혀끝에서 맴도는 이름
파스칼 키냐르 지음, 송의경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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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칼 키냐르 지음, 송의경 옮김, 혀끝에서 맴도는 이름, 문학과지성사


1. 크게 동화『혀끝에서 맴도는 이름』과 에세이 『메두사에 관한 소론』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야기는 간단하다. 재봉사 죈느와 그를 흠모하는 콜브륀은 아이드비크 드 엘(Heidebic de Hel)이라는 영주의 이름을 기억해야만 부부로서 생활을 계속할 수 있다. 그런데 그의 이름을 말해야 할 시간이 다가와도 이름이 기억나지 않아 영주를 찾아 숲, 바닷가, 산으로 영주를 찾아가서 이름을 확인하고 마침내 발화한다는 스토리.


그 영주의 이름은 발화해야 하는 순간에 자꾸 혀끝에서 맴돌기만 한다. 시가 씌어지는 과정은 이미지나 잔상, 특정한 단어에서 출발하는 경우가 많은데 머릿속의 생각이 적확한 시어로 변환되지 못할 때 시인은 당혹감을 느낀다. 동화 속 주인공과 노력에 버금가는 행위를 한다. 텍스트를 저만치 두고 산책을 하거나 책을 읽는다. 밥을 먹고 수다를 떨고 운동을 하기도 한다. ‘혀끝에서 맴도는 이름’이 무르익어 입속으로 쏙 들어왔다가 다시 내뱉어지는 때를 기다리는 과정을 은유하는 동화와 에세이.


물론 이런 시학(詩學)적인 해석이나 관점에 얽매이지 않고 있는 그래도 동화나 산문으로 텍스트를 즐겨도 무방하다.




* 혀끝에서 맴도는 이름



- 작가는 단어를 쓰기 위해 그것을 탐색한다. 매끄럽게 빠져나가는 얼음 덩어리 앞에서 일시 정지된 칼처럼, 글을 쓰는 사람은 고정된 시선과 경직된 자세로 빠져나가는 단어를 향해 두손을 내밀어 애원하는 자이다. 어느 이름nom이나 하나같이 혀끝에서 맴돌기만 할 뿐이다. 13쪽



- “어서 이름을 말하라.” 영주가 큰 소리로 채근했다. 콜브륀이 미소를 지으며 나직하게 대답했다. “아이드비크 드 엘이 당신의 이름이지요.” 그러자 영주가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천지가 캄캄해졌다. 모든 게 꺼졌다. 지금 내가 말을 함으로써 꺼버린 이 촛불처럼. 말은 하는 사람은 누구나 빛을 끈다. 어둠 속을 내닫는 말발굽 소리만 들렸다. 57쪽



* 메두사에 관한 소론

- 시란 오르가슴의 향유이다. 시는 찾아낸 이름이다. 언어와 한 몸을 이루면 시가 된다. 시에 대해 정확한 정의를 내리자면, 아마도 간단히 이렇게 말하면 될 듯싶다. 시란 혀끝에서 맴도는 이름의 정반대이다. 8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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