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을 수 없는 일이야 현대지성 클래식 16
싱클레어 루이스 지음, 서미석 옮김 / 현대지성 / 2018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디스토피아 소설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책이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과 <1984>이다. 새해들어 현실에 대한 풍자와 미래 세계에 대한 암울함으로 대변되는 디스토피아 소설의 매력을 느낄 수 있는 또 한권의 책을 만났는데 바로 오늘 소개하는 미국이 낳은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인 '싱클레어 루이스'의 소설 <있을 수 없는 일이야> 이다.

미국하면 자유와 민주주의로 대변되는 그림이 떠오른다. 국민의 주권과 목소리가 언제 어디서나 수렴되고 국민들은 자신의 능력과 의지를 따라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그야말로 국민의 인권과 행복이 보장된 나라. 본서는 이러한 미국하면 떠오르는 매우 자연스럽고 긍정적인 이미지를 바탕으로 이러한 미국에서 독재정권이 탄생할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의 부호를 던지면서 시작된다. 그리고 책의 제목은 그림조차도 미국적인 냄새가 물씬 풍기는 표지삽화를 통해  It can't happen here! 라고 그러한 의문을 불경스러움으로 일축해버린다.

가난한 국민들의 대변인으로 자처하며 그들의 지지를 얻어 대통령으로 당선된 민주당 상원의원 '윈드립'은 당선 후 자신의 사병조직 '미니트맨'과 함께 행정구역 개편, 대학과 언론 장악 등을 통해 독재의 수순을 착실히 밟기 시작한다. 더불어 본서의 주인공인 신문사 편집장 '도리머스 제섭'은 이러한 상황들을 예의주시하지만 결코 반대의 목소리를 내거나 저항하지 않는데...

그렇다. 자유 민주주의의 기수라고 불리는 미국에서 독재정권이라니? 이 무슨 얼토당토한 이야기인가? 그러나 저자는 바로 이러한 대다수 사람들의 뿌리박혀 있는 고정관념과 인식의 틀을 헤집고 미국에서도 충분히 독재정권이 들어 설 수 있는 개연성을 소설을 통해 풀어낸다.

얼마 전 지금 가장 핫한 영화라고 하는 '1987'을 관람했다. 과거 군사 독재정권으로부터 자유 민주주의를 지켜내기 위해 자신의 생명과 가족과 삶을 송두리채 내던졌던 사람들이 있었던 반면에 그저 뒷편에서 희생의 떡고물을 받아 먹고 가늘고 긴 인생을 살아가는 대다수 우민들이 상존하는 것이 작금의 우리네 세상이다.

비선실세를 통한 정국의 혼란, 헌정 사상 유례가 없는 대통령 탄핵이라는 결과를 지켜보며 그리고 그러한 결과를 이끌어 낸 비폭력 촛불집회를 바라보며 "권리 위에 잠자는 자 보호받지 못한다!"라는 글귀가 머릿속을 스친다. 소설 속 주인공 도리머스 제섭의 모습은 다름아닌 바로 위와 같이 권리 위에 잠자는 자였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의 사위의 죽음을 목격하면서 독재와 불의에 침묵했고 무관심했던 자신을 포함한 제 2의 도리머스 제섭인 우리들을 향해 후회와 절망의 탄식을 밷어낸다. 

미국에서는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지금처럼 인터넷과 SNS등이 발달된 최첨단의 사회에서는 정보와 언론의 통제가 불가능하다고? 천만의 말씀이다. 불의에 대해서 목소리를 내지 않고 그늘 밑에 숨어 있는 대다수 국민들은 본서의 주인공 도리머스 제섭의 모습과 동일하다. 누군가 해주겠지! 누군가 나 대신 싸워주겠지! 그리고 그렇게 불의에 대해 무관심으로 일관하며 침묵하는 사람들이 다수를 차지하는 한 미국을 포함한 어느 나라이건 소설의 내용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야!" 가 될 수 있음이 바로 저자가 본서를 통해 독자들에게 던지는 역설적 메시지 속의 진의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캔터베리 이야기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15
제프리 초서 지음, 송병선 옮김 / 현대지성 / 2017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새해들어 첫 리뷰를 남기는 책은 셰익스피어를 탄생시킨 영문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제프리 초서'의 <캔터베리 이야기>이다. 31명의 순례자가 성인 '토마스 베켓'의 성지인 캔터베리 대성당으로 순례의 길을 떠나기 전에 타바드 여관에 모였고, 여관 주인은 순례의 길을 오가는 동안 본인이 가진 가장 재미있는 이야기를 서로에게 들려주고, 그중에서 제일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에게 한턱 내는 게임을 제안한 것.

