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와 그녀의 꽃들
루피 카우르 지음, 신현림 옮김 / 박하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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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봄날 독특한 형식의 책 한권을 만났다. 정직하게 말해 시집은 그리 선호하는 분야가 아니기에 선뜻 손이 가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지만 궁금함과 기대감을 가지고 집어들은 본서를 통해서 시집이 가지는 그 나름대로의 매력을 발견하게 된 시간이었다. 여성으로서 느낀 상실과 트라우마, 사랑, 회복에 관한 메시지가 자신이 겪은 아픈 상처에 어우러져 한권의 시집으로 탄생되었다.

시집으로서 운율을 정비한 한권의 운문집을 생각하면 오산이다. 본서는 저자가 성폭력이라는 자신의 아픔을 회복과 사랑으로 승화시킨 전혀 색다른 느낌의 작품이다. 독자는 한편의 작품으로 책을 만날뿐이지만 저자는 자신의 모든 아픔과 슬픔, 고통으로 얼룩진 삶의 단면을 여실히 드러내는 용기를 보여준다.

본서는 시듦, 떨어짐, 뿌리내림, 싹틈, 꽃핌이라는 5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성으로서 당한 끔찍한 성폭력의 충격과 상처, 아픔 속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닌 자신의 삶을 회복과 치유를 향한 하나의 과정으로 여기며 승화시키는 저자의 용기와 결단 그리고 긍정적인 삶의 태도가 담담한 필치로 그려지고 있다. 더불어 간결하지만 깊은 메시지와 울림이 느껴지는 담백한 일러스트레이션은 저자의 시와 어우러져 독자로 하여금 더 깊은 상념에 젖게 한다.

끔찍한 고통과 상상할 수 없는 아픔을 떨치고 일어나서 새로운 삶의 희망을 꿈꾼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 '미투' 가 오늘 우리 사회의 화두로 떠올라 연일 매스컴을 뜨겁게 구는 이 때에 본서는 매우 시의적절하게 출간된 것 같다. 함부로 침범 받아서는 안되는 인간의 권리, 그것은 남성이나 여성 모두에게 동일하다. 동일하게 존중되어야 하며 보호되어야 하는 존엄의 관점이 교묘하게 어그러져 있는 사회 속에 루피 카우르의 '해와 그녀의 꽃들'은 작은 나비짓으로 다가온다.

얼룩진 사랑으로 상처받았기에 사랑에 대한 미움이 싹트는 것이 당연하지만 그래도 진실된 사랑을 찾기를 갈구하는 이 땅의 모든 여성들에게 본서는 오늘도 "괜찮아! 너의 잘못이 아니야!"라고 말하며 용기와 위로, 격려로서 다가온다. 그리고 단지 위로와 격려로서 끝나는 것이 아닌 한 단계 더 나은 삶으로의 넉넉한 도약을 꿈꾸도록 돕는다. 더불어 본서는 본능에 대한 이성의 강력한 고발이라는 보이지 않는 힘을 지님으로서 인간 양심에 대해 깊이있게 숙고하며 사회의 현실을 직시하도록 하는 시집 본래의 기능과 역할을 톡톡히 감당하고 있고, 그렇기에 더욱 매력적인 책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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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사 인물 열전
소준섭 지음 / 현대지성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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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와 바로 이웃하고 있는 중국이라는 나라의 역사는 항상 국사와 세계사 수업을 통해서 연대와 주요사건을 나열하는 방식으로 배웠던 것이 전부였다. 그렇기에 거대한 영토와 그에 필적하는 유구한 역사를 가진 중국을 움직였던 주요 인물들에 대해서 크게 알길이 요원했던 점이 사실이다. 대부분 이러한 역사 교육 하에서 자라난 세대에 포함되는 독자들에게 본서는 인물 중심의 역사 서술 방식을 통해 중국 대륙의 기나긴 5천년 역사를 매우 쉽고 재미있게 훝어내려갈 수 있도록 쓰여졌다.

