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 오거스트의 열다섯 번째 삶
클레어 노스 지음, 김선형 옮김 / 반타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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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서평은 해당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것입니다. 평소와 다름없이 읽고 제 생각을 기록한 글입니다.




신앙의 상실은 특별한 깨달음을 주지도 않았거니와 끔찍하게 괴롭지도 않았다. 오랜 시간에 걸쳐 자라난 체념은 내가 살아가며 겪은 일들로 더욱 공고해졌으며, 결국 신과의 대화는 무조건 일방통행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내 죽음과 잇따라 처음 그 자리에 다시 태어난 재탄생이라는 논쟁은 결국 기운 빠지는 필연으로 종결지어졌고, 이제 나는 끝내 실패한 실험을 지켜보는 과학자처럼 극심한 낙담과 초탈에 빠져 현실을 바라보게 되었다.

p.35

난 보자마자 실소를 터뜨렸다. 현판에는 '성마고 정신병원'이라고 쓰여 있었다. 누군가 '불행한 이들을 위한'을 박박 지워버렸는지 보기 흉한 빈자리만 남아 있었다. 내가 두 번째 생애에서 일곱 살의 나이에 창밖으로 몸을 던져 생을 마감했던 바로 그 병원이었다.

p.41

"이게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까, 오거스트 박사님? 당신은 죽으면 그만이다, 이렇게 생각하십니까? 세계가 리셋된다 이거죠, 쾅! 하고."

"우리같이 하찮은 삶을 사는 하찮은 사람들은 다 죽고 없어지고 이 모든 게......"

p.95

복잡성을 이유로 어떤 개입도 해서는 안 된다.

이것이 크로노스 클럽의 만트라였다. 그리고 내가 지금 이 말을 전한다. 이건 고결하지도 대담하지도 정의롭지도 야심만만하지도 않은 만트라지만, 유유히 흘러가는 역사의 물줄기에, 감히 시간 그 자체에 손을 대려는 시도를 경계하려는 일이니, 이 신성한 맹약은 반드시 모든 크로노스 클럽 본부의 문 앞에 걸려 있어야만 한다.

p.112

공포는 재탄생에 있다. 재탄생, 그리고 몸이 아무리 갱생해도 정신은 구원받을 수 없다는, 사라지지 않는 두려움.

p.140

"나는 유의미한 변화를 만들어낼 수는 없잖아. 안 그래?"

"우리는 이 모든 걸 알면서...... 아무 일도 하지 않아. 우리가 세계를 바꿔야 한다는 말이 아니야. 우리한테 해결책이 있다는 얘기도 아니고. 이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으면 미래는 어떻게 될까? 하지만 우리는...... 무언가는 해야 해."

pp.267~268

당신은 신입니까, 오거스트 박사님? 당신만이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중요한 생명체입니까? 기억한다고 해서, 당신의 고통이 더 크고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까? 당신이 이 모든 걸 경험했다고 해서, 당신의 삶이 유일하게 의미가 있는 삶이라고 생각하는 겁니까?

p.345

"바보구나. 뭐가 옳은지 아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다고."

p.431

클레어 노스, <해리 오거스트의 열다섯 번째 삶> 中

+) 이 소설은 660쪽이라는 방대한 분량의 장편 소설이다. 정확히는 과거를 기억한 채 끝없이 반복되는 생에 관한 SF 스릴러 소설이라고 하면 될 듯하다.

매번 같은 해에 태어나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뒤 세 네 살 무렵부터 본인의 지난 과거를 기억하는 남자, 그가 바로 '해리 오거스트'이다.

처음 한두 번 비슷한 생은 신경 쓰지 않다가 계속해서 자기 인생이 반복되고 있다는 걸 깨달은 남자는 그 굴레를 벗어나고 싶어서 여러 방안을 생각해낸다.

다양한 종교에서 해결 방법을 찾으려고도 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본인에게 일어나는 엄청난 비밀을 이야기해 보기도 한다. 하지만 결국에 그걸 믿는 사람보다 믿지 않는 사람이 더 많기에 그는 물리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고립된다.

