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걸음씩 걸어서 거기 도착하려네
나희덕 지음 / 달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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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희덕 산문집, 한 걸음씩 걸어서 거기 도착하려네, 달




1. 걸음을 옮기듯 책을 넘긴다. 책장을 넘길 때의 감촉은 발바닥이 땅에 닿는 순간과 유사하다. 책을 읽는 것은 내가 걷고 있다는 것. 내가 살아 있다는 것. 마음이 바쁘면 걸음도 빨라지듯 흥미진진한 소설이나 에세이를 읽을 때는 눈동자 구르는 소리가 크게 들린다.



나희덕 시인의 산문집은 뛰어서 도달하는 전철 출입구나 회사 정문이 아니다. 한 걸음씩 ‘천천히’ 걸어서 도착하는 간이역이나 울창한 숲속에 자리한 산사 입구다. 시인의 산문도 그녀의 시처럼 따뜻하고 생태적인 발견과 시선이 가득하다. 읽을수록 몸 속이 가벼워지고 비워진다. 직접 찍은 사물, 사진, 풍경도 같이 실려 있어서 걸어가는데 심심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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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동물 - 짝짓기, 번식, 굶주림까지 우리가 몰랐던 식물들의 거대한 지성과 욕망
손승우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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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승우 지음, 녹색동물, 위즈덤하우스



1. '진호님'의 추천글을 읽고 선택했다. EBS다큐프라임 방송을 정리하여 엮은 책인데, 일단 UHD 4K 영상이 눈을 잡아 끈다. 축구, 야구, 테니스에서 비디오판독이나 챌린저로 오심 판독을 하는 것처럼 세밀하게 과정을 잡아낸 사진들이 압권이다.


동식물의 최대 숙제는 번식. 이를 위해 빛과 물, 영양분이 필요하다. ‘녹색동물’이라는 책 제목처럼 식물도 동물처럼 굶주림과 짝짓기(바람, 새, 배설물로 씨를 퍼뜨림)를 통한 번식에 최적화되는 방식으로 적응해 왔다는 진화론적 관점에서 구성되어 있다.


큰 장점 중의 하나는 스토리텔링이 있어 각 챕터안의 항목이 다음 항목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구성했다는 것. 가독성 뿐 아니라 일관된 흐름을 유지하는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 목차

* PART 1 굶주림
챕터1: 인트로
챕터2: ‘빛’걱정 없이 산다
챕터3: 물 마시는 법도 가지각색
챕터4: 동물을 이용하거나 먹어버리거나

* PART 2 짝짓기
챕터5: 인트로
챕터6: 좀더 넓게, 좀더 멀리 날아가기 위하여
챕터7: 오직 ‘방문자’를 위해 준비한 꽃
챕터8: 누구를 위한 꿀인가
챕터9: 파리가 바라는 모든 것을 담다

* PART 3 번식
챕터10 인트로
챕터11 때를 기다려 절정을 이루다
챕터12 동물의 욕구를 읽어내다

챕터13 모든 씨앗의 마지막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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혀끝에서 맴도는 이름
파스칼 키냐르 지음, 송의경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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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칼 키냐르 지음, 송의경 옮김, 혀끝에서 맴도는 이름, 문학과지성사


1. 크게 동화『혀끝에서 맴도는 이름』과 에세이 『메두사에 관한 소론』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야기는 간단하다. 재봉사 죈느와 그를 흠모하는 콜브륀은 아이드비크 드 엘(Heidebic de Hel)이라는 영주의 이름을 기억해야만 부부로서 생활을 계속할 수 있다. 그런데 그의 이름을 말해야 할 시간이 다가와도 이름이 기억나지 않아 영주를 찾아 숲, 바닷가, 산으로 영주를 찾아가서 이름을 확인하고 마침내 발화한다는 스토리.


그 영주의 이름은 발화해야 하는 순간에 자꾸 혀끝에서 맴돌기만 한다. 시가 씌어지는 과정은 이미지나 잔상, 특정한 단어에서 출발하는 경우가 많은데 머릿속의 생각이 적확한 시어로 변환되지 못할 때 시인은 당혹감을 느낀다. 동화 속 주인공과 노력에 버금가는 행위를 한다. 텍스트를 저만치 두고 산책을 하거나 책을 읽는다. 밥을 먹고 수다를 떨고 운동을 하기도 한다. ‘혀끝에서 맴도는 이름’이 무르익어 입속으로 쏙 들어왔다가 다시 내뱉어지는 때를 기다리는 과정을 은유하는 동화와 에세이.


물론 이런 시학(詩學)적인 해석이나 관점에 얽매이지 않고 있는 그래도 동화나 산문으로 텍스트를 즐겨도 무방하다.