또한 본서가 가지는 독특한 점 가운데 하나는 사관의 객관성이다. 중국 현지인에 관점에서 쓰여진 저작이 아닌 엄밀히 말해 그들에게는 외국인인 중국사 전문가 한국인 소준섭 박사에 의해서 쓰여졌기에 어찌보면 역사를 들여다보고 평가하는 잣대가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좀 더 객관성을 유지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그것은 책을 읽어가다보면 독자 스스로가 느끼고 동의하게 되는 부분인데 구체적으로 어느 한 인물을 논할 때에 저자는 그 인물이 행했던 역사적 성과와 과오 모두를 공정하게 드러내며 기술한다. 예를 들어 당나라 고종의 황후였던 측천무후의 경우 폭압과 음란의 부정적 이미지로 대변되는 인물이지만 반대로 과거제도를 정비함으로서 영화로도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적인걸' 같은 인물을 발굴해내며 상대적으로 백성들의 생활을 안정화시킨 공적 또한 함께 드러내며 기술하고 있다는 점 등이다.

책은 크게 4부로 구성되어 있다. 중국의 고대왕조인 요, 순 시대부터 진시황, 한, 당, 송, 명, 청 그리고 현대 중국에 이르기까지 주로 중국 역사의 중앙 무대를 장악했던 주류 민족인 한족의 역사를 큰 물줄기로 중간 중간 수나라, 몽골의 원나라, 티베트 등의 비주류(?)역사의 곁가지 속 영웅호걸들의 발자취를 통해서 중국 역사의 퍼즐들을 맞춰간다. 그러나 본서가 반드시 영웅호걸 들만의 이야기로 점철된 것은 아니다. 각 왕조를 열었던 개국 황제들의 이야기 뿐만 아니라 그들과 함께 했던 당대 최고의 재상들과 학자, 문인들, 천하절색의 여인들, 풍류를 노래했던 시인들 할 것 없이 중국사를 논할 때에 빠질 수 없는 다양한 인물 군상들이 등장한다.

계책과 용병술에 능했던 강태공, 유가의 아버지 공자, 통일 제국의 시조 진시황, 한 고조 유방과 초나라의 항우, 뛰어난 정치가였던 당 태종, 탁월한 시인 이백과 두보, 공포정치와 선정의 두 얼굴 중국 최초의 여제 측천무후, 천하일색 양귀비, TV드라마로도 널리 알려진 청렴결백 판관 포청천, 세계의 지도를 바꾼 몽골의 칭기즈칸, 명나라 개국 황제 주원장, 청나라의 전성시대를 이끈 강희제 그리고 근현대 중국 혁명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쑨원, 지금의 대만을 있게 한 국민당의 장제스, 중국 공산당의 신화 마오쩌둥, 중국의 개혁 초석을 놓은 덩샤오핑까지 중국 5천년 역사는 이러한 인물들의 삶과 종적이 씨실과 날실로 엮어져서 하나의 큰 그림으로 탄생되었다.

그러나 의아한 사실은 본서의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 마지막 장에서 저자가 소개하고 있는 인물은 독자들에게 너무나 생소한 우리와 같은 보통의 범인이다. 현대 중국 농촌의 촌민위원회라는 조직의 대표가 된 왕수룽 할머니가 바로 본서의 대미를 장식하고 있는 주인공이다. 책을 덮으며 왜 저자는 광활한 중국 대륙 역사를 소개하는 본서의 마지막 장에 무명의 촌부를 올렸을까 생각하게 된다. 깊은 고심을 할 필요도 없이 얻게 된 필자만의 답은 역사의 보편성과 현재성으로 귀결된다. 제 아무리 5천년 1만년 역사를 논한다 할지라도 어차피 그 역사의 수레바퀴를 굴러가게 만드는 중요한 원동력은 바로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자신의 삶의 현장 속에서 주어진 삶을 최선을 다해 살아내고 사라져 간 수 많은 무명의 민초들에 의해서라는 역사적 보편성에 대한 자각이며 더불어 역사는 이러한 평범한 사람들에 의해서 지금도 계속적으로 이어진다는 현재성에 대한 인식이다. 

즉, 저자는 바로 이와 같은 역사의 보편성과 더불어 역사는 다름아닌 지금도 이름없는 수 많은 사람들에 의한 현재 진행형임을 독자들에게 암시하기 위해 본서의 마지막장을 중국 어느 촌의 평범한 범부의 삶을 소개하며 끝마치고 있는 것이리라.