그렇게 그는 되풀이되는 인생의 틀에서 지루함과 외로움에 지쳐만 간다. 그럴 때 그에게 다가오는 세력들이 있다.

미래를 알고 있다면 본인들에게 유리한 쪽으로 역사를 바꿀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 무리들. 그들은 해리 오거스트를 설득하기 위해 강압적으로 그를 압박한다.

그러나 반복되는 과거와 지속되는 현재에서 그는 자기와 비슷한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이런 존재가 인류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고민하며 흔들린다.

그는 다시 태어날 때마다 많은 언어와 문화, 사회적 지식을 배우고 쌓는다. 그의 환상적인 경험은 수많은 위협과 비웃음, 그리고 의심 속에서 그렇게 천천히 방향을 찾아간다.

열다섯 번째의 삶이라는 제목에서도 나오듯 이 소설에는 그의 반복되는 인생 이야기가 담겨 있다. 중요한 건 그 반복이 일정한 틀일 뿐 그 안에서 주인공은 계속해서 변화한다.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자기 존재 가치를 찾아, 어떤 방식이든 시도하기도 하고 좌절하기도 하며 포기하기도 한다. 이 소설은 그런 모습을 생생하게 담아냈다.

방대한 분량의 장편 소설이지만 스릴러 갈래이기에 흥미롭게 읽을 수 있고, 사회 역사적 배경을 통해 시대의 흐름을 살펴볼 수 있다.

과거를 아는 힘이 미래를 바꾸는 힘이 될지 모른다는 걸 소설을 통해 확인했다. 그리고 이게 과연 득일지 해일지 간접적으로 경험하며 해리 오거스트의 삶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소설이었다.

너무 많이 알고 있는 삶은 편하지 않다. 너무 특이한 삶도 편할 수 없다. 이 소설은 그런 인물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인류를 위하는 일을 하는 것, 역사를 바꾸는 기회를 갖는 것. 이게 과연 옳은 일일까. 소설을 읽으면서 해리 오거스트의 입장과 그를 둘러싼 주변인들의 입장, 모두에 각각 서 있어보았다.

입장과 상황 차이는 있겠지만 어느 쪽에서도 내적 갈등과 두려움이 동반되리라 생각한다. 긴 분량임에도 지루하지 않게 쉼 없이 읽은 책이었다.

지적인 스릴러라는 어느 소설가의 평에 깊이 공감한다. 사회 문화적, 역사적 상황들을 어렵지 않게 살핀 기분이 든다. 참신한 발상의 지적 스릴러를 접하고 싶은 이들에게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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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 뇌는 만들어진다 - 평생 공부머리를 결정짓는 뇌 성장 수업
노규식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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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서평은 해당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것입니다. 평소와 다름없이 읽고 제 생각을 기록한 글입니다.




내가 생각하기에 공부 잘하는 아이들의 가장 큰 특징은 전략적 사고를 하는 능력이 우수하다는 것이다. 전략적 사고란 복잡한 상황을 명확하게 이해하고 효과적인 해결책을 찾아내는 능력으로, 주로 뇌의 전두엽에서 여러 가지 실행 기능을 통해 이루어진다. 전략적 사고의 핵심 요소는 계획 세우기, 조직화하기, 우선순위 정하기, 점검하기, 기억하기, 유연하게 생각하기로 나눌 수 있다.

pp.21~22

  • 부모가 아이의 공부 뇌를 만든다

- 아이의 호기심을 존중하고 지원해주기

- 아이의 질문에 함께 고민하고 탐구하기

-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환경 만들어주기

  • 아이의 흥미를 유지해주는 3가지 방법

- 아이의 실패를 아이 자체의 능력이나 정체성과 연결하지 않는다.

- 결과보다는 시도와 탐색, 수정의 움직임에 주목해야 한다.

- 실패 직후의 감정보다 실패를 인식하기 전의 고민과 탐색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pp.32~42

아이들에게는 빠르게 답을 맞히는 연습보다 천천히 사고를 붙잡고 구성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오답을 확인한 뒤 바로 정답을 외우는 것이 아니라 어떤 사고 오류가 있었는지 탐색하는 과정이 인지 능력을 성장시키는 기회다.

