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킬박사와 하이드 씨 -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선집 현대지성 클래식 56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지음, 에드먼드 조지프 설리번 외 그림, 서창렬 옮김 / 현대지성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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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본성은 근본적으로 선한가 아니면 악한가? 오래전부터 논구되었던 주제다. 이 물음이 하나의 이야기로 탄생했다. 인간 본성의 이중성을 적나라하게 파헤친 수작.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 /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 현대지성>는 완독해 본 적은 없지만 많은 이들이 제목과 대략의 스토리를 아는 유명한 작품이다.


낮에는 선한 양심을 가진 지킬 박사가 밤만 되면 폭력적이고 탐욕스러운 하이드 씨로 변한다. 작가인 스티븐슨은 소설을 통해 인간의 내면 속 두 개의 상이한 인격이 존재함을 전제했다. 지고한 선을 행하고자 원하지만 질펀한 쾌락에 탐닉하고 싶은 욕망이 보편적 인간의 영혼 안에서 지진한 싸움을 이어간다.



주인공 지킬은 화학에 조예가 깊은 의사다. 너무나 훌륭한 커리어를 구축했지만 자신 안에 고개를 드는 쾌락과 탐욕의 본성으로 힘들어 한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이 만든 비약을 통해 내면에 살아 숨 쉬는 두 개의 상반된 인격을 한 몸 안에서 분리해 내는데 성공한다.


방탕함이 주는 참을 수 없는 쾌락으로 인해 급기야는 살인을 저지르는 하이드 씨의 모습을 통해 무의식 속에 잠재되어 있는 인간의 악을 향한 지향성을 엿본다.


몇 해 전 16개월 된 양녀를 지속적으로 폭행해 사망에 이르게 한 두 얼굴을 가진 양모의 모습이 모든 이를 경악게 한 사건이 있다. 방송에 출연한 모습은 지고지순한 천사였다. 하지만 그녀의 내면에는 또 다른 인격의 하이드가 뱀과 같이 똬리를 틀고 있었음을 아무도 몰랐다.


인간의 내면에는 다중적 인격이 공존한다는 충격적인 실례다.


인간 이성의 이중성, 이성과 광기의 실체를 제대로 드러낸 19세기 영국 빅토리아 시대의 대표적인 고딕소설로서 본 작품이 갖는 중첩된 의미는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번에 현대지성에 출간된 본서는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선집'의 형식으로 편집되었다. 스티븐슨의 대표 단편 3개가 함께 수록되었다.


각설하고 나머지 세 편 모두 너무 재미있어서 그야말로 순삭 했다. <병 속의 악마>,<마크하임>,<시체 도둑> 세 개의 단편 모두 스티븐슨의 문학적 탁월함을 드러내는 수작이다.


보통 대표작을 제외한 단편은 스토리와 의미에 있어 중량감이 떨어지곤 하는데 스티븐슨의 단편은 그런 편견을 뒤집는다. 세 편 모두 독자의 마음을 홀리는 데 있어 부족함 없이 스토리의 구성이 단단하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와 더불어 <시체 도둑>은 19세기 영국의 의대 해부학 수업에서 부족한 실습용 시체인 '카데바'를 공급하기 위해 벌어진 범죄를 모티브로 했기에 나름의 긴장감이 더해진다. 결말 조차도 매우 그로테스크하기에 분위기 자체가 어둡다.


<마크하임>은 살인자가 겪는 내면의 심리 묘사와 선한 양심, 악의 본질에 대한 작가의 깊은 사유를 읽을 수 있는 작품이다. 주인공의 감정선을 따라가다 보면 인간 본성이 선과 악에서 외줄 타기 하듯 요동침을 느낄 수 있다. 


<병 속의 악마>는 <보물섬>을 쓴 작가의 발칙한 상상력이 더해 진 저작이다.


소유한 자의 어떠한 소원이든 들어주는 악마가 들어 있는 유리병이 있다. 결코 깨지지 않는 이 유리병을 소유한 자는 모든 소원을 빌 수 있다. 그러나 이 병을 간직한 채 죽는 최후의 소유자는 악마와 함께 지옥에 떨어진다. 자신이 구입한 가격보다 1원이라도 싸게 판매해야 하는 원칙 속 소원을 성취한 후 마치 폭탄 게임을 하듯 새로운 구매자에게 유리병을 넘기려는 처절한 사투가 시작된다.


다른 세 편의 작품과 달리 동화와 같이 가벼운 마음으로 즐겁게 감상할 수 있다. 하지만 내재한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다. 이 또한 인간의 탐욕과 이기심의 실체를 하나의 작은 동화에 밀도 있게 녹여냈기에 작가의 탁월한 문학적 역량을 엿볼 수 있다.



공교롭게도 네 편 모두 인간 본성에 내재한 선과 악의 본질에 대해 다룬다. 21세기를 살아가는 모든 인간에게 동일하게 공존하는 선악의 수사를 통해 우리 안에 숨겨진 하이드의 망령을 끊임없이 소환한다.


의인의 인두겁을 쓴 채 16개월 된 양녀의 숨통을 잔인하게 짓눌렀던 양모의 모습이 비단 그녀만의 모습일까?


저자의 탁월한 시대적 통찰에 소스라치게 놀란다. 인간의 본성 속 잠자고 있는 악을 향한 끊임없는 갈망, 방탕함과 쾌락을 향해 달려가는 멈출 수 없는 폭주 기관차와 같은 인간의 숨겨진 본능을 문학적 메스를 이용하여 예리하게 발라냈다.


인간 누구에게나 존재하는 악을 향한 근원적 갈망이 우리 모두에게 있음을 부인할 수 없기에 본 작품이 더 소름 돋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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