31명의 순례자들은 높은 신분의 사람들부터 낮은 신분의 사람들까지 다양하고 다채로운 신분과 계층, 직업을 가진 사람들로서 함께 순례의 길을 떠나며 자신이 알고 있는 이야기의 보따리를 풀어놓는다. 중세 영국의 생활상과 인간군상의 적나라한 모습들, 중세 유럽 그 시대를 살아갔던 평범한 사람들의 가치관과 세계관을 저자인 초서의 탁월한 집필력을 통해 매우 흥미롭게 파악할 수 있는 점이 본서가 가진 장점이다.

토막 토막 작은 이야기들은  간혹 통속적이고 음탕하며 또 때로는 아름다운 미담에 걸맞기도 하고, 동시에 적절한 풍자와 해학이 곁들여져 독자로 하여금 웃음과 탄식을 선사하며 더불어 각 chapter를 마무리하면서 잠시 이야기가 전달하는 교훈을 되새겨보게 만드는 힘이 있다. 

당시 중세 유럽에서의 여성들에 대한 남성들의 편견과 불합리한 관점을 드러내는 여러편의 이야기들, 다른 사람들의 소유를 아무렇지 않게 빼앗다가 자신의 소중한 것을 한번에 날려버리는 어리석은 방앗간 주인에 관한 교훈, 자신의 늙음은 생각지 않고 오직 젊은 여인만을 원하는 탐욕스럽고 주제도 모르는 기사에 관한 이야기, 진정한 사랑을 발견하고 그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서 자신의 목숨까지도 바칠 각오로 싸우던 의형제의 이야기, 아내로 맞이한 여인의 정조와 의지를 시험하기 위해서 아내의 인내심의 바닥까지 테스트한 의심 가득한 어느 후작의 이야기 등등...

각 세대의 시대상을 이해하고 시대가 던지는 메시지를 가장 손쉽게 파악하기 위해서 제일 손쉬운 방법을 꼽으라면 바로 온갖 인간군상들이 모여있는 전통 시장을 가보면 된다고 말한다. 우리네 평범한 사람들이 왁자지껄 떠들며 흥정하고 때로는 시비가 붙어서 애교로 봐줄 수 있을 법한 작은 소요가 끊이지 않고, 한편에서는 진기한 물건들을 구경하는 아이들의 재잘거림과 새로운 주인을 맞이하기 위한 기다림에 울어대는 각종 가축들의 울음소리가 물건을 홍보하는 상인들의 목소리와 어울려 하나가 되는 그야말로 서민들의 민낯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전통 시장.

'제프리 초서'의 본서 <캔터베리 이야기>가 바로 이와 같이 전통 시장과 같은 분위기의 책이라고 평해도 억측은 아니리라. 순례자들 각자가 풀어놓는 이야기들이 마치 인간사의 모든 희노애락을 커다란 샐러드 볼에 넣고 각종 양념과 고소한 참기름, 고추장을 넣고 비벼서 만들어지는 비빔밥과 같다. 그만큼 본서가 가지는 매력은 서민적이고, 사람 냄새 가득하다는 점이다. 이렇기에 독자는 650여 페이지에 달하는 결코 짧지 않은 분량의 책이지만 흥미를 잃지 않고 끝까지 이들 순례자들과 함께 순례의 길을 마칠 수 있는 힘을 얻는다. 마치 32번째의 순례자가 되어 그 일행 속에서 그들의 이야기들을 하나 하나 경청하며 함께 웃고 생각할 수 있게 만드는 힘은 본서가 가진 독특함이다.

책을 덮으며 깨닫는 사실 한가지는 본서에서 저자가 31명의 순례자들을 통해 풀어놓는 이야기들이 비단 중세 유럽, 영국에서만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사실에 대한 자각이다. 이땅에 인간 사회가 존재했던 시대 언제 어디에서나 본서에 등장하는 이야기들은 나와 우리 이웃들의 평범한 삶의 이야기라는 점이다. 그리고 그 지극히 평범한 주제를 인간 지성의 틀 안에 녹여냄으로서 비로소 하나의 교훈적인 작품으로 형상을 부여한 것이 바로 저자 '제프리 초서'의 천재성이다.

