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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책은 전부가 현 남성 중심 사회의 미러링이다. 가모장제 사회에 여성들은 여러 요직에 분포하지만, 남성들은 조신하고 예쁘게 집에서 아내의 뒷바라지를 하며 아이를 돌보는 일을 맡는다. 내가 여성이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현실세계의 여성과 비슷한 취급을 받는 이갈리아의 맨움들에게 감정이입이 많이 되는 한편, 이갈리아에서 존중받는 여성성에 대해서는 복잡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1. 메이드맨의 무도회와 참나무숲

페트로니우스는 메이드맨의 무도회에 가서 그로 메이도터 (나는 이 이름이 마음에 들었다. 영어로는 Maydaughter일 것 같았다. 마치 영어 성 중에 ~son이나 ~man 으로 끝나는 이름처럼) 와 섹스를 한다. 삽입섹스는 아니지만, 나름대로 자세하게 묘사가 된다. 남성 중심 사회에서 섹스는 거의 항상 삽입섹스를 기준으로 한다. 강간의 기준도 마찬가지고. 그러나 이갈리아에서 섹스는 삽입섹스는 아닌 것 같다. 섹스장면은 이질적으로 느껴져서 약간 혼란이 오기도 했는데, 어쨌든 쉽게 말하면 현실 세계의 남성과 여성을 움과 맨움으로 바꾸어 묘사한 것 같은 느낌이다. 나는 이 장면을 읽으며 두 가지를 생각했는데, 첫 번째는 페니스의 삽입과 섹스의 완성은 분리해서 생각해야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점이었고, 두 번째는 강간에 대한 점이었다. 특히, 우리 사회는 강간의 가장 나쁜 점 중 하나로 원치않는 임신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을 꼽는다. 물론 나쁜점이 맞는데, 강간의 원인이 되는 욕구가 성욕이라기 보다는 정복욕이나 과시욕, 권력욕과 가깝다는 점을 생각했을 때, 실제로는 심리적, 육체적 타격과 사회적인 낙인이 가장 나쁜점이라고 생각한다. 페트로니우스가 참나무숲에서 강간당하는 장면을 보면서 이런 점들을 더 확실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2. 탄생궁전

나는 솔직히 말하면 출산에 대해서 스스로가 긍정적인 인식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린 시절, 엄마가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 동생을 임신하셨을 때를 기억해봤을때, 엄마의 배가 점점 불러오면서 나는 점점 두려웠다. 엄마의 그 임신한 배가 나에게 무슨 해를 끼치는 것도 아니었고, 임신 중이었던 엄마는 여전히 나에게 좋은 엄마였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점점 커지는 배가 무서웠다. 성장하면서도 "임신" 혹은 "출산" 과 관련하여 내가 접하는 단어들은 대부분 부정적인 카테고리에 들어갔다. <"임신"으로 퇴직을 강요당함>, <"출산" 하다가 사망>, <"출산" 휴가 후 퇴직을 강요당함>, <여성들은 "임신" 하면 회사를 그만두니까 애초에 뽑지 않는게 좋음>, <"임신"과 "출산"은 몸매를 망참>, <"임신"과 "출산"으로 경력 단절> <"출산"의 고통> ... 헤아려보면 끝도 없다. 그에 반해 "임신"과 "출산" 관련하여 내가 접할 수 있는 "긍정적"인 단어들은 그것들을 지나치게 신성시하여 인위적으로 느껴지는 환상과 같은 것들이었다. 이를테면 <"임신"의 기쁨> ("임신" 하면 몸매가 망가지고 피로도 밀려오고 힘들다면서), <"출산"의 기쁨> ("출산" 하면 죽을 것처럼 아프다던데.) 등. 거기다가 모성애를 당연시하는 표현까지.

어쨌든 내가 사회적으로 배운 임신과 출산은 회사에서 잘릴 수도 있고 (=경제력과 경력을 잃고), 건강을 잃을 수도 있고, 몸매로 상징되는 여성성을 잃는 과정이고, 굉장히 아프고 힘든 과정이라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이갈리아 탄생궁전에 관한 이야기를 읽자 이 모든 것은 (의학적으로 맞는 부분도 있지만) 내가 사회적으로 학습한 것들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갈리아에서 움의 출산은 여러 모로 존중받고, 현실세계와는 달리 <진짜로> 대단한 것으로 간주된다. 나는 탄생궁전 부분은 읽으면서 이런 분위기였다면 나는 임신과 출산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을 것 같다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나 스스로의 임신과 출산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네가 낳았으니까 네가 키워. 엄마랑 애착이 제일 중요해"라는 숨막히는 이야기보다, 낳은 것은 움이니 키우는 것은 맨움이 해야한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물론 움과 맨움의 불균형한 관계는 나도 싫지만) 숨통을 틔웠다든가 하는 느낌도 있었다.

