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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더 풀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억관 옮김 / 은행나무 / 2005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이라부는 이상한 사람이지만, 그런 괴짜 같은 행동과 성격이 오히려 마음을 편하게 해주었다. 바보와 괴짜는 치유력을 가지고 있는 걸까. 다급할 때는 상식을 버려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갖게 해주니까.
p.111
"즉, 스트레스란 것은 인생에 늘 따라다니는 것인데, 원래부터 그렇게 있는 놈을 없애려 한다는 건 쓸데없는 수고라는 거지. 그보다는 다른 쪽으로 눈을 돌리는 게 좋아."
"그건 또 무슨 말씀......"
무슨 괜찮은 방법이라도 있는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예를 들면, 번화가의 길모퉁이에 숨어 있다가 조폭을 습격한다든지."
카즈오의 미간에 다시 주름이 잡혔다.
"정말 스릴 있을 거야. 그럴 때면 하잘 것 없는 고민 따위는 소리도 없이 사라지고 말지. 그렇잖겠어. 쫓기게 될 테니까. 목숨이 위험한 판에, 누가 가정이니 회사니 생각할 수 있겠어."
pp.134~135
이 남자는 사람에게 사랑받고 미움받는 걸 신경 쓰지 않는다. 어린애와 똑같이, 다른 사람에게 뭘 맞춰 준다는 생각은 아예 없다. 그래서 혼자 있어도 편한게 아닐까. 이라부의 순진함이 부러웠다. 혹시 그것이 지금의 세상을 살아가는 데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되지 않을까.
p.252
"마음에 두지 말라고 하지만, 마음에 안 두겠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벌써 마음에 두는 거니까, 다람쥐 쳇바퀴를 도는 셈이지."
p.266
"지키고 싶은 사람이 지켜, 난 모르겠어, 하고 시침을 떼면 그만이야. 걱정은 다른 사람이 하게 하는 거지. 예를 들어, 버스에 올라타고, 다음 정류장에 어떤 사람이 내린다고 해. 아파트 단지 앞이라든지, 역 앞이라든지. 그럴 때, 자신은 벨을 누리지 않고 다른 사람이 눌러 주기를 기다리는 거야. 가만 있으면 돼. 누군가 반드시 누를 테니까. 안 서고 그냥 가면 곤란하니까."
p.305
오쿠다 히데오, <in the pool(인더풀)>中
+) 오쿠다 히데오의 <공중그네>를 읽고 한참을 웃으며 신선한 충격을 받았었다. 그의 이름을 깊이 기억하게 되었는데 도서관에 가서 모처럼 그의 책을 빌렸다. 그것이 <인더풀>이다. 그런데 좀 의외였다. 순수한 어린아이 같은 이라부가 이 책에도 나오는 것이 아닌가. 찾아보니 오쿠다 히데오는 <인더풀>로 나오키상 후보에 올랐고, 2년 뒤에 쓴 <공중그네>로 나오키상을 받았다. 아, 그랬구나.
그런데 의문이 든다. 그의 다른 책은 어떤 내용일까. 설마 이라부 의사가 매번 그의 책에 등장하는 것은 아니겠지. 그럼 너무 식상하지 않을까. 일본에서는 이런 식의 글쓰기가 가능한 것일까. 아무리 같은 작가라 하더라도 구성이 똑같은 작품을 또 낼 수 있을까. 다른 책을 찾아 읽어봐야겠지만, 역시 <공중그네>가 훨씬 탁월하다는 생각이다.
나는 강박증 환자나 다름없다. 어찌보면 이라부 의사를 찾아가는 다른 모든 환자들이 겪고 있는 병을 나도 갖고 있는 것 같다. 아마도 더 심할 것이다. 이라부 같은 의사를 만나고 싶지만 그런 의사는 없을테고(왜냐하면 의사들은 지독하게 현실적이며 냉철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은 있을 수도 있으니 만나게 되면 행운이다. 처방은 알고 있다. 스스로 자신의 증상을 알게 하는 것, 어떤 것에 스스로 제약을 둔다면 스스로 깨는 것밖에 도리가 없다는 것. 그것은 생각만으로는 절대 이룰 수 없다. 반드시 실천에 옮겨야 한다.
어렵다고 생각할 필요가 전혀 없다. 나는 하나씩 실천하고 있으며 언젠가는 이라부처럼 살 수 있을꺼라 굳게 믿는다. 그렇다면 세상 살기 참 편할텐데. 부러움이 가슴 가득 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