직진우회전 동시 차선에서 정지선을 오버하는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자신의 갈길을 열라고 무례한 경적을 울려대는 탐욕과 이기심에 가득한 버르장머리 없는 인간의 오만함을 목격한 아침. 본서의 내용들이 머릿 속을 스쳐 지나간다. 혹자는 이야기에 등장하는 어리석은 또는 탐욕스러운 주인공의 삶이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애써 부인하겠지만 그것이 다만 하나의 초라하고 애처로운 면피용 변명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순례자들의 입을 통해 촌철살인과 같이 현실을 직시하도록 요구하는 이야기의 편린이 인간 누구에게나 존재한다는 어찌할 수 없는 타락한 인간 본성의 외침으로 증명되는 것이리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루터 선집 - 종교개혁자 루터의 에센스 세계기독교고전 35
마르틴 루터 지음, 이형기 옮김, 존 딜렌버거 편집 / CH북스(크리스천다이제스트) / 2017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517년 비텐베르크 교회당 문에 95개조 반박문을 게시할 때까지만해도 루터는 신앙적 양심에 기초한 자신의 그 작은 몸짓이 유럽 전역 아니 기독교 역사 가운데 상상할 수 없는 파장을 불러 올 것이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본서는 로마 카톨릭에 의한 1000년의 중세 암흑기를 뚫고 희미한 개혁의 빛을 드리운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의 저작 가운데서도 신학적, 신앙적으로 그 가치를 인정 받고 있는 탁월한 작품들을 선별하여 수록했기에 본서의 부제답게 '루터의 에센스', 즉 정수라 표현해도 무방하다.

생전 그가 저술한 여러편의 저작들 가운데 특별히 그의 3대 논문이라고 말할 수 있는 그리스도인은 복음안에서 자유인이며 주(主)이지만 그러나 동시에 그리스도께서 모든 이들의 종이 되셨기에 모든 이들을 위한 종으로서 다른 이들에게 종속되어진다는 <그리스도인의 자유>, 중세 로마 카톨릭의 잘못된 성례에 대한 개념을 논박한 <교회의 바벨론 포로>, 그리고 교회를 병들게 한 로마 카톨릭의 부패와 타락에 대해 독일의 귀족들이 힘을 합쳐 교회를 정화하고 개혁해야 함을 외친 <독일민족의 귀족에게 호소함>은 그가 추구했던 개혁적 의지와 사상이 농축된 그야말로 손꼽히는 저작들이다.

본서를 통해 독자는 마틴 루터의 개혁 사상과 신학에 대한 매우 상세한 지식을 습득할 수 있다. 사실<그리스도인의 자유>와 같은 논문을 읽다보면 루터 또한 당시 로마 카톨릭으로부터의 벗어남을 추구했던 것은 아님을 발견하게 된다-실제로 그가 계속적으로 당시 교황 레오 10세에게 화해를 청하는 듯한 제스쳐를 보게 된다-그러나 수도사가 된 이후에도 끊임없이 그의 삶을 괴롭히며 그의 양심을 무겁게 짓눌렀던 하나님을 향한 두려움과 죄의식 속에서 만난 로마서 1:17의 말씀은 루터의 삶을 획기적으로 바꾸어놓는 일생 일대의 크나큰 전환점이 된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로마서1:17)

당시 중세 로마 카톨릭의 공로와 보속의 구원 개념을 송두리채 흔들어 놓는 로마서 1:17의 말씀이 루터의 그 굳게 닫혀진 지성의 장막을 찟고 눈부시게 찬란한 빛으로 임하게 되었을 때 루터는 자신의 그 죄악으로 점철된 삶을 의인의 삶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이 자신의 공로와 인간의 육적인 의로움이 아닌 오직 '그리스도의 의' 라는 사실에 전율했다. 우리의 노력과 공로가 아닌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인한 의만이 인간의 근본적인 죄악과 죽음이라는 삶의 근원적인 질문에 해답이 된다는 신학적이고 성경적인 진리의 재발견!

오직 믿음, 오직 은혜, 오직 성경이라는 종교 개혁의 가치를 함의한 신념을 고수한 채 루터는 자신의 신학과 신앙 양심에 따라서 서두에 언급했던 1517년 비텐베르크에서 종교 개혁의 도화선에 불을 붙이는 당시에는 작은 몸짓이었지만 중세 유럽과 전 세계에 직간접적으로 크나큰 영향을 끼치게 되는 종교 개혁의 위대한 과업을 시작하게 된다.

