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월은 붉은 구렁을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북폴리오 / 2006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인생은 내기다. 이건 진짜라네. 나이만은 먹을 만큼 먹은 우리가 하는 말이니까 틀림없어. 어느 정도 차이는 있지만 나름의 위기를 헤쳐왔으니까. 인간은 한순간, 한순간 내기를 하면서 살고 있네. 순간순간을 선택하면서 산다고 바꿔 말해도 되겠지. 자네는 간장맛 쌀과자를 골랐네. 이 가네코 신페이가 12배로 건 긴고도의 참깨과자가 아니라, 잇사키 류세이가 3배로 건 '소프트 샐러드'를 집었어. 사메시아 고이치는 그것을 자기 의사로 골랐을까? 아니면 누군가가 고르게 했을까? 그것은 오직 신만이 아는 영역이네만, 자네는 이처럼 흐르는 시간과 공간 안에서 죽음이 찾아오는 마지막 순간까지 선택을 계속하는 것이네."
pp.26~27
 
"좋은 글을 읽는다는 건 쓰는 것과 같으니까. 아주 좋은 소설을 읽다가 행간에 숨어 있는 언젠가 자기가 쓸 또 하나의 소설을 본적 없어?  그게 보이면, 난 아아, 나도 읽으면서 쓰고 있구나, 하고 생각하거든. 또 행간에서 그런 소설을 볼 수 있는 소설이 나한테는 좋은 소설이고."
p.150
 
나는 장편 소설을 쓰기 전에 영화 포스터 같은 예고편을 쓴다. 정식으로 레터링을 해서 제목을 쓰고, 일러스트를 그리고, 카피를 쓰고, 줄거리를 쓴다. 이것을 쓰고 있을 때가 가장 즐겁고 가슴이 설렌다. 예고편을 쓰고 있노라면 언제나 요시하라 사치코의 시 한 구절이 떠오른다. "쓰기 시작하면 안 써지는데, 쓰기 전에는 써지려고 한다." 딱 이런 심경이다.
p.309
 
어째서 인간은 '잘 된 이야기'에 감명을 받을까? 이야기의 내용에 감동하는 것은 이해가 된다. 부모자식 간의 사랑, 삶과 죽음의 갈등, 아낌 없이 주는 사랑. 주인공의 입장이 되어 감정이입한다. 그것은 알겠다. 하지만 '잘 된 이야기'에 대한 감동은 이것과는 조금 다른 것 같다. 그 감동은 모든 것이 제자리에 들어맞았다는 쾌감이다. 어째서 쾌감일까? 그리고 '잘 된 이야기'를 다 듣고 나면, 아주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던 이야기 같은 착각을 하는 것은 왜일까?
p.343
 
온다 리쿠, <삼월은 붉은 구렁을> 中
 
 
+) 이 소설은 마치 판타지 같다고 평가받곤 하는데, 나는 오히려 추리소설에 더 가깝지 않았나 싶다. 그러나 결코 가벼운 소설은 아니다. 무엇보다 책속에서 책에 대해 논하는 장면과 글을 쓰는 사람, 글을 읽는 독자, 글을 편집하는 편집자의 내면 심리를 서술하는 부분은 단연 압권이었다. 모처럼 작가, 독자, 편집자의 입장 모두를 살펴볼 수 있던 좋은 기회였다. 책의 초반에 인물간의 대화 장면에서 이런 대사가 있었다.
 
"독서란 본래 개인적인 행위니까 어쩔 수 없는 일이죠. 무엇보다도 우리는 우리가 책을 좀 읽는다고 자만하는지도 모르지만, 사실 이것도 터무니없는 환상이에요. 인간이 한평생 읽을 수 있는 책은 그야말로 빙산의 일각이거든요." 그는 곧이어 서점에서 발견한, 계속 읽어야 할 많은 책들을 보며 절망한다고 했다. 이 부분에서 묘한 기분을 느꼈는데, 나는 그렇지 않다. 오히려 나라는 사람은 서점이나 도서관에 가면 수없이 많은 책들을 바라보며 읽고 싶은 욕망에 들뜬 기분이 되어 움직인다. 평생 책을 읽으며 살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말이다.
 
