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처음 세계사 수업 - 메소포타미아 문명부터 브렉시트까지, 하룻밤에 읽는 교양 세계사 인생 처음 시리즈 2
톰 헤드 지음, 이선주 옮김 / 현대지성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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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도 어렵지만 세계사는 더 어렵다!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할 지 막막하기만 한 세계사를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최근 재미있는 세계사 교양서 한 권이 출간되었다.


<인생 처음 세계사 수업 / 톰 헤드 지음, 이선주 옮김 / 현대지성 펴냄>은 일단 광범위한 세계사를 고대, 중세, 근대, 현대의 시대 범주로 나눈다. 그리고 63개의 핵심 테마를 선정하여 중요한 사건과 인물을 중심으로 역사의 뼈대를 잡아나간다.


역사하면 사건의 연도와 수많은 인물을 암기해야 하는 두려움이 엄습하는가? <정글북>의 저자 '러디어드 키플링'은 "역사를 이야기로 배우면 결코 잊어버리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본서의 특징 중 하나는 스토리텔링 형식의 역사 기술 방법이다. 저자인 '톰 헤드'는 현재 미국에서 가장 주목받는 역사 스토리텔러다. 이야기꾼이 전하는 세계사는 대다수 독자가 가진 역사에 대한 일종의 포비아를 극복케한다. 한마디로 너무 재미있다.


기록이 존재하기 시작했던 선사 시대 이후부터 6000년의 인류 역사에 관한 다양한 사건과 인물에 관한 이야기가 한편의 드라마처럼 펼쳐지기에 독자는 지루할 틈이 없다.



고대 중동의 메소포타미아 문명 가운데 아시리아 제국이 있다. 구약 성경에도 등장하며 기원전 722년 이스라엘을 멸망시킨 역사상 매우 잔인하고 폭력적인 제국으로 알려져 있다. 살아있는 포로들의 가죽을 벗겨 죽일 정도로 야만적이며 잔학한 나라였던 아시리아에 대한 내용 가운데 우리가 모르는 반전이 있다.


수도인 니느베에는 당대 최대 규모의 도서관이 존재했으며 도시에는 정교한 배수 시설이 건설되었다. 적극적으로 예술을 후원했고, 통신망이 발달했으며 고등 종교를 신봉했다.


우리가 아는 아시리아가 폭압적이고 미개하며 야만적인 동시에 고도로 문명화 된 제국이었음이 놀라울 따름이다.


또 하나 흥미로운 사실은 영국 성공회 탄생 비화다. 영국 헨리 8세는 엄청난 여성 편력으로 유명하다. 6명의 아내를 맞이했고 그중 2명은 참수형에 처한 기인이다. 많은 이들이 영국 성공회 탄생이 헨리 8세가 첫 번째 부인과 이혼하고 재혼하기 위한 과정 중에 탄생했다고 알고 있다. 그러나 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


성공회는 헨리 8세의 두번 째 아내이자 참수형 당한 앤 불린 사이에서 태어난 엘리자베스 1세 때 만들어졌다. 오래 전 총신대 역사신학 라은성 교수님이 성공회를 헨리 8세가 단지 이혼하기 위해서 만든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신 내용을 다시금 확인한다.


고대와 중세, 근대와 현대까지 주요한 사건과 인물을 살피며 기존에 가지고 있었던 역사에 대한 잘못된 지식과 오해가 적지 않게 해결되는 시간이다.


인도의 마하트마 간디, 미국의 마틴 루터 킹은 비폭력 저항 운동으로 유명한 평화주의 아이콘이다. 오른 뺨을 치면 왼뺨을 돌려대는 기독교적 무저항의 행위는 현대 세계의 평화를 유지하는 데 나름의 공헌을 했다.


하지만 저자는 정당한 폭력도 존재함을 역설한다. 오해는 마시라! 저자가 폭력을 미화하지는 않는다. 다만 20세기 세계 역사에서 폭력적인 저항이 더 큰 폭력을 막을 수 있게 된 경우가 있다는 점을 말해준다.


