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곳 4
최규석 지음 / 창비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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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곳 1-3권이 나온 후 2017년에 세트로 나온 3권을 다시 읽는다.







옷은 평등하다. 옷은 사람을 웃고 하게 사람을 울게 한다.

옷은 날개가 되었다가 목숨을 끊게 하는 끈이 되기도 한다.





옷, 옷, 옷,

장롱에 서랍에

옷이 보기 좋게 걸려 있거나

잘 개켜져 있으면 웃음이 난다.



어느 날은 울음이 나기도 한다.



떠난 사람의 얼굴이 달처럼 걸려 있는 것 같기도 하고

팔을 붙잡고 낮잠을 자던 사람의 살결에서 나던

냄새, 그 냄새가 묻어 있는 것 같기도 한다.



옷은 떠난 사람이 남긴

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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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년 1 - 1910-1915 무단통치와 함께 시작된 저항 (박시백의 일제강점기 역사만화) 35년 시리즈 1
박시백 지음 / 비아북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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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시백 만화, 35년(1910-1915, 무단통치와 함께 시작된 저항), 비아북


일제강점기를 다른 만화로 ‘한국독립운동의 역사’를 비롯한 참고문헌을 바탕으로 한 고증이 의외로 디테일해서 놀랐다. 일본의 무단통치로 지주-소작인 관계가 고착되는 과정과 간도, 연해주, 하와이 등으로 국외 이민을 택했던 국외 이민의 역사도 잘 나와 있었다. 별로로 ‘하와이의 분열’이라는 챕터 하나를 할애해 이승만이 하와이 동포사회를 어떻게 분열시키는지 상세히 내막을 알려주고 있어서 흥미로웠다. 대한인국민회 하와이 지방총회의 이승만을 ‘친이’로 하와이 국민회 임시중앙연합회의 박용만을 ‘친박’으로 명명하는 유머 코드까지. 부록에 있는 인물 설명에서 본문에서 간략히 언급했거나 다루지 못했던 인물까지 호명해 주어서 소장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 박은식《한국통사》서언 중에서 139쪽 부분

옛사람이 말하기를 나라는 멸할 수 있으나 역사는 멸할 수 없다고 하였다. 대개 나라는 형形(형체)이고 역사는 신神(정신)이다. 지금 한국의 형은 허물어졌으나 신만이 독존할 수는 없는 것인가. 이것이 통사를 저술하는 까닭이다. 신이 존속하여 멸하지 않으면 형은 부활할 때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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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내인 - 네트워크에 사로잡힌 사람들
찬호께이 지음, 강초아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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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호께이, 망내인(網內人), 한스미디어
#망내인 #찬호께이



전작『13.67』이 홍콩의 과거라면 『망내인』은 홍콩의 현재다. 1997년 7월 1일 영국에서 중국으로 반환된 이후 홍콩은 엄청난 변화를 겪었다. 중국식 자본주의가 홍콩을 점령하면서 집값이 치솟았고 가난한 사람들은 변방에서 ‘변방의 변방으로’ 쫓겨났다. 우연이겠지만 1997년 말 우리나라도 IMF사태로 직장인은 직업을 잃었고 대학생들은 취업이 힘들어졌다. 2000년대 접어들어 집값이 치솟고 빈부격차가 급격히 늘어났다.



소설 속에서 자매로 나오는 언니 ‘아이(阿怡)’와 동생 ‘샤오원’도 일련의 사회변화를 몸소 겪어내며 힘들어했다. 직접적인 이유는 아니겠지만 샤오원이 자살을 밑으로 파고 또 파고 들어가다 보면 홍콩 자본주의가 낳은 인간의 고독이 자리잡고 있을 것이다.



크게 줄거리는 언니가 동생을 죽음으로 몰아간 범인을 해커 ‘아녜’를 통해 알아내는 과정과 그 사정을 알게 된 이후에 이어지는 두 건의 복수다. 인터넷 게시, SNS, 개인의 사생활 전반을 해킹하는 기술을 서사적으로 잘 풀어냈고, ‘인간’의 삶에서 악을 악으로 되갚는 복수의 과정이 과연 정당한가, 라는 철학적 문제까지 제시하는 점에서 이 소설은 단순한 추리소설이 아니다.

너무 고독해서 그 고독을 나 혼자 감당하기 힘들기 때문에, 이 무거운 짐을 남을 헐뜯고 해악을 끼치는 행동으로 나누려 한 것은 아닐까, 내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사실은 그들을 힘들게 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 이런 물음들이 자꾸만 내 마음의 문에 노크하는 책이다.




