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우연히(우연히라 쓰고 습관이라 읽는다) 알라딘 중고샵에 들어갔다가, 원서 2000원 균일가 섹션을 발견했다. (아니 대체 어제도 그제도 들어갔는데 왜 못봤지? 시작한지 적어도 몇 일은 된거 같은데)
황금보기를 돌같이 하는 마음으로 쉬크하게 베스트순으로 정렬만 해봤는데 -왜냐면 나는 이번달에 책을 좀 많이 샀거든. 알라딘 등급도 올랐거든- 갑자기 예수님이 눈에 흙을 문지르고 침을 발라주신 듯 앞이 환해지면서...그냥 지나갈 수가 없었다. 심장은 점점 빨리 뛰기 시작했다. 중고샵의 특성상 내가 고르고 있는 중에도 다른 사람이 사가버리면 그 책은 나와 인연이 없어지는 것이기에 밍기적거릴 틈이 없다. 벌써 내가 장바구니 놀이하는 사이에 두 권이 품절되었다. 누구냐 나와 책 취향이 같은 너는. 하긴 2천원짜리 원서 앞에선 누구라도 취향은 너그러워지게 마련.
결국 나는 장바구니를 터질듯이 채웠다가 부엌에 가서 물을 한 모금 마시고 캄다운 한 후에 하나씩 빼기 시작했다. 이건 사도 안 읽을 거야, 이건 mass production paper이니깐 책 질이 별로일거야 등등 나를 진정시킬 주문을 백번 쯤 외우고, 고민끝에 엄선된 장바구니를 일단 결제하고 하나씩 취소해야지하며 결제 후 창을 뚫어져라 보고 있는데 부지런한 알라딘이 냉큼 발송을 해버렸다. 오전에 주문하면 오후에 가져다 준단다. 아니 나는 오전도 아닌 아침이었다고. 그럼 좀 더 기다려주면 안되겠니.
덕분에 나는 겸허히 앉아 택배아저씨를 기다리고 있다. 이제 책장에 자리도 없는데 큰일이다. 고전 (플루타르크 영웅전, 셰익스피어 희곡 몇 권, 캔터베리 이야기, 그리고 몇 권 등등)은 마지막까지 고민하다 싹 다 빼버렸다. 어차피 mass production이라 책 질은 별로일거라며, 출판사도 썩 마음에 안든다며 자기암시를 하며.
miss julie시리즈와 청소년물, 성장소설, 영어writing관련 책, 존 그리샴, 니콜라스 스팍스 책들도 마지막에 다 뺐다. 니콜라스 스팍스의 엄청난 인기에도 나는 그의 소설이 왠지 너무 간지럽더라. 그리하여 지금 트럭을 타고 오고 있는 책들은 '가볍게 재미로 읽을 책' 과' 한국에 번역되지 않는 서구작가들 책' 중심으로 리스트업되었다.
이창래씨 소설과, 세상을 뒤바꾼 법정, life lessons( 지난 달 쯤 한글번역본 살까 고민했었는데 안사길 잘했다), 폴 커티스 성장소설, 로알드 달 두 권 (비웃음 당해도 나는 이 작가 글이 너무 좋다ㅠㅠ), arthur miller 한국에 번역안된 거 한권, 보르헤스 seven nights, 얼마전에 번역본 구입한 순수의 시대, 오르한 파묵의 snow (아 이거 너무 기대), 그리고 그림우화 (하드커버에다 삽화!!), 읽고 싶었던 the geography of bliss, 작년에 한국에 번역된 윌리엄 베네트 the moral compass, 이사벨 아옌데 영혼의 집(!! 93년 paperback이라 표지와 상태는 구리지만) , 롱테일경제학 원서(번역본 내용은 썩 만족은 아니었지만), 앵무새 죽이기, 밀란쿤데라 the unbearable lightness of being, 네덜란드 천재작가 harry mullisch의 procedure (이책은 이해할 수 있을거란 기대는 안한다), 그리고 정말 표지와 작가만 보고 산, 어디에도 review없는 the honey thief.. 그리고 서재에 꽂아 놓기는 부끄러운 he's just not that into you 와 그 후속작 (길모어걸스에서 로렐라이가 inn 손님들이 서가 책들 가져가고 he's just..만 잔뜩 남겨두고 갔다고 우웩거리던 episode가 생각난다)
나는 정말 오래살아야 겠다. 저 책들 다 보고 가려면.
마지막으로, 여보 사랑합니다.
카드결제 메일이 가더라도 너무 놀라지 말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