루터의 출생, 법조인을 꿈꿨던 청년시절, 수도사가 되기 까지의 과정, 그의 신앙적 고뇌와 회심과 같은 그의 삶에 대한 내용들은 본서에서는 자세하게 파악할 수 없다. 그러나 그러한 내용을 포함한 책들은 이미 출판되어 있다. 그렇기에 본서를 통해 독자는 그의 신학 사상과 당시의 시대적 배경 속에서 왜 이러한 논문들이 탄생되어야 했는지에 대한 필연성, 이러한 논문들이 당시 시대와 종교적 분위기 속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졌을 것인가를 추론하며 읽어 갈 때 본서가 독자들에게 의도한 가장 큰 목적을 달성하게 된다.

거의 600페이지에 달하는 외관으로만 봐도 묵직함이 느껴지는 책을 펼치면 우선 한글 9폰트 정도의 깨알 같은 활자의 압박이 느껴진다. 내용 또한 일반적인 기독교인 독자들도 쉽사리 이해하기 쉽지 않은 신학적인 내용들로 가득하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인내를 가지고 읽어볼 가치가 충분한 저작이다. 특별히 개신교 신자들이라면 더욱더 그렇다. 기독교 역사 가운데 흘러내려오는 진리에 관한 견줄 수 없는 수 많은 오페라 가운데 종교 개혁을 대표하는 마틴 루터의 저작선은 개신교 신자들로서는 진득함과 함께 더 큰 기대감을 가지고 완독해야 할 가치가 충분하다.

2017년이 저물어간다. 올해는 1517년 종교개혁이 일어난 지 500주년이 되는 해이다. 비텐베르크 교회당 문에 긴장감 역력한 얼굴과 핏기없는 손으로 95개조 반박문을 게시함으로서 로마 카톨릭의 심장에 개혁의 칼끝을 겨누었던 젊은 수도사 마르틴 루터. 500년전 로마 카톨릭으로부터 이단으로 정죄받는 죽음의 위협 앞에서도 자신의 양심과 신념을 굽히지 않았던 평범한 신자의 탄식의 가까운 외침이 마지막 책장을 덮으며 이미 자정 능력을 상실한 '한국 교회' 라는 개혁 대상에 대한 또 하나의 종교개혁을 요구하는 시대적 목소리와 오버랩되어 귓가에 맴도는 아침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스펄전의 전도 세계기독교고전 56
찰스 H.스펄전 지음, 김귀탁 옮김 / CH북스(크리스천다이제스트) / 2017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본서는 설교의 황태자라 불리었던 19세기 영국의 '찰스 스펄전' 목사가 신학생들, 목회자들, 다양한 부류의 신자들에게 자신이 가지고 있는 성경적 전도관에 대한 담론을 책으로 엮은 것이다. 쉽게 말해서 전도에 관한 설교라고 보면 된다. 저자가 근대 개신교의 워낙 큰 영적 거인이었기에 그의 이름은 교회를 다닌다고 하는 사람이라면 익히 한번쯤은 들어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본서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전도에 관한 개념과는 사뭇 다르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배우고 알고 있는 그 전도의 개념이라는 것이 무조건 자신의 교회에 숫자를 늘리기만 하면 되는 것으로 오해하고 있음에 대해 저자의 안타까움은 그것이 한낱 숫자놀이에 불과하며 하나님께서 진정한 신자들에게 요구하시는 참된 전도의 모습이 아님을 역설함으로 표현된다. 대형마트 하나가 들어오면 주변 상권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임으로 동네 상권과 경제 생태계를 뿌리채 흔들어버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대형교회 하나가 들어오면 주변 작은 개척교회의 성도들을 진공청소기처럼 흡수해버리고, 그것을 마치 자신들이 전도를 잘해서 부흥한 것과 같이 기뻐하는 작금의 교회 모습을 스펄전 목사가 목격했다면 땅을치고 통탄하며 강도 높은 신랄한 비판을 가했으리라!

 

진정한 성경적 개념의 전도란 하나님의 구원의 복음을 알지 못하고 죽어가는 불신자들의 영혼을 위해 기도하고 권면하여 그들을 교회로 이끄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회심과 중생을 경험하여 마침내 성화되어져 가는 그 단계에까지 이르는 모습을 보는 것이다. 본서를 통해 독자는 전도의 올바른 개념, 전도자의 자격, 희생, 장애물, 사명, 상급 등에 대해서 설교의 대가가 직접 자신의 목소리로 친절하게 베푸는 가르침을 받아누릴 수 있다.