개념은 눈으로 읽는 것이 아니라 몸을 거쳐 기억되는 구조로 바뀌어야 한다. 감각을 통한 학습은 개념을 오랫동안 안정적으로 저장하는 데 효과적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아이가 공부를 스스로 '설계'하는 경험이다. 오늘 무엇을 공부할지, 어떤 방식으로 할지, 끝나고 무엇이 남았는지를 점검하게 해야 진짜 자기 주도 학습이 된다.

pp.59~61

열 살 이전에는 단순하고 구체적인 개념이 형성되고, 열 살 전후부터 개념을 연결하고 추상화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 그렇기에 초등 저학년 시기의 학습은 '앞서가기'보다 '생각하는 근육'을 기르는 데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10세 이전엔 '학습 준비'를, 10세 이후엔 '공부 전략'을 세워야 한다. 이 시기가 평생 성적의 출발점이 된다.

pp.97~98

뇌는 반복적으로 주입되는 정보에 '고속 통행로'를 마든다. 한번 만들어진 길은 잘 지워지지 않는다. 한정적인 시간 내 중요한 정보는 '많이 잊히는 것은 자주, 이미 고정된 것은 적게' 반복하는 것이 효율적인 기억 전략이다.

p.127

  • 독서와 글쓰기만큼 뇌를 자극하는 학습법도 없다

실제로 뇌과학적 관점에서 보았을 때 독서는 뇌를 발달시키는 데에 결정적 역할을 한다. 충분한 독서로 뇌를 건강하게 만들어야 비판적 사고도 가능하고 새로운 개념의 창조도 가능해지는 것이다.

pp.152~153

문해력을 키우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여전히 독서다.

p.158

수학을 잘하려면 언적 이해력이 함께 자라야 한다. 문제의 조건을 해석하고, 수학적 개념을 설명할 수 있고, 설명을 듣고 피드백할 수 있는 능력은 모두 언어를 바탕으로 한다. 언어 능력은 단지 교과서와 문제만 반복해서 본다고 늘지 않는다. 이 시기 아이에게 다양한 책을 읽고, 자기 생을 써보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경험이 필수적이다.

p.203

  • 집에서 만드는 루틴 훈련법

- 같은 시간에 일어나고 자는 것부터 시작한다.

- '할 일표'가 아닌 '리듬표'를 만든다.

- '조용한 시간' 루틴이 꼭 필요하다.

- 디지털 기기 없는 아날로그 시간 루틴을 만들어 시행한다.

- 잠들기 전 하루를 정리해본다.

p.256

노규식, <공부 뇌는 만들어진다> 中

+) 이 책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인 저자가 뇌의 구조와 뇌의 발달 원리를 토대로 학습 능력을 성장시킬 수 있는 방법을 설명하고 있다.

저자는 공부에 필요한 뇌가 만들어진다고 주장하며 뇌 기능을 알고 뇌 발달 시기에 맞게 인지 능력을 키워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집중력과 주의력을 구분 짓고 주의력에 대한 잘못된 이해를 언급하며, 기억력과 언어 능력을 활용한 학습 전략에 대해 정리한다.

AI 시대에서 이해 중심의 학습자만큼 비판 중심의 학습자가 왜 필요한지 말하며, 아이의 창의성을 기르기 위해 어떤 것들이 필요한지 가르쳐 준다.

책의 후반부에서는 아이의 잠재력을 키우고 공부하는 뇌를 만들려면 부모가 무엇을 하는 게 좋은지 제시한다. 그리고 아이에게 중요한 부모의 말과 아이가 학습하는데 필요한 환경적 조건에 대해서 써 내려간다.

이 책은 뇌의 구조와 원리를 이해하면 후천적으로 공부 뇌를 발달시킬 수 있다고 설명한다. 공부에 집중하는 아이들은 어떻게 뇌를 활용하는지 보여주며, 단계적으로 자라는 공부 뇌를 고려한 체계적인 학습전략을 제안한다.

