환한다. 에머슨은 인간의 감각적 인식은 늘 경험을 방해한다고 말했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파르메니데스' 또한 감각은 모든 오류의 근원이라고 했다.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가족과 지인 심지어 자신을 잃어버린 치매인들의 삶 속에 분명 보이지 않는 부분이 있다. 감각에 의존한 실존에 대한 끊임없는 지향이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갈망과 탐구를 가로막는다. 우리가 온전한 기억과 또렷한 감각적 인식만이 옳다고 여기는 세상 속에 있기 때문이다.

'떠났지만 사라지지 않은' 사랑하는 가족들의 모습 속에서 깊은 비애를 느낀다. 잃어버린 기억의 한 가닥을 부여잡기 위해서 노력하지만 쉽지 않다. 새로운 관계와 소통의 과정이 재정립되고 확장된다. 치매인과 그 가족에게는 낯섦이라는 판위에 흩어져있는 삶의 조각들을 퍼즐 맞추듯 정렬해가야 하는 숙제가 던져진다. 깊은 이해와 사랑, 헌신이 없다면 쉽지 않은 작업이다. 저자가 책을 통해 역설하는 핵심은 이것이다. 치매인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는 것과 그들이 여전히 우리가 사랑했고 지금도 사랑하는 같은 사람이라는 점이다. 책은 치매를 주제로 쓰인 한편의 잔잔한 에세이지만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역설의 공존을 성찰하고 밀도 있게 녹여낸 한편의 인문학 도서와 같다. 더불어 치매를 삶의 본질과 인간 실존이라는 그릇에 담아내려 한 저자의 애씀에서는 깊은 철학의 향기가 풍긴다. 가족 중에 치매인이 있거나 치매와 인간, 삶과 죽음에 대해 관심 있는 독자에게 권할만한 책이다. 무엇보다도 저자가 글을 정말 품격있게 잘 쓴다.

<현대지성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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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드이발소 시즌 2 : 1 - New! 브레드이발소 브레드이발소 시즌 2 1
(주)몬스터스튜디오 원작, 임광천 구성 / 형설아이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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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를 오며 TV를 없애버린 탓에 이제는 조금 덜하겠지 생각했던 나의 생각은 기우였습니다. 아이들은 여전히 브레드 이발소를 연호했고, 그렇게 브레드 이발소 시즌2 첫 권이 집에 도착했습니다. 우리 집 1호는 이제 브레드 이발소 독자 연령대를 조금 벗어났기에 흥미를 잃었겠지라는 생각도 잠시 뿐입니다. 1호와 2호가 서로 먼저 보겠다고 난리도 그런 난리가.. 브레드 이발소는 어린이 독자들을 책 속으로 끌고 들어가는 매력이 아동 도서 중에서도 손꼽힙니다. 성인인 내가 보면서도 킥킥대는 책이니 오죽하겠습니까! 책의 내용은 '베이커리 타운'이라는 빵 마을의 천재 이발사 식빵 '브레드'와 그의 동료들이 펼치는 요절복통 스토리입니다.

빵을 의인화한 다양한 이야기를 통해 어린 독자들에게 작은 감동과 교훈, 깨알 재미를 선사합니다. 또한 TV 애니메이션의 성공과 더불어 필름 북으로도 적지 않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것은 이번에 시즌2가 출간된 사실만으로도 짐작할 수 있네요. 시즌1의 여섯 권을 전부 읽었기에 스토리 라인은 크게 생소하지 않고 친숙합니다. 등장인물 또한 큰 틀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여전히 천재적 이발 실력을 뽐내는 브레드와 어리숙하지만 순수한 영혼의 소유자 조수 '윌크', 시크하지만 속 깊은 정이 있는 이발소 캐셔 '초코'가 주인공이죠. 이들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다양한 이야기들 중에서 다섯 편의 에피소드가 이번 시즌2 1권에 실렸습니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좋아하는 이유는 아동 도서가 가지는 두 가지 요소를 고루 갖췄다는 점입니다. 재미와 교훈!

