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랑한 정신과 - 별난 정신과 의사의 유쾌한 진료일지
윤우상 지음 / 포르체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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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서평은 해당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것입니다. 평소와 다름없이 읽고 제 생각을 기록한 글입니다. ​​

*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도서를 제공받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We are all patients! 우리는 모두 환자야."는 내가 정신과 전공의 1년 차로 들어갔을 때 3년 차 선배가 해 준 말이다.

"우리 머릿속에는 나만의 색안경이 있어. 살아오면서 저절로 생긴 거지. 내 머릿속 안경이 빨간색이면 하얀 세상을 빨갛게 보고 세상은 빨갛다고 믿고 살아가지. 이런 게 투사야. 내 꼴대로 세상을 보는 거야. 바깥세상의 진실은 상관없고 내가 보는 게 진실이 되는 거지. 투사는 한마디로 망상이지."

세상이 동그란데 나는 세모라 하고 누구는 네모라 하고 누구는 별 모양이라 한다. 각자 자기가 본 세상이 맞다며 우기고 싸운다. 진실은 어디 가고 망상의 싸움만 한다. 내가 정상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착각 속에 살고 있을 수 있다. 내가 보는 세상은 모두 내가 만든 투사의 세상이기 때문이다.

pp.26~27

30대 남자 환자다. 연애를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모태 솔로다. 여자 목소리 환청이 들리는데 두 가지 버전으로 나타난다. 사랑한다, 좋아한다는 애인 목소리와 바보, 멍청이라고 욕하는 엄마 목소리다. 환청이 애인 목소리일 때는 기분 좋게 웃다가 엄마 목소리로 바뀌면 시무룩해진다. 그 환자가 시무룩하게 있어서 물었다.

"왜요? 오늘은 엄마 목소리가 들려요?"

"아니요. 오늘은 아무 소리도 안 들려요."

"소리가 안 들리니 편하겠네요."

"아니에요. 소리가 안 들리면 이상해요. 둘 다 나를 버린 것 같아요. 애인도 엄마도요..."

pp.51~52

공간을 바꾸면 삶이 바뀐다. 내 삶을 바꾸고 싶다면 공간을 바꾸는 방법이 가장 간단하다.

다만 공간 바꾸는 게 쉽지는 않다. 걸리는 게 많기 때문이다. 무엇이 걸릴까? 내적인 이유와 외적인 이유가 있다.

내적인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불안, 의심, 귀찮음이다.

외적인 이유도 세 가지로 볼 수 있다. 시간, 돈, 가족이다.

새로운 공간으로 들어갈 때는 그냥 방해물을 주렁주렁 매달고 들어가야 한다. 불안과 의심을 품에 안고, 돈과 시간과 가족의 문제를 등에 업고 뚜벅뚜벅 움직여야 한다. 신기한 점은 해결 안 날 것 같은 문제도 새로운 공간으로 들어가면 어떻게든 정리된다는 것이다.

pp.63~65

나는 지금도 이렇게 생각한다.

'나의 혀는 메스다. 나의 혀 놀림이 집도의의 칼과 같다. 내 혀 놀림으로 상처를 봉합하고, 내 혀 놀림으로 암을 제거하고, 내 혀 놀림으로 심장을 다시 뛰게 한다. 잘 못하면 내 혀 놀림으로 상처를 주고, 멀쩡한 혈관을 자르고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 내 혀는 칼이다.'

지금도 몸 컨디션이 안 좋으면 나태해지고 흔들린다. 그때 다시 생각하고 정신 차린다. 나는 수술하는 사람이다. 오늘 수술하는 날이다. 나의 혀, 나의 말 한마디가 그의 삶을 좌우할 수 있다!

p.179

몸의 고통은 혼자서 겪을 수밖에 없지만 마음의 고통은 나눌 수 있다. 누군가 그의 고통을 알아주고 받아 주면 그 고통이 덜어진다. 몸의 고통은 의사가 치료해 주지만 마음의 고통은 같이 아파해 주는 사람이 치료해 줄 수 있다.

p.233

그녀는 머릿속에 가혹한 재판관을 모시고 산다. 자기 행동 하나하나를 판단해서 죄를 묻고 벌을 내린다. 그러니 늘 불안하고 두렵다. 가혹한 재판관은 '병적인 초자아' 때문이다. 초자아는 '착하게 살아라', '좋은 사람이 돼라'와 같이 도덕과 윤리를 추구하고 이상적인 자신을 추구하는 정신 기능이다.

