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낌의 공동체 - 신형철 산문 2006~2009
신형철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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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낌의 공동체, 신형철 산문집(2006-2009), 문학동네

 

1. 『문학동네』편집위원, 문학평론가 신형철의 첫 산문집이다. 2006년부터 2009년까지 일간지, 문예지, 잡지에 기고한 글을 묶었다. 문학평론하면 떠오르는 현학적인 용어가 없다. 대신 ‘평론적인 산문’이라고 생각한다. 시인과 시집의 작품세계를 원고지 10매 분량으로 축약하면서 영화와 소설을 소개한다. 전직대통령의 죽음에 분개하고 현실의 부조리에 직언한다.

 

- 예술은 왼쪽 심장의 일

장관님(유인촌)께서 ‘좌파’라는 말을 어떻게 이해하고 계신지 모르겠습니다만, 존재하는 것을 긍정하기보다는 존재해야 할 것을 추구하는 게 좌파라면, 그래서 늘 더 많은 자유, 더 많은 인권, 더 많은 민주를 요구하는 게 좌파라면, 모든 진정한 예술가들은 본질적으로 좌파이고 모든 위대한 예술 작품은 깊은 곳에서 좌파적입니다. 실제로 그가 어떤 정당을 지지하건 상관없이 말입니다. 창작이라는 것은 본래 왼쪽에서 뛰는 심장이 시켜서 하는 일입니다. 예술의 영역에서 고답적인 좌우 논리는 별 의미가 없을 뿐만 아니라 지극히 촌스러울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189쪽

 

- 소설을 쓰고 싶어하는 후배들에게 가끔 주제넘은 충고를 한다. 나 자신은 소설을 단 한 줄도 써본 바 없으면서 말이다. “인물의 내면을 말로 설명하겠다는 생각을 접어라. 굳이 말해야 한다면, 아름답게 말하려 하지 말고 정확하게 말해라. 아름답게 쓰려는 욕망은 중언부언을 낳는다. 중언부언의 진실은 하나다. 자신이 쓰고자 하는 것을 장악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 장악한 것을 향해 최단거리로 가라. 특히 내면에 대해서라면, 문장을 만들지 말고 상황을 만들어라.” 그러고는 덧붙인다. “카버를 읽어라.

 

: 곧장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소설집『대성당』을 꺼내 「대성당」을 단숨에 읽었다. 신체적으로 내 몸의 바깥을 볼 수 없는 맹인이, 몸의 안을 볼 수 없는 불구의 손을 잡고 대성당을 그려나가는 장면은 한 편의 영화같다.

 

2. 시집이나 평론집을 읽는 것이 부담스러웠던 사람에게 추천한다.

『느낌의 공동체』를 읽어라. 나는 이 책을 다 읽고 신형철의 첫 평론집 『몰락의 에티카』를 샀다.

 

박정대, 「고독 행성」중에서

 

고독 행성에 호롱불이 켜지는 점등의 시간이 오면 생의 비등점에선 주전자의 물이 끓어오르고 톱밥난로의 내면을 가진 천사들은 따스하게 데워진 생의 안쪽에서 영혼의 국경선을 생각하네

 

그는 명사들에서 출발한다. 64쪽

 

박용하, 성교 전문 78쪽에서 재인용

 

그대와 처음 눈을 맞췄던 날/ 반했던 날/ 눈이 맞았던 날/ 그게 빛으로 하는 성교란 걸/ 알게 된 건 아주 훗날의 일이지요/ 빛이 맞으니 입도 맞추게 되었죠// 처음 동해와 눈을 맞췄던 날/ 야-했던 날/ 하늘 깊이 푸르렀던 날/ 그게 무한과의 성교란 걸/ 알게 된 건 아주 훗날의 일이지요/ 지금처럼 훗날의 일이지요

 

윤제림, 공군소령 김진평, 전문, 129쪽

 

싸리재 너머/ 비행운 떴다// 붉은 밭고랑에서 허리를 펴며/ 호미 든 손으로 차양을 만들며/ 남양댁/ 소리치겠다// “저기 우리 진평이 간다”// 우리나라 비행기는 전부/ 진평이가 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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