 

 

첫 번째 에피소드 <베이커리 타운의 이발사>, 어느 날 갑자기 웬 꼬마 건빵이 천재 이발사 브레드의 아성에 도전장을 내밉니다. 그러고는 베이커리 타운 최고의 이발사를 가리기 위한 진검 승부가 시작되죠! 이발 대회가 시작된 것입니다. 999전 999승이라는 진기록을 가진 브레드가 건방진 꼬마 건빵 이발사에게 패할 리가 없죠. 대충 상대해 줬는데도 결과는 브레드의 승리! 눈물을 머금고 돌아서는 꼬마 건빵 이발사에게는 남모를 아픔이 있습니다. 밀린 월세로 인해 병든 아버지와 함께 거리에 나앉을 위기에 처했기에 천재 이발사 브레드를 꺾으면 주어질 명예와 돈을 원했던 것이죠. 딱한 사정을 알았던 브레드가 시합에서 져줄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내가 져주면, 그 꼬마가 행복해질까? 정정당당하게 승부를 겨루고, 실패를 맛보고, 극복하려고 노력할 때! 비로소 훌륭한 이발사로 성장할 수 있다고.

 

그럼 건빵 꼬마 이발사와 병든 아버지는 밀린 월세로 인해 집에서 쫓겨났을까요? 결말은 책을 통해 직접 확인해볼 수 있습니다. 전작과 동일하게 선명하고 예쁜 컬러와 질 좋은 종이로 TV를 보는 것과 같은 느낌의 웰메이드 필름 북입니다. 시즌 1에서는 여섯 편의 에피소드가 실렸지만 이번부터는 다섯 편으로 이야기가 줄었기에 살짝 아쉽습니다. '시간 순삭' 도서이기에 그렇죠! 우리 아이들은 욕설과 비어가 난무하며 연신 때려 부수고, 귀신과 악령이 주인공으로 등장하여 흑마술에 기원한 요상한 주문을 외우는 네거티브한 애니메이션의 홍수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반면 본서는 아직 사고와 세계관이 정립되지 않은 여린 감수성을 가진 어린 독자들에게 감동과 교훈을 선사하기에 좋은 아동 도서라고 여겨집니다. 아! 책의 뒤표지를 살펴보니 '애니메이션 부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을 수상했다고 하네요! 역시 좋은 책은 이렇게 상도 받는군요! 사람들의 보는 눈이 다 똑같나 봅니다. 벌써부터 시즌2 2권의 출간이 기다려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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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래소 - 현대 주식시장의 핵심 메커니즘을 밝히다 막스 베버 선집
막스 베버 지음, 이상률 옮김 / 문예출판사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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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화들의 막대한 거래에 이용되는 것이 거래소이다. p15

 

비트코인, 이더리움 등의 가상 화폐가 상장되는 거래소 또는 증권 거래소와 같은 용어는 많이 들어봤지만 정작 용어의 정의에 대해서는 무지하다. 이번에 몇 년 전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으로 만난 독일 사회과학자 '막스 베버' 선집 중 한 권인 <거래소>를 읽었다. 저자가 발표한 두 편의 논문이 책의 중심이다. 베버는 1장 '거래소의 목적과 외적 조직'에서 거래소의 기본 정의와 근대 경제 사회와 그 이전의 상거래 방식에 대한 기초적 개념을 서술한다. 가부장제 가족 공동체 사회에서 대부분의 재화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자급자족의 형태로 생산되고 소비되었다. 직접 농사를 짓고 가축을 키우며 간단한 농기구와 도구들을 만들어서 사용했던 시대다. 그러나 인구가 증가하고 사회가 발전하면서 이제는 각자가 자신만을 위해서 물건을 생산하는 시대가 아닌 다른 사람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 생산하는 시대가 되었다. 이렇듯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노동 산물을 필요로 하게 된다. 바야흐로 근대적 경제 시스템으로의 전환이다.