그러나 초자아도 너무 강하면 병이 된다. 내 안의 초자아가 너무 가혹하면 가벼운 실수에도 하루 종일 바보라고 구박하고, 남에게 살짝 민폐 끼쳐도 죄책감에 시달리고, 남보다 조금만 부족해도 심한 열등감에 허덕인다. 매일 자책과 자학이 번갈아 온다.

pp.269~270

윤우상, <명랑한 정신과> 中

+) 이 책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인 저자가 30년이 넘게 환자와 함께 해온 일상을 담고 있다. 마음이 아픈 이들을 돌보는 의사와 간호사의 삶, 그리고 자기만의 철학과 생각이 확고한 환자들의 삶이 기록되어 있다.

'명랑한 정신과'라는 책의 제목만큼 화사하고 귀여운 그림들로 가득 찬 명랑한 책 표지를 보며 책의 분위기를 상상했다.

그리고 책을 펼치면서 환자들의 짠하고 아픈 이야기, 그러면서 되게 유쾌하고 신기한 이야기, 또 그들 나름의 우직하고 흔들림 없는 이야기 등을 접하며 웃다가 울고, 울다가 다시 웃었다.

저자는 말한다. 우리는 모두 환자라고. 세상은 자기만의 시선으로 파악되기 때문에 그게 진실인지의 여부는 우리에게 중요하지 않다. 본인이 본 세상이 정상이라고 믿고 사실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간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깊이 공감했다. 우리는 대부분 자기가 경험한 것 위주로, 자기가 보고 들은 것 위주로 세상을 판단한다. 사람들을 분석하고 세상 돌아가는 이치도 파악한다.

그리고 그 틀에서 자기만의 철학을 쌓고 자기만의 잣대를 만든다. 문제는 모든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다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그럼 과연 누가 정상일까.

이 책을 읽으면서 정신건강의학과를 방문하는 환자들에 대한 편견이 좀 줄어들었다. 그들을 이해하려는 마음이 생겼다고나 할까.

그들이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왜 다른 이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환영과 들리지 않는 환청이 들리는지, 또 그 순간 그들은 얼마나 혼란스러울지 등을 우선 생각하게 되었다.

이 책은 유쾌하고 발랄하며 제목 그대로 명랑한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 물론 걱정하고 안타까워하는 마음도 갖지만 시원하게 웃으면서 가볍게 지나갈 수 있는 길을 떠올리게 한다.

어떤 스토리에서는 마음이 아파 훌쩍이다가, 환자를 생각하는 의사와 간호사 선생님들 그리고 환자들 곁에서 응원해 주는 이들의 모습에 감동을 받기도 한다.

사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사이코드라마에 대한 의구심이 있었다. 타인이 하는 연기일 뿐인데 감정 몰입이 될까, 그게 당사자들에게 와닿을까 싶었다.

그런데 사이코드라마를 통해 자기의 솔직한 심리를 토로하는 이들의 사연을 보기만 했는데도 감정 이입이 되어 훌쩍이다가 엉엉 울고 말았다.

마음이 아픈 이들은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힘이 된다던 저자의 말이 기억난다. 사람 사이에서 받은 상처도, 어쩌면 사람 사이에서 나을 수도 있다는 걸 보여주는 책이었다.

정신 병원의 일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궁금한 사람들, 그리고 마음이 아픈 이들이 왜 그렇게까지 되었는지 이해하고 싶은 사람들, 정신과 의사와 간호사의 삶이 어떤 것인지 궁금한 사람들이 읽으면 좋을 듯하다.

더불어 스스로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싶은 사람들, 마음이 아파 힘든 사람들, 따뜻하고 유쾌한 이들의 대화로 한바탕 웃고 싶은 사람들에게도 권하고 싶다. 사람 사는 이야기를 읽기만 했는데도 위로가 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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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 건너기 소설의 첫 만남 30
천선란 지음, 리툰 그림 / 창비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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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가끔 사람을 미치게 해. 진절머리 난다는 듯 외치던 엄마의 말이 이제야 이해가 갔다. 원하는 것이 있어도 말하지 않고 상대방이 알아줄 때까지 눈치 주는 아이, 크게 드러나지는 않지만 어딘가 묘하게 음침한 구석이 있는 아이. 그게 공효였다.

p.20

그냥 싫어. 같이 있으면 짜증나.

