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덤까지 비밀이야
안세화 지음 / 한끼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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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서평은 해당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것입니다. 평소와 다름없이 읽고 제 생각을 기록한 글입니다. ​​




머잖아 세 사람은 결의했다. 그 자리에서 각자 핸드폰을 꺼내고는 '말은 은이고, 침묵은 금이다'라는 오래된 서양 격언을 SNS에 올렸다.

그리고 다음 날, 백산의 SNS에 뜬 새 게시물을 보았다.

'세 사람이 아는 비밀은 더 이상 비밀이 아니다.'

아라비아 속담과 함께 간밤에 세 사람이 회동했던 고깃집 외관 사진이 올라와 있었다.

p.41

'그날 내가 쓸데없는 소리만 안 했어도...'

주원은 후회했다. 백산이 경솔하게 비밀을 발설하기 전, 자신이 먼저 비밀을 공유한 일을 뼈아프게 여겼다. 죽을 때까지 죽은 게 아니었는데. 함부로 입을 놀린 시점부터 지금까지, 주원과 친구들의 죽음은 멀리 밀려난 것이 아니었다. 약간 유예되었던 것에 불과했다.

p.77

"그렇다면 왜 고민하는 거야? 너희 문제는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잖아."

"간단하다고?"

"정말로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다면."

효진이 묘하게 화색을 띠며 말했다.

"죽기 전에 먼저 죽여버려."

"뭐?"

"셋보단 하나가 죽는 게 낫잖아. 연쇄살인마의 목숨 따위 아까워할 필요도 없고."

pp.80~81

"멍청한 놈, 정신을 바짝 차렸어야지."

예전에 자신이 했던 말을 상기시키며 말했다.

"인간은 희한하다고 했잖아. 좋은 놈 나쁜 놈이 하늘과 땅 차이라고."

그러고는 당시엔 하지 않은 말을 덧붙였다.

"그놈들이 따로 있는 줄 알았어? 정신을 어디에다 두고 사느냐에 따라 이런 놈도 됐다, 저런 놈도 됐다 하는 거야. 그 나이 먹도록 그것도 몰랐냐."

p.129

"그냥 미친놈이 아니라 가진 게 많은 미친놈이잖아. 자기가 누리고 있는 모든 걸 다 걸고 그 짓을 또 할 정도로 멍청할 것 같진 않아."

확실히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주원도 예상도 친구들의 추측과 다르지 않았다.

p.141

"오해가 있으시네요. 그 문자는 백산 씨를 위한 게 아니었습니다."

"그럼요?"

"서주원 씨를 위한 거였죠."

"네?"

"정확히는 서주원 씨와 친구분들이요."

"눈에 무언가가 씐 상태가 어떤 건지 잘 알거든요."

p.176

안세화, <무덤까지 비밀이야> 中

+) 이 책은 등산 중에 조난 당한 세 명의 친구와 낯선 한 청년이, 죽을 것 같은 공포 앞에서 우연히 각자의 비밀을 공유하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바람피운 건 절대 아니지만 아내가 볼까 봐 두려워 첫사랑과 찍은 셀카 사진을 버리는 서주원, 평소 술 마시는 사람을 혐오하는 듯 행동했는데 사실 소주를 좋아한다는 신태일, 회사 일로 심한 스트레스를 받아 가끔 도박을 즐겼다는 고상혁,

그리고 딱 세 번 사람을 죽인 적이 있다고, 그냥 죽이고 싶어서 죽였다고 중얼거리던 젊은 대학생 백산의 고백으로 네 사람의 비밀은 공유된다.

세 친구는 백산의 말이 사실이라면 미친 연쇄 살인마와 한 공간에 있다는 게 부담스러웠으나, 그는 이미 조난으로 지친 상태였다.

비는 계속 쏟아지고 산속 깊은 동굴에서 삶에 대한 희망을 버린 네 남자는 곧 죽을 거라 생각했으나, 뜻밖에 구조되어 각자의 일상을 살아간다.

하지만 문제는 백산의 엄청난 비밀을 공유한 상태라 이들은 평온한 일상을 살 수가 없다. 게다가 세 친구 앞에 수시로 등장하는 백산 때문에 피가 마른다. 그러나 살인에 대한 증거는 없고 셋은 불안감만 증폭된다.

부유한 대학생 백산이 연쇄 살인마라는 걸 아무도 믿어주지 않고 세 사람의 근처를 맴도는 백산은 계속해서 우연을 가장한 만남으로 이들을 압박한다.

참다못한 세 친구는 백산이 연쇄 살인마라는 걸 증명하기 위해 여러 방법을 동원하나 오히려 이들의 삶만 피폐해지게 된다.

백산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위로해 주는 첫사랑과 다시 만난 주원, 음주 상태로 아이들의 수영을 지도해 온 태일, 상습적인 도박으로 파산 상태인 상혁.

물론 이들의 숨은 진실은 연쇄 살인마 백산 앞에서 비교적 작은 일이 된다. 그리고 이들은 합심하여 백산이 자기들을 죽이기 전에 방어하기 위한 전략을 짠다.

나쁜 사람의 기준은 무엇인가, 악함의 정도를 비교할 수 있을까, 나쁜 짓은 어디까지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을까, 정의와 자기 보호 중 자기 보호가 우선인 게 나쁜 걸까 등 이 소설을 읽다 보면 많은 고민을 하게 된다.

스릴러 추리 소설 같은 이 작품은 사람이 어디까지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는가를 보여준다. 또 자기 보호 혹은 자기방어가 맹목적인 틀을 설정할 수 있다는 것도 알려준다.

더불어 자신을 지키기 위해 타인을 제거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도 생각할 거리를 제공한다. 개인적으로는 인물들의 생생한 심리에 동화되어 같이 고민하며 걱정한 작품이었다.

작은 책자 한 권임에도 쫓고 쫓기는 서사적 전개로 한 편의 영화를 보듯 쉼 없이 흥미롭게 읽었다. 역시 비밀은 혼자만 간직하는 게 낫다는 생각을 하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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