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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이 고인다
김애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9월
평점 :
사람과 삶을 바라보는 방식에는 작가만의 일정한 법도가 있다. 이를테면 작가 김애란은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듯한 솔직한 어조로 독자와의 거리를 밀접하게 유지한다. 그것이 마치 작가의 체험인 것 같은 착각에 이르게 한다. 타인의 심리를 꿰뚫고 자신의 정확한 눈에 탄복하는 사람도 있는 반면에, 다른 사람이 아닌 자신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고 솔직한 자신에게 기특해 하는 사람도 있다. 이를테면 작가 김애란은 마치 자신의 과거나 현재를 전하고 있는 친구처럼 독자의 옆자리에서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녀의 소설에서 대부분의 화자는 자신에게 솔직하다. (“원래 말이란 주인이 없고, 오염되고, 공유되기 마련인 것이지만 후배의 입에서 자신이 즐겨 쓰는 어휘나 농담이 튀어나올 때마다 뭔가 도둑맞은 기분을 느꼈다.”「침이 고인다」부분) 자기 자신을 알아가면서 새로운 것을 발견하기도 하고, 잊었거나 잃었던 것들을 찾기도 한다. (“그때 나는 힘을 주지 않고도 뭔가를 움켜쥘 수 있다는 게, 또 세상에 그런 것이 존재한다는 게 믿겨지지 않았다.”「도도한 생활」부분) 또한 사람 사는 것에 일정한 법칙은 있을 수 없겠지만 어느 정도 삶의 방식, 그러니까 중요한 감을 깨닫게 된다. ( “괜찮겠냐는 거, 결국 배려를 가장하며 책임을 미루려고 한 말이 아니었을까.”「침이 고인다」부분)
물론 그것은 절대 혼자(개인)만의 것이 아니다. 어머니, 언니, 아버지 등의 가족이나 사랑하는 혹은 사랑했던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서 형성되는 것이다. 작가의 첫 소설집을 읽었을 때 나는 결국 남는 것은 ‘개인과 개인의 문제’라고 정리했다. 그녀의 소설에서 가족은 하나의 표면적인 액자에 불과하다. 자아와 타자 사이의 거리로 좁혀지는 관심의 척도가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을까.
그리고 두 번째 소설집(『침이 고인다』)에서 그런 생각에 확신을 얻었다. 그녀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자신의 내면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의 내면을 비춰내고 있으며, 나와 너 사이의 거리를 비추고 있다. 액자에는 어떤 그림도 넣을 수가 있으며, 액자에 끼워 넣은 그림에 따라 액자의 분위기도 바꿀 수 있다. 내면의 문제가 인물들의 외적 상황에도 관여하고, 외부 요인이 인물의 내면 심리에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사내는 모텔과 여관 창문을 올려다보며 ‘부러움’을 느꼈다. 그 많은 방 중 진짜 자기 방은 없다는 불안 때문이었다.”「성탄특선」부분)
나와 나 이외의 사람을 구분짓는 태도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물리적인 혹은 화학적인 결합으로 설명하기에는 부족한 것이 인간관계이다. 특히 정으로 맺어지는 끈적한 무언가가 사람 사이에 있다. (“나는 어머니가 해주는 음식과 함께 그 재료에 난 칼자국도 함께 삼켰다. 어두운 내 몸속에는 실로 무수한 칼자국이 새겨져 있다. 그것은 혈관을 타고 다니며 나를 건드린다. 내게 어미가 아픈 것은 그 때문이다. 기관들이 다 아는 것이다. 나는 ‘가슴이 아프다’는 말을 물리적으로 이해한다.” 「칼자국」부분)
작가는 인간 본연의 애정을 혈연 관계로 받아들이기 쉽게 묘사하고 있지만 사실 그것보다 더 멀리, 더 깊이 ‘사람’과 ‘사람’들, ‘사이’에 마음을 둔다. (“하루에도 수천만 명이 수천만 개의 문자 메시지를 주고 받는데. 어째서 이 사람의 ‘미안하다’와 저 사람의 ‘괜찮다’는 부딪치지 않고 온전히 상대방의 단말기로 미끄러져갈 수 있는 걸까.”「기도」부분)
즉, 김애란은 ‘사이’의 매력을 부각시킬 줄 아는 소설가이다. 깊게는 사람과 사람 사이, 사람과 사회 사이, 글자와 글자 사이, 넓게는 풍자와 해학 사이, 유머와 위트 사이, 말과 말 사이에서 적절한 줄타기를 한다. 그것은 그녀의 소설을 읽는 독자들에게 유쾌한 웃음과 탄성을 자아내게 하는 치밀한 구성에서 드러난다. 평범한 일상의 한 단면에서 만나는 인물이지만 보편적이면서도 특별하다. 그 역설적인 마력에 우리가 빠져드는게 아닐까.
김애란, <침이 고인다> 中
+) 얼마전 내가 감상문의 형식으로 적었던 글. 그 글에서 옮겨와 앞뒤를 살짝 자르고 편집하여 올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