구체적인 이유가 있었다면 거기에 얽매여 살았겠지만 오히려 그쪽이 더 나았을 것이다. 공효가 이후 십 대의 인맥을 모두 망친 데에는, 작은 말실수 하나에 밤을 새우는 것에는 지솔의 공이 컸다. 그래도 공효는 지솔을 미워하지 않았다. 공효는 타인을 미워하는 일이 자신을 미워하는 것보다 더 어려웠다. 그래서 차라리 모든 걸 자기 탓으로 돌리는 게 편했다.

p.24

공효는 멈추지 않고 호흡했다. 어린 공효가 조금씩 공효를 따라 숨을 훅, 후욱, 후우욱, 훅, 내뱉기 시작했다. 한동안 두 사람은 마주 보고 서서 기절하지 않기 위해, 중력에 짓눌리지 않기 위해 숨을 쉬었다.

"이렇게 하는 거야. 소리를 지르고 싶을 때는. 알겠어? 그럼 네가 이기는 거야."

"뭐를?"

"뭐든. 중력도 이기는데 뭘 못 이기겠어?"

p.36

무엇이 문제인지, 무엇을 직면해야 하는지, 무엇을 감싸야 하는지 생각하지 않았다. 천천히 짚기에는 삶이 너무 바빴다.

"무서워. 근데 옛날만큼 무섭지는 않아. 싸우면 이길 수 있을 것 같기도 해."

"왜?"

"거미보다 무서운 게 많아져서."

"......잘됐다."

"뭐가 잘돼? 무서운 게 더 많아졌다니까?"

"나는 평생 저 거미를 못 넘을 텐데 너는 그걸 해낸 거잖아."

pp.47~49

모든 선택의 기준에 어린 공효가 있었다. 같이 잠수하며 숨을 참은 것도, 무중력 공간에서 기뻤던 것도, 출구 없는 우주로 나아가고 싶었던 것도, 좁은 복도에 서서 하늘을 노려보던 어린 공효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나는 너를 좋아해. 공효야. 시간이 오래 걸렸지만 너를 너무 좋아한단다."

pp.64~66

천선란, <노을 건너기> 中

+) 이 소설은 성인이 된 현재의 '공효'가 어린 시절 기억 속 과거의 '어린 공효'를 만나는 이야기이다. 공효는 우주 비행사로 안전한 비행을 위해 자아 안정 훈련을 받게 된다. 그리고 거기서 공효는 어린 공효를 만난다.

'현재의 나'와 '과거의 나'라는 말이 틀린 것은 아니나, '의식하며 살고 있는 지금의 나'와 '무의식 속 기억 내 나'의 만남, 즉 자아의 만남이라는 표현이 더 옳을 듯하다.

공효는 어린 시절의 공효를 만나면서 그때의 기억과 감정을 하나 둘 떠올리기 시작한다. 왜 아파했는지, 왜 힘들어했는지, 어떻게 견디고 있었는지, 어떤 점이 속상했는지 등등을 어린 공효와의 만남으로 생각한다.

그 시절 두려움과 고통의 원인을 지금의 공효가 하나씩 헤아리면서 어린 공효의 마음을 어루만진다. 그리고 공효는 그런 순간을 건너갈 수 있다고 믿으며 어린 공효와 함께 용기를 낸다.

사람은 스스로를 잘 알 것 같아도 그렇지 않다. 상황에 따라 사람들은 달라지며 본인이 내린 선택의 이유도 각각이다. 마찬가지로 기억 또한 정확하기보다 자기 위주로 저장되기에 객관적이기도 어렵다.