아무리 천하를 흔들고 쥐었다 폈다하며 호령할지라도 어차피 한줌의 재로 돌아가야 하는 허무한 인간사에 있어서 명예와 권력의 덧없음을 깨우치지 못한다면 황제의 권좌가 무슨 소용이 있겠고, 그 영화와 수 많은 찬사가 무슨 유익이 있겠는가? 땅콩 하나에 멀쩡한 비행기를 회항시키고, 답변을 하지 못한다는 사실 하나에 물벼락을 쏟아내는 사회 지도층이라고 부르기도 부끄러운 이들의 행태가 연일 매스컴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요즘 거대한 중국 역사를 움직였던 수많은 인물들 가운데 파행을 일삼았던 역사의 역적과 같은 이들의 면면과 이들의 민낯이 오버랩되어 다가오는 진저리 쳐지는 경험을 한다.

아! 오해는 마시라! 책 자체는 별 다섯개가 아깝지 않은 명작임을 밝히며 미력한 서평을 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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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어를 위한 두뇌튼튼 종이접기 - 치매를 예방하는 실전 뇌훈련
최수진 옮김, 일본종이접기협회 외 감수 / 책밥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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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접기는 어른이나 어린이 모두에게 즐거움을 주는 놀이 아이템인 것만은 확실하다. 그러나 주로 종이접기는 그동안 당연히 아이들의 전유물이었고, 아이들이 즐겨하는 놀이 중의 하나로서 그 기원을 알 수 없을 정도로 오랜 세월 동안 손에서 손으로 이어져 온 것이 사실이다. 그렇기에 누구나 학창시절을 보낸 사람들이라면 친구들과 함께 색종이를 가지고 다양한 사물들을 접으며 시간을 보낸 추억이 있다.

본서는 이러한 누구나 가지고 공유하고 있는 그 종이접기 놀이에 대한 기억과 향수를 불러 일으킴과 동시에 한가지 중요한 기능적 의미를 가지고 출판되었다. 다름아니라 이 종이접기가 어린이들 뿐만 아니라 연세가 있으신 어르신들의 치매 예방을 위한 아주 효과적인 예방법이라는 점.

주로 사람이 나이가 들면 뇌의 전두엽 부분이 가장 빨리 노화가 진행되면서 치매가 찾아올 확률이 높아지는데 이때 사람이 손가락을 사용하는 일을 자주 하다보면 이 전두엽 부분을 활성화시켜주고, 그것은 치매를 예방하는 데에 매우 효과적이라는 연구결과가 있다. 이러한 배경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본서는 다양한 동물과 식물, 사물들을 소재로 종이접기가 가능하도록 편집되어 출간되었는데 왜 본서의 제목이 '두뇌튼튼' 인지는 책을 따라 종이접기를 하다보면 느낄 수 있다.

읽는 책이라기보다 워크북으로서 책 자체에 수록된 색종이들을 오려서 주어진 방법대로 미션을 수행하다보면 하나의 종이접기 아이템이 완성되어진다. 책을 받아 아이와 함께 당장 몇장을 오려서 종이접기를 시작했다. 본서가 가지는 가장 큰 장점은 바로 종이접기를 매우 손쉽게 따라서 할 수 있도록 색종이 자체에 접는 순서가 표기 되어있다는 점이다. 독자는 그렇게 표기된 점선과 실선의 순번을 따라가며 접기만 하면 되기에 매우 손쉽다. 그리고 뒤에는 접는 방법까지 해답으로 수록되어 있기에 아이들이나 노인들 모두에게 그리 어렵지 않게 작업을 수행하도록 돕는다.


 

사진은 필자의 아이가 만든 작품이다. 종이접기를 한 후 자기 나름대로 테이프로 뒷면의 들뜬 부분을 붙여서 고정시키고, 나무젓가락을 이용해서 일종의 종이접기 조형물을 완성시켰다. 종이접기로서 그냥 2차원적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것에서 한발짝 더 나아가 아이의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도 나쁘지 않다.

대부분의 이러한 워크북들이 가지는 특징 중 하나는 손가락 협응이다. 손가락을 부지런히 움직임으로서 소근육 발달과 협응력 증진이라는 효과를 거두는 것이 워크북들이 내세우는 성과 중 하나다. 본서도 다를 바 없다. 그러나 본서가 가지는 가장 큰 장점은 어렵지 않다는 점이다. 필자는 종이접기를 좋아하는 아이의 성화로 거의 몇주간 매일 저녁마다 몇개의 종이접기를 해줘야 했던 때가 있었다. 접을 수 있는 것이라고는 비행기, 배, 동서남북 정도의 매우 고전적이고 오래된 아이템들 밖에 생각나는 것이 없었던 필자는 급기야 인터넷 동영상의 종이접기 강좌를 시청하며 따라 접기를 시도했다. 쉬운 것은 어렵지 않았으나 반면 난이도가 있는 것은 따라 접는 방법이나 순서 등이 매우 어렵고 혼란스러워서 포기할 때가 적지 않았다. (설명해주는 선생님들의 설명이 이해가 안될 때가 간혹 있다)

