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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으로서의 정치·직업으로서의 학문 ㅣ 현대지성 클래식 57
막스 베버 지음,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24년 5월
평점 :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을 통해 '막스 베버'를 처음 접했다. 북유럽 자본주의 정신의 태동이 개신교, 특별히 칼뱅주의 청교도 노동윤리에 기인한다는 주장이 신선했다. 이후 <거래소>를 통해서 선물 거래와 증권 거래에 대한 부정적 인식에 항변한 베버의 주장을 통해 사회적 정황과 국제 정세를 꿰뚫는 그의 예리한 지성을 엿보았다.
근대를 살다 간 독일의 사회과학자이며 정치경제학자인 막스 베버의 또 다른 저작 <직업으로서의 정치, 직업으로서의 학문 / 막스 베버 / 현대지성>을 만났다.
책은 1917년과 1919년 두 번에 걸친 베버의 공개 강연을 엮은 것이다. 당시 시대적 정황을 이해하면 책의 풍미가 깊어진다. 우선 베버의 활동 시기는 독일제국 건설의 시기와 맞물린다. 독일제국은 프로이센의 빌헬름 1세가 황제가 됨으로써 황제권과 더불어 비스마르크와 같은 재상의 독재적 권력이 증대했다.
이러한 상황 속 제국 의회정치는 상대적인 목소리를 낼 수 없었기에 근대 독일의 정치 발전과 개혁의 속도는 더딜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베버는 책의 첫 번째 주제인 <직업으로서의 정치>에서 지배의 내외적 조건, 실질적인 정치를 이끌어가는 정치인의 유형과 직업 정치인의 출현 등을 고찰하며 복잡한 현실 정치의 난제에 대한 예언자적 통찰을 선보인다.
베버는 지배의 내적 조건을 설명하며 전통, 카리스마, 합법성 가운데 카리스마를 지닌 리더가 국가라는 합법적 공권력을 가지고 합리적으로 나라를 통치하는 모습을 가장 이상적인 지도자의 내적 조건으로 본다.
그런데 여기에서 카리스마는 순전히 개인적인 자질로서 표현된다. 대중은 고결한 인품을 바탕으로 따를만하고 추앙할 만한 무형의 됨됨이를 지닌 리더가 정치에 있어서도 참된 소명을 가진 자로 여긴다. 또한 여타의 천박한 가치를 추구하는 자가 아니라면 그 사람 또한 본인의 정치 소명을 확신함 속에 자신을 지지하고 따르는 대중과 함께 할 수 있다.
그러나 불행한 것은 예나 지금이나 대중이 믿고 따를 수 있는 고결함과 지고의 품격과는 거리가 먼 인물이 정치 지도자가 된다는 아이러니함이다.
이후 근대 정당이 출현하면서 정치를 업으로 삼는 이들이 탄생했다. 베버는 직업 정치가의 내적 조건으로 열정, 책임감, 시대적 안목을 꼽는다. 개인의 열정만으로 바른 정치를 행할 수 없고, 열정과 더불어 자신의 결정과 공적 행위를 끝까지 책임지려는 윤리성, 냉정하고 침착하게 현실을 간파하며 직시할 수 있는 시대적 안목을 갖춘 직업 정치가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어지는 두 번째 주제인 <직업으로서의 학문>은 학문의 위치와 역할에 대해서다. 이 강연이 이루어진 1917년은 제 1차 세계대전의 끝자락이었으며 독일제국의 패전이 짙어져가는 시기였다. 독일의 대학생들과 청년들은 시대의 지성인 베버를 바라보며 독일 사회의 혼란스러운 현실에 대한 명쾌한 답변을 바랐다.
하지만 베버는 학문의 책무란 특정한 정치적 견해와 정론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판단의 주체인 인간 스스로가 편견 없이 자신의 견해를 결정하고 선택할 수 있도록 돕는 데 있음을 이야기한다.
학문이 삶의 근본적인 문제와 인생의 가치에 대해 답해줄 수 없다는 무력감이 전해진다. 베버의 표현대로라면 직업으로서 학문의 전당에 발을 내디딘 이들에게 요구되는 미덕은 오로지 지적 정직성이다. 가치 판단의 철저한 배제!
그렇다면 이 책은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떠한 메시지를 던지는가? 책을 덮으며 개인적으로 두 가지 여운이 깊다.
소위 밥 먹기 위한 직업으로서의 정치는 계획과 실행, 결과에 있어 책임 윤리를 가져야 한다는 것! 모든 일에 있어 책임을 회피하는 직업 정치인들로 가득한 현실 정치의 암울함을 따끔하게 꼬집는 말이다.
무거운 책임 윤리 의식을 견지할 자신이 없으면 밥 벌어 먹고 살기 위한 정치인이 되면 안된다. 그냥 범부로 살아라!
둘째, 학문이 가치 판단을 배제하는 이유는 개별 존재의 판단과 선택을 독려하는 것이다. 대중이 무지할 때 윤리와 책임 의식이 결여된 사고의 기형아를 지도자로 세우는 무서운 결과를 낳는다. 즉, 베버는 직업적 학문의 역할로서 대중의 주체성을 배양하는 데 있어 학문의 역할을 강조한 것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직업으로서의 학문을 행하는 학자는 냉철한 객관성을 놓치지 않는 모습이 미덕이다.
결국 다른 듯 하지만 정치와 학문은 뗄 수 없는 관계다. 현 상황을 돌아보게 하는 시대의 선각자가 던지는 명제가 제법 매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