미친 운전사가 운전대를 잡고 광란의 질주로 무고한 시민들을 짓밟을 때 우리가 취해야 할 행동은 오직 하나, 미친 운전사를 힘으로 운전석에서 끌어내리는 방법 밖에는 없다.


프랑스의 레지스탕스와 이탈리아의 저항운동 등은 나치 독일이라는 미친 운전수를 끌어내리는 일에 앞장 섰다. 이들의 희생이 연합군의 승전을 앞당겼음을 역사가 증명하기에 세계사 속 정당한 폭력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수많은 연도와 사건, 발음하기도 어려운 생소한 이름의 인물들이 얼키고 설킨 실타래처럼 꼬여 있는 것을 형상화 한 것이 세계사 교과서 아니었는가? <인생 처음 세계사 수업>은 이러한 모든 염려를 단번에 불식시킨다. 책의 제목과 같이 인생 처음으로 세계사를 공부하는 독자를 염두하며 쓴 책과 같다.


이야기 형식으로 진행되는 역사의 순간이 깊은 감동과 놀라움의 연속이다. 중국에 오랜 저주가 있단다. "당신이 흥미진진한 시대에 살기를..." 세계사를 배우며 이해하게 될 때 이보다 더 소름 끼치는 욕도 없다.


역사 속 우리는 방관자로 있을 수 없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잇는 타임라인 위에 올려진 순간 우리 모두는 역사의 주인공일 수 밖에 없다. <인생 처음 세계사 수업>은 흥미진진한(?) 무대 한 복판으로 독자를 초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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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나무의 여신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소미미디어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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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일본 문학의 거장 '히가시노 게이고'하면 범죄 추리 소설의 장인 이미지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그만큼 히가시노 게이고가 범죄 추리물을 많이 남겼다는 반증이다. 그러나 간혹 그의 작품 중 인간 심성에 대한 전혀 다른 관점을 보여주는 작품들도 꽤 있다.

가령 작가 데뷔 35주년을 맞아 출간한 <녹나무의 파수꾼>과 같은 작품은 죽고 죽이는 범죄 추리 장르와는 거리가 멀다. 얼마 전 <녹나무의 여신>이 출간되었다. 전작 <녹나무의 파수꾼>이 호평 속 베스트셀러의 반열에 오른 이후 4년 만이다.

사실 전작을 읽어본 적이 없기에 망설였다. 스토리 연결에 있어 접점을 놓치지는 않을까 하는 마음이었지만 기우였다. 전작을 몰라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스토리의 개별성이 잘 지켜진 작품이다.

월향신사에 있는 영험한 능력을 지닌 녹나무를 중심으로 다양한 인간 군상의 이야기가 다채롭게 펼쳐진다. 각기 출발점이 다르지만 결국에는 하나의 목표점으로 수렴된다.



매월 음력 초하루와 보름에 사람들이 녹나무에 자신의 소원과 마음을 맡기는 예념을 한다. 누군가의 예념을 수념함으로써 상대방의 마음을 받기도 하는 일련의 과정이 마치 입력된 정보를 또 다른 시냅스에 전달하는 신경 전달 체계와 같다.

주인공 레이토는 녹나무의 파수꾼이다. 월향신사의 종무소에서 일하며 녹나무에 기념하기 위해 신사를 찾는 이들을 돕는 역할을 한다. <녹나무의 여신>에는 어딘지 모르게 연약하고 아픈 이들이 적지 않게 등장한다. 레이토의 이모이며 전직 녹나무의 파수꾼이었던 치후네 여사는 경도인지장애를 앓고 있다.

우연찮게 알게 된 여고생 유키나의 집안은 너무나 가난하다. 이러한 그녀의 배경이 스토리의 전체적 얼개를 이루어가 사건의 중심에 서게 한다. 모토야라는 남자 중학생은 뇌종양으로 인해 단기 기억 상실 증세를 지닌 채 살아간다. 그렇기에 자고 일어나면 어제의 기억이 깨끗하게 포맷된다.