그렇기에 이번에 본서를 발견하고 펼쳐든 본서의 가장 큰 장점이 바로 모든 순서가 종이 위에 점선과 실선으로 번호까지 친절하게 표기되어 있었다는 점이며 이는 누구나가 쉽게 따라서 작업을 진행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본서가 가지는 또 하나의 장점은 앞에서도 이야기했듯이 '두뇌튼튼' 이라는 책의 제목안에 숨어 있다. 손가락 협응력 증진으로 뇌 기능의 활성화라는 매우 중요한 기능을 가지고 있지만 무엇보다도 종이접기를 하는 사람에게 '생각' 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실선과 점선, 때로는 가위를 가지고 오려야 하는 선들을 만날 때마다 잠시 멈춰 한번 생각하게 만든다. "이 선을 앞으로 접어야 하는가 뒤로 접어야 하는가? 접고 넘기는 것인가? 이 선을 여기서 오리면 어떤 모양이 나올 것인가?" 와 같이 생각하고 추론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본서는 생각하기 싫어하는 세대, 사고의 스위치를 꺼버리게 만드는 TV와 스마트폰에 포로된 요즘 세대의 아이들, 그리고 성인들에게 종이접기라는 작은 아이템이 주는 선물이다. 또한 가족과 함께 할 때 그 즐거움은 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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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록 (그리스어 원전 완역본) - 철학자 황제가 전쟁터에서 자신에게 쓴 일기 현대지성 클래식 18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지음,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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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오현제 가운데 마지막 황제였으며 네로를 능가하는 기독교의 대 박해자였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로마의 16대 황제로서 어린 시절 철학에 귀의하여 우주와 자연,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와 깨달음을 발전시켜 간다. 본서는 철황(哲皇)으로서 그가 남긴 깊은 철학적 사유에 관한 저작이다. 대부분의 시간들을 로마 국경에 출몰하여 제국의 안위를 위협하는 야만족들로부터 나라를 평안케 하기 위해 야전에서 보내며 자신에게 써내려간 소위 일기 형식의 단편적인 글들이 모아져서 바로 이 <명상록>이 탄생되었다.

짧막한 글들의 연속, 어찌보면 작은 생각의 파편들과 조각들이 서로 잇대어져서 하나의 탁월한 철학서 한권이 탄생되었는데 정작 책을 펼쳐들었을 때는 마치 17세기 프랑스의 수학자이자 철학자였던 블레즈 파스칼의 <팡세>를 떠올리게 된다. 두 저작 모두 개인의 사유에 근거한 작품들이기에 어찌보면 형식상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그들이 살아간 시대의 간극과 사유의 대상, 주제만이 다르다면 다르겠지만서도...

특별히 저자는 스토아 철학에 깊이 침잠했던 인물이다. 본서를 시작하며 친절하게도 역자의 해제가 수록된 점은 철학에 문외한인 나 같은 독자들에게 본서를 읽고 이해하는 데 있어서 매우 유용한 부분임이 확실하다. 명상록을 이해하고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사상을 엿보기 위해서 독자는 우선 그가 깊이 탐구했던 스토아 철학의 기본적인 개념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 간략하게 말해서 스토아 철학은 미덕을 중시하고, 인간의 욕망과 감정은 어떠한 대상을 가치있고 바람직하게 여기는 신념에 직접적으로 연관되며 인간의 내재적 본성은 공동체와 타자에 대한 사랑, 우주에 대한 목적과 섭리를 인정함으로서 자연학과 윤리학의 연결을 인정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철학이라는 학문을 고도로 통합된 지식체계로 보고, 모든 학문과의 연계성과 더불어 기초가 됨을 신뢰했다.

무엇보다 본서를 통해 접하게 되는 저자의 사상은 우주라는 거대한 국가 안에서의 인간 존재의 위치에 대한 깊은 깨달음이다. 또한 내가 살아가는 자연과의 관계, 나를 둘러싼 타자들과의 관계를 심도있게 조명하며 사고의 틀을 확장시켜간다. 그렇기에 인간은 자연이라는 거스를 수 없는 마치 신적 존재와 같은 힘에 의해 이땅에 보내졌고, 때가 되면 죽음이라는 새로운 옷을 입는다. 죽음을 두려워 할 필요도 없고, 누구나 맞이하게 되는 자연의 이치이며 순리라는 사실에 대한 자각을 강조하며 오히려 죽음을 기쁘고 즐겁게 맞이할 수 있는 정신과 발상의 전환을 이야기한다.