책을 읽으면서 학습에는 다양한 뇌 기능이 종합적으로 사용된다는 걸 배웠다. 단순히 집중력, 끈기, 암기력 등으로 구분할 게 아니라 학습에 필요한 인지능력을 뇌의 구조와 원리에 맞게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미이다.

무엇보다 저자는 아이의 뇌 성장을 위해 부모가 어떻게 해야 좋은지에 대해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대안을 마련하고 있어서 도움이 된다.

뇌 성장 단계에 맞게 필요한 학습 능력을 키워야 한다는 전략과, 후천적으로 뇌 성장을 도울 방법이 있다 뇌 과학적 근거와 사례를 제시한 점에 신뢰감이 드는 책이었다.

실제 가정 내에서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이해하기 쉽게 제안하고 있기에, 아이를 돕고 싶은 부모들에게 유익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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냠냠 소설의 첫 만남 32
백온유 지음, joggen 그림 / 창비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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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인자한 엄마 말투'를 쓰는 것도 아니꼬웠지만, 평소에는 친하지도 않으면서 떡볶이가 먹고 싶을 때만 가게에 와서 애교를 부리며 음식을 털어먹는 애들이 더 얄미웠다. 하지만 나는 회장이니까 끝까지 웃으면서 애들을 대한다. 내가 생각해도 나는 꽤 어른스러운 편인 것 같다.

p.18

나는 이서우를 관찰하다가 민망해지기 일쑤였다. 왜긴 왜야. 이서우를 좋아하니까 그렇지, 뭐. 인정하니 당당해졌고 어깨를 펴니 고개가 끄덕여졌다.

이서우와는 좀처럼 길게 말할 기회가 없었다. 그나마 내가 회장이니까 뭘 챙겨 준답시고 문자라도 할 수 있었지, 우리는 같은 동네에 살지도 않았고, 그 애는 학원도 독서실도 안 다녔다.

주말에 단둘이 도서관에 가자고 할까 하다가 내가 생각해도 그건 좀 아닌 것 같아서 포기했다. 그 대신 영화 보러 가자고 할까, 아니면 마라탕을 먹으러 가자고 할까 망설이기만 하다가 방학이 시작되고 말았다. 내가 이렇게 답답한 면이 있는지 십오 년 만에 처음 알았다.

pp.22~23

"미안해."

"아니야. 나야말로 맛있게 다 받아먹어놓고 이래서 미안해. 오늘은 내가 맛있는 거 사 주고 싶었는데, 너는 거의 먹지도 못하더라."

"미안해."

내가 한 말인지 이서우가 한 말인지 모르겠지만, 누군가 미안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우리 사이에 더는 아무 말도 오가지 않았다. 이서우가 내게서 멀어지는 동안, 나는 바보같이 바라보고만 있었다.

pp.68~69

"근데 있잖아, 너 그럼 나도 불쌍하다고 생각했어?"

"그럴 리가 없잖아. 엄마가 분식집 하기 전까지는 내가 너한테 더 많이 얻어먹었는데 그럼 네가 나를 불쌍하게 생각한 거 아니야?"

"아닌데, 나는 너랑 있으면 재밌어서 같이 밥 먹자고 조른 건데."

"나도 마찬가지야. 나도 이서우랑 있으면 비슷해. 그냥 "

"그냥 뭐?"

"그냥 좋아서 그런 거지 뭐."

"그럼 그렇게 말하면 되겠네."

"용기가 안 나."

"용기를 내면 되겠네."

pp.71~72

이제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결국 재채기하듯 내뱉고 말았다.

"냠냠!"

pp.78~79

백온유, <냠냠> 中

+) 이 소설 속 중학생 주인공 '채원'이는 학급 회장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꾸준히 회장직을 맡으며 엄마처럼 다정하게 챙겨줘야 하는 친구들이 있다는 걸 본능적으로 체득한다.