이처럼 <녹나무의 여신>은 제각기 아픔과 약점을 지닌 인간들의 삶이 한데 어우러져 묘한 하모니를 이룬다.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고 싶어서 예념을 하고 그 마음을 알고 싶어서 수념을 한다. 이러한 일련의 모든 과정을 통해 게이고 작가는 인간의 심상을 세밀하게 묘사하는 작가만의 기예를 펼친다.

인간은 누구나 어떠한 절대적인 존재에게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기 원하는 예탁의 심리가 있다. 작가는 이 부분을 정확히 직시했고, 그것을 소설의 훌륭한 모티브로 사용하는 능력을 발휘했다.

게이고 작가가 범죄 장르만 탁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은 그가 일반적인 사람들이 가진 보편적 성정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는 그만의 심리 묘사를 통해서 잘 증명된다. 선한 사람들에 대한 게이고 식 접근은 한 없이 따뜻하다.

녹나무에게 자신의 미래를 위탁하는 모토야의 모습은 그가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다는 현실적인 문제와 겹쳐져 심정적 모순을 일으킨다. 앞을 장담할 수 없는 사람에게 미래란 무슨 의미일까?

더불어 소설 곳곳에 숨겨진 코드는 기억이며 추억이다. 경도인지장애를 앓는 치후네 여사의 사라져가는 기억, 뇌종양으로 단기기억상실증을 가진 모토야의 모습을 통해 작가는 현재의 중요성과 함께 공유하는 시간이 가진 가치의 밀도를 짙게한다.



책을 덮으며 생각한다. 인간은 누구나 혼자 일 수 없으며 그것은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상념이라는 씨줄과 날줄에 의해 타인과 엮어진다. 사람들이 녹나무를 찾는 이유는 저마다의 깊은 고민에 의해서다. 타인에게 함부로 털어놓을 수 없는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생각을 녹나무에게만은 내비칠 수 있다.

그런데 또 다른 모순은 자신의 마음을 혈연으로 맺어진 사람이 수념할 수 있다는 점이다. 알리기 싫은 그 무엇을 누군가가 알아주었으면 하는 그 알 수 없이 복잡 미묘한 심리적 역설이 녹나무라는 중립적 대상물에 효과적으로 투사되었다. 작가는 현대인이 가진 공허함과 불안함의 심리 기제를 정확히 간파했다.

그러나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한걸음 더 나아가 그것을 가족과 인생이라는 더 근본적인 주제로까지 연결시켰고, 삶의 깊은 의미를 추구하는 것이 우리에게 왜 중요한지에 관한 깊은 철학적 물음 또한 던진다.

녹나무의 여신에게 미래를 신탁하고 싶어 하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무엇인가? 현재는 우리에게 벼락처럼 쏟아진 축복이다. 현재성을 지닌 모든 것은 예쁘다. 현재 내가 숨을 쉬고 있다면 삶의 조건과는 상관없이 인생은 아름답다.

<녹나무의 여신>은 어쩌면 게이고 식 '카르페 디엠'의 한 버전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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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 먹고 우직하게 달려라 - 기자의 집요함으로 찾은 단 하나의 건강 습관 좋은 습관 시리즈 39
김고금평 지음 / 좋은습관연구소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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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그러다가 한방에 훅 간다!" 여기에서 한방에 훅 간다는 통속적 표현이 가장 잘 들어맞는 경우가 바로 건강이다. 20~30대는 건강을 자신한다. 중병이 아닌 이상 아파도 회복탄력성이 뛰어나 금방 털고 일어난다. 하지만 나이가 40대로 접어들며 50대를 향해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주변에서 소위 한방에 훅 가는 경우를 심심찮게 본다.


<덜 먹고 우직하게 달려라 / 김고금평 지음 / 좋은습관연구소 펴냄>는 건강을 자신했던 저자가 한방에 훅 갈 뻔한 자신의 이야기를 진솔하면서도 담백한 어조로 잘 풀어낸 일종의 건강 자기관리 에세이다. 