이 소설은 장편소설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구성력이 뛰어난 작품이다. 간혹 좀 지루한 면이 없지 않으나 그것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으로 이겨낼 수 있다. 게다가 작가의 사상 또한 훌륭하다. 그러나 그가 <찰리와 초콜릿 공장>의 면모를 작품에서 원했다면 나는 좀 망설여진다. 오히려 그보다 덜 신비롭고 그보다 덜 환상적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의미있다는 생각이 든다. 어른을 위한 동화가 유행한 적이 있다. 나는 그 수위를 조절하는 것이 그런 종류의 책을 살리는데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이 책은 동화 보다는 판타지, 판타지 보다는 추리에 가까운 소설이다. 책을 소재로 다루어서 그런지도 모르겠지만 문학적이기도 하다면 내가 너무 좋은 평을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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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으로 떠나는 산사 체험 - 템플스테이
유철상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5년 5월
평점 :
절판


자신과 주변을 돌아보며 비우는 것이 궁극적인 자비 명상의 완성이다. 그렇다고 반드시 그래야 한다는 목적을 가지라고 강요하진 않는다. '자신을 비우겠다'는 목적을 정하면 그것은 이미 명상이 아닌 집착이 되기 때문이다.
p.119
 
 "참선이라는 것은 희로애락의 파도가 치지 않도록 고요하고 평정하게 안정된 마음의 터를 닦는 것이다. 무명에 가려 스스로 깨닫지 못하고 착각 속에 살고 있는 우리지만 어디서든 누구나 열심히 참구한다면 만법을 포용하는 자기 생명을 회복해 참삶을 살고 있다."
 
 "참선은 자기에 대한 물음이고, 또한 인생에 대한 물음표다. 다시 말해 커다란 의심을 품고 화두를 참구하는 것이 간화선이다. 어떻게 해야만 자기의 자성을 올바로 알 것인가? 무엇이 과연 내 참마음인가? 인생이란 도채체 무엇인가? 이를 항상 궁구하는 것이 간화선 수행의 시작이다."
pp.166~167
 
공간은 시간의 일기장이다. 옛집과 옛길엔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삶이 묻어난다. 오래된 공간일수록 더욱 그렇다. 오래된 공간으로 대표되는 절집은 건물 자체로도 소중한 문화유산으로 기록되지만 여행객들에게는 휴식과 사색의 공간을 내준다.
p.90
 
유철상, <템플스테이 - 마음으로 떠나는 산사체험> 中
 
 
+) 이 책에는 21개의 절이 소개되어 있다. 대부분 서울에서 먼 곳의 절이지만 크고 유명한 곳이 많다. 템플스테이 일정과 각 절마다 특별한 점을 부각시켜 적은 것이 장점이나, 한 두 곳의 지역에 있는 절을 소개하고 있는 한계를 갖고 있다. 아름다운 사진을 보는 것만으로 벌써 그 절에 가 있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좀 작고 사람의 자취가 적은 절은 없을까.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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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더 풀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억관 옮김 / 은행나무 / 2005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이라부는 이상한 사람이지만, 그런 괴짜 같은 행동과 성격이 오히려 마음을 편하게 해주었다. 바보와 괴짜는 치유력을 가지고 있는 걸까. 다급할 때는 상식을 버려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갖게 해주니까.
p.111
 
 "즉, 스트레스란 것은 인생에 늘 따라다니는 것인데, 원래부터 그렇게 있는 놈을 없애려 한다는 건 쓸데없는 수고라는 거지. 그보다는 다른 쪽으로 눈을 돌리는 게 좋아."
 "그건 또 무슨 말씀......"
 무슨 괜찮은 방법이라도 있는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예를 들면, 번화가의 길모퉁이에 숨어 있다가 조폭을 습격한다든지."
 카즈오의 미간에 다시 주름이 잡혔다.
 "정말 스릴 있을 거야. 그럴 때면 하잘 것 없는 고민 따위는 소리도 없이 사라지고 말지. 그렇잖겠어. 쫓기게 될 테니까. 목숨이 위험한 판에, 누가 가정이니 회사니 생각할 수 있겠어."
pp.134~135
 
이 남자는 사람에게 사랑받고 미움받는 걸 신경 쓰지 않는다. 어린애와 똑같이, 다른 사람에게 뭘 맞춰 준다는 생각은 아예 없다. 그래서 혼자 있어도 편한게 아닐까. 이라부의 순진함이 부러웠다. 혹시 그것이 지금의 세상을 살아가는 데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되지 않을까.
p.252
 