베버가 말하는 거래소의 정의는 근대적 대규모 상거래의 한 제도다. 재화 교환이라는 상거래를 활성화시키는 것이 바로 거래소다. 일정한 장소(거래소)를 통해 생산자와 소비자가 접선하고 그곳에서 서로의 필요가 거래된다. 베버는 거래소를 가리켜 근대적 시장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시장과 거래소의 차이가 있다. 그것은 바로 재화의 현재성 유무다. 즉 재화가 현재 눈앞에 있느냐의 여부다. 한마디로 직거래가 가능한 것은 시장이다. 반면 거래소는 현재 눈앞에 재화가 없지만 생산 중인 상품이나 생산할 예정인 상품, 운송 과정 중에 있는 상품 등에 대해서 매도자와 매수자의 거래가 체결되는 곳이다. 거래소는 복잡다단해져가는 경제 상황 속에서 생산자와 소비자를 효과적으로 연결시킴으로서 경제 활성화에 기여한다. 그러나 베버가 살던 당시에는 이러한 거래소에 대한 부정적 여론도 거셌다. 거래소가 외국 재화의 유입을 주도하여 가격을 쥐락펴락함으로써 국내 경제에 불이익을 끼친다는 주장이 일면서 거래소는 없어져야 한다는 생각이 팽배했다. 베버는 바로 이러한 배경 속에서 이 두 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베버는 자유 시장 경제 체제에서 탄생된 거래소의 목적과 기능을 설명하며 거래소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결코 없어서는 안 되는 제도임을 밝힌다.

 

 

경제정책에 대한 학문은 일종의 정치적인 학문으로, 정치의 시녀이다.

 

베버는 거래소 무용론, 거래소 폐지를 외치는 국내 여론의 무지함에 대해 국가의 정치 및 경제 권력의 이해라는 관점으로 거래소 유용론을 주장했다. 활발한 경제 활동과 국외 교역을 주도하는 거래소가 없다면 경제 활동은 위축될 것이며 이것은 국가가 강대국으로의 발돋움을 하기 위한 국가 간 투쟁에 뛰어들 수 없음을 일갈한다. 흥미로운 점은 베버가 투기에 대해 긍정적으로 기술한다는 점이다. 나중에 더 비싸게 팔기 위해서 투기 목적으로 재화를 사들인다. 반대로 나중에 더 싸게 사들이기 위해서 가격 하락을 기대하며 투기 목적으로 판다. 이러한 거래들이 활발하게 진행되는 곳이 바로 거래소이며 이러한 투기 거래 형식이 선물거래이다. 베버는 이러한 투기성 선물거래 제한에 대해 반대한다. 제한을 한다고 해도 어차피 완전하게 제한하지도 못할뿐더러 오히려 이러한 거래를 외국으로 쫓아냄으로써 경쟁국의 금융 능력을 강화시켜주는 꼴이 된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자국의 경제 능력은 쇠퇴할 수밖에 없고 이는 곧 국가 간 정치 경제 권력의 약화라는 부정적 결과를 가져옴을 역설했다.

 

강력한 거래소는 '윤리적인 문화'를 위한 클럽일 수 없다. p104

 

"현세적인 목적만을 추구하는 경제정책에서는 그 목적이 하나일 수밖에 없다. 저 경제 투쟁에서의 권력 수단이 되는 것이다." p104 베버가 말하는 경제정책은 경제 권력의 획득이며 이는 곧 정치권력의 공고함으로 귀결된다. 베버의 주장을 듣다 보면 19세기 독일 경제의 부흥을 이해할 수 있다. 베버는 느슨한 경제정책은 자국민을 무장해제 시키는 지름길임을 시사했다. 쉽게 말해서 돈이 곧 힘이다. 돈이 있어야 부강한 나라를 만들 수 있고 권력을 가진 국가만이 외국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매우 현실적인 경제관을 이야기한다. 국가가 투기를 조장해서는 안 되지만 그렇다고 투기를 억제해서도 안된다.

윤리성을 살짝 밀어놓고 냉혹한 경제 현실 속에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돈이 있어야 사회 간접자본의 투자가 이루어질 것이고 이렇게 마련된 사회 간접자본을 통해서 다시금 경제 발전을 위한 대량 생산과 유통의 초석이 다져진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돌고도는 경제 순환의 고리를 이어주는 것이 어찌 되었든 돈이지 않을까? 근대 자본주의 탄생의 사상적 근원을 전통적 맥락이 아닌 프로테스탄트, 특별히 청교도 윤리로서의 소명 의식에서 발견한 베버의 관점에 '엄지 척!' 했던 기억이 있다. 거래소라는 금융과 실물 경제를 아우르는 중요한 개념을 통해 베버가 전하는 또 하나의 사회 경제학의 기본을 흥미롭게 읽어볼 수 있는 저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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