모든 사람이 죽었고, 우리도 죽을 것이며 앞으로 올 사람들도 죽는다. 그렇기에 인간은 한낱 아침 안개와 같이 사라질 헛된 부귀와 명성을 위해 애쓸 필요도 없고, 왜 사람들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지에 대해서 염려할 필요도 없다. 또한 본서를 통해 큰 도전을 받았던 내용 가운데 하나는 타자에 대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독특한 철학적 견해였다. 다른 이들이 나를 화나게 만들고, 나에 대해 비방과 악담을 쏟아놓으며 나에게 어려움을 준다고 해도 그것은 실상 나에게 어떠한 해도 끼칠 수 없고, 나를 슬프게 할 수 없는 것들이다. 왜냐하면 나에게 가해지는 마치 토사물과 같은 부정적인 견해들은 근본적으로 나를 헤칠 수 없고, 슬프게 할 수 없다. 오히려 그러한 타인의 견해들이 나에게 부정적인 것들이고 나를 어렵게 만든다고 생각하는 나의 판단이 더 문제라는 것.

그냥 소위 '쿨' 하다고 표현할 수 밖에 없는 그의 철학적 사유는 놀랍기만하다. 또한 그렇게 나를 괴롭게 하는 사람들의 문제는 단지 그들의 문제이며 그들이 이웃을 복되게 해야하는 자신의 본성을 거스르는 것이기에 그것은 그들의 잘못일 뿐이라고 너무나 쉽게 문제의 원인을 그들 자신에게 토스해버리는 대목에서는 절로 탄식이 흘러나온다. 그리고 하나 더! 이러한 사람들조차도 우주라는 거대한 국가의 한 구성원이며 그 안에서 형제된 사람임을 기억함으로서 사랑과 인간의 예의로서 대해야 한다는 저자의 말은 그가 "원수를 사랑하라!"는 당시 기독교의 영향을 받은 사람이 아니었을까 의심하게 만든 대목이기도 하다. 물론 그는 기독교를 잔혹하게 탄압하고 핍박했던 사람이었지만...

또한 본서에서 빼놓을 수 없는 주제는 인간 이성에 대한 강조였다. 인간을 지배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인 이성은 정신을 지배하며 정신은 육체를 지배한다. 그렇기에 물질적이고 쾌락적인 주제들은 그것 자체로 스토아 학파에서는 결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지 못한다. 인간 이성의 고귀함과 가치야말로 스토아 학파가 추구한 가장 중요하며 핵심적인 본질이며 미덕이기 때문이다.

어찌되었든 황제로서의 재위 기간 대부분을 생사를 넘나드는 전선에서 야전 사령관으로서 보내며 자신의 생각을 틈틈히 기록한 저자의 본서는 그렇기에 어쩌면 다른 저작들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삶과 죽음,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가 묻어나는 것이 아닐까? 오늘의 전투에서는 살아남았지만 당장 내일의 전투에서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닐 수도 있을법한 상황 속에서 저자는 매일 밤 깊은 고뇌를 통해 그 자신만의 철학적 사유의 작업을 진행해 나갔을 것이다. 

책을 읽는 내내 알 수 없는 마음의 가벼움을 느낀다. 그동안 인간 관계 속에서 느꼈던 원인을 알 수 없었던 무거운 짐들, 세상과 삶에 대한 버거운 의무감으로부터의 해방감과 청량감을 느낀다. 책 한권의 힘,  그것도 고전의 힘은 역시나 무섭다. 남과 나를 비교하고, 상처를 주고받고, 삶에 대해 비관적이며 급기야는 삶을 쉽게 포기해 버리는 그렇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인류 역사 가운데 그 예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가장 풍족하고 부유한 이 첨단 문명의 혜택을 누리는 사람들의 피폐해진 정서와 삶의 치유에 있어서 이와 같은 고전이야 말로 양약 중의 양약일 것이다.

