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의 독서 - 세상을 바꾼 위험하고 위대한 생각들
유시민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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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1. 시사프로진행자, 작가, 정치인에서 다시 작가로 돌아온 유시민이 2009년에 쓴 책이다. '청춘의 독서'를 완독하니 책 제목을 '청춘을 향한 독서'로 하는 것도 괜찮았겠다 싶었다. 부끄럽게도 30대 중반에 다다른 시점에서도 이 책에서 소개한 고전 중 하나도 완독하지 못했다. '죄와 벌' '전환시대의 논리'(리영희) '공산당 선언' '인구론' '대위의 딸'(푸쉬킨) '맹자' '광장' '사기'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종의 기원' '유한계급론'(소스타인 베블런) '진보와 빈곤'(헨리 조지)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하인리히 뵐) '역사란 무엇인가'. 지금이라도 책을 읽을 수 있겠지만 10대와 20대의 내가 위의 책을 읽었을 때와 지금 읽을 때 감흥은 분명 다르다. 지나간 시간을 돌이키지 못하지만 5년 뒤 10년 뒤 또 하나의 후회를 남기지 않기 위해 고전을 읽어나가야 겠다고 다짐한다.



작가 유시민의 장점은 많은 텍스트를 잘 요약해서 읽기 좋게 내놓는다는 점이다. 돌이켜보니 유시민의 책을 몇 권 읽었다. '유시민의 경제학 까페' '나의 한국현대사' '국가란 무엇인가' '거꾸로 읽는 세계사'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 논리정연하되 잘 풀어낸다는 인상을 받았지만 '국가란 무엇인가'와 '나의 한국현대사'는 완독은 했지만 흡입력은 적었다. '국가란 무엇인가'는 관념적인 이론을 제대로 이해하는데 어려웠고, 반대로 '나의 한국현대사'는 역사적인 사실을 나열하는 부분들이 많았다. 하지만 '청춘의 독서'는 작가 유시민의 특기가 유감없이 발휘된 책이다. 고전의 줄거리를 짤막하게 소개하고 학생운동시절의 경험과 청년 유시민의 고뇌를 적절하게 섞었다. 한 챕터를 펼치면 끝까지 읽게 만드는 힘이 있다. 고전 속에 인물의 삶이 있고, 그 속에 투영된 청년 유시민의 모습도 볼 수 있어 흥미진진하다. 



2. 소스타인 베블런의 '유한 계급론'에서는 사람들이 돈을 버는 목적을 돈으로 다른 사람을 이기려고 하는 경쟁심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아무리 폭넓게 평등하게 또는 공정하게 부가 나누어지고 공동체의 부가 일반적으로 아무리 증가한다고 해도 재화를 축적하는 일에서 다른 모든 사람을 능가하려고 하는 만인의 욕망에 근거를 둔, 그러한 욕구를 충족하는 데 이르지는 못한다'(225쪽에서 유한계급론, 정수영 옮김 58쪽 재인용)

 


 돈을 생계에 필요한 재화와 서비스를 구매하고, 그 밖에 기본적인 문화적 욕구를 충족시키는데 필요한 수단이라고 한다. 어디까지나 이론상 그렇다. 의식주에 대한 기본적 욕구가 충족된 상태에서도 사람은 부를 축적하고 싶어한다. 전세를 사면 내 집을 갖고 싶고, 한 채를 가지면 자식에게 물려줄 집 한 채를 더 갖고 싶어한다. 노후대비를 위해 제테크를 한다. 돈은 이미 수단을 넘어 삶의 목적이다.  



아내가 회사에서 힘들 때마다 장난스레 '취미로 하라'고 한다. 취미가 있어야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고 말한다. 아내는 '절대 그만두라는 말은 안하네'라며 눈을 흘긴다. 물론 장난이 섞여있다. 전세금 용도로 대출한 빚도 갚아야 하고 공무원인 내 봉급으로 둘은 어떻게 살겠지만 아이가 태어난다면 턱없이 부족하다. 2년 마다 전세금은 오를 것이고, 현재 우리나라의 주거정책의 틀 안에서 집을 사기위해 더욱 허리띠를 졸라메야 한다. 

