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양, 제천을 다녀와서(20160227-0228)
1. 서울에서 회사 동기 결혼식이 오후 2시여서 출발이 늦어졌다. 이전에 충주, 수안보, 문경을 다녀왔기 때문에 이번 여행은 목적지를 단양, 제천 두 곳으로 잡았다. 주말 오후임에도 하행선은 한산했고, 첫 번째 목표장소인 청풍 문화재 단지로 향했다. 충주댐이 생기면서 제천시 청풍면 일대 90퍼센트가 수몰되었는데, 그곳에 있던 문화재를 한 곳에 모아 1980년대에 조성한 곳이다. 주차장에 도착해서 시각을 확인하니 4시20분이다. 동절기에는 매표마감시간이 오후 4시고 관람은 5시까지란다. 아쉬움에 매표소 앞을 두리번거리다가 아직 퇴직하지 않은 직원을 붙잡고 매달렸다. 연미가 거의 생떼를 써서 성공적으로 입장했다. 아마 내가 몇 번이고 들여 보내달라고 했어도 남자직원을 절대 안 된다고 했을 것이 뻔하다. 시간이 넉넉지 않아서 꼭 보고 싶었던 누각 ‘한벽루(寒碧樓, 보물 제528)’로 향했다. 시골 사또까 죄인을 형틀에 묶어 곤장을 내리치는 괴상한 복원 모형을 지나 한벽루 쪽으로 갔는데, 한벽루는 온몸에 붕대를 감았다. 올해 12월까지 지붕보수공사로 내부를 볼 수 없었다. 아쉬운 마음에 건물을 둘러싼 가죽을 비집고 사진만 찍었다. 한벽루에 올라 보지 못한 청풍호를 난간 위에 서서 보았다. 쌀쌀한 바람을 보듬은 호수는 반짝이고 새소리와 바람소리만 들렸다. 지난 세월 이 곳에서 본 광경의 잔상으로 글과 그림을 그렸다. 실망하기는 일렀다. 좀 더 좋은 조망을 위해 멀리 않은 망월산성의 망월루로 올라갔다. 한벽루에서 위로 200여 미터 정도라 걸어서 15분이면 도착할 수 있었다. 청풍호를 앞마당 삼아 봉긋 속은 비봉산, 국사봉, 소름산, 대덕산의 실루엣을 한 곳에서 감상했다. 높으면 좋은 것은 역시 아파트가 아니라 산이고 낮고 깊을 수록 좋은 것은 집값이 아니라 호수다. 이격거리가 채 몇 미터도 안되는 아파트촌에 살다가 이런 풍경을 직접 보면 무념무상에 빠진다. 내려오는 길에 물태리 석조여래입상(보물 제546호)앞에서 삼배를 올렸다. 돌받침 위에 뭉툭한 검은 돌이 하나 올려져 있는데, 왼쪽에 붙은 표지판을 보니 ‘남자가 자기 나이만큼 돌을 오른쪽으로 돌리고 여자는 나이만큼 왼쪽으로 돌리면 득남한다’고 했다. 소원을 빌고 동전하나씩 올렸다. 코와 입사이 인중이 옴폭 들어간 얼굴과 왼쪽 손을 땅을 가리키는 부처의 눈은 떴는지 감겼는지 알 수 없다.
2. 다음 코스는 단양 8경 중 가장 유명한 도담 삼봉이다. 상,중,하선암, 사인암, 단양 적성비는 포기했다. 사실 ‘도담 삼봉’은 호숫가에 돌 봉우리 세 개가 전부다. ‘도담’은 ‘호수 위의 섬’이라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인데, 조선의 설계자 정도전 덕분에 더욱 유명하다. 삼봉보다 호숫에 비친 그림자가 더 좋았다. 가끔 앞모습보다 뒷모습이 더 이쁜 사람이 있다. 앞에서 껴안는 것보다 백허그가 더 로맨틱하지 않은가. 옥의 티는 ‘삼봉이네 까페’에서 흘러나오는 삼봉스럽지 않은 팝송이다. 다행히 저녁시간이라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출출해진 배를 채우라 ‘구경시장’을 구경했다. 연미가 사전에 흑마늘 닭강정과 흙마늘 만두집이 유명하다고 알려줬다. 시장초입에 사람들이 쭉 늘어선 집을 찾으면 된다. 닭강정은 우리가 마지막 예약 손님이었고, 만두도 20분은 줄을 서야 했다. 근처 슈퍼에서 검은콩 막걸리 1병을 사서 숙소인 단양 관광호텔로 갔다. 닭강정과 만두, 막걸리를 먹으며 음식보다 더 맛있는 드라마 ‘시그널’을 봤다.
3. 아침 8시30분에 일어나서 호텔 조식을 먹었다. 1인당 9천원인데 우거지 해장국과 간단한 셀러드바는 먹을만 했다. 일정상 온달산성 쪽은 포기하고 제천으로 넘어갔다. ‘장락동 칠층모전석탑’으로 향했다. 한 켠에는 옛 절의 주춧돌만 남겨진 자리가 보이고 그 옆에 석탑이 놓였다. 탑신을 받치는 받침대는 안정적으로 보였고 화려한 맛은 없지만 벽돌 한 장 두 장 쌓듯 정성이 느껴졌다. 꼭대기는 높아서 볼 수 없지만 청동 유물이 출토되었다고 한다. 연미는 탁 트인 공간이라서 너무 좋다고 신이 났다. 아직 아파트의 침공이 여기까지는 닿지 못했다. 제천의 ‘의림지’는 제천 코스 중 빠지지 않는다. 겉으로 보면 물대는 못인데 이런 것을 삼한시대에 조성했다는 사실을 생각해 본다면 놀라운 일이기는 하다. 솔직히 집 근처 상동호수공원이나 의림지나 별 차이가 없다고 느꼈다면 내가 영 문화재에 대한 감각이 없는 걸까.
4. 사전 여행 계획에서 메인 코스라고 생각했던 ‘베론 성지’로 갔다. ‘황사영’은 1800년 정조가 죽은 후 벽파가 집권하면서 천주교에 대한 박해를 피해 1801년 음력 2월에 이곳으로 피신했다. 옹기 굽는 토굴에 숨어 8개월 동안 비단에 조선정부의 천주교 박해 실상을 담은 13,000자가 넘는 글을 가는 붓으로 비단에 써서 중국에 전달하려 했다. 계획은 실패로 돌아갔지만 종교의 문제를 넘어서 한 극한에 몰린 가운데서도 생의 의지를 글로 표현하고자 했던 장소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니 입을 꾹 다물게 된다. 마침 함박눈이 온다. 앙상한 나뭇가지는 가지가 아니라 뿌리같았다. 봄, 여름이면 성당 곳곳에 꽃들이 만발했겠지만 겨울나무는 적막하다고 생각했는데 눈꽃무늬 옷을 입어 다행이다.
다시 상행선 눈길을 타고 집으로 왔다. 아파트가 보이고 자동차가 늘어서 있다. 한동안 아파트가 산처럼 보이고 자동차가 나무처럼 보였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