저자는 기자라는 직업의 특성(?) 상 지독한 골초였고, 불규칙적인 생활과 식습관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살았다. 그러던 중 혈관에 이상 징후가 보이기 시작했음을 감지했다. 나쁜 콜레스테롤이라고 불리는 저밀도 콜레스테롤과 중성지방의 수치가 급격히 증가했음을 확인했다. 더불어 당뇨 전단계 판정도 받았다.


고혈압, 고지혈증, 당뇨와 같은 대사증후군의 나쁜 열매들이 건강에 적신호를 켰다. 이대로 한방에 훅 갈 수도 있겠다는 경종이 머리를 울리자마자 식습관 개선과 운동에 돌입했다.



책은 총 30개의 테마를 통해 건강 회복을 위한 자신의 노력과 그 과정 중에 얻은 귀중한 삶의 통찰을 밀도 있게 담았다. 생활 밀착형 자기 고백 속 삶을 대하는 저자의 철학 또한 빛난다.


30가지의 주제 모두가 너무나 실제적이기에 상당량의 밑줄을 그었다. 의료인이 아님에도 기자 정신을 발휘하여 매우 객관적이며 체계적으로 자료를 데이터화해서 보여주기에 독자의 공감을 끌어내기에 충분했다.


많은 내용 중 저자가 3주 만에 8kg을 감량한 이야기는 흥미롭고 사실적이다. 나름의 '건강 5계명'을 세웠다. 당뇨에 적인 쌀, 떡, 빵과 같은 탄수화물을 줄이기 위해서 채소와 친해졌다. 국물과 과일 주스, 탄산음료를 피했고, 어떤 음식이든지 섭취한 직후에는 무조건 움직였다. 


더불어 하체 근력 운동에 열심이다. 특히 근육은 탄탄한 허벅지는 당뇨를 예방하는 매우 중요한 신체 부위다. 마지막으로 밤 12시 전에 취침하는 생활 습관을 고수했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밤 10시부터 11시 사이에 취침하는 사람들의 심장 질환 발병률이 가장 낮다.


이렇게 피나는 노력을 통해 3주 만에 8kg 감량을 통해 본인의 신장 대비 적정 체중을 유지하며 모든 콜레스테롤 수치와 당화혈색소와 같은 당뇨 수치를 대폭 낮추는 기적 같은 결과를 연출했다.


또 한 가지 충격적인 내용은 저밀도 콜레스테롤(LDL)의 주범이 바로 현대인의 합법적 마약인 커피, 그중에서도 아메리카노라는 사실이었다.


술, 담배를 전혀 안 하는 사람이 커피마저 못 마시면 무슨 재미로 사는가? 아메리카노를 너무나 사랑하는 저자의 이야기가 감정이입 된 대목이다. 그러나 그냥 죽으라는 법은 없다. 에스프레소 방식의 아메리카노가 아닌 필터를 통해 커피의 기름기 즉 크레마를 걸러내는 드립 커피는 비교적 안전(?) 하다는 저자의 말이 커피 마니아에게는 일종의 복음이다.



책을 읽고 정리하며 발견한 본서의 장점은 뚜렷하다. 몇 권의 건강 관련 에세이를 읽어본 경험에 비춰볼 때 이 책은 식습관 개선과 더불어 운동을 함께 다루었다는 점이다. 보통 어느 한 주제에 치우친 경우가 많은데 저자는 자신이 살기 위해 필사적으로 행한 식습관과 운동의 상관 관계를 고루 다루었기에 매우 균형 잡혀 있다.


아울러 곳곳에 녹아있는 건강과 삶에 관한 진한 통찰이 작은 감동을 주는 것은 저자의 보너스다. 책의 제목 '덜 먹고 우직하게 달려라'는 '스티브 잡스'가 스탠퍼드 대학교 졸업식에서 행한 연설의 마지막 어귀에서 차용했다.


"Stay Hungry. Stay Foolish"(항상 갈망하라. 항상 우직하라.)