 

그러나 본서의 내용 가운데 필자에게 가장 깊은 깨달음과 감동을 준 두 가지 내용이 있다. 첫째는 본서의 구판이 <스펄전 전도설교>라는 제목이었음을 발견하면서 실제로 저자가 신학생들과 목회자들 즉, 교회 강단에서 말씀을 전하는 설교자들을 위한 가르침이었다. 설교에 대한 실질적인 기법들을 가르쳐주는 설교학 교과서는 아니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영혼 구원을 위한 설교의 특징과 설교자의 자세에 대한 저자의 진중한 가르침은 제법 효율적이면서도 무게감있게 다가온다.

 

설교의 최종 목표는 영혼의 회심이며 영혼을 얻기 위한 설교는 어차피 그 설교를 듣고 받아들이는 대상이 지성과 이성, 감정을 지닌 존재들이기에 반드시 이성적이고 지식적이어야 하면서도 따뜻한 감성을 동반해야하며 그러면서 동시에 모든 계층의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시장 언어'의 옷을 입고 전달되어져야 한다는 것, 더불어 영혼을 구원하기 위한 설교자는 항상 수준높은 영적인 삶을 살아야 하며 더불어 삶을 대하는 태도는 항상 진지해야 한다는 사실.

 

언제까지 삶에 변화가 없는 묽은 죽과 같은 윤리적이고 도덕적이며 엔터테이먼트적인 설교에 만족할 것인가? 저자는 성도의 삶에 복음이 충만할 때 교회와 성도들의 삶은 자연스럽게 윤리적이고 도덕적이 된다고 말한다. 저자는 이성적이며 지성적 체계 안에서 이루어진 명확한 복음을 설교자의 따뜻한 마음이라는 그릇에 담아 전달할 때 전도자는 영혼 구원이라는 열매를 거둘 수 있다고 말한다. 주일 아침 교회를 찾은 성도들을 잠재워서도 안되지만 그렇다고 강단에서 개그콘서트가 펼쳐져서도 안된다. 이는 영혼을 섬기는 설교자들이 두고두고 가슴에 새겨야 할 금언일 것이다.

 

둘째는 본서를 통해 영혼을 사랑하는 설교자의 따스한 마음과 진지한 태도였다. '한 영혼만이라도' 를 끊임없이 외치며 애끓는 심정으로 밷어내는 열정의 설교와 잃어버린 영혼을 붙잡고 단장의 고통 속에서 피를 토하는 골방에서의 기도는 본서에서 강조하는 목회자들에게 요구되어지는 덕목이다. 그외에도 주옥같은 가르침들이 가득하지만 이곳에 전부 소개할 수 없음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그렇기에 본서는 독자가 직접 손에 들고 읽어보아야 할 가치가 충분하다.

 

본서를 읽다보면 교회 성도들의 머릿수 늘리기에 급급함으로 한 영혼의 회심을 간과한 채 진정한 성경적 전도 설교가 사라져 버린 캐쥬얼하게 변질된 현대 교회 강단을 향해 통렬하고 따끔한 질책을 아끼지 않았던 20세기의 선지자 에이든 윌슨 토저 목사의 외침이 바로 앞 세대를 살다간 찰스 스펄전 목사의 가르침과 묘하게 오버랩된다. 영혼 구원을 위한 전도의 성경적이면서 깊이 있고 균형잡힌 건강한 가르침을 원하는가? 그렇다면 본서는 가장 잘 쓰여진 전도에 관한 저작중 한권일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메치니코프와 면역 - 현대 의학의 흐름을 바꾼 위대한 과학자의 열정과 삶
루바 비칸스키 지음, 제효영 옮김 / 동아엠앤비 / 2017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메치니코프! 하면 대다수 한국인들의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TV 광고 속에서 수 없이 많이 접했던 '메치니코프 유산균 요구르트' 일 것이다. 그렇기에 어쩌면 메치니코프가 사람 이름인지도 모르고 단지 상표명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본서는 한국인들에게 널리 알려진 유산균 요구르트 상표명의 주인공인 러시아의 동물학자이자 미생물, 면역학의 선구자인 파스퇴르 연구소의 교수였던 <일리야 메치니코프>의 삶과 과학에 대한 열정, 그리고 그가 평생토록 이룬 그의 눈부신 연구 업적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일종의 전기이다.