3. 복장

본문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맨움이 바지를 입을 수 없는 이유는 바지에는 페니스와 음낭을 위한 충분한 공간이 없기 때문이라고 늘 들어왔지만."

우리사회는 이상하다. 남성의 생식기는 통풍이 잘 되어야한다고 주장하면서도 남성이 치마를 입었던 역사는 거의 없다. 도포를 입더라도 밑에는 바지를 입었다. 물론 여성의 생식기라고 통풍이 안되는 것이 좋은 일은 아니지만, 별 이유도 없이 치마만을 입을 것을 강요받았다. 전통적인 서구적 사회에서 남성이 살갗을 드러내는 것은 미성숙한 것으로 치부되는데 (예를 들어 어린아이들의 반바지라든가) 여성은 살갗을 드러낼 것을 강요받는다 (전통적으로 여성의 정장은 스커트정장이었다) (물론 스타킹 등을 신기도 했고 옛날에는 스커트의 길이도 길었겠지만). 그래서인지 남성들이 정장을 입고 단체로 서 있을 때 여성이 스커트 정장을 입고 중간에 서 있으면 드러난 다리 때문인지 몹시 이질적으로 보인다. 위 대사에서 나오다시피, 바지 안에 들어갈 "부피큰 것"을 가진 것은 남성 쪽인데도, 여성은 왜 그렇게 오랜동안 배제당해왔을까. 그리고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저 대사는 논리적으로 말이 안된다. 현대 사회의 남성이라면 누구나 바지를 입으니까. 그러니까 결국, 성 고정관념을 이루는 이유들은 말도 안되는 것들이 아닐까, 하는 작은 의심을 싹틔우기에 충분한 대사였다고 생각한다.

이 모든 생각타래들과 함께, 나는 페트로니우스에게 깊이 공감했다. 나는 내가 억압받는 성이라는 것이 싫어서 반대의 성을 가진 상황을 수십 번 가정해 보고 상상해보며 살아왔음에도, 다른 성이 억압받는 성이 되는 것이 너무나 안쓰러웠다. 어디선가 남성들이 이 소설을 읽으면 오히려 움들에게 감정이입을 하고, 단순히 특이한 이야기정도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는 도대체 어떻게 소통해야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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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유투브로 TED talk 등을 보는 데에 빠져있던 시기가 있었다. 그 때 우연히 송길영 박사가 하는 '세바시' 강연을 연달아 두 개 정도 봤던 것 같다. 컴퓨터공학이라면 공학 중에서도 좀 '다른' 공학이지만, 일단은 우리 분야와 마찬가지로 '공학'이라는 말이 들어가니 대략 동종업계인이라고 생각하고 나니 학계에서 산업계로의 변신(?)을 아주 잘 해낸 케이스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책도 썼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는 책을 사서 봐야겠다고 벼르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에 지난달 말, 여행 갈 일이 있어서 그 전에 책을 몇권 샀다. 비행기 안에서나 공항 안에서 읽으면 시간가는 줄 모르기(!) 때문이다. 


머릿말에서 첫번째 예시부터 뒤통수를 맞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1970년대~2000년대 미국의 범죄율 그래프가 나온다. 90년대를 기점으로 범죄율이 뚝 떨어지는데 (사실 y축 제목이 없어서 정확히 어떤 것을 그린 건지는 알수 없다. 인구 n명당 범죄 발생 건수였을까?) 각종 추측이 난무하지만 (예를 들면 노령인구 증가라든가 실업율 감소라든가.) 그 진짜 이유는 20여년 전 합법화된 낙태 시술이었다.


내가 하는 일도 인과를 밝히는 것이다. 무엇이 인풋이고 무엇이 아웃풋인지를 알고 싶다. 일반적인 데이터마이닝은 상관관계 (correlation)를 볼 뿐, 인과관계 (causality)를 볼 수는 없다. A와 B가 연관 있다는 것은 데이터로는 알 수 있지만, A 때문에 B가 일어났는지는 설명하지 못한다. 


