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어린이는 9살이다.

어린이라고는...딱 하나다.

남들은 그런다.  꽤나 열심히 키우겠군...하긴, 요즘 엄마들의 교육열이 얼마나 대단한가.

그런데 나름대로의 교육관과 육아관이 있는 나는 아이를 조기교육에 노출시키고 싶지 않았다.

아이는 6살이던 9월에 처음으로 어린이집을 3개월 다녔고,  7살에 유치원에 들어갔다. 

그리고 한글도 떼지 못한 채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아이는 책을 좋아했다.  제대로 이해했고 말도 잘했다,    그래도 글자는 몰랐다.  남들은 저절로 깨쳤다는데

아이는 그렇지 못했다.  그래도 걱정하지 않았다. 

엄마인 나도 이름 석자만 알고 학교에 들어갔지만, 공부가 어렵다거나 학교 진도를  못 따라가지는 안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책을 좋아하지만 우리집에 전집은 단 한 질도 없다.

그렇다.   난 인생 피곤하게 살면서 아이에게 한 권, 한 권 다 사다주었다.

 

작년에 아이는 학교 생활을 두려움 반, 기대 반으로 시작했다.

한글도 다 못 뗀 아이는 3월부터 알림장을 써와야 했고, 미리 받아쓰기 문제를 준다고 해도 곧바로 받아쓰기

시험을 봐야 했다.  1학년은 그림일기만 쓸 줄 알았는데  한 달 정도만 쓰고는 곧바로 무제 공책 한 페이지 가

득 생활일기를  써야 했다.  아이는 자주 감기에 걸리고 열이 났다.

남들 쉽게 받아오는 받아쓰기 100점도 아이에겐 쉬운 일이 아니었고, 수학의 계산 문제도 속도가 너무 느렸

다.  한글을 잘 모르니 글씨는 더 엉망이었다.

자기는 공부를 못 하는 사람이라고 아이가 내게 말했다.

 

제도 교육은 이 나라의 과잉된 교육열에 맞춰 나가고 있었다.  내가 아이에게 선행학습과 조기교육을 시키지

않은 것은 제 나이에 맞게 살게 해 주고 싶어서였다.  정상적인 것, 중요한 것은 지켜져야 하는 것 아닐까.

사람들마다 중요하게 생각하는게 다를 것이다.

나는 인간으로서, 행복하게 살아가는 데에 가장 중요한 것은 자존감이라고 생각한다.

아이의 자존감은 엄마의 고집스럽고 시대에 맞지 않은 육아관으로 위기에 처했다.

 

오늘 우리집 어린이는 2학년 1학기 총괄 평가를 본다.  과목은 국어와 수학이다.

지난 중간고사에서는 90점대., 80점대가 나왔다.(정확한 점수를 들었는데 까먹었다ㅠㅠ)

지금까지 그 흔한 학습지 한 번 한 적 없는 아이의 점수로 훌륭하다고 생각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작년에 윗집 아이는 300점 만점을 받았다.  대부분이 한 문제, 두 문제 정도만 틀리나 보다.

(여기 일산이다.  우리 애 학교가 좀더 극성인가?)

아이 중심으로 생각해야 하는데, 나는 마냥 잘했다고 해 줄 수가 없었다.

두 자리 계산 문제를 헤매고 있는 아이를 보면 얘가 바보가 아닌가 싶어질 때도 있었다.

자기 나이에 맞게 살게 해주겠다고 해 놓고 내가 아이의 편이 되어주지 못한다.

자존감은 일단 만들어지기 전까지는 스스로 높일 수 있는게 아니다.   상황에서 만들어진다.

그래서 지난주엔 아이에게 시험 공부를 시켰다.  문제집도 한 권 사주었고, 선생님이 내주신 학습지도

다 풀게 하고 틀린 것은 설명해 주었다.

딱 그정도만 했다.  

그렇게만 해도 우리집 어린이 평생에 이렇게 많은 공부는 해 본 적이 없다.

아이는 자기 딴에는 공부를 많이 했다고 생각했는지 토요일엔 예배에 함께 가서 밤늦게까지 놀았고,

주일엔  교회에서 하루종일 보냈다,

월요일에 아이는 선생님이 내준 학습지만 다 풀고는 소파에 앉아서 디립다 책만 10권 보았다. 

그리고 어젠 밀린 일기를 세 개 쓰고 잤다.

 

지금도 우리집 어린이는 영어 학원도 안 다니고 학습지도 안 한다.

우리집 어린이가 다니는 학원이라고는 태권도 학원 하나뿐이다.

학교에서 하는 특기적성은 자기가 하고 싶다고 해서 두 개나 한다.

과학교실과 칼라점토...

특기 적성이 있는 목요일과 금요일은 3시 20분이 되어야 집에 돌아온다.

그리고 5시에 태권도 학원을 간다.

나는 그것만 보내면서도 안쓰럽다. 

월드컵을 보면서 한참 공 차기에 열이 올랐는데,  공차기할 친구들 엄마가 공부해야 하니깐 시험 전까지는

집에서 놀라고 했단다.

오늘은 공차기나 실컷 하라고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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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포터7 2006-07-05 1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달콤한책님? 저희집 딸과 동갑이군요..울딸의 사정은 제 페퍼에 전말을 다 폭로해 놓았구요...님의 아드님 전 참 맘에 듭니다.님의 생각까지도요..예전엔 정말 그러고도 잘해나갔는데 말이죠..요즘은 정말 너무해요..한반에 올백맞는애가 한두명은 되더군요..너무 이해가 느린 우리딸같은 아인 어이 살아가라고 너무 벌써부터 겁나할것 없다 생각합니다..글구요..90점 80점대는 잘하는거 아닙니까? 자신이 충분하다고 생각하면 그건 만족할만한 점숩니다..괜히 동질감에 함 떠들어 보았습니다.ㅎㅎㅎ울집아이들도 오늘 시험봅니다.근데 4학년인 아들녀석 축구공들고 공차면서 등교했습니다.ㅠㅠ&

달콤한책 2006-07-05 1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질감 팍팍 느끼면서 님의 서재로 달려갑니다.휘리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