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체와 저항의 서사 - 최인훈과 그의 문학
김인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4년 4월
평점 :
품절


안타깝다. 최인훈을 거듭나게 하는 새로운 해석의 지평과 웅숭깊은 문학사적 안목 대신, 이 책에는 최인훈을 향한 맹목적인 애정과 숭배만이 넘치고 또 넘친다. 저자는 최인훈의 작품들, 특히 <화두>에서 내용과 형식 양자에 걸친 실험성과 저항성을 탐색하고 이를 최인훈 문학만이 지니는 독자성으로 평가하고자 하지만,  아쉽게도 이러한 야심찬 시도는 저자의 주관적인 독서체험을 억지로 보편화시키려는 것 이상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렇지 않고서야 서문을 열 쪽 가량씩이나 써 가며 최인훈에 대한 열렬한 애정을 고백할 이유가 없을 것이고, <총독의 소리>를 테마로 하는 글에서 느닷없이 <화두>를 비판한 어느 비평가를 질타하는 데 대여섯 쪽이나 할애하는 생뚱맞은 행태를 벌일 리가 없다. 대상에 대해 객관화가 되지 않은 논의를 보는 것은 많이 괴롭다. 서글프게도 저자에게 최인훈은 거의 '물신'에 가깝다. 

프루스트, 조이스, 카프카부터 바르트, 아도르노, 데리다, 들뢰즈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쟁쟁한 이름들이 저자의 감동을 변호하기 위해 동원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문학세계 및 이론적 논의를  전개하는 방식은 지극히 단순하고 일반론적인 차원에 머물고 만다. 책 안에서 이들은 상당수 자신들의 원저작이 아닌 이차문헌에서 인용되고 있거나 제대로 된 인용표시 하나 없이 언급되는 경우가 많고, 직접 일차문헌에서 인용되더라도 해당 인용 부분의 전후맥락이 거세된 채 아포리즘인 양 짧게 실리고 말 뿐이다. '해체'와 '저항'을 다루는 방법이 구체성을 결여하고 있다 보니, 이를 바탕으로 개진하는 작품 해석 역시 더불어 앙상해질 수밖에 없다. 일반론의 장점은 '이현령비현령'을 가능하게 한다는 것 아니었나?

더욱 커다란 문제는 이러한 이론적 논의와 작품 분석이 결합하는 과정에서 매우 좋지 않은 사례가 나타난다는 점이다. 저자가 문학비평가임을 내세우고자 한다면 자신의 사유가 기본적으로 해당 작품에서 비롯되었음을 무엇보다 먼저, 그리고 궁극적으로 밝힐 수 있지 않으면 안 된다. (그걸 참 잘한 사람은 김현이다) 그러나 저자는 두어 편의 수록글을 제외하면 최인훈의 텍스트를 먼저 언급하면서 이론을 이끌어내는 대신, 장황하고 동어반복적인 이론적 바탕을 미리 제시하고 그리고 나서 그에 적합해 보이는 최인훈 문학세계의 일단을 이곳저곳 짜맞추어 간다. 그럴 거면 굳이 문학비평가라는 직함을 달 이유가 없다. 엄밀히 말하자면, '문학'비평가는 작품만으로 사유를 시작하고 끝낼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저자는 치밀한 이론적 논의를 펼치지도 못했으면서 텍스트를 매만지는 섬세한 손길까지 잃고 말았다.

그러다보니 '정말로' 읽을 만한 내용이 별로 없다. 내용/형식, 리얼리즘/모더니즘과 같은 전통적 이분법이 아무런 고민 없이 줄곧 사용되고 있어 논의의 도식화가 자주 나타난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해체와 탈중심성을 말하고 작품(work)의 관점이 아닌 텍스트(text)의 관점을 받아들이고자 하면서도 최인훈의 작품에 어떻게든 멋들어진 키워드를 부여하고 이로써 일관된 해석의 코드를 마련하려 안간힘을 쓰는 이중적 인식을 보여주기까지 한다. 결과적으로 <가면고>를 비교적 꼼꼼히 다룬 글을 제외하면 솔직히 권해주고 싶은 글이 없다. 냉정히 말해, 이 책에서 가장 빛나는 대목은 최인훈과의 대담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직접 최인훈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읽다 보면 그야말로 '우문현답'이란 것이 무엇인지 통렬하게 체험할 수 있으리라. 마지막으로, 충실하게 정리되어 맨 뒤에 수록된 '최인훈 관련문헌'이 저자의 성실성만큼은 어느 정도 보장해주고 있다. 그나마 별 두 개를 주는 것은 순전히 대담과 참고문헌 때문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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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 2005-04-07 1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지만, 이 리뷰는 별다섯을 주어아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