그만큼 자기 객관화는 쉽지 않은 일이며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는 용기를 내기도 힘들다. 아프고 힘들었던 순간을 참고 견디며 어떻게든 지나갈 거라 믿었던 어린 공효, 그 아이를 본 어른 공효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이 소설을 읽으면서 지금의 삶에 지치고 아픈 이들에게는 이 순간을 건너갈 수 있다는 믿음이 되고, 기억 속 고통에 아픈 이들에게는 그 순간을 지금도 꿋꿋하게 건널 수 있다는 응원이 되리라 생각했다.

어린 시절의 자기를 만나는 환상적인 소설이지만 이야기는 상당히 현실적이라고 느꼈다. 타인과의 관계에서든, 자기를 둘러싼 상황에서든 우리는 스스로의 탓으로 돌릴 때가 있다.

자기에게 문제를 찾아서 그 상황을 접고 싶은 순간이 있다. 이 소설은 그때의 감정을 어루만지며 두려움과 상처를 어떻게 대하는 것이 좋은지 잘 보여준다.

자신을 용서하기 힘들었던 순간이나 자기가 정말 싫었던 순간 때문에 아픈 이들에게, 그건 그때의 자신이 내렸던 하나의 선택이었을 뿐이니 아픈 만큼 스스로를 안아주라고 가르쳐 주는 소설 같다.

피하기보다 마주 서고 비난하기보다 감싸주며 지나치기보다 함께 가라는 걸 알려주는 작품이었다. 우리의 기억 속 아픔에, 그때의 우리 자신에, 따뜻한 악수를 내미는 소설이었다.

친구와의 관계로 힘든 시기를 보내는 청소년들에게, 타인의 말에 상처받아 아픈 사람들에게 잔잔한 위로와 응원을 주는 책이라 권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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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이 삶의 언어가 될 때 - 고요히 나를 회복하는 필사의 시간
김종원 지음 / 큰숲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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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서평은 해당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것입니다. 평소와 다름없이 읽고 제 생각을 기록한 글입니다.



햇빛에 비치면 먼지도 빛난다.

그대, 아름다운 시선을 유지하라.

신도 절망하는 곳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p.40 -괴테

일상이 가장 위대한 자산이다.

이 세상 어떤 것도 내가 누리는 오늘 이 시간보다

더 비싸거나 귀중하지 않다.

내가 반복하는 것이 나를 증명한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매일 자기 자신이 반복하는 것을 기쁜 마음으로 즐기는 사람이다.

p.44 -괴테

(오늘의 필사)

아무리 최악의 상황이라고 해도

내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스스로를 믿는 동안에는

여전히 그걸 해낼 가능성이 존재한다.

p.68

바보와 현명한 자들은 우리 삶에 피해를 주지 않는다.

가장 위험한 사람들은 바로

어중간한 바보와 어중간하게 현명한 사람들이다.

-괴테

(오늘의 질문) 나는 물음표가 있는 하루를 살고 있는가?

pp.88~89

(오늘의 필사)

작가라는 명사를 가지려면

글쓰기라는 동사를 실천해야 한다.

동사를 품에 안으면,

명사는 저절로 따라온다.

p.98

한낮의 빛이 어둠의 깊이를 어찌 알 수 있겠는가.

악인에게는 자신을 증오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pp.116~118 -니체

나를 파괴하지 못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나를 강하게 만들 뿐이다.

네 운명을 사랑하라.

p.124 -니체

(오늘의 필사)

세상은 해석하는 자의 몫이다.

해석한 만큼 더 큰 세상을 볼 수 있다.

모두가 같은 것을 바라보지만

모두가 같은 것을 발견하는 건 아니다.

p.176

(오늘의 필사)

삶은 두려움의 연속이다.

수많은 날을 살았어도

오늘은 누구에게나 처음이기 때문이다.

p.180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늘 침묵해야 한다.

진짜 어른에게 나이가 든다는 건

자신의 언어를 정밀하고 세련되게 다듬는 과정이다.

pp.216~218 -비트겐슈타인

김종원, <철학이 삶의 언어가 될 때> 中

+) 이 책은 삶을 살아가면서 필요한 인생의 이치와 지혜를 철학자 괴테, 니체, 비트겐슈타인의 말을 바탕으로 전하고 있다.

인생의 방황기와 고통 속에서도 배우고 성장할 수 있다는 괴테의 신념, 어떤 상황에서도 자기의 운명을 사랑하고 용기 있게 수용하라는 니체의 마인드, 자기만의 언어가 자기의 생을 만들고 이끌어간다는 비트겐슈타인의 생각을 담은 책이다.