"마음에 두지 말라고 하지만, 마음에 안 두겠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벌써 마음에 두는 거니까, 다람쥐 쳇바퀴를 도는 셈이지."
p.266 
 
"지키고 싶은 사람이 지켜, 난 모르겠어, 하고 시침을 떼면 그만이야. 걱정은 다른 사람이 하게 하는 거지. 예를 들어, 버스에 올라타고, 다음 정류장에 어떤 사람이 내린다고 해. 아파트 단지 앞이라든지, 역 앞이라든지. 그럴 때, 자신은 벨을 누리지 않고 다른 사람이 눌러 주기를 기다리는 거야. 가만 있으면 돼. 누군가 반드시 누를 테니까. 안 서고 그냥 가면 곤란하니까."
p.305
 
오쿠다 히데오, <in the pool(인더풀)>中
 
 
+) 오쿠다 히데오의 <공중그네>를 읽고 한참을 웃으며 신선한 충격을 받았었다. 그의 이름을 깊이 기억하게 되었는데 도서관에 가서 모처럼 그의 책을 빌렸다. 그것이 <인더풀>이다. 그런데 좀 의외였다. 순수한 어린아이 같은 이라부가 이 책에도 나오는 것이 아닌가. 찾아보니 오쿠다 히데오는 <인더풀>로 나오키상 후보에 올랐고, 2년 뒤에 쓴 <공중그네>로 나오키상을 받았다. 아, 그랬구나.
 
그런데 의문이 든다. 그의 다른 책은 어떤 내용일까. 설마 이라부 의사가 매번 그의 책에 등장하는 것은 아니겠지. 그럼 너무 식상하지 않을까. 일본에서는 이런 식의 글쓰기가 가능한 것일까. 아무리 같은 작가라 하더라도 구성이 똑같은 작품을 또 낼 수 있을까. 다른 책을 찾아 읽어봐야겠지만, 역시 <공중그네>가 훨씬 탁월하다는 생각이다.
 
나는 강박증 환자나 다름없다. 어찌보면 이라부 의사를 찾아가는 다른 모든 환자들이 겪고 있는 병을 나도 갖고 있는 것 같다. 아마도 더 심할 것이다. 이라부 같은 의사를 만나고 싶지만 그런 의사는 없을테고(왜냐하면 의사들은 지독하게 현실적이며 냉철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은 있을 수도 있으니 만나게 되면 행운이다. 처방은 알고 있다. 스스로 자신의 증상을 알게 하는 것, 어떤 것에 스스로 제약을 둔다면 스스로 깨는 것밖에 도리가 없다는 것. 그것은 생각만으로는 절대 이룰 수 없다. 반드시 실천에 옮겨야 한다.
 
어렵다고 생각할 필요가 전혀 없다. 나는 하나씩 실천하고 있으며 언젠가는 이라부처럼 살 수 있을꺼라 굳게 믿는다. 그렇다면 세상 살기 참 편할텐데. 부러움이 가슴 가득 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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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
공지영 지음 / 오픈하우스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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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위녕, 삶이 힘들까 봐, 너는 두렵다고 말했지. 그런데 말이야. 그래도 모두가 살아 내는 또 하나의 이유는 오르막은 다 올라 보니 오르막일 뿐인 거야. 가까이 가면 언제나 그건 그저 걸을 만한 평지로 보이거든. 가까이 있다는 이유로 눈이 지어내는 그 속임수가 또 우리를 살게 하는지도 모르지.
pp.14~15
 
삶은 우리보다 많은 걸 알고 있는 거 같아. 내가 아니라 말이야. 그러니 네 꿈조차도 규정 속에 집어 넣고 못질해 버려서는 안 되는 거야. 네가 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꿈을 꾸는 것과 그것 외에는 어떤 가능성도 차단하는 것과는 다른 거야. 네가 변호사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가지는 것과 네가 그 외에는 어떤 것도 삶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거지. 꿈이 네 속에 있어야지 네가 그 꿈속으로 빠져 버려서는 안 된다는 것, 오스카 와일드도 그걸 통찰해 내고 있어.
p.80
 
오늘도 가끔 창밖을 보고 있니? 그래 가끔 눈을 들어 창밖을 보고 이 날씨를 만끽해라. 왜냐하면 오늘이 너에게 주어진 전부의 시간이니까. 오늘만이 네 것이다. 어제에 관해 너는 모든 것을 알았다 해도 하나도 고칠 수도 되돌릴 수도 없으니 그것은 이미 너의 것이 아니고, 내일 또한 너는 그것에 대해 아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단다. 그러니 오늘 지금 이 순간만이 네가 사는 삶의 전부, 그러니 온몸으로 그것을 살아라.
p.98
 