공복은 최고의 건강 비결인 다이어트의 은유고 우직함은 반복적 운동의 수사다. 저자는 말한다. "루틴은 지겨운 것이라는 단순한 명제가 사실은 가장 새롭고 현명하고 혁신적인 습관이다."


건강을 지키는 지름길은 건강한 음식을 먹으려는 꾸준한 노력과 걷고 달리고 근력을 키우는 지속적인 고통의 시간을 감내하는 것이다. 대가를 지불하지 않으면 열매도 없다!


50대를 바라보며 다양한 건강의 적신호를 인지했는가? 그렇다면 이 책을 집어 들고 읽어야 할 충분한 이유다. 저자가 먼저 부정적이고 긍정적인 부분의 양면을 모두 경험했기에 그의 조언을 달게 받아들일 수 있다.


책을 펼치는 순간 독자는 덜 먹고 우직하게 달릴 충분한 이유를 발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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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으로서의 정치·직업으로서의 학문 현대지성 클래식 57
막스 베버 지음,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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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을 통해 '막스 베버'를 처음 접했다. 북유럽 자본주의 정신의 태동이 개신교, 특별히 칼뱅주의 청교도 노동윤리에 기인한다는 주장이 신선했다. 이후 <거래소>를 통해서 선물 거래와 증권 거래에 대한 부정적 인식에 항변한 베버의 주장을 통해 사회적 정황과 국제 정세를 꿰뚫는 그의 예리한 지성을 엿보았다.


근대를 살다 간 독일의 사회과학자이며 정치경제학자인 막스 베버의 또 다른 저작 <직업으로서의 정치, 직업으로서의 학문 / 막스 베버 / 현대지성>을 만났다.



책은 1917년과 1919년 두 번에 걸친 베버의 공개 강연을 엮은 것이다. 당시 시대적 정황을 이해하면 책의 풍미가 깊어진다. 우선 베버의 활동 시기는 독일제국 건설의 시기와 맞물린다. 독일제국은 프로이센의 빌헬름 1세가 황제가 됨으로써 황제권과 더불어 비스마르크와 같은 재상의 독재적 권력이 증대했다.


이러한 상황 속 제국 의회정치는 상대적인 목소리를 낼 수 없었기에 근대 독일의 정치 발전과 개혁의 속도는 더딜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베버는 책의 첫 번째 주제인 <직업으로서의 정치>에서 지배의 내외적 조건, 실질적인 정치를 이끌어가는 정치인의 유형과 직업 정치인의 출현 등을 고찰하며 복잡한 현실 정치의 난제에 대한 예언자적 통찰을 선보인다.


베버는 지배의 내적 조건을 설명하며 전통, 카리스마, 합법성 가운데 카리스마를 지닌 리더가 국가라는 합법적 공권력을 가지고 합리적으로 나라를 통치하는 모습을 가장 이상적인 지도자의 내적 조건으로 본다.


그런데 여기에서 카리스마는 순전히 개인적인 자질로서 표현된다. 대중은 고결한 인품을 바탕으로 따를만하고 추앙할 만한 무형의 됨됨이를 지닌 리더가 정치에 있어서도 참된 소명을 가진 자로 여긴다. 또한 여타의 천박한 가치를 추구하는 자가 아니라면 그 사람 또한 본인의 정치 소명을 확신함 속에 자신을 지지하고 따르는 대중과 함께 할 수 있다.


그러나 불행한 것은 예나 지금이나 대중이 믿고 따를 수 있는 고결함과 지고의 품격과는 거리가 먼 인물이 정치 지도자가 된다는 아이러니함이다.


이후 근대 정당이 출현하면서 정치를 업으로 삼는 이들이 탄생했다. 베버는 직업 정치가의 내적 조건으로 열정, 책임감, 시대적 안목을 꼽는다. 개인의 열정만으로 바른 정치를 행할 수 없고, 열정과 더불어 자신의 결정과 공적 행위를 끝까지 책임지려는 윤리성, 냉정하고 침착하게 현실을 간파하며 직시할 수 있는 시대적 안목을 갖춘 직업 정치가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어지는 두 번째 주제인 <직업으로서의 학문>은 학문의 위치와 역할에 대해서다. 이 강연이 이루어진 1917년은 제 1차 세계대전의 끝자락이었으며 독일제국의 패전이 짙어져가는 시기였다. 독일의 대학생들과 청년들은 시대의 지성인 베버를 바라보며 독일 사회의 혼란스러운 현실에 대한 명쾌한 답변을 바랐다.


