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록 (그리스어 원전 완역본) - 철학자 황제가 전쟁터에서 자신에게 쓴 일기 현대지성 클래식 18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지음,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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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오현제 가운데 마지막 황제였으며 네로를 능가하는 기독교의 대 박해자였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로마의 16대 황제로서 어린 시절 철학에 귀의하여 우주와 자연,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와 깨달음을 발전시켜 간다. 본서는 철황(哲皇)으로서 그가 남긴 깊은 철학적 사유에 관한 저작이다. 대부분의 시간들을 로마 국경에 출몰하여 제국의 안위를 위협하는 야만족들로부터 나라를 평안케 하기 위해 야전에서 보내며 자신에게 써내려간 소위 일기 형식의 단편적인 글들이 모아져서 바로 이 <명상록>이 탄생되었다.

짧막한 글들의 연속, 어찌보면 작은 생각의 파편들과 조각들이 서로 잇대어져서 하나의 탁월한 철학서 한권이 탄생되었는데 정작 책을 펼쳐들었을 때는 마치 17세기 프랑스의 수학자이자 철학자였던 블레즈 파스칼의 <팡세>를 떠올리게 된다. 두 저작 모두 개인의 사유에 근거한 작품들이기에 어찌보면 형식상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그들이 살아간 시대의 간극과 사유의 대상, 주제만이 다르다면 다르겠지만서도...

특별히 저자는 스토아 철학에 깊이 침잠했던 인물이다. 본서를 시작하며 친절하게도 역자의 해제가 수록된 점은 철학에 문외한인 나 같은 독자들에게 본서를 읽고 이해하는 데 있어서 매우 유용한 부분임이 확실하다. 명상록을 이해하고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사상을 엿보기 위해서 독자는 우선 그가 깊이 탐구했던 스토아 철학의 기본적인 개념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 간략하게 말해서 스토아 철학은 미덕을 중시하고, 인간의 욕망과 감정은 어떠한 대상을 가치있고 바람직하게 여기는 신념에 직접적으로 연관되며 인간의 내재적 본성은 공동체와 타자에 대한 사랑, 우주에 대한 목적과 섭리를 인정함으로서 자연학과 윤리학의 연결을 인정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철학이라는 학문을 고도로 통합된 지식체계로 보고, 모든 학문과의 연계성과 더불어 기초가 됨을 신뢰했다.

무엇보다 본서를 통해 접하게 되는 저자의 사상은 우주라는 거대한 국가 안에서의 인간 존재의 위치에 대한 깊은 깨달음이다. 또한 내가 살아가는 자연과의 관계, 나를 둘러싼 타자들과의 관계를 심도있게 조명하며 사고의 틀을 확장시켜간다. 그렇기에 인간은 자연이라는 거스를 수 없는 마치 신적 존재와 같은 힘에 의해 이땅에 보내졌고, 때가 되면 죽음이라는 새로운 옷을 입는다. 죽음을 두려워 할 필요도 없고, 누구나 맞이하게 되는 자연의 이치이며 순리라는 사실에 대한 자각을 강조하며 오히려 죽음을 기쁘고 즐겁게 맞이할 수 있는 정신과 발상의 전환을 이야기한다.

모든 사람이 죽었고, 우리도 죽을 것이며 앞으로 올 사람들도 죽는다. 그렇기에 인간은 한낱 아침 안개와 같이 사라질 헛된 부귀와 명성을 위해 애쓸 필요도 없고, 왜 사람들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지에 대해서 염려할 필요도 없다. 또한 본서를 통해 큰 도전을 받았던 내용 가운데 하나는 타자에 대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독특한 철학적 견해였다. 다른 이들이 나를 화나게 만들고, 나에 대해 비방과 악담을 쏟아놓으며 나에게 어려움을 준다고 해도 그것은 실상 나에게 어떠한 해도 끼칠 수 없고, 나를 슬프게 할 수 없는 것들이다. 왜냐하면 나에게 가해지는 마치 토사물과 같은 부정적인 견해들은 근본적으로 나를 헤칠 수 없고, 슬프게 할 수 없다. 오히려 그러한 타인의 견해들이 나에게 부정적인 것들이고 나를 어렵게 만든다고 생각하는 나의 판단이 더 문제라는 것.

그냥 소위 '쿨' 하다고 표현할 수 밖에 없는 그의 철학적 사유는 놀랍기만하다. 또한 그렇게 나를 괴롭게 하는 사람들의 문제는 단지 그들의 문제이며 그들이 이웃을 복되게 해야하는 자신의 본성을 거스르는 것이기에 그것은 그들의 잘못일 뿐이라고 너무나 쉽게 문제의 원인을 그들 자신에게 토스해버리는 대목에서는 절로 탄식이 흘러나온다. 그리고 하나 더! 이러한 사람들조차도 우주라는 거대한 국가의 한 구성원이며 그 안에서 형제된 사람임을 기억함으로서 사랑과 인간의 예의로서 대해야 한다는 저자의 말은 그가 "원수를 사랑하라!"는 당시 기독교의 영향을 받은 사람이 아니었을까 의심하게 만든 대목이기도 하다. 물론 그는 기독교를 잔혹하게 탄압하고 핍박했던 사람이었지만...

또한 본서에서 빼놓을 수 없는 주제는 인간 이성에 대한 강조였다. 인간을 지배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인 이성은 정신을 지배하며 정신은 육체를 지배한다. 그렇기에 물질적이고 쾌락적인 주제들은 그것 자체로 스토아 학파에서는 결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지 못한다. 인간 이성의 고귀함과 가치야말로 스토아 학파가 추구한 가장 중요하며 핵심적인 본질이며 미덕이기 때문이다.

어찌되었든 황제로서의 재위 기간 대부분을 생사를 넘나드는 전선에서 야전 사령관으로서 보내며 자신의 생각을 틈틈히 기록한 저자의 본서는 그렇기에 어쩌면 다른 저작들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삶과 죽음,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가 묻어나는 것이 아닐까? 오늘의 전투에서는 살아남았지만 당장 내일의 전투에서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닐 수도 있을법한 상황 속에서 저자는 매일 밤 깊은 고뇌를 통해 그 자신만의 철학적 사유의 작업을 진행해 나갔을 것이다. 

책을 읽는 내내 알 수 없는 마음의 가벼움을 느낀다. 그동안 인간 관계 속에서 느꼈던 원인을 알 수 없었던 무거운 짐들, 세상과 삶에 대한 버거운 의무감으로부터의 해방감과 청량감을 느낀다. 책 한권의 힘,  그것도 고전의 힘은 역시나 무섭다. 남과 나를 비교하고, 상처를 주고받고, 삶에 대해 비관적이며 급기야는 삶을 쉽게 포기해 버리는 그렇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인류 역사 가운데 그 예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가장 풍족하고 부유한 이 첨단 문명의 혜택을 누리는 사람들의 피폐해진 정서와 삶의 치유에 있어서 이와 같은 고전이야 말로 양약 중의 양약일 것이다.

모두가 잠든 밤, 책상 앞에 앉아 본서를 펼치면 2천년전 로마 제국 어느 전선 야전 사령관 장막 안의 희미한 불빛 아래서 검붉은 핏자국이 선명한 손으로 자신의 철학적 담론을 진지하게 써내려갔을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숨결이 활자를 통해 전해져 온다. 책 한권을 두고 2천년의 시간과 공간적 간극을 뛰어넘어 역사적 저자와 만날 때 비로소 독자의 지성은 한없이 고양되고, 사고는 무한히 확장되어 가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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