작가는 현실을 다루는 사람이다. 설사 공상이라 해도 현실의 요소들이 없다면 우리는 전혀 그것과 교감할 수 없어. 그래서 작가는 이 모든 현실을 알아야 하는 거지. 그리고 읽으며 기다리는 거야. 소설이, 글이 내게로 올 때까지 말이야. 그러면 사람들은 묻곤 하지? 그렇게 열심히 일하며 돈을 벌고, 또 읽는데 소설이 혹은 글이 오지 않으면 그때는 어떻게 하죠? 그러면 엄마는 대답한단다.
 "네, 그러면 쭉 돈을 벌고 읽으며 살면 됩니다. 그것도 행복한 삶이니까요."
pp.158~159
 
너에게는 열정이 있니? 진정 심장을 태워도 좋을 만한 그런 열정이 있다면 너는 젊다. 그러나 네가 이력서와, 사람들이 이미 그렇다고 여기는 모든 것들을 아픔 없이 긍정하고 만다면 너는 이미 늙거나 영원히 젊을 수 없을지도 몰라. 사랑하는 딸, 도전하거라. 안주하고 싶은 네 자신과 맞서 싸우거라. 그러기 위해 너는 오로지 네 자신이어야 하고 또 끊임없이 사색하고 네 생각과 말과 행동의 배후를 묻고 또 읽어야 한다. 쌓아 올린 네 건물이 어느 날 흔적도 없이 무너지는 기분이 든다 해도, 두려워하지 말아라. 생각보다 말이야, 생은 길어.
p.168
 
공지영,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 中
 
 
+) 언젠가 신문에서 공지영이 그녀의 딸에게 쓴 편지를 읽은 적이 있다. 딸의 이름은 '위녕'이었는데, 독특해서 분명히 기억하고 있다. 그때 이런 생각을 했다. 나도 엄마에게 편지를 받아본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언젠가 엄마가 내게 하는 말을 듣고 속으로 울은 적이 있다. '나도 한글을 제대로 적을 수만 있다면 네게 해주고 싶은 말이 참 많아. 네게 편지를 써서 줬을 텐데. 수없이 많이.'
 
세상의 모든 엄마들은 자신의 딸이 아프지 않기를 바랄 것이며, 그 부분에 있어서 나의 어머니도 예외는 아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단순히 공지영이 몇 권의 책을 읽고 느낀 점을 적었다기 보다 평소에 딸에게 들려주고 싶었던 이야기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도 가끔 책을 읽으며 작가의 목소리에 공감하며 탄성을 내지르곤 하는데 그런 사람이 많겠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
 
우리는 늘 주어진 길에서 벗어나지 않으려 발버둥치며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때문에 엄숙한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살아간다. 그것이 진리인지는 모르겠으나 그것이 진리라고 배웠기에 일상을 벗어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매우 크다. 그것은 나도 마찬가지인데,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사람에게 독서란 새로운 삶과 새로운 인연을 가져다 줄 수 있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조급하게 살지 말자. 공지영의 말대로 돈을 벌고 책을 읽으며 사는 삶이란 행복한 것일테니. 문득 현재의 나, 그러니까 오늘의 내가 또 다시 새로운 희망을 꿈꾸어도 된다는 당찬 마음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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꾿빠이, 이상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0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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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인생의 다양한 일들 중 드물게 일어나는 일 하나가 절정에 다다른, 아주 좋은 시기였다. 결국 그게 환각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절정의 순간에 이르러 이제까지 걸어온 길이 어쩌면 환상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런 점에서 절정이란 전환점의 다른 말이다.
pp.21~22
 
"문제는 진짜냐 가짜냐가 아니라는 것이죠. 보는 바에 따라서 그것은 진짜일 수도 있고 가짜일 수도 있습니다. 이상 문학을 두고 최재서와 김문집이 각각 다르게 말한 것처럼 말입니다. 이상과 관련해서는 열정이라는 논리를 뛰어넘어 믿느냐 안 믿느냐의 문제란 말입니다. 진짜라서 믿는게 아니라 믿기 때문에 진짜인 것이고 믿기 때문에 가짜인 거죠."
p.83
 
 사람이
 비밀이 없다는 것은 재산 없는 것처럼 가난하고 허전한 일이다.
 