 

 

19세기 중반 남부 러시아의 한 작은 마을에서 출생한 메치니코프는 어린 시절 동네의 자기보다 나이가 많은 형들을 불러모아놓고 돈을 주면서 자신의 강의를 경청하도록 만들 정도의 다른 아이들과는 무엇인가 다른 특유의 괴짜스러움을 가진 인물이었다. 대학에 들어간 청년 시절에는 당시 러시아의 젊은 세대의 주류의 시대정신이었던 니힐리즘(허무주의, 염세주의)의 신봉자로서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에 있어서도 다른 평인들과는 다른 그만의 유별난 모습을 견지했다. 그런 그가 미생물학자로서의 첫 발을 내딛게 된 계기는 불가사리의 유충 속에 떠돌아다니는 정체불명 방랑세포의 기능을 발견하면서부터이다. 외부로부터의 침입자를 둘러싼 이 세포들의 식균작용을 발견한 이후 메치니코프는 인체 면역학의 새로운 역사적 장을 열기 위한 식세포 이론을 완성해 나가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그 싸움이 얼마나 기니긴 세월을 필요로하며 수많은 적대자들의 공격과 저항에 맞서야만 할 지난한 과정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모른체 말이다.

 

그렇게 식세포 이론과 그 이후 20세기 초에 들어서면서 인체의 장내 독소에 대한 연구로 눈을 돌리며 요구르트 유산균이 이 장내 독소들을 쫓아낸다는 사실을 발견함으로서 전 세계적으로 자신의 이름을 딴 요구르트 생산의 신기원을 이뤄낸다. 1908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공동 수상한 이 불굴의 의지를 지닌 괴짜 과학자의 삶과 열정은 자신의 몸을 직접 생체 실험의 재료로 사용하는 등의 상상하기 힘든 과학적 기행을 낳았지만 그의 이러한 무모하리만한 과학에의 타오르는 갈망과 열정을 통해 면역학과 노화학의 새로운 지평이 열렸다는 사실은 독자들의 입장에서 두고 두고 새겨보아야 할 대목이다.

 

 

1916년 생을 마감한 이후 그의 타계 100년이 넘어가는 이 시점에서 메치니코프의 과학적 성과는 인류의 건강과 수명 연장에 대한 활발한 연구로 이어져오고 있다. 그러나 독자는 본서를 통해 그의 탁월한 과학적 업적의 이면에 숨겨진 수 많은 연구의 실패와 절망 속에서도 결코 좌절하거나 굴하지 않고 자신의 삶을 곧추 세울 수 있었던 인간 메치니코프의 땀과 눈물, 그의 삶을 향한 간절함에 전율하게 된다.

 

첫번째 아내를 결핵으로 떠나보낸 후 자살을 결심하고 다량의 몰핀을 과량 복용했지만 운좋게 살아남은 후 그의 삶에 대한 갈망과 생에 대한 욕구는 죽기를 결심한 이전보다 더 뜨겁게 불타오르게 된다. 어쩌면 그의 이러한 죽음을 각오했던 투쟁적 의지가 그의 과학을 향한 종교적 신념으로만치 승화되어 누구도 쉽게 이룩할 수 없었던 역사적인 위대한 성과물의 자양분이 된 것이 아닐까?

 

위대한 인물은 그냥 탄생하는 것이 아닌 것 같다. 본서를 읽어내려가며 작은 시련과 인생의 폭풍 앞에서 한없이 나약해짐으로 자신의 삶을 힘없이 놓아버리는 요즘의 젊은 세대들이 떠오르는 것은 내가 나이를 먹었다는 노파심의 증거일까? 어찌되었던 본서는 지금의 눈부신 문명의 혜택을 누리고 살아가는 우리와는 비교할 수 없이 열악했던 19세기를 살다 간 한 탁월한 과학자의 삶을 통해 작금의 시대 상황 속에서 다양한 삶의 문제를 헤치고 삶을 살아내야만 하는 모든 이들에게 크나큰 도전이며 격려로 다가온다.

 

메치니코프! 이제 그 이름은 적어도 내게는 한낱 유산균 요구르트의 상표명이 아닌 열정과 불굴의 대명사로 기억되리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