책에 수록된 예시 하나하나가 인상깊고, 데이터사이언스를 매개로 해서 내가 알던 세계 밖의 새로운 것들을 많이 배워서 즐거운 독서였다.


그럼에도 아웃도어 마케팅하는 사람들은 통기성과 발수성을 말해야 한다. 그게 그 옷이 비싼 이유이고, 기꺼이 지갑을 여는 구실이 되어주므로.

이것이 마케팅이다. 마케팅은 숨겨진 욕망을 끝까지 뽑아내는 작업이다. 그리고 그것을 에둘러 표현해야 한다. 대놓고 이야기하면 품격이 떨어져서 그것을 사는 사람들까지 없어 보이게 만든다. 기업은 그들이 떳떳하게 살 수 있는 명분을 만들어주어야 한다.

세상에서 가장 편한 마케팅이 무엇인가 하면, 이미 있는 민낯을 보여주는 것이다. 대부분 없는 것을 억지로 상상해서 만들려다가 실패하는데, 이미 있는 것을 건드려주면 실패하기 어렵다. 특히 현재 사람들이 암암리에 실천도 다 하고 있는데 차마 대놓고 말하지는 못했던 금기를 깨주면 큰 성공을 거둘 수 있다. 20대 청춘들의 머릿속은 온통 사랑과 연애로 가득하고 열심히 실행에 옮기는데, 그런 이들에게 순결을 강요하면 죄책감을 느낀다. 그런데 '괜찮아, 다 해~'하며 유쾌하게 풀어내니 20대들이 기뻐하며 앞 다퉈 카메라 앞에 서는 것이 아닌가. 


그 외에 몇 가지 생각이 드는 구절들이 있었다.


월경을 할 때는 여자로 살다가 월경이 끝나면 다시 원래의 자신으로 돌아온다는 주옥같은 뜻 아니겠는가.

 

이것은 갱년기 여성들과 그들의 발화에서 보는 스스로에 대한 인식, 그리고 그것과 마케팅을 연결하는 과정에서 '갱년기'라는 한자말을 풀어서 설명하다가 나온 문장이다. '갱년' 자체가 '다시 갱'에 '해 년' 으로 이루어진 단어이고, 또 이 단어의 뜻 자체를 저자가 만들어낸 것이 아니니 뜻에 대해서는 저자를 탓할 생각이 없다. 그러나 내가 주목하고 싶은 부분은 이 것을 말하는 그의 자세이다. 나는 가임기 여성이기 때문에 매달 월경을 치른다. 그러나 나는 월경을 시작하기 전 나 자신과 비교해서 현재의 내가 '나 자신'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적이 없다. 아무래도 이 책은 다양한 계층/성별의 사람들이 읽을 것이기 때문에 나도 저자가 나름대로 경솔한 발언을 하지 않기 위해 조심하고 있다고 느꼈다. 그러나 이 대목을 읽으면서는 이 사람에게는 집단으로서의 여성은 어쩌면 고객이라 느끼지 않는것 같다고 느꼈다. 상황이야 어쨌든 간에, 본인이 여성이 아니면서 '원래의 자신으로 돌아온다' 는 의미를 가지고 '주옥같은 뜻'이라고 첨언하는 것은 경솔했던 것 같다. 적당히 '남성 중심적인 세계관에서 이름붙여진 단어' 라는 식으로 조금 더 우회적으로 표현할 수 있었을 것이다.


외국의 기업들과 비교할 때 한국 기업들의 특징 중 하나는 R&D 기반이 강하다는 점이다. 얼마 전까지 싸고 좋은 제품을 만들면 시장에서 알아서 팔리던 시절이기에 그런지, 마케팅보다는 제품개발에 무게 중심이 실리는 듯 하다.

 

여기서 언급하는 '외국'이 어떤 나라인지는 모르겠으나, 일단 문맥상 '미국'을 들여다 놓아도 문제가 없을 것 같다.이 문장을 읽으며, 이래서 미국에 공학전공 대학원생들 중 미국인 비율이 상당히 낮은 편인게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상대방을 위해 'No'라고 말할 때 신뢰가 쌓이고 롱런할 수 있다. 고객의 사정이 좋아지면 자연스럽게 나의 매출도 오르는 것이지, 고객의 주머니를 털어 나만 돈 벌 수는 없다. 기업에 두 번 당하는 고객은 없다. 