'고요히 나를 회복하는 필사의 시간'이라는 부제에서도 드러나듯 책은 '철학자의 말, 오늘의 필사, 오늘의 질문' 3단 구성으로 구조화되어 있다.

저자는 철학자의 말로 하루의 시작을 열고, 그와 더불어 우리가 사유할 수 있는 문장을 필사의 시간으로 이어간다. 그리고 한 문장의 질문으로 우리가 우리의 현실에 다가가도록 돕는다.

철학자의 말에서 저자의 인문학적 접근으로 이어져 우리 스스로의 내면과 삶을 돌아보는 순간을 마련해 주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철학자의 말과 저자의 조언이 책의 왼쪽에 있다면, 독자가 필사하는 공간은 오른쪽에 마련되어 있다. 또 필사하기 편하도록 책을 잘 펼쳐지게 엮고 있어서 독자를 배려하는 마음이 따뜻하게 와닿는다.

하루 한 쪽씩, 혹은 일주일에 한두 쪽씩 필사하며 마음을 다스리는 데 도움이 되는 책이다. 괴테, 니체, 비트겐슈타인 순으로 구성되었으나 독자가 읽고 싶은 순서로 필사를 해도 괜찮다고 느낀다.

이 책에 수록된 세 철학자의 말을 읽으며 그들에 더 관심을 갖게 된다. 이런 말을 어떤 상황에서 했을지, 어떤 책에 기록되어 있는지, 그들의 인생은 어땠는지 등 호기심이 생긴다.

또한 저자의 인문학적이고 철학적인 조언이 지난 삶을 돌아보며 삶을 재정비하고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돕는다. 필사하며 철학자의 말과 저자의 조언이 어우러져 내면에 깊이 새길 수 있다.

그러면서 오늘의 질문을 통해 자기 자신과 스스로의 생, 그 삶을 대하는 태도 등도 성찰할 수 있다. 필사하는 시간만큼 자신에게 던진 질문에 답을 찾는 시간도 소중하다는 걸 알려주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손으로 필사하기 편하도록 독자를 배려해 책을 편집한 이들의 정성이 느껴지는 책이었다. 그 따뜻한 마음에서도 철학이 삶으로 녹아들고 있다는 걸 보여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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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김치 김백치 웅진 우리그림책 146
심보영 지음 / 웅진주니어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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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서평은 해당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것입니다. 평소와 다름없이 읽고 제 생각을 기록한 글입니다.




"다 왔다!"

"차례차례 내리 생강!"

드디어 배추들이 김치 공장에 도착했어요.

♪ 소금산의 소금으로 ♬

"어디 가는 거야?"

"몰라."

♩ 백김치가 될 거야 ♬

"뭐라고?"

"이제 백김치 끝!"

고추들의 분주한 발소리가 가득한 이곳은 김치 공장.

싱싱하고 튼튼한 배추를 골라 김치로 만드는 곳이에요.

김백치도 이제 훌륭한 매콤 김치가 될 거예요.

"아....... 앗!"

엇, 김백치는 또 어딜 가는 걸까요?

쿨......

폴짝

뾰로롱!

너의 우주를 응원해!

심보영 그림책, <백김치 김백치> 中

+) 이 책은 유아들을 대상으로 하는 그림책이다. 아이들이 좋아할 만큼 예쁘고 화사한 색감의 그림들이 가득해서 우선 손이 가는 책이다.

소금산에 눈부시게 하얀 소금이 솔솔 내리는 날, '김백치'는 다른 배추들과 함께 김치가 되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

백김치가 되고 싶은 김백치는 여행하는 기분으로 기차를 타고 김치 공장으로 들어간다. 하지만 김치 공장의 시스템은 구조적이라 고추들의 지휘에 따라 여러 종류의 김치로 만들어지게 된다.

김백치는 울긋불긋한 매콤 김치 될 뻔했으나 폴짝 탈출하고, 바짝 말린 우거지 시래기도 될 뻔했으나 데루르르 탈출하며, 꿋꿋하게 자기만의 길을 걷는다.