하지만 베버는 학문의 책무란 특정한 정치적 견해와 정론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판단의 주체인 인간 스스로가 편견 없이 자신의 견해를 결정하고 선택할 수 있도록 돕는 데 있음을 이야기한다.


학문이 삶의 근본적인 문제와 인생의 가치에 대해 답해줄 수 없다는 무력감이 전해진다. 베버의 표현대로라면 직업으로서 학문의 전당에 발을 내디딘 이들에게 요구되는 미덕은 오로지 지적 정직성이다. 가치 판단의 철저한 배제!



그렇다면 이 책은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떠한 메시지를 던지는가? 책을 덮으며 개인적으로 두 가지 여운이 깊다.


소위 밥 먹기 위한 직업으로서의 정치는 계획과 실행, 결과에 있어 책임 윤리를 가져야 한다는 것! 모든 일에 있어 책임을 회피하는 직업 정치인들로 가득한 현실 정치의 암울함을 따끔하게 꼬집는 말이다.


무거운 책임 윤리 의식을 견지할 자신이 없으면 밥 벌어 먹고 살기 위한 정치인이 되면 안된다. 그냥 범부로 살아라!


둘째, 학문이 가치 판단을 배제하는 이유는 개별 존재의 판단과 선택을 독려하는 것이다. 대중이 무지할 때 윤리와 책임 의식이 결여된 사고의 기형아를 지도자로 세우는 무서운 결과를 낳는다. 즉, 베버는 직업적 학문의 역할로서 대중의 주체성을 배양하는 데 있어 학문의 역할을 강조한 것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직업으로서의 학문을 행하는 학자는 냉철한 객관성을 놓치지 않는 모습이 미덕이다.


결국 다른 듯 하지만 정치와 학문은 뗄 수 없는 관계다. 현 상황을 돌아보게 하는 시대의 선각자가 던지는 명제가 제법 매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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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킬박사와 하이드 씨 -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선집 현대지성 클래식 56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지음, 에드먼드 조지프 설리번 외 그림, 서창렬 옮김 / 현대지성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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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본성은 근본적으로 선한가 아니면 악한가? 오래전부터 논구되었던 주제다. 이 물음이 하나의 이야기로 탄생했다. 인간 본성의 이중성을 적나라하게 파헤친 수작.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 /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 현대지성>는 완독해 본 적은 없지만 많은 이들이 제목과 대략의 스토리를 아는 유명한 작품이다.


낮에는 선한 양심을 가진 지킬 박사가 밤만 되면 폭력적이고 탐욕스러운 하이드 씨로 변한다. 작가인 스티븐슨은 소설을 통해 인간의 내면 속 두 개의 상이한 인격이 존재함을 전제했다. 지고한 선을 행하고자 원하지만 질펀한 쾌락에 탐닉하고 싶은 욕망이 보편적 인간의 영혼 안에서 지진한 싸움을 이어간다.



주인공 지킬은 화학에 조예가 깊은 의사다. 너무나 훌륭한 커리어를 구축했지만 자신 안에 고개를 드는 쾌락과 탐욕의 본성으로 힘들어 한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이 만든 비약을 통해 내면에 살아 숨 쉬는 두 개의 상반된 인격을 한 몸 안에서 분리해 내는데 성공한다.


방탕함이 주는 참을 수 없는 쾌락으로 인해 급기야는 살인을 저지르는 하이드 씨의 모습을 통해 무의식 속에 잠재되어 있는 인간의 악을 향한 지향성을 엿본다.


