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ㅣ 현대지성 클래식 72
투퀴디데스 지음,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26년 1월
평점 :

<서평단에 참여하여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역사 기술은 언제나 객관적이며 사실적이어야 한다. 신화가 개입된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는 그런 면에서 어딘가 모르게 2% 부족한 느낌이다.
실패한 장군, 그러나 성공한 역사가 '투키디데스'는 역사 서술에 있어 그동안 그리스 헬라 문학이 견지한 신화적 요소를 걷어내고, 오직 사실에 입각한 역사 편찬의 새 장을 열었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 투키디데스 지음 / 현대지성 펴냄>는 BC431년 경에 발발한 라케다이몬과 아테나이의 27년간의 전쟁을 그린 역사 대작이다. 800여 페이지에 달하는 벽돌책이 말하는 고대 그리스 세계의 전쟁은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싸웠고, 어느 지역을 복속시켰다는 정도의 단순한 전투와 전쟁 양상만을 다루지 않는다.
우리가 흔히 아는 스파르타(라케다이몬)와 아테네(아테나이), 그리고 그들의 주변 동맹국이 어우러져 대규모의 전쟁으로 치닫게 된 원인과 과정, 결과를 당시의 국제 정세와 정치 역학 구조 속에서 매우 치밀하게 엮어낸 작품이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다.
고대 그리스 세계의 맹주를 자처했던 라케다이몬과 아테나이의 갈등과 분열, 다툼은 헬라 지역의 지역적 특성으로 보아 언젠가는 터질 수밖에 없는 시한폭탄과 같은 필연성에 의한 역사적 귀결이다. 지중해 연안 펠로폰네소스반도에는 수많은 크고 작은 도시 국가가 산개해 있었고, 저마다의 정치 체제와 민족적 특성을 유지한 채 고유한 삶을 영위하고 있었다.
하지만 국제 정세는 인간 본성의 악함과 탐욕이라는 기폭제에 의해 힘의 균형을 잃기 시작했고, 마침내 서로를 죽고 죽이는 전쟁 양상으로 빠르게 전환되어갔다.
전술했듯 본작은 전쟁의 한 단면만을 서술한 책이 아니라 전쟁이 일어나게 된 원인 속에 숨겨진 인간 내면의 근원적 욕망에 기인한 명예에 대한 탐욕, 오욕에 대한 염려와 공포가 어떻게 국제적인 힘의 질서를 한순간에 무너뜨릴 수 있는지에 대한 거시적 안목을 선사한다.

저자 투키디데스는 책의 전반부에 자신이 그동안의 역사서를 집필했던 이들과 확연한 차이를 갖는 부분은 확실한 증거를 토대로 했다는 점을 꼽았다. 그러면서 그는 사람들 안에 존재하는 믿고 싶은 것만 믿는 선택적 취합의 그릇된 행위를 꼬집는다. 그동안의 역사 집필은 출처와 증거의 정확성을 배제한 소위 '카더라' 식의 기사와 전해 들은 이야기가 진실인지를 살피지 않고 무작정 수용하려는 청취자의 나태함과 게으름이 빚어낸 오류로 가득했음을 지적한다.
당시 라케다이몬과 아테나이는 고대 그리스 세계의 맹주로서 힘의 균형을 유지한 채 팽팽한 연실과 같은 긴장 상태에 있었다. 하지만 힘의 역치 값을 벗어날 때 변화가 불가피하듯 물 끓는듯한 헬라 정세는 각 정치 진영의 오만에 기인한 자신감과 상황을 오판하는 어리석음으로 인해 전면전이라는 살육의 골짜기로 곤두박질쳤다.
수많은 각주를 참고하며 차근차근 긴 호흡을 유지한 채 읽어나가다 보면 어렴풋이 역사의 물줄기 속 맥이 잡히는 순간이 찾아온다. 단순히 나라가 나라를 대적한 다툼의 이야기를 벗어나 한 발자국 뒤에서 조금 더 거시적인 관점으로 책을 보라!
뺏고 빼앗는 행위의 결과 이전에 왜 전쟁이 발발했는가에 관한 원인과 이유를 찾아가는 여정 속에서 발견하는 것은 결국 인간 본성의 민낯이다. 힘의 이동과 거기에 상응하는 주변 도시 국가들의 운명의 향방은 여전히 인간 본성이 발휘하는 불완전한 판단에 근거한다. 그렇기에 대다수의 전쟁은 부조리하며 불의하다.

본서에 자주 등장하는 도시국가들의 사절단이 외치는 장엄한 연설은 사뭇 웅장하다. 자신들의 주장을 논리정연하게 선포하는 이들의 연설은 수려하고 지적이지만 결국 탐욕과 두려움, 명예와 오욕이라는 가장 원초적인 욕구에 의한 것임을 알게 될 때 인간사의 모든 것이 신선하지 않음을 발견한다.
빼앗기지 않으려고 전쟁하고, 더 움켜쥐기 위해 싸운다. 불명예가 죽음보다 무섭고 두렵기에 알량한 자존심과 명분을 위해 칼을 든다.
고대 헬라의 전쟁사가 지금의 우리에게 던지는 교훈은 매우 현실적이며 명확하다. 신화를 배제한 역사서답게 저자가 지금의 독자에게 던지는 메시지의 핵심은 명분의 무의미다. 냉혹한 힘의 역학 속 아름다운 정당성은 없다. 힘이 있으면 잡아먹는 것이며 힘이 없으면 잡아먹히는 것 그뿐이다.
국가와 민족이 서로의 이익과 안보를 위해 이빨을 드러내는 작금의 국제 정세 속 2500년 전 헬라의 지성이 가진 예지력이 시대적 적실성으로 다가오는 저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