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세계 행복한책읽기 SF 총서 1
아서 코난 도일 지음, 김상훈 옮김 / 행복한책읽기 / 2003년 4월
평점 :
품절


내 또래(30전후)의 사람이라면 대개의 경우 이 책을 어릴 때 당시 크게 유행했던 아동용 과학잡지 비슷한 책에서 읽은 적이 있을 것이다. 나 역시 읽은 기억이 있다. 이번에 행책SF총서의 첫주자가 코난 도일의 <잃어버린 세계>로 결정된 것은, 대표적 고전SF의 최초 완역이라는 의미 외에 공룡에 열광했던 코흘리개 시절의 추억을 되살려 준다는 점에서 매우 즐거운 일이다.

<잃어버린 세계>는 홈즈의 건조한 문체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도일이 이토록 유머와 재치가 넘치는 자유분방한 문체를 구사한다는 사실이 매우 놀랍다. 작품 전반에 흐르는 조금은 고집스러우나 건강한 영국식 유머에 시종일관 미소를 머금으며 재미있게 읽었다. 물론 홈즈와 완전히 다른 작풍은 아니다. 논리적이다 못해 언어의 수학자라는 평가를 받는 도일 특유의 치밀한 구성과 추리작가답게 반전에는 항상 단서를 제시하는 태도는 여전하다. 그리고 홈즈를 읽을 때 그다지 느끼지 못했던 묘사의 현장감에 있어 최고라는 도일에 대한 평가를 확실히 알게 되었다. 태곳적 생태를 간직한 메이플 화이트 분지의 갖가지 기화요초에 대한 묘사에서는 그 신비한 향기가 코를 자극하는 듯하고, 에드워드 멀론이 쥐라기의 거대하고 난폭한 포식자에게 쫓기는 장면에서는 그 괴상한 울부짖음과 그로테스크한 모습이 귀에 들리고 눈에 보이는 듯하다.

어쩔 수 없는 셜로키언(진짜 매니아 분들은 나의 이 건방진 자칭을 부디 용서하시라!)인 나는 <잃어버린 세계>에서 홈즈와 유사한 캐릭터를 찾아보았는데, 존 록스턴이라는 등장인물에게서 홈즈와 많은 유사점을 찾을 수 있었다. 우선 외모적으로는 큰 키에 마른 체구 그리고 매부리코가 일치한다. 그리고 과묵하고 냉정하며 듬직한 만능 스포츠맨의 이미지 역시 유사하며, 홈즈가 탐정의 일인자라면 록스턴은 오지탐험의 독보적 존재이다. 양자의 지나친 정열 역시 유사한 일면이 있는데, 홈즈가 범죄해결을 즐기며 범죄 없는 런던을 불평한다면 록스턴은 모험을 사랑하며 위험 없는 탐험을 못마땅해 한다. 홈즈가 귀족으로 태어나 체면상 탐정노릇하기 어렵고 어쩔 수없이 사교활동을 해야 한다면 아마도 록스턴 같은 모습이리라.

홈즈와 록스턴의 보다 근본적이고 중요한 동질성은 양 캐릭터가 모두 월터 스콧을 동경했던 도일이 진정한 남자의 이상적 모습이라고 생각했던 중세 기사의 변형이라는 것이다. 월터 스콧의 낭만적 기사이야기 속의 용감한 기사가 잘 벼려진 창칼로 사악한 영주를 무찌르는 것처럼 홈즈는 돋보기를 들고 살인자ꋯ절도범ꋯ위조범ꋯ납치범ꋯ협박자ꋯ스파이 등 교활한 범죄자들과 싸우며, 록스턴은 라이플로 무장하고 식인종ꋯ맹수ꋯ독초ꋯ탈수 등 오지의 온갖 위험에 맞선다. <잃어버린 세계>의 해설에는 도일이 챌린저 교수로 분장한 사진이 실려 있으나 실상 작가의 감정이입이 더 많이 된 캐릭터는 담대한 탐험가 존 록스턴 경이리라.

작중 화자에 있어서는 홈즈의 와트슨과 <잃어버린 세계>의 멀론은 다소 다른 모습이다. 와트슨이 근엄하고 묵직하다면 멀론은 유쾌하고 발랄한 인상이다. 그러나 양자는 상식 있고 선량하고 공정한 기록자라는 공통점을 갖는다. 이 안정된 인물의 시선을 통해 기인들의 괴상한 행동들로 어지러워지기 쉬운 상황 속에서도 안정을 유지하는 도일 특유의 일인칭 관찰자 시점은 가히 장르문학 전체의 모범이라 하겠다.

SF에 무지한 내가 서평이랍시고 쓰긴 썼는데, 내가 봐도 변죽만 울리는 요상한 글이 되어버렸다. 결론을 내리면 코난 도일의<잃어버린 세계>는 미지에의 모험을 꿈꾸던 소년 시절의 낭만을 자극하는 고전 명작이다. 도일의 팬이나 어린시절의 향수를 느끼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아주 좋은 선물이 될 것이며 설혹 그렇지 않은 사람일지라도 재미있고 건강한 읽을거리를 찾는 이라면 누구에게나 권하고 싶다. ‘읽는 순간 빠져들고 마지막 장을 넘기기 까지 책장에서 손을 놓지 못한다.’는 상투적 선전문구에 해당하는 책이 정말로 존재한다면, <잃어버린 세계>는 거기에 상당히 근접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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