몇 해 전 16개월 된 양녀를 지속적으로 폭행해 사망에 이르게 한 두 얼굴을 가진 양모의 모습이 모든 이를 경악게 한 사건이 있다. 방송에 출연한 모습은 지고지순한 천사였다. 하지만 그녀의 내면에는 또 다른 인격의 하이드가 뱀과 같이 똬리를 틀고 있었음을 아무도 몰랐다.


인간의 내면에는 다중적 인격이 공존한다는 충격적인 실례다.


인간 이성의 이중성, 이성과 광기의 실체를 제대로 드러낸 19세기 영국 빅토리아 시대의 대표적인 고딕소설로서 본 작품이 갖는 중첩된 의미는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번에 현대지성에 출간된 본서는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선집'의 형식으로 편집되었다. 스티븐슨의 대표 단편 3개가 함께 수록되었다.


각설하고 나머지 세 편 모두 너무 재미있어서 그야말로 순삭 했다. <병 속의 악마>,<마크하임>,<시체 도둑> 세 개의 단편 모두 스티븐슨의 문학적 탁월함을 드러내는 수작이다.


보통 대표작을 제외한 단편은 스토리와 의미에 있어 중량감이 떨어지곤 하는데 스티븐슨의 단편은 그런 편견을 뒤집는다. 세 편 모두 독자의 마음을 홀리는 데 있어 부족함 없이 스토리의 구성이 단단하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와 더불어 <시체 도둑>은 19세기 영국의 의대 해부학 수업에서 부족한 실습용 시체인 '카데바'를 공급하기 위해 벌어진 범죄를 모티브로 했기에 나름의 긴장감이 더해진다. 결말 조차도 매우 그로테스크하기에 분위기 자체가 어둡다.


<마크하임>은 살인자가 겪는 내면의 심리 묘사와 선한 양심, 악의 본질에 대한 작가의 깊은 사유를 읽을 수 있는 작품이다. 주인공의 감정선을 따라가다 보면 인간 본성이 선과 악에서 외줄 타기 하듯 요동침을 느낄 수 있다. 


<병 속의 악마>는 <보물섬>을 쓴 작가의 발칙한 상상력이 더해 진 저작이다.


소유한 자의 어떠한 소원이든 들어주는 악마가 들어 있는 유리병이 있다. 결코 깨지지 않는 이 유리병을 소유한 자는 모든 소원을 빌 수 있다. 그러나 이 병을 간직한 채 죽는 최후의 소유자는 악마와 함께 지옥에 떨어진다. 자신이 구입한 가격보다 1원이라도 싸게 판매해야 하는 원칙 속 소원을 성취한 후 마치 폭탄 게임을 하듯 새로운 구매자에게 유리병을 넘기려는 처절한 사투가 시작된다.


다른 세 편의 작품과 달리 동화와 같이 가벼운 마음으로 즐겁게 감상할 수 있다. 하지만 내재한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다. 이 또한 인간의 탐욕과 이기심의 실체를 하나의 작은 동화에 밀도 있게 녹여냈기에 작가의 탁월한 문학적 역량을 엿볼 수 있다.



공교롭게도 네 편 모두 인간 본성에 내재한 선과 악의 본질에 대해 다룬다. 21세기를 살아가는 모든 인간에게 동일하게 공존하는 선악의 수사를 통해 우리 안에 숨겨진 하이드의 망령을 끊임없이 소환한다.


의인의 인두겁을 쓴 채 16개월 된 양녀의 숨통을 잔인하게 짓눌렀던 양모의 모습이 비단 그녀만의 모습일까?


저자의 탁월한 시대적 통찰에 소스라치게 놀란다. 인간의 본성 속 잠자고 있는 악을 향한 끊임없는 갈망, 방탕함과 쾌락을 향해 달려가는 멈출 수 없는 폭주 기관차와 같은 인간의 숨겨진 본능을 문학적 메스를 이용하여 예리하게 발라냈다.


인간 누구에게나 존재하는 악을 향한 근원적 갈망이 우리 모두에게 있음을 부인할 수 없기에 본 작품이 더 소름 돋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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