그 과정에서 알싸한 마늘도 만나고, 재빠른 고추도 만나고, 머리 자르기 싫어하는 무도 만나고, 김백치 닮은 유령과 외계인도 만난다.

이 그림책은 어른들이 읽어줄 때 구연동화하듯 생생하게 읽으면 한 편의 애니메이션처럼 아이들의 동심을 즐겁게 만들어 줄 수 있다.

백김치가 되고 싶었던 김백치가 자기만의 길을 찾아 떠나는 과정을 통해, 어린이들에게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잘 몰라도 찾아가는 여정이 중요하다는 걸 보여준다.

또 그 길에서 당황스럽거나 어려운 상황을 겪어도 그 또한 새로운 경험으로 여기고, 용감하고 씩씩하게 길을 걸으면 자기가 원하는 걸 할 수 있다고 가르쳐준다.

아이들에게 이 책을 읽어주는 어른들에게도 따뜻한 용기를 북돋아준다. 무엇을 하고 싶은지 잘 모르더라도 여러 길을 걷고 여러 사람들을 만나면 좋은 기회가 온다는 걸 알려준다.

그리고 그림책에 배추, 김치, 양파, 무, 고추 등의 캐릭터가 귀엽고 발랄하며 똘망똘망하게 그려져 있어서 읽는 재미가 있다.

또한 아이들에게 식탁 위 김치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어떤 종류의 김치가 있는지 등도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도 된다고 본다.

이 책을 몇 번 보면서 "더 멀리 가보자!"는 김백치의 목소리가 내면에 울리는 듯했다. 우리는 한 번쯤 생각만 했을 그 일을 김백치는 멋지게 해냈다.

그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며 스스로에게도 저런 마음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낯선 상황이 두려워도 한 걸음 뗄 용기를, 이 그림책에서 배운 것 같아 마음이 따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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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 나는 불안에 시달리고 있어요
베네데타 산티니 지음, 박건우 옮김 / 데이원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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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서평은 해당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것입니다. 평소와 다름없이 읽고 제 생각을 기록한 글입니다.



우리 자신을 잘 알지 못할수록, 다른 사람들이 우리에 대해 하는 말에 더 쉽게 휘둘리게 됩니다. 타인의 시선에 흔들리지 않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바로 우리 자신에 대한 진실을 아는 것입니다.

우리가 직접 그들이 그 불꽃을 볼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이죠.

심리학에서는 이러한 개념을 '자기표현'이라고 부릅니다. 즉, 우리가 우리 자신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생각이나 이미지를 우리의 행동을 통해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려고 노력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분명히 해 둘 점은, 우리 자신의 어떤 부분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이고 건강한 반응이라는 사실입니다.

pp.24~25 [탈레스]

소크라테스가 말하는 앎이란 시간을 통해 성숙된 깊은 깨달음, 개인적인 변화와 발전을 통해 얻어지는 '실존적 앎'입니다. 무언가를 진정으로 안다는 것은 단순히 몇 가지 지식을 흡수하는 것을 넘어, 때로는 고통스럽게 자신의 기존 확신들이 무너져 내리는 경험을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p.54 [소크라테스]

소크라테스가 말했듯이, 탐구 없는 삶은 살 가치가 없는 삶입니다.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은 도달해야 할 목적지가 아니라, 그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는 탐구의 과정 그 자체입니다. 해답이 아니라 질문 그 자체인 것이죠. 감히 탐구를 시작할 용기를 낸 사람이라면, 누구든 자신의 삶이 헛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p.87 [플라톤]

"자네가 없는 사람을 채찍질한다고 상상해 보게. 채찍을 이리저리 휘두르겠지만, 결국 허공만 가를 뿐일세. 없는 사람을 채찍질하는 것은 허공에 채찍질하는 것과 같고, 누군가의 등 뒤에서 험담하는 것은 허공에 대고 말하는 것과 같네. 자네가 없을 때 자네를 채찍질하는 사람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네. 그는 자네에게 아무런 해도 끼칠 수 없으니까. 마치 등 뒤에서 남의 말을 할 만큼 비겁한 사람이 그러하듯이 말일세."

p.112 [아리스토텔레스]