 우리가 아무리 많은 전기적 사실을 끌어모은다고 해도 이상의 이 문장 앞에서는 여지없이 무너진다. 이상이 결코 가난하고 허전해지지 않는 한, 모든 전기는 이상이 쳐놓은 비물의 그물에 걸려들 뿐이다.
p.121
 
 불행한 운명 가운데서 난 사람은 끝끝내 불행한 운명 가운데서 울어야만 한다. 그 가운데에 약간의 변화쯤 있다 하더라도 속지 말라. 그것은 다만 그 '불행한 운명'의 굴곡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이 '불행한 운명'과 맞서기 위해 김해경은 어떻게 했는가? '네가 세상에 그 어떠한 것을 알고자 할 때는 우선 네가 먼저 "그것에 대하여 생각하여 보아라. 그런 다음에 너는 그 첫번 해답의 대칭점을 구한다면 그것은 최후의 그것의 정확한 해답일 것이다."' 김해경이 자신의 의지로 찾은, 이 '불행한 운명'의 대칭점이 바로 이상이었다.
p.128.
 
운명은 마지막 순간에 모든 논리체계를 무너뜨리고 이제까지 지나온 그 모든 광경을 동시에 보여준다고 말했거니와 내가 지금 두려워하는 것이 바로 그 점이다. 논리적으로 내 삶은 사소하게 바뀌어버렸다. 내가 처한 이 어두움의 상태는 그 사소함의 논리적 귀결점이다. 하지만 나는 이것마저 내 운명이 아니라는 사실을 안다. 그저 연표를 읽어내려가듯 직선을 따라가는 마지막 지점일 뿐이다. 내게는 전혀 다른 운명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게 무엇인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p.132
 
김연수, <꾿빠이, 이상> 中
 
 
+) 처음 문학을 깊이 있게 공부하고 싶다고 생각했을 때, 내 머릿속에는 시인 '이상'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를 비롯하여 소위 '모더니즘 문학'이라는 분야가 내게 매력적으로 다가왔던 시기였다. 그러나 묘하게도 나는 1930년대 모더니즘에 대한 관심을 1950년대 후반 모더니즘 문학으로 옮겼다가, 모더니즘이라는 거대한 소용돌이에 빠져 헤매게 되었고 결국 아무 것도 건지지 못했다. 그 거대함에 내가 쓰고자 했던 논문의 방향은 전혀 엉뚱한 곳으로 진행되었고, 나는 아예 모더니즘이란 글자를 나의 삶에서 제외시켰다. 그것을 접하기에 나는 너무 겁이 많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문득 몇 년 전이 생각난다. 왜 그때 그렇게 겁을 냈을까. 이상, 나는 '이상'의 시를 읽을 때마다 묘한 동질감에 부르르 떨었으며, 그의 시를 통해 알 수 없는 의미들을 만들어내길 좋아해다. 그것이 그 시인의 매력이며 개성이라고 생각했었다. 소설가 김연수는 내게서 '이상'을 살려냈다. 시인의 연구자료와 전기에 대한 설명이 좀 지루하기도 했으나(어쩐지 소설이라고 읽기에는 너무 학문적 접근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를 통해 허구인지 또는 '그럴 수도 있는 사실'인지 헛갈리는 서사가 돋보였다.
 
이상의 본명은 김해경이다. 이렇게 적어놓고 보니 이상이 김해경인지, 김해경이 이상인지 아이러니하다. 결국 그 사람이 그 사람이나, 이 소설을 통해 김해경은 자신의 삶을 시인 '이상'으로 선택했다는 생각이 든다. 김연수는 독자들에게 시인의 삶과 평범한 한 사람의 삶을 구분하며 김해경이라는 사람이 선택한 이상의 삶을 숭고한 것으로 서술하고 있다. 나는 2000년에 쓰여진 김연수의 <스무 살>이란 소설을 읽은 적이 있는데, 그때에 비해 이 작품이 약 1년 뒤에 쓰여진 소설치고는 작가가 꽤 성장했다는 생각이 든다. 동시에 소설 한 편을 쓰기 위해 얼마나 치밀하게 노력해야 하는가 다시 한번 깨닫는다.
 
한 사람의 삶이 하나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무엇보다 김해경은, 그러니까 이상은, 그것을 몸소 보여준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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