* 혀끝에서 맴도는 이름



- 작가는 단어를 쓰기 위해 그것을 탐색한다. 매끄럽게 빠져나가는 얼음 덩어리 앞에서 일시 정지된 칼처럼, 글을 쓰는 사람은 고정된 시선과 경직된 자세로 빠져나가는 단어를 향해 두손을 내밀어 애원하는 자이다. 어느 이름nom이나 하나같이 혀끝에서 맴돌기만 할 뿐이다. 13쪽



- “어서 이름을 말하라.” 영주가 큰 소리로 채근했다. 콜브륀이 미소를 지으며 나직하게 대답했다. “아이드비크 드 엘이 당신의 이름이지요.” 그러자 영주가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천지가 캄캄해졌다. 모든 게 꺼졌다. 지금 내가 말을 함으로써 꺼버린 이 촛불처럼. 말은 하는 사람은 누구나 빛을 끈다. 어둠 속을 내닫는 말발굽 소리만 들렸다. 57쪽



* 메두사에 관한 소론

- 시란 오르가슴의 향유이다. 시는 찾아낸 이름이다. 언어와 한 몸을 이루면 시가 된다. 시에 대해 정확한 정의를 내리자면, 아마도 간단히 이렇게 말하면 될 듯싶다. 시란 혀끝에서 맴도는 이름의 정반대이다. 8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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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소년이 서 있다 민음의 시 149
허연 지음 / 민음사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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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연 시집, 나쁜 소년이 서 있다, 민음사


1. 수건을 돌리던 같은 반 친구들이 곡선주로에 앉았다 소년은 이어달리기의 마지막 주자. 맞은편에서 소녀가 바통을 말아 쥐고 달려온다. 손에 땀이 많은 소년은 혹 바통을 떨어뜨리지 않을까 걱정한다. 소년은 더 키가 크려는지 요즘 무릎이 무척 아프다. 소년은 이어달리기 선수에서 빠질까봐 티를 내지 않았다. 곡선주로를 돌아 직선주로에서 바통을 건네받을 준비를 하던 소년. 그런데 소녀가 보이지 않는다. 애저녁에 날갯죽지가 아픈 새처럼, 정들기 전에 떠난다는 꽃처럼 그녀는 사라졌다. 저 멀리 바통이 떨어져 있었다.




2. 표제작인 ‘나쁜 소년이 서 있다’를 읽는데 이어달리기를 선수인 소년이 떠올랐다. 열심히 달릴 준비가 되었는데도 바통을 건네 줄 소녀가 사라진 소년이 우두커니가 된 것 같은.



이 시집은 묘사보다는 직관에 의한 진술이 도드라진다. ‘슬픈 빙하시대’ 연작, ‘생태 보고서’ 연작, 이국에 있는 화자, 푸른색 등이 이 시집의 특징이라고 생각한다.

소녀를 잃은 소년의 그 다음 행동은 어땠을까. 그 자리에서 나무가 되었을까. 밖으로 나갔을까.





* 메모

- 허연, 나쁜 소년이 서 있다, 17쪽 부분

푸른색. 떄로는 슬프게 때로는 더럽게 나를 치장하던 색. 소년이게 했고 시인이게 했고, 뒷골목을 헤매게 했던 그 색은 이젠 내게 없다. 섭섭하게도// 나는 나를 만들었다. 나를 만드는 건 사과를 베어 무는 것보다 쉬웠다. 그러나 나는 푸른색의 기억으로 살 것이다. 늙어서도 젊을 수 있는 것. 푸른 유리 조각으로 사는 것.// 무슨 법처럼, 한 소년이 서 있다./ 나쁜 소년이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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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되어 더 큰 혼란이 시작되었다 - 이다혜 기자의 페미니즘적 책 읽기
이다혜 지음 / 현암사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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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되어 더 큰 혼란이 시작되었다(이다혜 기자의 페미니즘적 책 읽기), 현암사

 

 

저자는 소설, 영화, 드라마를 비롯해 유년 시절, 대학시절, 직장생활(잡지기자, 신문사 기자)의 직간접적인 경험에서 남성중심의 사고와 그로 인해 파생되고 내재화된 성의식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다. 여자로서 당시에 충분히 문제를 제기해야 했음에도 관행이나 인간관계 때문에 혹은 성평등의식 자체가 갖추어지지 않은 시절에 대한 솔직한 반성과 후회도 담겨 있다.

 

소녀들이여, 야망을 가져라에서는 대학 입학을 앞둔 여고생들에게 책읽기, 여행, 스스로 돈 벌기 같은 주체적인 사고를 가지도록 권유하고, 여적여(여자의 적은 여자) 같은 인식의 폐해를 지적하기도 한다.

 

페미니스트란,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권리를 가지도록 요구하는 것이라는 취지에 공감했고, 소설 82년생 김지영처럼 남성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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