이것은 비단 고객과 기업 사이에서만 옳은 말이 아니라 인간 대 인간의 관계에서도 옳은 말이다.


당신의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왔을 때의 표정을 본 적 있는가?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수많은 아이들의 표정에서는 아무것도 못 읽는 사람도, 자기 아이 얼굴에서 언뜻 스치는 미묘한 표정 변화는 귀신같이 포착한다.

애정이 있기 때문에 보이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물건을 팔고 싶으면 그것을 살 사람들에게 애정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그들의 표정을 읽을 수 있다.

(...)

나는 그래서 애정이 있는 사람이 비즈니스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자기 일에 대한 애정과 내 결과물을 향유할 사람들에 대한 애정 모두가 필요하다. 강연을 할 때 나는 청중들에게 하기 싫은 일을 하고 있다면 빨리 그만두라고 말한다. 


 최근 계속 느끼는데 '어떤 대상에 대한 애정'은 정말로 중요하다. 가족, 연인, 친구 사이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일을 할 때나 동료와 교류할 때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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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82년생 김지영 오늘의 젊은 작가 13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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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소설과는 달리 이 책의 의의는 크게 세 가지라고 생각한다. 첫번째로는 보편적으로 벌어지는 일들을 담담하게 늘어놓음으로써 독자 (특히 여성인 독자)들로 하여금 본인의 경험을 털어놓을 수 있게 도와주었다는 점이다. 두번째는 지금까지는 여성 군중 사이에 "구전"되던 이야기들을 "활자화" 함으로써 그 이야기들이 도시괴담같은 떠도는 이야기가 아니라 실재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는 점이다. 활자화된 서사는 사회 곳곳에서 관측되고 논의되었던 파편들을 꿰어 하나의 완성된 이야기를 만들었다. 마지막으로 보편적인 이야기지만 활자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야기를 여성 군중 외부로 새어나가지 않던 이야기가 남성 군중에게로 노출될 기회를 얻었다는 점이다.


여성독자가 이 책을 읽고 '과장했다'고 느끼거나 '내 삶은 이렇지 않았는데 도매금으로 취급당하는 느낌이다' 라고 느낀다면, 나는 당신이 그것들을 모르고 살아온 것에 대해 기쁘다. 나는 당신이 계속 차별과 혐오를 모르고 살아가기를 간절하게 바란다. 그러나 언젠가는 당신도 이런 것들에 대해 생각해보는 날이 올 수도 있다. 언젠가 오게 된다면 그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남성독자가 이 책을 읽고 '피해의식'이라고 느낀다면 제발 한 번만이라도 당신의 어머니와 당신의 여자 형제들과 당신의 여자 친구들을 자세히 관찰해보기 바란다. 그 사람들이 당신에 비해 '이등시민'취급을 받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면, 당신과 당신의 주변 사람들은 축복받았다. 나는 당신과 그 주변 사람들이 계속해서 행복하기를 바란다. 그러나 실제 그들이 느끼는 것은 당신이 관찰한 것과 다를 수도 있다. 이해하지 못했다면 차라리 그냥 그러려니 해라.


문장이나 문학적인 가치가 다른 소설에 비해 적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는 것 같은데, 내 생각에는 이 소설이 사회에 가져온 파장만으로도 별 5개를 받는데 충분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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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까지 살면서 내가 유독 더 많은 여성혐오를 겪었다거나, 성범죄의 대상이 되지는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지영씨가 겪은 일들은 너무나 익숙하게 느껴져서, 책을 읽으면서 내가 마치 예지력을 가진 사람인 것처럼 느꼈다. 어머니 세대의 불공평함을 보고 자란 것, 딸 둘에 아들이 막내로 있는 가족 (심지어 터울까지도 우리집과 같아서 놀랐다), 학교에서 일상적으로 당하는 성차별적인 언사, 50%에 한참 못 미치는 여성 비율을 보도하며 "여풍"이 인다고 묘사하는 보도자료, 아직 겪어보지는 못했지만 여기저기저 보고 들은 명절 증후군, 출산/육아로 인한 경력 단절 등등. 내가 몇 마디 더 보탠다고 크게 달라지겠냐마는 그래도 내 경험도 몇 자 보태고 싶다.


