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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랑과 꽃과
나태주 지음 / OTD / 2026년 1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오감을 자극하는 화려함으로 치장한 수많은 문학작품의 홍수 속 인공 감미료가 첨가되지 않은 담백한 시집 한 권을 만난다. 풀꽃 시인으로 알려진 '나태주'님의 시집이다. 그의 시구는 꾸밈없는 담박함 그 자체다.
얼마 전 그가 써 내려간 수많은 글 속에서 특별히 사랑받는 몇 편의 시를 선별한 시선집이 나왔다.
<사람과 사랑과 꽃과 / 나태주 지음 / OTD 펴냄>는 사람, 사랑, 꽃을 주제로 시인이 바라보고 경험하고 느낀 다양한 감정을 아름답게 노래한 시들로 가득하다.
나태주 시인의 시는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든 시인의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해맑고 투명하여 마치 어린아이의 맑은 눈동자를 보는 것만 같다. 그렇기에 세파에 치인 노인의 언어라기보다는 마치 막 인생을 시작하는 소년의 감성으로 가득하다.
시의 메시지는 일상적이며 서민 친화적이기에 허물이 없다. 누구나가 펼쳐서 가볍게 읊조릴 수 있는 시인의 시는 가볍지만 들뜨지 않고, 음미할수록 시인의 인생 진액이 배어 나오는 진득함이 있다.
<아침식탁>을 보자!
밤이 가고 아침이 오는 것
그보다 더 좋은 일은 없다
하루가 잘 저물고 저녁이 오는 것
그보다 더 다행스런 일은 없다
앞에 앉아 밥을 먹어주는 한 사람
이보다 더 소중한 사람은 없다.
3연 6행의 짧은 시다. 하지만 담긴 의미는 깊다.
시인은 밤이 가고 아침이 오는 것, 하루가 저물고 저녁이 오는 것과 같은 너무나 당연하게 여겼던 일상의 인식이 약속되지 않은 우리의 바람일 뿐임을 따뜻한 어조로 훈계한다.
잠자리에 들고 내일 아침 동일하게 눈을 뜰 수 있으리라는 보장이 어디에 있는가? 반복되는 일상성에 함몰된 현대인의 무뎌진 실존 인식일 뿐이다.
3연은 본 시의 백미다. 시인은 아침 식탁에 둘러앉았던 아이들과 부모님을 저녁에 다시 만날 수 있으리라는 사실 또한 당연시 여기는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살포시 건드린다.
"앞에 앉아 밥을 먹어주는 한 사람...이 보다 더 소중한 사람은 없다"라는 것이다.
내가 이 사람과 함께 오늘 저녁에도 지금처럼 함께 밥을 먹을 수 있을까에 대한 깊은 숙고함이 없기에 우리는 서로를 사랑하기보다는 경홀히 여기는 것이 아닐까?
<시인학교>를 보자!
남의 외로움 사 줄 생각은 하지 않고
제 외로움만 사 달라 조른다
모두가 외로움의 보따리장수.
고독한 현대인의 자화상을 단 3문장에 압축한 시인의 깊은 연륜이 묻어난다. 인생은 외로움을 짝하며 걸어가야 할 기나긴 여정이다. 나의 외로움이 너무나 크기에 나의 외로움만을 토로한다. 남의 외로움을 살필 여력이 없다. 우리 모두는 외로움을 가득 안은 보따리장수의 삶을 살아간다.
시인은 이미 풍족한 현대 물질문명 속 인생이 가진 깊은 공허를 정확히 직시했고, 해갈할 수 없는 인생의 갈증과 고독이라는 삶의 근원적 고민에 대한 이슈를 자신의 시를 읽는 독자에게 가볍게 던져준다.
그렇기에 3행밖에 되지 않는 짧은 시는 인간사의 본질적인 질문을 물을 빨아들인 스펀지처럼 머금고 있는 제법 무게감이 느껴지는 작품이 아닐 수 없다.

눈부신 햇살 아래 바람 한 점 없는 바다는 고요하다. 바다를 보고 앉아 깊은 상념에 젖어들 수 있는 적기다. 나태주 시인의 시는 독자의 심상을 고요한 바다 한가운데로 이끄는 힘이 있다. 맑고 청명함으로 가득한 그의 시들은 독자의 마음을 분주함과 번잡함 가운데서 차분하게 앉혀준다.
시구 하나가 갖는 일상적인 느낌은 독자를 둘러싼 삶과 동떨어지지 않기에 친근하며 요란하지 않기에 편안하고 차분하다. 우리에게는 이러한 느낌이 필요하다.
연애편지를 쓰는 심정으로 세상을 향해 시를 썼고 묵묵부답이었던 연애편지의 답장이 오랜 시간이 지나 메아리처럼 돌아오는 신박한 경험을 고백하는 시인은 여전히 어린아이 같고, 청년 같다. 그래서 시인의 시는 다양한 연령대의 독자들에게 제각각의 감동과 영감을 선사하는 것이 아닐까? 그렇기에 <사람과 사랑과 꽃과>는 육각수 같은 시선집이다.
편향되지 않은 채 인생의 모든 것을 관조하며 써 내려간 시인의 진국 같은 노래는 읽는 독자의 심상에 깊은 정동을 불러일으킨다.
복잡다단한 현대인의 일상 가운데 쉼표를 찍어 줄 수 있는 아름답고 따뜻한 저작 한 권이 출간된 것은 여러모로 의미가 있다. 마음에 쉼이 필요하다면 <사람과 사랑과 꽃과>를 펼쳐라! 심호흡을 하며 행간에 녹아져 있는 시인의 숨결을 느껴보라!
어느새 우리의 삶을 둘러싼 얽히고설킨 실타래와 같은 염려와 고민은 사라지고, 동네 할아버지와 같은 시인이 들려주는 따스한 이야기의 매력 속에 깊이 빠져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