같은 반 '서우'가 그런 친구이다. 준비물도 잊어버리고 숙제도 까먹는 아이라 회장으로서 챙겨주다 보니 어느새 정이 들고 나중에는 그런 자기감정이 좋아하는 마음이라는 걸 깨닫는다.

어느 날 서우가 끼니를 부실하게 먹는 것 같아 그때부터 온갖 핑계를 대며 서우에게 음식을 전달한다. 이미 가게를 하고 있는 엄마의 떡볶이를 개발 중이라며 맛 평가를 부탁하고, 그 외 다양한 음식들을 도시락으로 싸와 서우와 함께 먹는다.

그러다가 자신이 급식 카드를 사용하는 서원이의 상황을 모르는 척하며 다가선 게 오히려 서우에게 상처가 될 수 있음을 알게 되고 둘은 어색해진다.

하지만 편견 없이 좋아하는 마음으로 맛있는 음식을 함께 먹던 '윤영'이의 조언 덕분에 채원이는 서우에게 진심을 이야기한다. 물론 채원이만의 방식으로 말이다.

이 작품은 '냠냠' 소리가 이렇게 반갑고 행복한 표현이구나 하고 느끼게 해주는 소설이다. 좋아하는 사람과 맛있는 음식을 같이 먹고 싶은 마음. 좋아하는 사람이 맛있는 음식을 '냠냠' 먹을 때 행복해지는 마음. 그 마음이 고스란히 전달되는 작품이다.

또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아무런 편견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는 소설이라고 생각했다. 순수하게 좋아하는 마음이기에 조심스럽게 다가가고 싶고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는 그런 설렘을 매우 잘 그리고 있다.

채원이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니 충분히 이해가 되는 상황이었다. 맛있는 음식을 어떻게 하면 같이 먹을 수 있을지 고민하는 그 순간까지 맛있게 만들어낸 소설이었다.

아이들에게 사랑하는 마음과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소설이라고 느꼈다. 특히 결말에서 두 아이의 솔직담백한 모습이 무척 사랑스러워서, 좋아하는 사람과 맛있는 한 끼를 먹을 수 있는 순간이 정말 소중하다는 걸 새삼 느끼게 해주었다.

어쩌면 사랑이란 맛있는 한 끼를 행복해하며 함께 나누는 게 아닐까 돌아보게 해준 소설이었다. '냠냠' 맛있는 소리로 사랑과 행복이 무럭무럭 자라나는 풍경을 본 듯해 흐뭇했다.

사랑하는 마음을 어떻게 표현하는 게 좋을지 배울 수 있는 소설이었다. 그 소중함의 가치를 진솔하고 따뜻하게 느끼고 싶은 이들에게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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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남긴 365일
유이하 지음, 김지연 옮김 / 모모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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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서평은 해당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것입니다. 평소와 다름없이 읽고 제 생각을 기록한 글입니다.




인간은 잔인해서 자신과 다른 부류를 보면 거부한다. 내가 신경 쓰지 않아도 상대방은 내게 호기심 어린 시선을 보낸다. 색깔이 안 보인다니 섬뜩해. 저 녀석은 정상이 아니야. 나쁜 짓을 하지도 않았는데 수많은 거절을 경험한 나는 친구 사귀는 법을 알지 못했고, 언제부턴가 비뚤어져서는 친구 같은 건 없어도 된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p.18

나는 타인과 얼마나 거리를 둬야 하는지, 어떻게 소통해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이런 말을 하면 상대방이 싫어한다는 생각도 못 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내게 했던 불쾌한 말들을 그대로 돌려줘도 된다고 생각했으니까.

p.24

아라타는 허둥지둥 노트를 돌려주면서 유품이면 유품이라고 말을 하라며 내 팔을 툭 쳤다.

"소중한 거잖아!"

"그런가?"

"당연하지. 넌 그런 쪽으로는 둔해 빠졌다니까."

"그냥 평범한 노트잖아."

"앞으로 가에데 선배가 쓴 글씨를 못 보는데?"

p.67

아라타가 노트를 거머쥐고 싱글벙글 웃으며 다음 페이지를 넘기려고 하기에 허둥지둥 말렸다.