작가의 말 중에서)
『망내인』은 사실 ‘인간’에 대한 이야기다. 이 작품은 추리소설이므로 미스터리와 트릭이 없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나는 그 외에도 각 인물의 입장과 생각, 그들의 희로애락을 전달하고 싶었다. 추리에서 독자들을 잘못된 방향으로 이끄는 용도로 사용되는 인물도 차마 단순한 ‘도구적 인물’로 그릴 수 없었다. 그리고 독자들이 그들이 2015년 홍콩이라는 도시에서 생활한다는 것을 느끼길 바랐다. 701쪽




* 메모


- 아이는 간단히 사건을 설명했다. 샤오원이 지하철에서 추행을 당한 것과 피고가 법정에서 말을 바꿔 범행을 인정한 것, 억울함을 호소하는 글이 땅콩게시판에 올라온 것, 누리꾼의 괴롭힘, 기자들의 보도 경쟁, 그리고 샤오원이 자살한 것까지. 79쪽


- 선입견은 탐정 일에서 금기예요. 가설을 세울 수는 있지만 그게 사살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기억해야 합니다. 가설을 세운 뒤에는 그것이 틀렸음을 밝힐 증거를 찾으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 사설이 맞는지 증명하는 게 아니라. 219-2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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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안하고 사랑스럽고 그래 편안하고 사랑스럽고 그래 1
퍼엉 글.그림 / 예담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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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연인, 부부)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모습들이 담긴 스케치화 모음집이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사랑스럽고 부러워할만한 장면들이 가득하다. 그림들을 보면서 나를 포함한 사람들이 대체로 이런 장면에서 사랑의 감정이 솟아나는구나, 생각할 수 있었다.



침대소파, 붙박이 벽책장이 있는 천장이 높고, 6층 이상의 벽돌집에서 사는 두 사람. 아기는 없고, 창문을 통해 밖의 풍경이 언뜻 보이는데 그 광경은 마치 이태리의 베니스나 피렌체 같다. 빨간 지붕을 한 집들과 두오모 성당이 보인다.



잊어버리고 살았던 사랑의 감정을 잠깐 잠깐 느끼기에는 좋은 책. 연인이나 부부가 같이 보면 좋을 것 같다. 단, 두 사람 모두 기분 좋을 때 보자.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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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천은 용의 홈타운 창비시선 383
최정례 지음 / 창비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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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례 시집, 개천은 용의 홈타운, 창비


일기 같기도 하고 여름밤 잠이 오지 않을 때 메모장에 써 놓은 짧은 줄글 같기도 하지만 그것들이 합쳐지면 산문시가 된다. 전혀 관련 없을 것 같은 소재들이 하나의 이미지나 하나의 단어를 고리로 해서 꽝 머리를 때린다. 이 어리둥절함, 당황스러움, 우스움, 허망함을 이 시집들의 산문시라 할 수 있겠지.







- 시간의 상자에서 꺼내어 시간의 가장 귀한 보석을 감춰둘 곳은 어디인가? 8쪽

지금 흐르는 이 시간은 한때 어떤 시간의 꿈이었을 거야. 지금 나는 그 흐르는 꿈에 실려가면서 엎드려 뭔가를 쓰고 있어. 곤죽이 돼가고 있어. 시간의 원천, 그 시간의 처음이 샘솟으며 꾸었던 꿈이 흐르고 있어. 지금도, 앞으로도 영원히. 달덩이가 자기 꿈을 달빛으로 살살 풀어놓는 것처럼. 시간의 꿈은 온 세상이 공평해지는 거였어. 장대하고 아름답고 폭력적인 꿈. 모든 아름다운 것들을 무너뜨리며 모든 아픈 것들을 녹여 재우며 시간은 흐르자고 꿈꾸었어. 이 권력을 저지할 수 있는 자, 나와봐. 이 세계는 공평해야 된다는 꿈. 아무도 못 말려. 그런 꿈을 꾸었던 그때의 시간도 자신의 꿈을 돌이킬 수가 없어. 시간과 시간의 꿈은 마주 볼 수도 없어.



- 나는 짜장면 배달부가 아니다 9쪽 부분

나는 시 같은 걸 한편 써야 한다. 왜냐구? 짜장면 배달부 때문에. 우리는 뭔가를 기다린다. 우리는 서둘러야 하고 곧 가야 하기 때문에. (중략) 부르기도 전에 도착할 수는 없다. 전화 받고 달려가면 퉁퉁 불어버렸네, 이런 말들을 한다. 우리는 뭔가를 기다리지만 기다릴 수가 없다. 짜장면 배달부에 대해서는 결국 못 쓰게 될 것 같다. 부르기 전에 도착할 수도 없고, 부름을 받고 달려가면 이미 늦었다. 나는 서성일 수밖에 없다. 나는 짜장면 배달부가 아니다.



- 한짝 20-21쪽 부분

손목 부분을 바닥으로 세워놓으면 뒤뚱거리다 쓰러졌다. 전날밤 TV에서 본 팽귄같았다./ 팽귄이라니, 쓸데없는 생각이다. 팽귄은 남극에 산다. 얼음 위에 서서 발등 위에 알을 올려놓고 하체의 체온으로 알을 덥힌다. 얼음 바다를 마주 바라보며 먹을 것을 구해 돌아올 짝을 기다린다. 멀리서 뒤뚱뒤뚱, 날개였던 팔을 흔들며 다가오는 짝을, 목구멍에서 먹이를 토해 부화한 새끼의 입속에 넣어줄 짝을 기다린다. 얼음 설원에 눈보라가 친다./ 장갑은 한짝뿐이라 누가 주웠다 해도 다시 버려질 것이다. 구석에서 더 구석으로 치워질 것이다. 장갑은 신경도 뇌도 없으니 추위를 느끼지 못한다. 쓰레기통에서 커피 찌꺼기, 쭈그러진 종이컵, 비닐봉지와 섞인다 해도 기분 같은 것은 없다. 차갑고 더러운 곳으로 휩쓸려간다 해도 그곳이 어디인지 자신이 무엇인지도 모른다./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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