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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퐁
박민규 지음 / 창비 / 2006년 9월
평점 :
더 나빠질 게 없다고 느끼는 순간, 불안이란 감정 자체가 사라진 것이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데, 아무렇지도 않은 삶이 그래서 시작되었다.
p.17
자신의 라켓을 가진다는 건 말이다. 말하자면 비로소 자신의 의견을 가진 것이란 얘기야.-나 같은 유형의 인간에게, 확실히 그것은 자극적인 말이었다.
p.46
적응이 안돼요 / 다들 결국엔 자기 할 말만 하는 거잖아요 / 얘길 들어보면 누구도 틀렸다고는 할 수 없어요 / 왜 그럴까요, 왜 아무도 틀리지 않았는데 틀린 곳으로 가는 걸까요 / 내가 이렇게 사는 건 누구의 책임일까요 / 무엇보다 / 그걸 용서할 수 없어요 / 60억이나 되는 인간들이 / 자신이 왜 사는지 아무도 모르는 채 / 살아가는 거잖아요 / 그걸 용서할 수가 없어요
p.117
인간의 해악은 9볼트 정도의 전류와 같은 거야. 그것이 모여 누군가를 죽이기도,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는 거지. 그래서 다들 다수인 척하는 거야. 이탈하려 하지 않고, 평형으로, 병렬로 늘어서는 거지. 그건 길게, 오래 생존하기 위한 인간의 본능이야.
p.180
박민규, <핑퐁> 中
+) 지난번에 신춘문예 심사평을 읽다가 좀 놀란적이 있었다. 어느 신문이었는지 잊었지만 심사위원의 말을 듣고 있자니, 신춘문예에 응모하는 소설의 대부분이 '박민규'적 글쓰기를 추구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때 생각했다. 과연 소설가 박민규다운 스타일이 무엇일까. 박민규의 단편을 몇 번 읽고 그의 소설이 엉뚱하게 진행되는 것에 매력을 느꼈으나, 갑자기 절벽 아래로 뚝 떨어지는 것처럼 끝나는 소설에 좀 난감했다. 장편소설을 읽으면 어떨까 싶어 이 책을 집어들었다.
<핑퐁>에서 그는 왕따 학생들을 소재로 그를 괴롭히는 학생과 괴롭힘을 당하는 학생의 이야기를 그려냈다. 거기에 탁구를 끌어들여 따를 당하는 이들의 대화를 통해 인간의 문제를 제시한다. 작가의 말대로 '결국 지구의 인간은 두 종류다. / 끝없이 갇혀 있는 인간과 잠시 머물러 있는 인간'이 그들이다. '갇혀 있는 것도 / 머물러 있는 것도 / 결국은 당신의 선택이다.' 그가 다루고 있는 인간의 문제는 학생들의 것이 아니라 더 크게 인류 전체로 확대된다.
급히 읽으면 스토리의 전개에 지루함을 느끼게 되고, 천천히 곱씹어 읽어야 제맛을 살릴 수 있는 작품이다. 환상과 현실의 경계에서 그가 내린 선택은 늘 극단이다. 기발하다고 말하기에도 부족할 정도로 파격적인 환상선을 타는 것이다. 문제는 박민규의 소설에 종종 등장하는 그 환상적인 소재 혹은 환상적인 구조를 이해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앞서 언급한대로 그는 일직선의 어조를 유지하다가 갑자기 뚝 떨어지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현실 이외의 이야기를 끌어들인다. 독자에게 무작정 들이대는 듯한 그것을 이해하는 것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가 제시한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나 어째서 그는 이렇게 불친절한 구조를 전개하고 있을까. <핑퐁>에서 제시한 인류와 인간의 문제를, 즉 공동체와 개인, 다수와 개인의 문제를 생각해보자. 의미있는 문제였다. 결국 문제 없는 사람들의 집단에서 늘 문제가 발생하니까 말이다.
그러나 그것을 말하는데 박민규의 필치는 돌고 돌아서 독자에게로 간다. 받아들이는 사람 또한 선택의 문제일까. 신춘문예 응모자들이 자신이 존경하거나 좋아하는 작가의 문체를 따르는 것에 대해서는 특별히 할 말이 없다. 다만, 그 작가의 문체를 배우려한다면 그대로 모사하기 보다 한 단계 발전적인 생각을 갖고 있길 바란다. 박민규의 소설은 흥미로우나 박민규의 문체를 이해하려면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