나는 여중에 다녔다. 규모가 비교적 작은 학교라서 체육 담당교사는 두 명 뿐이었는데, 한 사람은 키가 큰 여자 교사였고, 한 사람은 덩치가 큰 남자 교사였다. 여자 교사는 우리가 "여자 중학교"이므로 무용을 배워야 한다고 내가 중2 때부터 갑자기 체육 수업을 무용 수업으로 바꾸었다. 무용 시간에는 기껏해야 발레를 처음 배우면 배우는 6가지 발 모양이라든가 (초등학교때 잠시 배워서 알고 있었다) 투스텝이라든가 포크 댄스 등을 배우곤 했다. 나는 사실 무용을 잘 못해서 (그래서 초등학교때 금방 그만두었다) 무용 시간을 싫어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굳이 "여학생"들에게 "무용"을 가르칠 이유가 있나 싶다. 특히 대단한 무용도 아니고 포크댄스 따위를 가르치면서. 그리고 남자 교사는 어쩐지 기분 나쁜 신체 접촉을 은근슬쩍 하곤 한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같은 재단의 고등학교에서는 더 이상한 교사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으나 결국 나는 다른 고등학교로 진학했기 때문에 소문의 진실을 직접 확인할 기회는 없었다.)


우리 중학교에는 바지 교복이 있었다. 내 기억으로는 내 친구 중 한 두 명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입지 않았는데 왜냐하면 1) 재킷은 치마 교복을 상정하고 디자인 되었으므로 허리에서 딱 잘리는데, 바지 교복 위에 입기에는 아무래도 깡동하고 (그래서 블라우스가 자꾸만 빠져나올 것이다), 2) 척 봐도 바지가 좀 불편한 디자인이었고 라인이 잘 떨어지지 않는데다가 (중학생 또래 학생들에게 외모는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은 여러 번 말하면 입 아프다. 그래서 피어프레셔(peer pressure)도 큰 것이다.) 3) 안 그래도 치마도 이미 비싸게 주고 샀는데 바지까지 사고 싶지 않아서 였다. 왜 여학교 교복은 꼭 치마여야만 하나. (왜 교복의 구성품들은 교복이 치마인 것을 상정하고 디자인 되는가) 그놈의 "학생다운 것"을 위해 우리는 모두 머리를 귀 밑 3cm로 자르고 하얀 '카바양말'을 신고 흰색 혹은 검정색 (남색) 운동화나 구두를 신고 산 꼭대기에 있는 학교로 등교해야만 했다. 내가 한 가지 후회되는 것은 졸업식을 맞이하여 내 머리를 한 번 더 교칙에 맞게 자른 것이었다. 내 머리는 정말 빠르게 자라는 편이라 귀밑 3-5 cm라는 교칙을 지키기 위해서는 거의 1개월에 한 번씩 미용실에 들러야 했는데, 덕분에 중3 겨울방학이 지난 내 머리는 상당히 길었다. (왜냐하면 겨울방학 전에도 열심히 길렀으니까.) 그래서 거의 묶을 수 있을 만큼 길었고, 나는 원래 졸업식에 머리를 자르지 않고 가려고 했다. 그러나 엄마가 나를 설득해서 결국 나는 머리를 자르고 졸업식에 갔는데, 그러지 말 걸 그랬다


그리고 고등학교에 간 후에도 복장 관련 논란은 이어진다. 우리 학교는 교복이 따로 없었다. 그래서 적당한 일상복을 입고 학교에서 생활했는데, 여름이 되면 교장이 아주 반복적으로 "여학생들은 치마를 입지 말 것", "여학생들은 반바지를 입지 말 것"을 요구했다. 이유인 즉슨, 여학생들의 다리가 보이면 남학생들이 공부를 못한다는 것이었다. 아니 이런 개소리가 있나. (하도 여러 층위로 개소리라 도대체 어디서부터 반박해야 할 지도 모르겠다) 교복은 항상 치마로 만들면서 이제는 다리를 내놓지 말라니. 여학생들 다리 때문에 못 할 공부면 그냥 딴 길 알아봐야 하는 것 아닌가. 또, 남학생들 공부는 챙겨주면서 여학생들 공부하는 건 안 챙겨주냐? 나는 고등학교 들어가기 전에도 반바지를 7부 바지보다 짧은 것은 잘 입지 않았지만, 그래도 열이 받았다. 엄마는 나에게 그냥 보면 긴 바지지만 중간에 지퍼가 달려있어 밑단을 제거할 수 있는 바지를 사주었다. (밑단을 제거하고 나면 무릎 정도 길이가 된다) 엄마가 왜 그런 바지를 어디서 사왔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여름 내내 그 바지 2벌을 보란 듯이 입고 다녔다. 그리고 뭐라고 하면 밑단을 주섬주섬 붙여주었다.