 앞으로 변할지는 모르겠지만 솔직한 심정은 정말 회사일이 힘들면 그만 두었으면 좋겠다. 내 봉급으로 충분치 않겠지만 기본적인 생활욕구를 채울 수는 있고, 외식을 줄이고, 읽고 싶은 책은 도서관에서 빌려 읽고, 유명 메이커의 옷과 신발 대신 저렴하고 품질좋은 제품을 찾는 수고를 감수한다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하루하루 직장생활에서 월급날을 기다리고 대출금을 갚아나가고 집을 장만하고 자식 교육을 시키다 보면 십수년이 훌쩍 지나갈 것이다. 남들이 몇 평 아파트에 살고, 좋은 자동차를 사는데 내가, 아내가 영향을 받지 않고 산다면 굳이 돈을 벌기 위해 살지 않고 다른 가치와 삶의 욕망을 만족시켜나가며 살 수 있지 않을까? 내가 너무 현실감각없고 뜬구름 같은 소리를 하는 걸까?



'저학력 저소득 고령층 유권자들이 유한계급의 속물주의와 물신숭배 문화를 충실히 대변하는 보수정당을 지지하는 것은 준평화적 야만 문화 단계에 있는 모든 나라에서 불 수 있는 보편적인 현상이다(243쪽)




3. 헨리 조지의 '진보와 빈곤(Progress and Poverty)'에 관한 몇 구절을 읽으면서 연신 고개를 끄덕이는 나를 발견했다. '부의 분배가 매우 불평등한 사회에서는 정부가 민주화될수록 사회는 오히려 악화된다......부패를 묵인하다가 급기야 부패를 부러워하게 된다'(260쪽)



'토지 사유는 커다란 맷돌의 아랫돌이다. 물질적 진보는 맷돌의 윗돌이다. 노동계층은 증가하는 압력을 받으면서 둘 사이이에서 갈리고 있다'(263쪽)





'유한계급론', '진보와 빈곤', '사기'에 관한 글이 눈에 잘 들어오는 걸 보니 2015년 대한민국에 사는 나의 뇌구조가 조금 보이는 듯 하다.






- 메모들


종의 기원: 자연에는 다양한 종이 있다. 모든 종은 생존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개체를 만들어내며, 개체는 생존을 위해 서로 경쟁한다. 같은 종에 속하는 개체들 사이에는 변이가 있다. 개체의 생존에 유리하게 작용하는 변이는 보존되고 유전되며 불리한 변이는 소멸된다. 이러한 자연선택을 통해 생물의 진화가 일어난다. 모든 생물 종은 따로따로 창조된 것이 아니라 공통의 조상에서 유리했으며, 이러한 자연선택과정을 통해 수없이 다양한 종이 진화해온 것(208쪽,209쪽)



- 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살아가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니콜라이 네크라소프, 시인)


- 멜서스, 인구론,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지만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증가

지구행성의 위기, 1인당 에너지 사용량, 폐기물 배출량은 기하급수, 지구의 온실가스처리능력 생태계재생능력은 일정유지 또는 감소


- 피고의 범죄부인이 그의 무죄의 증거가 될 수 없다면 그의 자백은 더욱 유죄의 증거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대위의 딸 중)



- 삶도 내가 원하는 것이고 '의'도 내가 원하는 것이지만 둘 모두를 가질 수 없다면 나는 삶을 버리고 '의'를 취할 것.

삶도 내가 원하는 것이지만 삶보다 더 절실히 원하는 것이 있기 때문에 구차하게 삶을 얻으려 하지 않으며, 죽음도 내가 싫어하는 것이지만 죽음보다 더 싫어하는 것이 있기 때문에 환란을 피할 수 있어도 피하지 않는 것이다(맹자, '고자 상'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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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리단길

울퉁불퉁하고 굴곡진 카페트를 걷는다
츄러스 하나 입에 문 사람만 입장할 것
가로수 길에서
이태원에서 
쫓겨난 사람만 손들엇
쭈그려 앉아 번호표만 쳐다보는 얼굴 속에
갓익은, 김이 모락모락 나는 치즈가 혀를 내민다
자동차는 카페트 위를 지나고
머지 않아 편지 한통 흐느적거리며 날아들겠지
입소문으로 다시 카페트를 깔아야 한다
경리단은 돌돌 말아 구석에 세워지고
새들은 옥상에 앉아 고개를 흔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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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치김밥
#참치김밥





밤은 지샌 콘트리트 벽의 등을 타고
흘러내리는 종소리에
밥알은 아스팔트에 드러 누워 잠이 든다
어깨를 맞대고 몸을 비비니
식었던 아스팔트에 아지랑이 피어오르고





아주머니
참치김밥? 오늘은 조금 늦었네
밥알은 어린아이 감싸던 포대기끈에
묶여 목구멍을 지난다





수많은 밥알을 삼킨 내가
참치김밥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았다
기신기신 일어나 달구어진
아스팔트를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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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숫개가 전화하나 언제 한 번 올래 못오제 내 죽어야

