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김연수 지음 / 자음과모음 / 2012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심연(深淵)속의 모스부호, '짧게 네번, 길게 세번, 짧고 길고 길고 짮게, 짧게 한번'('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김연수))



1. 심연이라는 단어를 검색했다.
1) 깊은 못
2) 좀처럼 빠져 나오기 힘든 구렁(비유)
3) 뛰어넘을 수 없는 깊은 간격(비유)



이 소설은 심연이다. 표면은 잔잔해 보이지만 그 속엔 수많은 이야기 모래가 침전되어 있기 때문이고, 모래와 자갈들은 뒤엉켜 물 속 생태계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물간의 뛰어넘을 수 없는 깊은 간격이 있다.



2. '카밀라(정희재)'는 미국의 양부모 밑에서 자랐다. 양모는 죽는 순간에 한국에 있는 친오빠로부터 연락이 왔었다는 사실을 그제서야 카밀라에게 말한다. 양부가 보낸 박스 속에 담긴 한장의 사진 '이 세계가 우리 생각보다는 좀더 괜찮은 곳이라는 사실을 말해주는 사진(1988년경)'은 카밀라가 쓴 책 '너무나 사소한 기억들: 여섯상자 분량의 입양된 삶'에 수록되고 그게 한 출판사의 눈에 띄였다.


오직 동백꽃(Camelia)만이 나의 생물학적 엄마를 안다(57쪽)


사진에는 나무아래에 어린 희재를 안고 있는 진남여고 학생이 있다. 카밀라는 엄마의 체취를 좆아 시청으로, 진남여고로, 신문사로, 학교뒤 '바람의 말 아카이브'로 변한 '양관'이라는 벽돌건물로 분주히 움직인다.



3. 소설은 1부에서는 카밀라의 시선으로, 2부는 희재의 엄마 '정지은'의 시선으로 3부는 정지은의 고교동창의 시선으로 4부는 '양관'의 주인이자 '정지은'의 아버지가 다닌 회사의 사주의 아들인 '이희재'의 시선으로 그려낸다.



정지은(엄마)과 정희재(카밀라, 딸), 정지은과 최성식(진남여고 선생), 최성식과 신혜숙(최성식의 부인, 당시 진남여고 교사, 현 진남여고 교장),


정지은과 이희재, 고공 크레인에서 농성하다가 자살한 정지은의 아버지와 그의 사주인 이희재의 아버지, 정지은과 고교동창생들,



진남이라는 가상의 공간(배경은 통영, 남해 등)에서 펼쳐지는 사람 간의 심연은 깊다.




4.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너를 생각하는 것은 나의 일이었다'


정희재의 엄마, 자살한 정지은이 2부에서 딸에게 하는 말이다. 아버지를 잃은 슬픔은 고등학생에게는 너무나 깊은 상흔이었고, 강제로 딸을 입양 당해야 했던 더 큰 상처로 고통은 깊어졌다.


파도는 지구와 지구 주위를 도는 달의 인력에 의해 생긴다는데, 바다로 상징되는 엄마에게 딸은 파도였구나. 딸은 엄마의 부름을 받고 진남에 이끌려 온 것이다.




5. '짧게 네번, 길게 세번, 짧고 길고 길고 짮게, 짧게 한번'

모스부호로 HOPE을 뜻한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현실과 이상이 쌓아올린 고공크레인 위에 서 있다. 크레인의 높이는 다르지만 나는 아직 희망이 있다고 믿고 싶다.

정지은이 크레인 위의 아버지에게 보낸 모스부호를 잊지 말자.



'모든 것은 두번 진행 된다. 처음에는 서로 고립된 점의 우연으로, 그 다음에는 그 우연들을 연결한 선의 이야기로, 우리는 점의 인생을 살고 난 뒤에 그걸 선의 인생으로 회상한다'(20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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