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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터 선집 - 종교개혁자 루터의 에센스 ㅣ 세계기독교고전 35
마르틴 루터 지음, 이형기 옮김, 존 딜렌버거 편집 / CH북스(크리스천다이제스트) / 2017년 12월
평점 :
1517년 비텐베르크 교회당 문에 95개조 반박문을 게시할 때까지만해도 루터는 신앙적 양심에 기초한 자신의 그 작은 몸짓이 유럽 전역 아니 기독교 역사 가운데 상상할 수 없는 파장을 불러 올 것이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본서는 로마 카톨릭에 의한 1000년의 중세 암흑기를 뚫고 희미한 개혁의 빛을 드리운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의 저작 가운데서도 신학적, 신앙적으로 그 가치를 인정 받고 있는 탁월한 작품들을 선별하여 수록했기에 본서의 부제답게 '루터의 에센스', 즉 정수라 표현해도 무방하다.
생전 그가 저술한 여러편의 저작들 가운데 특별히 그의 3대 논문이라고 말할 수 있는 그리스도인은 복음안에서 자유인이며 주(主)이지만 그러나 동시에 그리스도께서 모든 이들의 종이 되셨기에 모든 이들을 위한 종으로서 다른 이들에게 종속되어진다는 <그리스도인의 자유>, 중세 로마 카톨릭의 잘못된 성례에 대한 개념을 논박한 <교회의 바벨론 포로>, 그리고 교회를 병들게 한 로마 카톨릭의 부패와 타락에 대해 독일의 귀족들이 힘을 합쳐 교회를 정화하고 개혁해야 함을 외친 <독일민족의 귀족에게 호소함>은 그가 추구했던 개혁적 의지와 사상이 농축된 그야말로 손꼽히는 저작들이다.
본서를 통해 독자는 마틴 루터의 개혁 사상과 신학에 대한 매우 상세한 지식을 습득할 수 있다. 사실<그리스도인의 자유>와 같은 논문을 읽다보면 루터 또한 당시 로마 카톨릭으로부터의 벗어남을 추구했던 것은 아님을 발견하게 된다-실제로 그가 계속적으로 당시 교황 레오 10세에게 화해를 청하는 듯한 제스쳐를 보게 된다-그러나 수도사가 된 이후에도 끊임없이 그의 삶을 괴롭히며 그의 양심을 무겁게 짓눌렀던 하나님을 향한 두려움과 죄의식 속에서 만난 로마서 1:17의 말씀은 루터의 삶을 획기적으로 바꾸어놓는 일생 일대의 크나큰 전환점이 된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로마서1:17)
당시 중세 로마 카톨릭의 공로와 보속의 구원 개념을 송두리채 흔들어 놓는 로마서 1:17의 말씀이 루터의 그 굳게 닫혀진 지성의 장막을 찟고 눈부시게 찬란한 빛으로 임하게 되었을 때 루터는 자신의 그 죄악으로 점철된 삶을 의인의 삶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이 자신의 공로와 인간의 육적인 의로움이 아닌 오직 '그리스도의 의' 라는 사실에 전율했다. 우리의 노력과 공로가 아닌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인한 의만이 인간의 근본적인 죄악과 죽음이라는 삶의 근원적인 질문에 해답이 된다는 신학적이고 성경적인 진리의 재발견!
오직 믿음, 오직 은혜, 오직 성경이라는 종교 개혁의 가치를 함의한 신념을 고수한 채 루터는 자신의 신학과 신앙 양심에 따라서 서두에 언급했던 1517년 비텐베르크에서 종교 개혁의 도화선에 불을 붙이는 당시에는 작은 몸짓이었지만 중세 유럽과 전 세계에 직간접적으로 크나큰 영향을 끼치게 되는 종교 개혁의 위대한 과업을 시작하게 된다.
루터의 출생, 법조인을 꿈꿨던 청년시절, 수도사가 되기 까지의 과정, 그의 신앙적 고뇌와 회심과 같은 그의 삶에 대한 내용들은 본서에서는 자세하게 파악할 수 없다. 그러나 그러한 내용을 포함한 책들은 이미 출판되어 있다. 그렇기에 본서를 통해 독자는 그의 신학 사상과 당시의 시대적 배경 속에서 왜 이러한 논문들이 탄생되어야 했는지에 대한 필연성, 이러한 논문들이 당시 시대와 종교적 분위기 속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졌을 것인가를 추론하며 읽어 갈 때 본서가 독자들에게 의도한 가장 큰 목적을 달성하게 된다.
거의 600페이지에 달하는 외관으로만 봐도 묵직함이 느껴지는 책을 펼치면 우선 한글 9폰트 정도의 깨알 같은 활자의 압박이 느껴진다. 내용 또한 일반적인 기독교인 독자들도 쉽사리 이해하기 쉽지 않은 신학적인 내용들로 가득하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인내를 가지고 읽어볼 가치가 충분한 저작이다. 특별히 개신교 신자들이라면 더욱더 그렇다. 기독교 역사 가운데 흘러내려오는 진리에 관한 견줄 수 없는 수 많은 오페라 가운데 종교 개혁을 대표하는 마틴 루터의 저작선은 개신교 신자들로서는 진득함과 함께 더 큰 기대감을 가지고 완독해야 할 가치가 충분하다.
2017년이 저물어간다. 올해는 1517년 종교개혁이 일어난 지 500주년이 되는 해이다. 비텐베르크 교회당 문에 긴장감 역력한 얼굴과 핏기없는 손으로 95개조 반박문을 게시함으로서 로마 카톨릭의 심장에 개혁의 칼끝을 겨누었던 젊은 수도사 마르틴 루터. 500년전 로마 카톨릭으로부터 이단으로 정죄받는 죽음의 위협 앞에서도 자신의 양심과 신념을 굽히지 않았던 평범한 신자의 탄식의 가까운 외침이 마지막 책장을 덮으며 이미 자정 능력을 상실한 '한국 교회' 라는 개혁 대상에 대한 또 하나의 종교개혁을 요구하는 시대적 목소리와 오버랩되어 귓가에 맴도는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