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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이천년대
박민규 외 지음, 민족문학연구소 엮음 / 생각의나무 / 2007년 2월
평점 :
품절
인간에겐 누구나 자신만의 산수가 있다. 그리고 언젠가는 그것을 발견하게 마련이다. 물론 세상엔 수학 정도가 필요한 인생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삶은 산수에서 끝장이다. 즉 높은 가지의 잎을 따먹듯 - 균등하고 소소한 돈을 가까스로 더하고 빼다보면, 어느새 삶은 저물기 마련이다. 디 엔드다.
- 박민규,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
나흘 전에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어디로 돌아가셨는지는 알 길이 없지만, 지금 이곳에 없다는 생각을 해보면 여전히 실감이 나질 않았다. 배신을 당한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함께 전속력으로 100미터 달리기를 하다가 뒤를 보니 아무도 없다. 그런 느낌이었다. 사라져버린 것이다. 다시 출발지점으로 돌아가서 달리기를 시작하기엔 너무 지쳤고 너무 늙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함께 달릴만한 사람도 없다. 어머니는 이제 레이스를 마친 것이다.
- 김중혁, [에스키모, 여기가 끝이야]
선배는 등산길도 항상 가던 길로만 갔다. 새로운 길을 겁내는 것 같았다. 정작 당사자는 산길 다 뻔하지 뭐......... 하며 대범한 듯했지만, 저쪽으로 한번 가볼까......... 하고 낯선 길 앞에서 몇 초를 멍하니 응시하다가 에이, 하고 발걸음을 돌리곤 했다. 언제 한번 가보지, 산이 어디 움직이나.......... 머쓱한 그는 이 말도 꼭 덧붙였다. 자네 프로스트 알지? 왜 '가지 않은 길'이라는 시 있잖아.......... 두 갈래 길 중 선택하지 않은 길, 내가 안 간 길에 무엇이 있을까........... 참 그게 인생의 멋 아니겠어?라는 얘길, 늘 덧붙였다. 선배는 정말 한결같은 사람이었다.
- 김윤영, [얼굴 없는 사나이]
아무런 특별한 이유도 없이, 과거의 어느 사소한 순간이 생각날 때가 있다. 과거는 주로 미래의 한순간과 강하게 연결되는데, 예를 들자면 죽음이 떠오르면서 동시에 과거의 어느 한 장면이 자연스럽게, 그러나 아주 당연히 그래야만 한다고 주장하듯이 그 모습을 나타내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모습을 드러낸 과거의 사건은 이미 망각되어버린 것이거나 혹은 너무 사소하고 무의미해서 미래의 어떤 순간과는 전혀 아무런 연결고리를 갖지 않은 채 독립적으로 존재하듯이 보인다. 그 과거의 사건들은 인생의 비밀을 미리 알려주는 암시였을까. 그것이 암시였기 때문에 어느 날 우리의 의식을 비집고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의식이 무심코 갈망한 우연이기 때문에 미래의 어느 날 그것은 암시가 되는 것이리라.
- 배수아, [회색 時]
민족문학연구소 엮음, <소설 이천년대> 中
+) 2000년대 소설들을 읽어보고 싶었는데, 고맙게도 13편의 작품을 골고루 정리해준 소설집을 접했다. 여러 작가들의 작품을 한꺼번에 읽을 수 있기에 그들 개성을 맛볼 수 있다는 장점과 비교해 볼 수 있는 특권이 주어졌다. 물론 하나의 작품으로 작가를 판단하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이나 적어도 해당 작가의 작품을 비교하여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은 좋은 점이다. 이 책 외에도 팔십년대, 구십년대 각각의 대표 소설들을 묶어놓은 소설집이 있는데 모두 읽어봐야겠다.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생각하는 것이 이렇게 다를 수 있을까. 안타까운 점은 표현하는 방식의 차이는 분명히 있으나 소설의 스타일이 비슷하다는 것이다. 애매하게 '스타일'이란 용어를 사용하였으나 소설의 색깔을 선택하고 생각의 전개를 드러내는 성의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물론 시대적 흐름이라는 것이 있겠지만 소설을 나의 것에서 출발하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소설이나 시가 자꾸 어려워지고 있다. 어려워진다는 것은 난해하다는 말인데 독자와의 소통이 불가능한 단계에 도달하기도 한다는 점이다. 독자와의 소통이 목적이 될 필요는 없겠으나 자기 안의 것에 그친 문학이 과연 의미가 있을까. 지나치게 대중적일 필요도 없겠으나 고립된 글쓰기도 필요가 없다. 어려운 문제이나 한번쯤 심각하게 생각해 볼 문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