"안 볼 거야?"

"안 봐. 미리 보는 걸 싫어하는 성격이거든."

늘 그랬다. 바로 코앞의 미래도 알려고 하지 않았다.

p.90

지독한 놈이다. 원래대로라면 훨씬 더 슬퍼하는 게 맞다. 하루하루 당연하게 숨을 쉬던 사람이 죽었다. 당연히 슬퍼하고, 당연히 울어야 한다.

"감정이 따라오지 못하는 것뿐이야."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슬픔이 복받치는 타이밍은 저마다 다르니까."

pp.104~105

"사람의 뇌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기억에도 용량이 정해져 있다."

p.138

"유고가 혼자 남는다고. 삶의 기쁨도 모르고 어른이 될 가능성이 크다며 네 걱정만 했어. 자신이 죽고 나면 자기 존재를 잃어버릴 정도로 즐거운 기억만 잔뜩 만들고 행복해지길 바란다고 했어."

p.313

실은 줄곧 좋아했다. 앞으로도 변함없이 같이 있을 거라 생각하고, 그 감정에 너무 익숙해져서 알아차리지 못했을 뿐이다. 네가 없는 내 인생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네가 누구와 사귀든 결국엔 내게로 돌아올 거라고, 우리는 그렇게 나이를 먹어갈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랬기에 굳이 말로 하지 않았다.

p.338

유이하, <네가 남긴 365일> 中

+) 이 소설에는 무채병에 걸려 세상을 흑과 백으로만 보던 '유고'라는 소년이 등장한다. 유고에게는 두 살 위 소녀 '가에데'라는 유쾌하고 발랄한 친구가 있다.

티격태격하면서도 둘이 꼭 붙어 다니던 소꿉친구였는데, 어느 날 가에데가 병에 걸려 죽으면서 이 작품은 시작된다.

그리고 가에데가 죽은 다음날부터 유고에게 갑자기 세상의 빛깔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한다. 빛을 볼 수 있다는 건 희망적이었지만, 유고는 자신도 결국 1년 뒤에는 죽는다는 절망적인 사실을 알게 된다.

그 절망에 대해 깊이 인지하지 않던 유고에게, 가에데가 남긴 365개의 '건강해지면 하고 싶은 일' 리스트가 전달된다.

처음에는 친구의 소원인 듯하여 별생각 없이 하나 둘 실천해간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유고는 친구도 사귀게 되고 감정의 변화도 경험하며 삶의 소중함도 느끼는 아이로 변해간다.

이 소설은 우정과 사랑을 아프지만 감동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병에 걸린 소년과 소녀의 이야기가 슬프게 느껴지지만, 365개의 버킷리스트를 행하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아름다운 생의 장면들을 만날 수 있다. 그렇기에 슬프고 아프지만 따뜻한 감동을 주는 우정과 사랑 이야기를 담은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에게 받은 상처로 혼자만 지내서 친구들에게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잘 모르는 유고를 보며 연민을 느꼈다. 그 상처가 자기의 본래 감정도 외면하게 만든 듯하여 마음이 아팠지만, 누구보다 그런 모습을 이해해 주는 단 한 사람이 곁에 있다는 게 참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한 명이라도 곁에서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해주고 수용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무척 행복한 일이다. 그게 우정이든 사랑이든 중요하지 않다. 그런 존재가 있음으로써 삶을 사는데 큰 버팀목이 된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결국 유고는 사랑의 색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때쯤 유고의 주변에는 친구들이라는 수많은 빛깔도 존재한다. 인생의 다양한 색이 유고에게도 나타난 것이다.

엉뚱하지만 재미있는 365개의 버킷리스트를 실천하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생의 즐거움을 볼 수 있다. 지루한 일상을 환기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며, 그런 일들을 통해 스스로의 새로운 모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아 공감하며 반겼다.