오겠제 죽을랑가 밤나무 가시에 찌신듯이 아프다 뭐라

카는지 안듣긴다 전화비 마이 나온다 끊어라



객기댁 정지를 들락날락 강셰이 오믄 뭐를 주꼬

고동국에 정구지 찌짐 해줄까 수루메 꺼내고 물고메 삶는다



밤나무골 너른 평상을 폴짝폴짝 뛰댕기는 공깃돌은

참외 한 조각 물고 땀을 식힌다



우리 숫개 모랭이 돌아 할배 산소 앞에 넙쭉 엎드린다 보소

할배 우짜등가 우리 강셰이 복마이 주소 안그라믄

내 저승가서 욕을 한 바가지 할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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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김연수 지음 / 자음과모음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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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연(深淵)속의 모스부호, '짧게 네번, 길게 세번, 짧고 길고 길고 짮게, 짧게 한번'('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김연수))



1. 심연이라는 단어를 검색했다.
1) 깊은 못
2) 좀처럼 빠져 나오기 힘든 구렁(비유)
3) 뛰어넘을 수 없는 깊은 간격(비유)



이 소설은 심연이다. 표면은 잔잔해 보이지만 그 속엔 수많은 이야기 모래가 침전되어 있기 때문이고, 모래와 자갈들은 뒤엉켜 물 속 생태계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물간의 뛰어넘을 수 없는 깊은 간격이 있다.



2. '카밀라(정희재)'는 미국의 양부모 밑에서 자랐다. 양모는 죽는 순간에 한국에 있는 친오빠로부터 연락이 왔었다는 사실을 그제서야 카밀라에게 말한다. 양부가 보낸 박스 속에 담긴 한장의 사진 '이 세계가 우리 생각보다는 좀더 괜찮은 곳이라는 사실을 말해주는 사진(1988년경)'은 카밀라가 쓴 책 '너무나 사소한 기억들: 여섯상자 분량의 입양된 삶'에 수록되고 그게 한 출판사의 눈에 띄였다.


오직 동백꽃(Camelia)만이 나의 생물학적 엄마를 안다(57쪽)


사진에는 나무아래에 어린 희재를 안고 있는 진남여고 학생이 있다. 카밀라는 엄마의 체취를 좆아 시청으로, 진남여고로, 신문사로, 학교뒤 '바람의 말 아카이브'로 변한 '양관'이라는 벽돌건물로 분주히 움직인다.



3. 소설은 1부에서는 카밀라의 시선으로, 2부는 희재의 엄마 '정지은'의 시선으로 3부는 정지은의 고교동창의 시선으로 4부는 '양관'의 주인이자 '정지은'의 아버지가 다닌 회사의 사주의 아들인 '이희재'의 시선으로 그려낸다.



정지은(엄마)과 정희재(카밀라, 딸), 정지은과 최성식(진남여고 선생), 최성식과 신혜숙(최성식의 부인, 당시 진남여고 교사, 현 진남여고 교장),


정지은과 이희재, 고공 크레인에서 농성하다가 자살한 정지은의 아버지와 그의 사주인 이희재의 아버지, 정지은과 고교동창생들,



진남이라는 가상의 공간(배경은 통영, 남해 등)에서 펼쳐지는 사람 간의 심연은 깊다.




4.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너를 생각하는 것은 나의 일이었다'


정희재의 엄마, 자살한 정지은이 2부에서 딸에게 하는 말이다. 아버지를 잃은 슬픔은 고등학생에게는 너무나 깊은 상흔이었고, 강제로 딸을 입양 당해야 했던 더 큰 상처로 고통은 깊어졌다.


파도는 지구와 지구 주위를 도는 달의 인력에 의해 생긴다는데, 바다로 상징되는 엄마에게 딸은 파도였구나. 딸은 엄마의 부름을 받고 진남에 이끌려 온 것이다.




5. '짧게 네번, 길게 세번, 짧고 길고 길고 짮게, 짧게 한번'

모스부호로 HOPE을 뜻한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현실과 이상이 쌓아올린 고공크레인 위에 서 있다. 크레인의 높이는 다르지만 나는 아직 희망이 있다고 믿고 싶다.

정지은이 크레인 위의 아버지에게 보낸 모스부호를 잊지 말자.



'모든 것은 두번 진행 된다. 처음에는 서로 고립된 점의 우연으로, 그 다음에는 그 우연들을 연결한 선의 이야기로, 우리는 점의 인생을 살고 난 뒤에 그걸 선의 인생으로 회상한다'(20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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