모두가 잠든 밤, 책상 앞에 앉아 본서를 펼치면 2천년전 로마 제국 어느 전선 야전 사령관 장막 안의 희미한 불빛 아래서 검붉은 핏자국이 선명한 손으로 자신의 철학적 담론을 진지하게 써내려갔을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숨결이 활자를 통해 전해져 온다. 책 한권을 두고 2천년의 시간과 공간적 간극을 뛰어넘어 역사적 저자와 만날 때 비로소 독자의 지성은 한없이 고양되고, 사고는 무한히 확장되어 가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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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한 순종 세계기독교고전 59
앤드류 머레이 지음, 김원주 옮김 / CH북스(크리스천다이제스트)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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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완독한 앤드류 머레이 목사의 순종에 관한 고전인 <순종의 학교>에 이어 또 다시 순종에 관한 고전을 만난다. 그러나 전작과 느낌이 다르다. <순종의 학교>는 순종에 관한 성경적 의미와 위치, 순종의 학교에서 학생으로서 성경이라는 교재를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라는 최고의 스승 밑에서 참된 순종을 배워가는 것에 관한 내용이 주를 이루었다면 본서는 순종과 관련한 여러편의 설교를 모은 설교 모음집과 같은 성격이 강하다.

그리스도인의 완전한 순종은 결코 이룰 수 없는 가치인가? 저자는 그렇지 않음을 역설한다. 그리스도인의 완전한 순종은 신자가 자신의 능력과 노력으로 하나님 앞에서 참된 순종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몸부림친다고 얻어질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니다. 그것은 신자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께서 그 신자의 삶의 모든 영역을 점거하시고, 동시에 신자는 그 성령께 자신의 삶을 온전히 내어맡길 때 비로소 이루어지는 은혜의 과정이다. 

본서는 9개의 chapter가 한편의 잘 짜여진 설교의 형식으로 이루어진다. 각 장의 주제는 모두 상이한 것 같지만 본서의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적인 주제는 성령께 신자의 삶을 내어맡기는 것이 하나님을 향한 온전하고 완전한 순종이라는 것에서 일맥상통한다.

저자는 책 속에서 자기 본위의 삶을 살아가는 신자는 결코 완전한 순종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며 살아갈 수도 없다고 말한다. 독자는 자신의 죄인됨과 연약함, 부족함과 결핍,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존재를 울리는 겸손의 고백이 뒤따르는 전적인 헌신과 내어드림만이 책에서 저자가 강조하는 완전한 순종의 모습임을 발견하게 된다.

개인적으로 본서의 마지막 장의 주제가 마음에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너희는 가지라' 라는 제목의 마지막 가르침에서 저자는 신자로서 특별히 사람들의 영혼을 책임진 교회의 목회자들에게 자신들이 포도나무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접붙인바 된 가지임을 주지시킨다. 결코 마름이 없는 수액을 영원토록 공급하시는 포도나무되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붙여진 바 된 가지라는 사실을 알고 고백하는 것이 바로 참된 신자에게 요구되는 완전한 순종의 모습이라는 것.

아무리 많은 사역과 과중한 업무가 빠듯한 우리의 시간을 요구한다고 해도 예수 그리스도와의 깊은 교제와 관계를 통해 매일의 일상에서 건강한 수액을 공급받는 것만이 이 세상에서 힘들고 지친 신자들의 영혼을 어루만져줄 수 있는 힘의 근원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은 영혼을 섬기는 자들이 반드시 기억하고 있어야 하는 귀중한 가르침이다. 그리고 그러한 예수 그리스도와의 깊은 교제는 나의 모든 자아와 생각을 내려놓고 나는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아무것도 아닌 존재임을 고백하는 자기부인, 즉 완전한 순종을 고백하는 신앙의 삶으로 드러난다.

책장을 덮으며 생각하게 된다.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 나 자신을 부인하는 것, 그분께 내 삶의 주권과 선택의 권리를 내어맡기는 것은 분명 이 세상의 시각으로 봐서는 자신의 삶에 대해 주체성을 상실함으로서 보이지도 않는 신에게 자신을 던지는 나약한 인간들의 무모함,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닐 것이다. 그러나 신자된 독자들에게 참된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완전한 순종이야말로 우리가 이 지상에서 추구해야할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인 신앙의 모습임과 동시에 이후 천상에서 그 가치의 위대함을 확인할 수 있는 영원한 본질이다. 왜냐하면 천상에서 불순종은 찾아볼 수 없고, 오로지 하나님과 그분의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에게 최고의 경배와 최상의 순종만이 영원토록 드려질 것이기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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