청소년 로맨스 소설이자, 자아를 확인해가는 청소년 소설이라고 해도 괜찮을 것 같다. 친한 친구로 이어지는 과정이 어떤 건지 보여주는 소설이기도 하다. 감성 소설을 읽어보고 싶은 이들에게 권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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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를 빌려줍니다 내인생의책 그림책 133
팡쑤쩐 지음, 하오뤄원 그림, 이수안 옮김 / 내인생의책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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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서평은 해당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것입니다. 평소와 다름없이 읽고 제 생각을 기록한 글입니다.




고릴라는 종종 혼자서 생각했어요.

'아! 심심해. 너무 외로워. 난 친구가 하나도 없어.'

어느 날, 고릴라는 큰 나무에서 나뭇잎 하나를 따서,

이렇게 적었어요.

"친구를 빌려줍니다. 한 시간에 천 원."

그다음부터 고릴라는 매번 '보'만 냈고, 미미는 매번 '가위'만 냈어요.

그래서 고릴라는 계속 발을 밟혔죠.

하지만, 친구가 생겼다는 게 너무 기뻐서,

마음속으로는 모래가 너무 빨리 떨어지지 않기를 바랐어요.

고릴라는 얌전히 옆에 엎드려 지켜봤어요.

아무 말 하지 않아도,

고릴라는 지금이 정말 행복하다고 느꼈어요!

과자 몇 조각을 챙겨 큰 나무 아래에서 미미를 기다렸어요.

오랫동안, 정말 오래 기다렸지만 미미는 오지 않았어요.

팡쑤쩐 지음, 하오뤄원 그림, <친구를 빌려줍니다> 中

+) 이 그림책에는 친구 사귀는 방법을 모르는 고릴라가 등장한다. 고릴라는 친구가 하나도 없어서 늘 외로워하다가, 돈을 받고 자기 자신을 친구로 빌려주는 방법을 생각해낸다. 그렇게 하면 친구를 사귈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고릴라가 제시한 가격의 1/10만큼의 돈밖에 없는 '미미'는 고릴라에게 적은 돈으로도 괜찮은지 먼저 묻는다. 그리고 그들은 모래시계의 모래가 쏟아지는 시간만큼 함께 놀기 시작했다.

가위바위보 놀이도 하고,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놀이도 하고, 이야기하며 수다 떠는 놀이도 한다. 고릴라는 미미와 함께하는 순간마다 정말 즐겁고 행복해한다.

하지만 고릴라의 마음과 달리 미미와 갑자기 헤어져 큰 상처를 받는다. 그래서 고릴라는 이제 새로운 친구를 사귀기 위해 무료로 친구를 빌려주는 방법을 떠올린다.

이 책 속 고릴라를 지켜보며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애초부터 친구를 사귀는 일에 돈이 필요한 게 아닌데, 고릴라는 무언가를 주고받아야 친구가 될 수 있다고 착각한다.

물론 친구 사이에는 선물을 주고받을 수 있다. 하지만 그건 친구에게 선물함으로써 스스로가 더 행복해지는 일이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주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사이, 그게 친구인데 고릴라가 그걸 깨달을 때쯤 미미와 헤어지게 된다.

사실 고릴라가 모르는 점이 또 있다. 고릴라와 친구가 되고 싶어서 망설이며 지켜보는 친구들이 주변에 너무 많다는 점이다.

이 그림책 속 그림들을 가만히 살펴보면 혼자 있는 고릴라를 숨어서 보는 생쥐, 고릴라와 미미가 신나게 노는 걸 몰래 보는 사자와 얼룩말, 타조, 코뿔소 등을 발견할 수 있다.

이들 또한 친구가 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그 방법을 잘 모르는 순수한 부끄러움쟁이들이다. 미미가 떠나고 고릴라가 혼자되었을 때에도 이들은 고릴라 뒤에서 항상 함께 있다.

친구 사귀는 것이 어렵지만 조금만 주변을 둘러보며 용기를 낸다면 좋은 친구들을 만날 수 있다는 걸 가르쳐 주는 책이었다. 그리고 친구의 소중함과 친구와 함께 하는 시간의 즐거움도 느낄 수 있었다.

글과 더불어 정겨운 그림으로도 의미 있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책이기에, 여러 번 읽어도 새로운 재미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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