다른 소설과는 달리 이 책의 의의는 크게 세 가지라고 생각한다. 첫번째로는 보편적으로 벌어지는 일들을 담담하게 늘어놓음으로써 독자 (특히 여성인 독자)들로 하여금 본인의 경험을 털어놓을 수 있게 도와주었다는 점이다. 두번째는 지금까지는 여성 군중 사이에 "구전"되던 이야기들을 "활자화" 함으로써 그 이야기들이 도시괴담같은 떠도는 이야기가 아니라 실재한다는 것을 강력하게 보여주었다는 점이다. 활자화된 서사는 사회 곳곳에서 관측되고 논의되었던 파편들을 꿰어 하나의 완성된 이야기를 만들었다. 마지막으로 보편적인 이야기지만 활자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야기를 여성 군중 외부로 새어나가지 않던 이야기가 남성 군중에게로 노출될 기회를 얻었다는 점이다.


책에 주석이 여러 개 있었다는 점이 특이할 만한 사항이었다. 비소설에 주석이 많은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소설에 주석이 많은 것은 "이 소설에 나오는 이야기들은 이미 사회 곳곳에서 관측된 사실이다" 라는 것을 뒷받침해주는 것처럼 보였다. (물론 '사실적 근거'를 위해 소설에 주석을 넣는다는 것은 좀 우습지만.)


그리고 여러 리뷰에서 "빙의"라는 수단을 썼다는 것이 아쉽다고 언급했다. 나도 처음에 "빙의"라는 이야기를 책 설명에서 보았을 때는 다소 거부감이 들었다. 빙의라는 것을 실제로 본 적도 없는데다가 우리가 일상에서 쓰는 '빙의' 라는 단어는 실제 의미와는 달리 은유적인 의미로 쓰기 때문이다. 그래서 매우 비현실적이라 생각했다. 책을 다 읽고 난 지금, 김지영씨가 굳이 다른 여자들에 빙의해서 할 말을 쏟아내는 이유는 그가 그런 비현실적인 방법을 쓰지 않는 한 해당 메시지를 전달할 수 없을 것이라고 저자가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 내용이 초반 1/4~1/3 가량이었기 때문에 그의 빙의 장면이 소설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지도 않는다. 


마지막으로, 책의 뒤쪽 1/3 가량 부분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싶다. 김지영씨를 진료한 정신과 의사는 김지영씨의 처지를 이해하고 본인의 아내의 처지도 이해한다. 본인이 이해심이 깊고 사려 깊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듯 하다. 그래놓고는 임신 때문에 그만두려 하는 상담사를 보며 '다음 상담사는 미혼으로' 라고 생각하며 끝난다. 나는 이 정신과 의사가 집단으로서의 남성을 나타낸다고 생각한다. 마치 "딸 같아서 그랬어" 라며 여자인 부하 직원들에게 성추행을 일삼지만, 본인의 실제 딸과 부인은 보호되어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 사실은 작가는 이 부분을 가지고, 이 소설이 출간된 후의 상황을 예견한 것이나 다름없다. 김지영씨의 이야기를 보고 이해하고 동정하는 척 하지만, 자신의 이득과 관련되어있거나 자신의 직장 동료 등에게 비슷한 일이 닥치면 눈감아버리는 얄팍한 공감 능력, 불합리한 것을 불합리하다 인지하지만 관망하며 본인의 이득만 챙기려는 게으른 기회주의자. 그러나 실제는 더 처참했다. 이해하려 들지도 않고 피해 의식이라 치부하거나, 이 책을 읽는 모든 독자들을 싸잡아서 욕하는 사람들도 나타났다. 나는 이런 상황을 볼 때마다 버지니아 울프 저 <자기만의 방>에 나오는 한 구절을 떠올린다.

"마지막 장을 읽으며, 그녀에게 백 년을 더 주자고 결론지었습니다."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는 것은 아니지만, 어떤 일을 계획하고 달성하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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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우리 몸이 세계라면
김승섭 지음 / 동아시아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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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의 건강 문제를 역사적, 문화적, 의학적으로 접근해 풀어낸 책. 전문가로서의 통찰이 빛나는 동시에 옹골찬 내용과 깔끔한 문체, 따뜻한 시선이 어우러져 어느새 나도 저자의 연구를 응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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