그에 따르면, 우리에게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우리에게 일어나는 사건 그 자체가 아니라, 우리가 그 사건을 어떻게 해석하느냐 하는 방식입니다. 만약 우리가 어떤 사건에 부여하는 의미가 바뀐다면, 그 사건에 대한 우리의 감정 또한 바뀔 것이라는 말입니다.

p.143 [세네카]

우리는 보통 도망치는 사람을 겁쟁이라고 생각하지만, 항상 그런 것은 아닙니다. 회피라는 심리적 메커니즘은 그 자체로 비난받아야 할 것이 아니라, 먼저 이해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우리가 왜 그토록 두려워했는지 그 이유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p.178 [피히테]

쇼펜하우어에 따르면, 고독은 우리에게 두 가지 귀한 선물을 줄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완전히 우리 자신이 될 수 있는 자유이고, 두 번째는 한 사람의 진정한 가치를 측정할 수 있는 척도입니다.

가치가 별 볼 일 없는 사람은 자기 자신을 피하기 위해 고독을 피할 것이고, 자신의 생각을 지탱할 수 있는 사람은 고독 또한 견뎌낼 수 있을 것이며, 마지막으로 내면의 풍요로움이 위대한 사람은 자신 안에 있는 것을 즐기기 위해 고독을 찾을 것입니다.

pp.231~232 [쇼펜하우어]

개선으로 나아가는 길은 결코 직선적이지 않습니다. 그 길은 수많은 퇴보, 혹은 더 정확히 말해 '회귀'로 가득 차 있습니다.

'젊은 영혼이여, 그대의 삶을 되돌아보고 물어보라. 지금까지 무엇을 진정으로 사랑했는가, 무엇이 그대를 그토록 끌어당겼는가, 무엇이 그대를 지배했고 동시에 그대를 행복하게 만들었는가?'

pp.276~278 [니체]

베네데타 산티니, <플라톤, 나는 불안에 시달리고 있어요> 中

+) 이 책은 심리학자인 저자가 여러 요인에 시달려 마음이 아픈 현대인들을 위해, 철학과 심리학의 다리를 연결해 위안을 건네는 교양서이다.

이 책에는 고대 그리스 철학자부터 근대 철학자까지 총 8명의 철학자들이 등장한다. 그들에 얽힌 이야기와 주요 사상을 삽화 형식의 사연과 저자의 심리학적 풀이로 정리하고 있다.

저자는 '탈레스,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세네카, 피히테, 쇼펜하우어, 니체'의 철학을 바탕으로 우리가 겪고 있는 내적 혼란과 고통에 한 걸음 다가선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마음, 사랑의 진정한 정의, 상실의 고통과 죽음의 의미, 걱정과 불안의 연속성, 분노와 부조리함의 원인, 고독을 수용하는 방법, 자기 자신에 대한 올바른 이해 등이 이 책에 담겨 있다.

각각의 철학자에 얽힌 사연을 싣고, 그 철학자의 주요 사상이 현대인의 심리적 불안과 어떻게 맞닿아 있는지 에세이 형식으로 풀어내고 있어서 재미있고 이해하기 쉽다.

철학 사상을 어려워하고 낯설어 하는 사람들이 읽으면 좋을 책이다. 깊이가 느껴지는 심리학 책인데 흥미롭게 구성해서 누구나 편하게 읽을 수 있다.

불안, 고독, 타인, 자아, 사랑, 죽음 등의 말들이 곁에 맴돌아 지치는 사람들에게도 도움을 줄 수 있는 책이다. 심리학적 불안의 뿌리는 물론 자기 내면을 천천히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가 될 듯하다.

개인적으로 흥미롭게 읽은 책이기에 이 책을 어떤 갈래로 설명해야 할지 고민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이 책은 교양 철학서, 교양 심리학서, 인문교양서, 인문 에세이, 심리학 에세이 등에 모두 어울린다고 느낀다.

심리학 서적은 문제만큼 해결책도 중요하다. 하지만 이 책은 문제가 진짜 문제는 맞는지, 해결법이 정말 필요한 건지, 내적 불안을 어떻게 수용해야 하는지 등을 지혜롭게 알려주고 있어서 의미가 있다고 본다.

철학과 심리학의 다리를 이어 현대인이 겪는 심리적 방황에 위로와 응원의 길을 터주는 이런 책들이 많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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